소설리스트

천재학사의 무공백과-38화 (90/114)

제38화

무공을 드러내다 (6)

“우와아아! 공자님이 앞서고 있어!”

“십대낭인이 별거야? 가라! 이겨버려!”

“피 먹는 늑대 따위, 무찔러 버리세요!”

강자보다는 약자의 편을 들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

관중들은 유운의 선전에 마음껏 환호했다.

일반 백성들뿐만이 아니었다.

“적 대주야말로 천하 낭인 중에서도 손꼽히는 고수이거늘.”

“공자께서 어린 나이에 저런 무위를 갖추셨을 줄이야.”

적인걸은 사람의 피로, 마수의 심장으로 자신의 힘을 증명한 사내.

초대받은 무가의 주인들 역시 유운을 보고 감탄했다.

그중에는 백리오혁의 손님으로 온 이들조차 있었다.

그럴수록 백리오혁은 초조해졌다.

“이, 이건 말도 안 되오. 뭔가 야료(惹鬧)가 있음이 분명하오!”

일그러진 얼굴로 외치는 모습에, 손님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후계 경쟁 중이라지만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혈육을 욕하다니.’

‘백리의 자제답지 않군.’

‘소문과 달리 진중하지 못해.’

하지만 백리오혁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유운 따위가 이렇게 강할 리 없소. 무언가 잘못되었소. 그래, 맞아. 이건 ‘사술’이 분명하오!”

사술(邪術)!

사람을 희생시켜 힘을 얻은 사악한 술법을 뜻하는 말!

주변 무인 모두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내 오혁 공자를 그리 보지 않았건만. 저리 허튼 말을 할 줄이야….’

‘아무리 깎아내고 싶기로서니, 스스로 가문을 욕되게 하다니!’

백리세가 같은 명문의 자손이 사술을 쓸 리 있겠는가?

백리순명이 자리를 비웠으니 망정이지, 있었으면 치도곤을 당했으리라.

‘사술이라니. 차라리 누가 몰래 영약과 무공을 줬다고 하지. 쯧쯧.’

‘아, 그렇구나! 백리 가주께서 유운 공자의 재능을 알아보고 손수 키우신 것이 분명해!‘

’노가주의 마음이 유운 공자에게 닿았구나!‘

일부는 그리 확신할 정도로 유운의 무위가 뛰어났다.

그럴수록 백리오혁이 악을 쓰고, 화를 냈다.

‘쯧쯧. 흑산의 얼굴을 봐서 뒤를 봐주려 했건만.’

‘영 안 되겠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해.’

무가의 주인들은 속으로 백리오혁에 대한 지지를 거두었다.

그리고 초조해하는 이는 백리오혁뿐만이 아니었다.

‘어린 녀석이 실로 괴물과 같구나. 이 적인걸을 상대로 흐름을 빼앗다니!’

적인걸이 이를 악물었다.

기세를 타면 없던 힘도 나고, 기세를 잃으면 손발이 어지러워지는 법이다.

그러다 보면,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적인걸이 이를 두고만 볼 리 없었다.

후우우웅!

후우우웅!

적인걸이 풍차처럼 회전했다.

좌도(左刀)는 좌에서 우로, 우도(右刀)는 우에서 좌로!

걸리면 무엇이든 베어버리는 강철 톱니바퀴였다.

“적랑회륜!”

“사파의 고수, 사안색마를 해치운 초식이잖아?”

“저, 저건 너무 과한…!”

팔다리 하나쯤은 날아가는 끔찍한 광경을 떠올릴 때였다.

따당!

유운의 검과 검집이 적인걸의 칼자루를 내려치니.

톱니바퀴는 채 돌지도 못하고 멈추어버렸다.

“초식이 시작되는 지점과 시기를 모두 읽었다고? 대체 어떻게?”

적인걸이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손목의 움직임입니다.”

“……!”

“칼이 덮쳐오기 전, 이미 손목이 회전을 시작하고 있었으니까요.”

