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학사의 무공백과-71화 (48/114)

제71화

실타래를 풀어내다 (4)

‘아아…! 실로 아름답구나!’

유운은 탄성을 내질렀다.

무학은 미지의 신대륙과도 같다.

사람의 발길이 닿은 부분은 해안가의 얼마 안 되는 땅뿐.

나무는 빽빽하고, 산은 높으니 어디로 가야 할 줄 몰랐다.

하지만 지금만은 달랐다.

선인이 닦은 길 위로, 힘차게 발을 내디뎠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걸어야 할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본가의 검법에는 일관된 흐름이 있으니. 웅풍십이검의 경로는 분명 이리하리라.’

유운은 아직 배우지도 않은 다음 단계의 무공을 그려낼 수 있었다.

거기에 내기의 흐름조차 활발해졌다.

콸콸콸…!

열 줄기의 강물이 더욱 맑아졌을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섞였다.

‘내기를 무작정 빠르게 한다고 좋은 것은 아니었어!’

물줄기가 느릴수록 오히려 섞여 있던 불순물이 가라앉았다.

유운은 본능적으로 이것이 ‘강기지경’으로 이르는 길임을 깨달았다.

‘강(?)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하니. 큰 산을 넘었다고 기뻐하였는데, 돌아보니 조그마한 언덕에 불과하구나!’

오죽하면 그리 탄식할 정도였다.

강기지경의 강자는 한 가문은 물론, 한 지방을 지배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랬기에 적인걸이 강기를 쓰고도 패했을 때,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압축. 정련. 정제. 이것만 있으면 강을 이룰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강철을 베는 검을 품으려면, 검에 베이지 않는 검집이 있어야 하는 법!>

‘……!’

<마치 뱀이 허물을 벗는 것과 같다. 나라는 틀을 벗어던지고, 다시 나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니. 도전하는 자는 적어도 세 번의 탈피를 거쳐야 하리라.>

유운은 자신의 몸을 돌아보고 깜짝 놀랐다.

놀랍게도 이미 첫 번째 준비가 완료되어 있었다.

‘팽 스승님의 가르침 덕분이로구나!’

팽육의 근육파괴술이 근육뿐 아니라 신체 내부까지 단련한 것이다.

거기에 만수신의의 가르침이 단전과 혈도, 기맥을 보호하니.

첫 번째 관문은 이미 오래전에 돌파한 것과 같았다.

그리고 두 번째 관문에 도달했다.

우웅, 우웅…!

유운의 몸이 덜덜 떨렸다.

혈관과 혈도가 다시 한번 뒤집히니.

강을 품을 정도가 아니라, 강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몸으로 바뀌어갔다.

- 세상에 벌써?

- 말도 안 되는 속도로구나!

두 스승은 입만 달싹거리며 조그맣게 속삭였다.

검기만으로 강기지경을 이긴 유운이다.

그런 유운이 강기지경에 오른다면?

‘조금만…조금만 더!’

멀리서 세 번째 관문이 보였다.

내공이 꼬이고, 압축되며 다른 무언가로 변해갈 때였다.

솨아아….

마침내 깨달음의 순간이 끝났다.

‘아아아…!’

때가 되면 밀려 나가는 밀물처럼, 천문이 닫혀갔다.

하지만 아쉬움을 토할 시간도 없었다.

<후인이여, 실로 고생 많았다. 여기까지 도달하느라 족히 반평생은 보냈을 터. 나 비류신검 연자후가 인정한다. 그대는 마땅히 보상받을 자격이 있다!>

연자후의 배려는 단지 구결만이 아니었다.

허공을 울리는 묵직한 목소리!

무려 사백 년의 시간을 넘어서, 절대 고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맙소사. 심검지경의 고수는 이런 이적도 가능하단 말인가?’

연자후의 모습은 기대와는 조금 달랐다.

