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화
무공을 드러내다 (8)
번쩍!
콰아아아앙…!
적인걸의 도강(刀罡)이 유운의 검을 내리치는 순간, 굉음이 울려 퍼졌다.
놀랍게도 쇠와 쇠가 맞부딪히는 소리가 아니라, 번개가 내리치는 소리와 같았다.
“……!”
“……!”
막대한 힘이 서로 맞부딪히니, 비무대 위에 폭풍이 내려친 듯했다.
자욱한 물안개에 관객들이 당황할 때였다.
‘과연 이것이로구나!’
유운만이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따로따로일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커졌다.
‘상승효과’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거기다 ‘각자의 색을 유지’하면서 하나가 되는 길이었으니.
유운은 조화무궁선법에조차 없는 새로운 길을 걸은 셈이었다.
“이, 이게 무슨…!”
눈으로 따라잡기에는 너무나 빨랐던 충돌.
극소수의 고수들만이 충돌 당시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고수일수록 더욱 혼란스러워했다.
“가, 강기를 막아냈다고? 대체 어떻게?”
“강기 말고, 강기를 막아내는 힘이 있던가?
“어, 없지. 없고말고.”
“그런데 어떻게? 대체 어떻게!”
검기처럼 하얀 안개 형태였으나, 무지개처럼 은은하게 빛났으니.
기존 무학 체계에서 그런 형태의 검기는 없었다.
당황하기로는 적인걸이 더했다.
“노오옴. 무슨 잔재주를…?”
강기지경!
평생에 걸쳐서 간신히 도달한 경지다.
강기 앞에서 버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거늘.
정체 모를 검기로 자신의 도강을 막아내다니?
후우우웅…!
적인걸이 다시 한번 도를 휘둘렀다.
도 위로 반투명한 기운이 일렁이는 것이 보일 정도였으니.
방금 전보다도 훨씬 강력한 강기였다.
하지만….
지이이잉…!
마치 지남철(자석)이 서로를 밀어내듯, 도와 검이 서로를 퉁겨냈다.
“어, 어떻게?”
아무리 보아도 강기는 아니었다.
색깔이 특이하기는 하나, 강기 특유의 강렬한 기운도, 공기를 밀어내는 기파도 없었다.
하지만 무공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손의 부들거림은, 분명 동급의 힘을 상대했을 때의 반탄력이었다.
“지푸라기로 엮은 새끼줄조차 여러 가닥을 함께 꼬면 훨씬 더 튼튼해지지요. 이를 응용해보았을 뿐입니다.”
“……!”
유운의 말에 적인걸도, 정천수도 할 말을 잃었다.
“그,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천하는 넓고 무림의 역사는 깊었으니.
음양상보(陰陽相補)라는 둥, 오행상생(五行相生)이라는 둥 여러 기운을 동시에 수련하려는 시도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서로 다른 내공은 서로를 잡아먹는 법.
수련자는 주화입마에 걸려 폐인이 되기 일쑤였다.
몸 안조차 그리 어려운데, 밖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서로 다른 기운이 저토록 조화롭게 어우러지다니?
고수일수록 몸을 덜덜 떨었다.
“지금 유운 공자께서는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시오?”
정천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말씀드린 바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공자는 새로운 무공을 만들어낸 것이오.”
“……!”
“수많은 무학의 종사들이 발조차 들이지 못한 경지의 무공을 말이오!”
정천수는 어찌나 흥분했는지, 얼굴까지 새빨갛게 달아오를 정도였다.
“오, 대단하군. 젊은 나이에.”
“나중에는 종사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이잖아.”
비무대 앞쪽에 자리한 관중 중 일반인은 놀라서 감탄했다.
하지만 무림인들은 달랐다.
“이게 대체…?”
“뭐,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너무나 놀라운 이야기에, 머리가 이해하기를 거부할 정도였다.
숫제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이까지 있었다.