“고작 한두 번 보고…. 그걸 파악했다고?”

적인걸은 기가 막혀서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도 몰랐던 습관이었다.

휘이익!

텅!

유운이 적인걸의 도를 비스듬하게 퉁겨내고, 옆구리를 베어간다.

정석적인 검술 대결뿐만이 아니었다.

“……!”

“……!”

적인걸이 달라붙어 손톱으로 할퀴려 하면 물러나고.

적인걸이 옷을 잡아당기려 하면 오히려 바싹 붙어서 균형을 무너뜨리니.

사람들이 그때서야 상황을 이해했다.

“적 대주를 상대로 우위라니? 말이 돼?”

“자네도 보지 않았나. 정석도 변칙도 모두 통하지 않고 있다고!”

“비무의 흐름이 바뀌었구나!”

비가 잦아들면서 비무대 풍경이 조금 더 명확하게 보였다.

유운의 검이 점점 더 빨라지는 반면, 적인걸의 움직임은 조금씩 느려졌다.

“서, 설마. 진짜로? 진짜로 이기는 거야?”

“저 어린 학사가 십대낭인을? 흑산병단의 최고수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현실이었다.

파아앙!

유운이 적인걸을 밀어붙인다.

유운 쪽 관객석까지 밀렸던 전장이, 점점 흑산조가 쪽으로 옮겨갔다.

“어쩌면, 어쩌면…. 오늘 커다란 사건이 터질 수도 있겠어!”

“우와아아아아!”

관객석이 태풍을 만난 듯 술렁였다.

벌써부터 환호성을 터트리는 젊은이들도 있었다.

샛별처럼 나타난 소년이 이름난 고수를 쓰러뜨리다니? 협객전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됐어요! 할 수 있다고요! 동 호위, 유운 공자가, 우리가 해냈어요!”

서문요란도 같이 흥분했다.

“놀랍습니다. 솔직히 버티기만 해도, 아니 지더라도 멋있게 지기만 해도 성공이라고 여겼는데.”

동평 역시 감탄했다.

“이런 게 진정한 대박이라고요!”

서문요란의 뺨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철광석이 풍부하다고 해서 산 광산에서, 금맥을 찾아낸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내공!”

“……!”

“비록 지금은 유리해 보이나. 장기전으로 가게 되면 또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적인걸은 낭인답지 않게 내공이 깊지만, 유운은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초보였다.

“내공의 깊이만은 단시간 내에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공자 역시 영약을 먹었잖아요?”

“물론 공청석유는 비할 데 없이 훌륭한 영약입니다만. 문제는 시간입니다.”

“영약의 기운을 다 소화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어지간한 기재라도 평생 소화할 수 없을 겁니다. 소가주께서 주신 영약은 그 정도로 막대했으니까요.”

“펴, 평생이요?”

“하지만 유운 공자의 재능은 매우 뛰어난 편이니….”

“……!”

“적어도 삼십 년 정도면 모든 기운을 흡수할 수 있을 겁니다.”

“그, 그럼 지금은요?”

서문요란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1할은커녕, 1푼, 아니 1리라도 소화했으면 다행일 것입니다.”

“……!”

“그러니 빨리 끝내야 합니다. 적 대주가 내공의 힘으로 밀어붙이기 전에 말입니다.”

두 사람이 기대와 걱정이 뒤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런 걱정을 하는 이는 그들만이 아니었다.

‘비무가 지나치게 과열되고 있구나.’

무림판관 정천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지금까지는 더 없이 이상적인 비무였다.

하지만 조금씩 분위기가 바뀌었다.

어느 샌가부터 적인걸의 도 위에 흐릿한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비무에서 검기라니…!’

검기(劍氣), 정확히는 도기(刀氣)였다.

본래 고수라도 검기를 쓰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근력, 속력, 지구력 심지어 안력까지.

어차피 내공이 많은 자가 더 유리하니까.

굳이 힘들여가며 기를 외부로 방출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유운 공자의 선전이 오히려 독이 되었구나!’