패기 넘치던 얼굴에는 검버섯이 가득했고, 단단했던 근육은 모조리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눈동자만은 달랐다.

고오오…!

비록 어둠 속이지만, 천하를 논할만한 절대 고수였으니.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위축될만한 신위였다.

<읽는 것보다 보여주는 것이 낫고, 보여주는 것보다 느끼는 것이 나은 법! 내가 도달한 무공의 끝을 느껴 보거라. 이는 고생한 연가의 핏줄에게 주는 나의 선물이니….>

절대 무공의 체험이라니?

어쩌면 깨달음의 순간보다 더한 귀한 기회였지만, 유운은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

‘이런! 내가 큰 잘못을 저질렀구나.’

비록 시조의 도움이 컸다고는 하나, 두 가지 무공은 분명 연씨 가문의 것.

명가의 자손으로서 어찌 다른 가문의 비전을 훔치겠는가?

‘마땅히 연씨가 누려야 할 기연이야.’

글자는 생각할 틈조차 없이 빠르게 흘러들어왔으니,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만은 달랐다.

유운이 두루마리를 접으려고 했다.

하지만 족자는 마치 강철 문이라도 된 양 버텼다.

콰르르르…!

오히려 족자 속 세상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아니, 정확히는 유운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폭포수에 휘말린 듯, 막대한 압력이 온몸을 짓눌렀다.

“안 됩니다, 저는 받을 수 없습니다!”

유운이 소리쳤지만, 연자후는 묵묵히 서 있었다.

- 운아, 저것은 진짜 그가 아니라, 그가 남긴 의지이니라. 그러니 멈출 수 없다.

‘……!’

- 그의 뜻을 받아들여라.

“그…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유운은 빨아들이는 힘에 온 힘을 다해 저항하며 말했다.

- 시간보다 무섭고 강한 것은 없다. 그런데 이 정도로 강한 현실 간섭이라? 아무리 절대 고수라도 쉽지 않다. 아니 극히 어렵다.

“그런데 어떻게 사백 년 동안이나….”

- 생을 불태울 의지!

“……!”

- 이는 평생 쌓은 기를 모두 소모하고, 혼을 불태울 각오로 발휘한 권능이니. 억지로 거스른다면, 그의 의지가 헛되이 사라질 것이다. 진정 그리되길 바라느냐?

“……!”

- 그뿐만 아니다. 선인이 남긴 의지와 부딪힐수록 네 영혼 또한 큰 타격을 입을 터. 어리석은 고집으로 복을 화로 바꿀 셈이더냐?

매화검선이 진중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아…!”

유운은 길게 탄식하며 저항을 멈추었다.

솨아아…!

강력한 힘이 유운의 혼을 빨아들였다.

오직 유운의 육신만이 현실에 남았다.

- 휴우. 괜찮을지 모르겠구나.

매화검선의 탄식에 종남일패가 혀를 찼다.

- 끌끌. 그리 걱정되면 아까 말리지 그랬나?

- 호랑이 등에 올라탔는데 어찌 내리라 하겠나?

- 하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갈 수밖에 없었지.

억지로 내리려다가는 자칫 정기신이 상할 수도 있었다.

- 끄응.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방법이 없구나.

- 그러게 말일세. 옆에 있었으면 벌모세수로 몸속을 씻어주기라도 하였을 터인데.

- 서로 다른 세상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아쉬울 따름이구나.

두 스승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세상을 뛰어넘는 것은, 놀라운 힘을 가진 신선에게조차 불가능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기다림뿐이었다.

* * *

째잭, 째잭.

이른 아침, 서촌 외곽의 조그마한 객잔.

연제승은 애타는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휴우. 괜한 짓을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나.’

백리세가의 직계에게 인정받고 약속을 받다니?

처음 며칠은 하늘을 나는 듯 붕 뜬 기분이었다.

하지만 곧 익숙한 근심과 걱정이 찾아왔다.

‘비록 마음은 감사하나…. 유운 공자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지.’

