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학사의 무공백과-54화 (106/114)

제54화

서촌에 부는 바람 (10)

댓글 중에는 유운에 대한 감상도 적지 않았다.

└ 고작해야 약관(弱冠, 스물)도 안 되어 보이거늘. 저 나이에 저런 성취라니!

└ 그럴 리가. 주안술이라도 익히지 않았겠나?

└ 검로에서 정도의 향기가 가득하지 않나? 결코 그릇된 길을 걸어온 무인이 아닐세.

└ …정말이로군. 어린 나이에 저런 경지에 오르다니!

유운은 모르는 천재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그들도 그 나이 때 저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라며 칭찬했다.

- 암, 우리 운이야말로 천하제일의 기재지!

- 크크크. 그럼, 그럼. 감히 누굴 비겨!

두 스승은 말다툼도 멈추고, 흐뭇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 눈빛이 투명하고, 허리가 곧고, 피부색은 맑으니. 정기신 모두가 바르게 섰구나!

└ 저 정도면 외모도 준수하니, 여인들이 따르겠네그려.

└ 어린 녀석이 모두 다 가졌구나. 실로 부럽네.

└ 끌끌. 신선이 되어서도 아직 속세의 때를 못 벗었단 말인가?

└ 그러는 자네는? 신선이 되자마자 머리털부터 확인하지 않았나?

└ 커흠. 평생 없이 살아오지 않았나. 본능적으로 그만….

└ 으하하!

└ 하하하!

신선들의 담소에 유운과 스승들도 미소를 지었다.

└ 하지만 아쉬운 면도 없지 않아. 검이 품은 뜻과 검의 주인이 품은 뜻이 미묘하게 달라.

└ 흐음. 그러고 보니 그렇군. 억지로 살기를 불어넣은 모양새야.

└ 검주의 타고난 성품이 온유하다는 뜻이겠지.

살아생전에도 이미 천하에 손꼽히던 고수들이다.

검술만으로도 주인의 성품을 짐작해냈다.

└ 필요하다면 검술에 맞추어 자신의 성품을 바꾸어야 하지 않겠나?

└ 개가 사납게 날뛴다고 주인이 꼭 개가 이끄는 길로 갈 필요는 없지. 검이 주인 된 자에게 맞추어야 하지 않겠나?

└ 그렇게 해서는 검술이 품은 뜻을 온전히 펼칠 수 없네.

└ 반드시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닐세….

두 신선의 입에서 수많은 무공이론과 예시가 쏟아져 나왔다.

‘검술의 뜻과 검주의 뜻이라….’

지금의 유운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최상승의 가르침!

하지만 언젠가는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 분명했다.

유운은 눈을 빛내며 댓글을 눈에 담았다.

└ 클클. 저 친구들은 매사에 너무 진지해.

└ 맞아. 애들 싸움에서 저리 심오한 이야기라니.

└ 무공의 뜻(意)도 중요하지만, 솔직히 형(形)이 더욱 재미있지 않는가.

다른 신선들은 유운과 적인걸의 초식을 하나하나 분석했다.

└ 처음 보는 검술이지만 썩 괜찮군. 오랜 시간 동안 꼼꼼하게 다듬은 흔적이 느껴지네.

└ 초식도 담백하고 깔끔하니, 초보자들이 익히기도 좋겠는걸?

└ 적을 몰아칠 때도 공명정대한 기상이 느껴지네. 흡사 남궁세가의 검을 보는 듯하군.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였다.

백리팔검에 대한 칭찬에 유운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 저 초식은 어쩐지 눈에 익은데?

└ 차가운 물이 흙과 만나 나무를 키우니…자축합토! 육합검법의 묘리가 녹아있구나!

└ 저 청년, 설마 화산의 제자였던 것인가?

└ 화산이라니!

댓글창 분위기가 갑자기 달아올랐다.

└ 아무리 화산이라 봤자, 고작 기본 무공 아니오? 그런 걸로 호들갑은….

└ 쯧쯧. 이래서 어린 신선들이란. 마도와의 전쟁 당시, 매화검수들이 가장 많이 쓴 무공이 무엇인 줄 아는가?

└ 설마 그 말은…!

└ 육합!

└ ……!

└ 자네가 말한 그 기본 무공을, 화산의 최고수들이 가장 즐겨 썼다네. 목숨이 걸린 혈전 한가운데서 말일세.

타오르는 불에 무당의 무인이 기름을 부었다.

└ 사조이신 무허검께서 생전에 이런 말씀을 하신 적 있소. 이십사수매화검법이 화려하게 피어난 나뭇가지의 꽃이라면, 육합검법은 나무의 몸통과 같으니.