무가의 격언에 ‘뜻이 일면 기는 따른다’고 하였다.

유운이라는 까다로운 적 앞에, 적인걸의 투쟁심이 깨어난 것이었다.

‘본래라면 여기서 멈춰야 하거늘.’

비무에서 검기까지 쓰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검기를 쓸 정도의 고수가 많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상대의 검기를 잘 막아내도 자신의 검 자체가 조금씩 상한다.

그러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순간 툭 부러지고는 하니.

작게는 상해, 잘못하면 죽음에 이를 위험이 있었다.

그럼에도 정천수가 멈추지 못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아직 끝을 맺지 못하였어.’

두 사람의 원(願)이 서로에게 닿지 못했으니.

비무는 아직 결(結)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후우욱!

적인걸이 매서운 기세로 도를 휘둘렀다.

강렬한 도기에 빗방울이 터져나갈 정도였다.

유운을 반으로 가를 것만 같았지만….

퍼어엉!

놀랍게도 단번에 튕겨 나갔다.

‘저토록 어린 나이에 검기라니!’

정천수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가문에서 갖은 지원을 받고도 검기를 깨우치지 못하는 자가 태반이다.

그런데 가문에서 소외된 막내 공자가 스스로 경지에 오를 줄이야.

놀라운 점만은 또 있었다.

‘일단공으로 삼단공의 검기를 막아내다니!’

처음에는 비 때문에 잘못 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우우웅. 우웅!

쏟아지는 빗물을 튕겨낼 정도의 존재감.

심백검기라 불리는 세 번째 경지가 분명했다.

‘설마 적 대주가 손속에 사정을…. 아!’

뿌옇고 하얗던 검기가 우유처럼 순백으로 변했다.

검기의 네 번째 경지, 량백검기!

무른 쇠조차 갈라버리는, 전장의 폭군이었으나.

퍼어엉!

유운은 그조차 막아냈다.

‘절대 봐주고 있는 게 아니야.’

얼핏 보면 무심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일그러졌으니.

적인걸 역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도기를 통한 압박조차 오래가지 못했다.

파바밧!

스팟!

벌써 적인걸의 공세에 적응한 것일까.

유운이 보법을 밟으며 적인걸의 도를 피했다.

‘이제 검과 도와 맞닿는 일조차 드물구나!’

아무리 강력한 무기라도 닿지 않으면 소용없는 법.

게다가 유운의 몸놀림이 점점 더 가벼워졌다.

용천혈!

아무도 모르게 조화무궁의 두 번째 단전이 깨어나니.

싸우면 싸울수록, 자극하면 자극할수록 새싹이 자라났다.

‘장기전으로 가면 오히려 유운 공자가 더 유리하겠구나!’

적인걸은 곰처럼 달려들며 과도한 힘을 쏟아내고 있다.

반면 유운은 벌새처럼 피해내며 급소만 콕콕 찍어서 공격하니.

가랑비에 옷 젖듯 피해가 누적될 터였다.

‘이 정도면 우열이 이미 나뉘었어.’

‘더 볼 것도 없겠군.’

‘무림에 새로운 별(新星)이 떴구나!’

몇몇 고수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할 때였다.

“저, 저건 뭐죠?”

서문요란이 적인걸의 도를 가리켰다.

“맙소사. 이건 아니지요. 이건 아니지!”

“머, 멈추어라!”

동평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백리순명까지 고함을 질렀다.

사람 키만 한 칼날 위.

유리처럼 반투명한 무언가가 일렁이고 있었다.

이글이글…!

새빨간 불꽃이 얼음처럼 굳어서 검을 감쌌다.

마치 태양이 도 위에 내려앉은 것만 같았다.

솨아아…!

폭우조차 도에 이르지 못하고 증발해버렸다.

후끈후끈한 김이 비무대 너머까지 뿜어져 나왔다.

“도강(刀剛)!”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규격 외의 힘!

불타는 마수가 유운에게 입을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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