연제승은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나긴 세월, 막대한 재화와 인원이 투입되었음에도 찾지 못한 비밀이다.

아무리 재지 넘친다 한들, 젊은 학사가 찾아낼 수 있을 리 없다.

‘젊음이라….’

연제승은 찬물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았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밭고랑처럼 패인 이마.

젊은 날의 열정과 패기는 스러진 지 오래였다.

아니, 늙은이가 노욕을 놓지 못한다며 욕까지 먹는 상황이었다.

꾸욱.

연제승은 찻잔을 힘주어 쥐었다.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고작 가문의 영광 때문이 아니었다.

‘내 너희들을 위해서라면…!’

남녀 한 쌍을 본 순간, 연제승의 눈이 풀어졌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제 자식들이었다.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좀이 쑤셔서 죽겠네. 돌아다니지도 못하게 하고.”

십 대 초반 소년의 소년이 투덜거렸다.

연제승의 둘째, 연백경이었다.

“아버님 앞이다. 경거망동하지 말거라.”

십 대 중반의 소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나직하고 고요한 목소리.

연제승의 첫째, 연백련이었다.

“칫. 간만에 멀리 나왔으니 좀 놀 수도 있지. 무슨 사람이 인형도 아니고 어떻게 가만히 있어?”

연백경은 구시렁거리면서도 감히 대들지는 못했다.

연백련의 언행이 무겁고 진중하니, 어릴 때부터 아버지보다 누나를 더 어려워했다.

“조용히 밥이나 먹도록 하여라.”

“치잇. 여기까지 와서 기껏 소면이야?”

“그조차 먹지 못하는 백성들이 많아.”

“칫. 누나는 맨날 그 소리야.”

연백경은 투덜거리면서도 그릇에 얼굴을 묻었다.

연씨 일가가 값싼 음식으로 허기를 달랠 때였다.

“저들이 연씨 일가로군? 허름한 족자를 무공비급이라고 우기는 어리석은 자들이.”

“쯧쯧. 유운 공자께서는 마음이 약해서 탈이야. 어찌 저런 자들과 얽히시는지.”

“삶이 고통스러우면 헛된 꿈을 꾸기 마련이지. 아들아, 너는 커서 저런 사람이 되면 안 된단다.”

돌려 말했지만 비웃음임을 모를 리 없다.

연제승은 화를 내는 대신 한숨을 쉬었다.

‘휴우. 공자께 폐를 끼치지 않고자 일부러 외곽까지 나왔건만.’

자신이야 비웃음에 익숙했다.

하지만 유운과 자식들까지 얽히니 속이 편치 않았다.

“이익. 저 사람들이. 말이면 단 줄 알아?”

연백경이 성을 내며 일어서려고 했다.

“자리에 앉거라.”

연백련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누나는 화도 안 나? 우리 연씨를 모독했잖아.”

“무림은 힘으로 말하는 법. 여기서 저들에게 화를 낸들 무엇이 바뀌겠느냐.”

“와. 역시 누나는 사람이 아니야. 어떻게 눈 하나 깜짝도 안 하냐.”

연백경은 손가락을 움찔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누나의 얼굴을 쿡쿡 찍어보고 싶은데, 무서워서 차마 손을 못 올렸다.

“미안하구나, 얘들아. 먼 곳까지 와서 욕을 보는구나.”

“아닙니다, 아버님. 가문의 일이거늘 어찌 저희만 빠질 수 있겠습니까?”

연제승의 말에 연백련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저들은 본래 서촌에 살던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가 유운 공자의 관심을 얻었으니, 질투하는 것일 터. 힘들더라도 조금만 견뎌라.”

“대단한 사람들인 줄 알았더니, 겨우 콩고물을 얻어먹겠다고 온 외부인이로군요. 흥, 두고 봐요. 언젠가 제가 손봐줄 거예요!”

연백경은 입술을 씹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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