└ ……!

└ 육합이야말로 화산의 정수가 녹아있는 훌륭한 상승 무공이라 하셨소.

└ 무당제일검이 인정하는 기본 무공이라니! 과연 화산이로구나.

└ 무당과 함께 구파 최강을 다툴 만해.

└ 암, 그렇고말고. 검술 하면 화산 아닌가!

이어지는 화산 칭송에, 매화검선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어렸다.

- 허허허, 이 친구들이 무공 좀 볼 줄 아는군. 안 그런가 종남제일검?

- 이익. 인정할 수 없다! 나는 인정할 수가 없어!

종남일패가 떫은 감을 씹은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 선계에 왔는데도 여전히 속세의 잣대로 문파를 평가하다니. 너무도 부당하지 않느냐!

종남일패는 유운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아무리 선계라 해도 하계, 즉 인간 세상의 영향을 안 받을 수 없다.

하계의 인기 문파는 선계에서도 높게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 껄껄껄. 억울하면 잘나가면 될 일! 여기 신선들이 아니라, 자네의 후손들에게 항의해야 하지 않겠나?

- 끄응. 네 이놈들을…!

매화검선이 보기 드물게 얄미운 미소를 지었다.

화산의 후예들이 천하에 푸른 이름을 드높이니.

하계는 바야흐로 화산 천하였다.

- 결코 종남의 무공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인재가 없어서 그런 거야, 인재가!

- 인기 역시 문파의 급을 가르는 척도일세. 안 그런가?

- 으윽. 억울하다, 억울해!

종남일패는 가슴을 내리치며 답답해할 때였다.

└ 화산의 무공은 천하의 일절이오. 하지만 정심한 만큼 익히는 데 오래 걸리지. 우리 ‘천하방’의 무공은 그렇지 않소!

새로운 신선이 말문을 열었다.

└ 천하방? 거기가 어디인가?

└ 나이 드신 분들은 잘 모르시겠구려. 요즘 하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중도 성향의 방파인데, 제자들에 대한 화끈한 지원으로 유명하오.

└ 화끈한 지원이라….

└ 이는 선계에 와서도 다르지 않소. 아니 오히려 더하다오.

└ 구미가 돋는구먼. 어디 자세히 이야기해보게!

두 신선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 백리도 화산도 아닌 천하방이라니? 내 제자의 영상에서 이게 뭐 하는 짓인가!

- 뭐 하는 짓이긴, 남의 밥 위에 숟가락 얹는 거지.

매화검선이 분통을 터트리자, 종남일패가 낄낄대며 웃었다.

‘이토록 작은 일에 저리 성을 내시다니. 평소답지 않으시구나.’

유운은 그렇지 않아도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스승님, 제자가 감히 서고에 대해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 커흠. 마, 말하거라.

매화검선이 헛기침하면서 달아오른 얼굴을 진정시켰다.

“신선들께서는 대체 왜 영상을 올리는 것입니까?”

- ……!

잘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무공은 문파의 최고 보물이자 비전이다.

아무리 선계라 하나 남에게 다 밝힐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해서 얻는 이득이 무엇이란 말인가?

- 그것은….

“물론 제자가 아직 알 때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유운은 ‘인과’라는 단어를 통해 전후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분명 하늘의 운명과 관련된 일이리라.’

서고의 존재 이유도, 각 세상에 얽힌 비밀도.

지금 당장 알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파는 달랐다.

“문파를 알리고, 명성을 드높이는 일이 그토록 중요한 일입니까?”

- 중요하다.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매화검선이 무겁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 명성이란 무엇이더냐?

“…믿음입니다.”

- 과연 내 제자로구나. 단번에 본질을 짚어 내다니!

매화검선이 감탄한 얼굴로 흐뭇하게 웃더니, 얼굴을 굳혔다.

- 네 말이 맞다. 명성의 본질은 믿음! 그 문파는 이러이러하다, 그 무공은 이러이러하다는 사람들의 믿음이지.

“사람들의 믿음이라….”

- 검수 또한 마찬가지. 자신이 가진 검술에 대한 믿음, 무공을 창시한 선조에 대한 믿음 없이 어찌 강해질 수 있겠느냐?

“……!”

- 믿음이 커질수록 힘 또한 커진다. 속세의 권력이나 재물이 아닌, 진정한 힘이 말이다.

“정기신…. 신(神)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로군요.”

- 역시 내 제자로구나, 껄껄!

매화검선이 다시 한번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 믿음은 육신을 넘어서 영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는 인간뿐 아니라 신선 역시 마찬가지이니라.