‘이걸 어찌해야 하는가.’
공증인 정천수의 얼굴에 고뇌가 어렸다.
쌓아두었던 원을 마음껏 풀어야, 진정한 화해가 찾아온다.
그런 믿음으로 수많은 분쟁을 중재해왔다.
하지만 적인걸의 강기는 선을 확실히 넘었다.
“여기서 비무를 중지시켜야지.”
“아암. 반칙을 범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정 판관께서 부전승을 선언하시겠지.”
사람들은 그렇게 떠들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할 것인가?’
정천수는 두 사람의 눈을 바라보았다.
적인걸의 눈은 혼란과 열기가 뒤섞여있고, 유운의 눈은 차분함과 자신감으로 가득하니.
그들의 마음속 원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몸을 던져서라도 비무를 막으려고 했거늘.’
강기는 손에서 떠난 순간 끝이었다.
지금이 아니라면 더는 막을 기회가 없었다.
‘명분이 없지는 않지.’
반칙을 범했음에도 비무를 계속하는 유일한 경우가 있다.
바로 피해자가 이기고 있을 때였다.
‘유운 공자가 과연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방금은 그저 운일 뿐이었고, 결국 적인걸의 강기에 목이 베인다면?
무림판관으로서 쌓아왔던 명예를 모조리 잃고 말리라.
정천수는 유운의 맑은 눈을 보았다.
그리고….
“비무 속행!”
“……!”
“……!”
모두의 예상과 다른 판단이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못 믿겠다!”
쇄애애액!
적인걸의 도가 거세게 회전하며 유운을 덮쳐왔다.
“맙소사. 폭풍과 같은 도법이로구나!”
“강기를 저리 소모하다니…, 저러다가 설마…!”
모두가 예감했다.
누가 이기든지 곧 끝나리라고.
* * *
“검기를 저리 한데 묶는다니! 서로 다른 기운이 어찌 함께 어우러질 수 있단 말인가? 서로를 해쳐야 마땅하거늘.”
백리순명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기운을 여러 가닥 운용하는 내공심법만 해도 놀라운데, 검기를 사용하는 방법은 더욱 놀라웠다.
“함께 하면 당연히 더 튼튼해지지요. 다들 왜 그걸 모르지?”
듣고 있던 소화가 중얼거렸다.
“무슨 말이냐?”
“공자님께서 이야기해주신 적이 있어요.”
똘망똘망한 눈으로 말을 이었다.
“옛날 옛적에, 한 노인에게 말을 안 듣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요.”
“…….”
“너희들처럼 싸워서 어찌 내가 눈을 감겠느냐?”
“하지만 아버지, 형이라는 자가….”
“동생이라는 놈이.”
“고얀 녀석들. 어서 와서 이 나뭇가지를 분질러보거라!”
하나하나는 쉽게 부러지는 나뭇가지.
하지만 여럿이 뭉치자 부러지지 않는다는 교훈.
백리순명도 아는 유명한 옛이야기였다.
“다 큰 어른들이 그것도 모른담.”
“아아아……! 우리가 실로 어린아이만 못했구나.”
순진한 소화의 물음에 백리순명이 무릎을 쳤다.
“함께라니. 선조의 가르침을 잊고 살았어.”
수백의 관중을 품고도 끄떡없는 객석과 폭우에도 무너지지 않는 천막이었다.
그 모든 게 어찌 유운 혼자의 힘으로 가능했겠는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마음을 무공에 담아낼 줄이야!”
하늘에 닿은 오성이나, 놀라운 내공 심법 덕분만은 아니었다.
위험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끝없이 새로운 무공을 연구하는 향상심.
기존 무림인들이 잊어버린 정신이 아니었던가?
“무학사. 그래. 이것이야말로 바로 무학사가 가져야 할 마음이었지.”
끝없이 도전하여, 더 나은 길을 찾아내는 마음!
잊고 있던 가문의 근본을 유운이 일깨워주었다.