사람들의 ‘믿음’은 그저 평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일종의 ‘영적인 힘’이었다.

‘그래서 이토록 치열하였구나!’

서고에서의 활동은 단순히 세를 불리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영적인 힘을 기르는 행위였다.

두근, 두근.

유운의 가슴이 거칠게 뛰었다.

세계의 숨겨진 비밀을 엿본 기분이었다.

“믿음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합니까?”

- 결국 사람이다.

“……!”

- 오로지 사람만이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길 수 있으니. 최고의 인재야말로 번영의 씨앗이라 할 수 있다.

“아…!”

두 스승과 신선들의 인재에 대한 욕심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 너는 본 신선의 유일한 제자로서 자부심을 갖고 각별히 노력해야….

- 어허. 어딜 혼자 먹으려고!

듣고 있던 종남일패가 눈을 부릅떴다.

- 허어, 이 친구가! 내 제자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거늘….

- 운이가 어째서 자네 혼자만의 제자인가? 우리 둘의 제자이지.

- 커험. 그때는 상황이 급박하여 그러한 것이고….

매화검선이 짐짓 목소리를 낮추었다.

- 자네에게 받을 옥로주에 한 병을 더 얹어서 돌려줄 터이니 물리는 게 어떤가? 공동이 아닌 단독 제자로….

- 금화를 버리고 철전을 줍는 바보도 있던가?

종남일패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 두 병이 부족하면 세 병, 아니 빚을 져서라도 열 병을 줄 터이니…

- 어딜 감히! 내 옥로주는 내줘도 우리 운이는 절대 못 주지. 꿈도 꾸지 말게.

- 끄응. 운이이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화산의 제자이거늘.

매화검선은 앓는 소리를 내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유운을 구슬렸다.

- 사정상 두 문파의 공동 전인이 되었으나, 제자는 마땅히 화산의 무공에 온전히 집중하여야 할 것이다. 천하에 화산에 비길만한 무공이 없으니….

- 없기는 왜 없어? 종남의 무공만 해도….

- 어허, 이 친구가. 댓글을 보게.

처음에는 화산과 천하방이 박빙이었다.

짜기라도 한 듯, 두 신선이 주고받으며 천하방을 띄워주었으니까.

하지만 두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

결국 천하방은 화산에 비교할 수 없다는 쪽으로 중론이 모아졌다.

- 천년 종남은 천하방 따위와는 다르다. 화려하기만 한 화산검이나, 부드럽기만 한 무당검과도 다르지. 구파 중에서도 가장 웅혼한 검세를 자랑하니….

- 평판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종남이 한 번이라도 화산 위에 올라선 적이 있었나?

- 이이익. 그, 그건!

생전의 종남일패는 천하제이인.

종남 역시 마찬가지였다.

- 조회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일세.

느긋한 표정으로 동영상을 조회수 순으로 보여주었다.

“……!”

무림에서의 지위는 소림과 무당이 더 높지만, 인기만큼은 달랐다.

거기에 그 유명한 화산제일검까지 더해지니.

화산 이름을 단 동영상의 조회수는 종남은 물론, 두 문파조차 압도했다.

- 자네의 바람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선계든 하계든 종남이 화산을 뛰어넘을 수는 없네.

- 종남은 무적이다! 종남의 무공이야말로 최고다!

종남일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외쳤다.

- 나를 비롯한 후손들이 부족했을 뿐이야. 인재, 뛰어난 인재만 있다면, 천하를 제패하고도 남을 터!

종남일패가 뜨거운 눈으로 유운을 바라보았다.

- 천마라면 혹시 모를까. 종남이 천하를 제패한다? 껄껄,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군!

천하의 사랑을 받는 문파답게, 매화검선은 여유롭게 웃으며 부채질을 했다.

- 그날은 온다, 반드시 올 것이다!

종남일패가 하늘을 보며 간절하게 외쳤다.

- 언젠가 ‘용’이 ‘큰 구름’을 뚫고 날아오르리니. 마침내 오랜 기다림이 끝나리라!

종남을 사랑하는 무인이 눈물을 글썽이며 목 놓아 외쳤다.

- 그날은 반드시 온다! 종남이 천하에 군림하는 그 날이!

백마 탄 영웅을 기다리듯, 간절히 외쳤다.

- 부디 종남의 건승을 빌겠네.

문파는 달라도 친우다.

매화검선이 진심을 담아서 축복했다.

- 거, 건승이라고?

건승(健勝).

분명 나쁜 일 없이 건강하라는 바람을 담은 좋은 말인데.

종남일패는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 건승하시게.

- 거, 건승…!

들을 때마다 점점 더 그날이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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