반면 청해오가의 무인들은 달랐다.
“강기까지 썼거늘. 여기서 속행이라니요?”
“상대의 목을 노리는 비무라니. 명문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오.”
“무림판관의 명성은 헛된 것이었군.”
“나이가 드셔서 눈이 어두워지셨나 봅니다.”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 중에는, 적인걸보다 오히려 공증인 정천수를 탓하는 이들이 많을 정도였다.
“아니, 정 대협의 판단이야말로 맞다.”
“소가주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보아라. 여기서 누가 멈출 수 있겠느냐?”
소가주의 말에 청해오가의 무인들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
“……!”
시끌벅적했던 관객석이 어느새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정적.
환호성조차 없었다.
두 손을 불끈 쥐고 비무에 온정신을 쏟으니.
그들의 눈에서 뜨거운 불길이 솟는 듯했다.
“어, 어떻게?”
마을 사람까지 합쳐 물경 천여 명이 넘는다.
그런데 이렇게 조용하다니?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몰입이다.”
“……!”
시골 소년이 두 주먹을 꽉 쥐고 입만 뻐금거린다.
막 처음으로 진검을 쥔 청년이 손을 움찔움찔한다.
“무공도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거늘. 어찌?”
“무공을 모르는 옛사람들이 맹수에게서 어찌 살아남았겠느냐?”
“……!”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이지. 이 대결에 담긴 진심과 의지를.”
적인걸의 도강은 실로 살벌하였으니.
솨아아아…!
스치기만 해도 비무대의 돌들이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지이이잉……!
유운은 폭풍처럼 들이치는 쌍도를 간신히 튕겨내고 있었다.
얼핏 보면 적인걸의 우세로 보이는 상황.
그럼에도 모두 말없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머리는 몰라도 가슴은 아는 것이다.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
강기를 처음 보면, 이런 고수만 있으면 군대조차 무찌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강렬하게 타오른 만큼, 금세 꺼지리라.
“적 대주의 기세는 사납고 강렬하나, 기름을 태워 얻는 불꽃과 같다. 곧 재만 남겠지.”
“……!”
“반면 유운 공자의 기운은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지니. 마치 물가에 뿌리내린 나무와 같구나.”
“그 말씀은?”
“다 타버린 불씨가 어찌 강물과 대지를 침범할 수 있겠느냐? 결국 활짝 핀 꽃과 나무만이 남겠지.”
“저 어린 청년이 어찌 저런 경지에….”
“허어! 이제는 적 대주를 몰아붙이고 있군요.”
무인들은 단지 싸움의 승패만을 보고 있었지만.
소가주는 이들이 못 본 것을 보고 있었다.
“실로 아름답구나.”
황홀한 눈빛으로 비무대를 바라보았다.
가장 경지가 높은 그만이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차아앙……!
지이잉……!
기와 기가 어우러지며 깊은 울임을 만들어내니.
열 가지 빛을 내며, 열 가지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와 같았다.
“천상의 음악과 같구나!”
천하 각지의 명인들이 모여서, 하나 된 마음으로 연주하는 곡이었다.
때마침 추적추적 내리던 비까지 멈추었다.
째애앵……!
유운의 검 위에 어린 열 개의 빛이 환하게 빛났다.
그 광경은 비가 그친 후에 내리는 무지개와 같았다.
그리고 무적의 강기조차 힘을 다하였으니.
툭.
마침내 적인걸의 쌍도가 부러졌다.
그 순간.
“우와아아아아아아!”
“이겼다아아아!”
“맙소사, 정말이야? 공자께서 적랑쌍도를 이겼어?”
“으하하하! 내 이럴 줄 알았다! 저는 믿고 있었습니다, 각주님!”
“크흐흐흑! 주구우우우우우우우우운!”
모두가 참아왔던 함성을 터트렸다.
땅이 울릴 정도로 커다란 환호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