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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학사의 무공백과-77화 (54/114)

제77화

실타래를 풀어내다 (10)

꾸짖을 갈(喝).

고작 한 글자의 뜻을 전했을 뿐이건만, 그 대가는 결코 작지 않았다.

- 쿨럭!

매화검선이 기침과 함께 검붉은 피를 쏟아냈다.

- 이런 미친! 자네가 무엇을 바쳤는지나 아나?

종남일패가 다급히 매화검선을 지혈했다.

유운과 그들을 가로막는 것은 고작 얇은 종이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 아니 우주의 법칙!

신선조차 감히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인과율’이었다.

그것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뛰어넘었으니.

- 커허억!

매화검선이 다시 한번 피를 토했다.

수십 년의 수행이 날아감은 물론, 영혼의 한 조각마저 소멸했다.

이는 무한의 수련으로 결코 복구할 수 없는, ‘본질’의 소멸이었다.

- 이 친구야, 이 어리석은 친구야!

종남일패가 눈물을 글썽이며 등 뒤에 손을 댔다.

- 솨아아!

그의 몸에서 막대한 영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 또한 수십 년의 고된 수련을 소모하는 일. 하지만 어찌 친우의 고통에 비하겠는가?

매화검선은 오히려 껄껄 웃었다.

- 이거 내 피를 본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구만. 새롭구만, 새로워!

적지 않은, 아니 가혹한 대가였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 운이는? 우리 운이는 어떻게 되었나?

매화검선의 눈은 오직 유운에게로 향했다.

- 녀석은, 운이는…!

애타는 두 쌍의 눈이 두루마리로 향했다.

* * *

쿵!

연백련은 심장이 뚝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아아…! 연가의 복(福)이 화(禍)가 되는 날이로구나.”

“연아, 그게 무슨 소리냐? 가문 모두가 함께 경축해야 할 일이거늘.”

연제승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반문했다.

유운이 막 강기를 선보인 참이었다.

그것도 연가의 무공인 비류연검을 통해서.

연백경도 흥분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치게 값진 보물은 재앙과 같습니다.”

“또 그 소리더냐?”

“귀한 무공은 제 핏줄하고도 나누지 않는 것이 무림인입니다. 하물며 강기지경의 무공입니다.”

연백련이 길게 탄식했다.

“걱정이 과하구나. 유운 공자께서 내게 친히 약속하셨다.”

“돌아서면 말을 뒤집는 것이 명가라는 자들의 속성입니다. 그리 겪고도 모르십니까?”

“허, 허나….”

연제승이 자기도 모르게 멈칫했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간 보아온 세가들의 행태가 그러했다.

“이 광경을 보고도 그런 말씀이 나오십니까?”

화탄에 맞은 듯 녹아버린 묵철 갑옷.

곳곳이 패인 연무장 바닥.

보기만 해도 몸이 떨리는 위력이었다.

거기에 어두컴컴하고 인적조차 없으니 절로 몸이 떨렸다.

“연가의 무공을 빼앗을 생각이라면, 왜 우리를 불렀겠느냐? 말이 되지 않는다.”

연제승이 애써 부정했다.

“족자에 제약이 달려있었을지도 모르지요. 연씨의 핏줄이 있어야만 진정한 비밀이 드러난다든지.”

방향은 다르나, 조금은 진실에 다가선 추측이었다.

“허억! 이미 족자의 비밀이 드러나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설마….”

“비밀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사, 살…”

연백련은 연제승이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을 받았다.

“살인멸구!”

“……!”

“죽여서 입을 막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방법. 제가 유운 공자라도 당연히 그 방법을 택했을 것입니다.”

“아아…!”

연제승이 자리에 철썩 주저앉았다.

“어쩌면 오늘. 연가는 세상에서 지워질지도 모릅니다.”

“누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의심병도 그 정도면 치료를…어?”

연백경이 터무니없다는 듯 고개를 저을 때였다.

“어…엇?”

“허엇!”

“……!”

섬찟한 느낌이 모두의 등줄기를 관통했다.

쿠르르릉…!

굉음이 울리더니, 연무장 주변이 무너질 듯 흔들렸다.

먹물이 번지듯, 유운의 눈동자가 검게 변하는 순간.

고오오…!

무언가가 그들의 영혼을 짓눌렀다.

“무, 무슨?”

세 사람이 간신히 유운 쪽으로 눈을 돌린 순간이었다.

‘……!’

‘……!’

끝을 알 수 없는 구멍.

꺼지지 않는 검은 횃불이 그들을 마주 보았다.

‘도, 도망쳐야…!’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으나 혀가 굳어갔다.

팔다리를 놀리려 했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단지 겁먹어서가 아니었다.

오직….

살(殺)!

보이지 않는 검이 베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몸을 움직이겠다는 ‘의지’ 자체를!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아득한 절망감이 덮쳐왔다.

‘아아아…!’

연백련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수많은 위기를 재능과 지혜로 이겨냈다.

그중에는 아버지에게 말할 수 없는, 어둠조차 있었다.

하지만 그중 무엇도 이것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살 길을 찾아보려 했다.

자신은 아니더라도 아버지, 아니 동생만이라도.

하지만….

‘…없어!’

이번만은 달랐다.

어디에도 살아날 길이 보이지 않았다.

* * *

유운의 정신은 아득히 높은 곳에 있었다.

‘이토록 조그마했구나.’

구름 위, 아니 우주의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작고도 작았다.

천하도, 사람도 모두 조그맣게 느껴졌다.

‘하찮구나.’

범접할 수 없었던 명문의 고수도, 명망 높은 학자도 모두 개미처럼 하찮게 보였다.

평생을 쫓아왔던 도(道)도, 의(義)도 모두 부질없어 보였다.

고작 이런 세상에 얽매여있었단 말인가?

‘지금이라면…할 수 있어.’

보이지 않는 검.

무엇이든 벨 수 있는 검.

심검(心劍)을 깨닫는 순간, 그가 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

유운이 검을 들었다.

후우웅…!

번쩍!

하늘의 구름이 사그라든다.

태양 빛이 어둠 속에 녹아든다.

지금껏 상상도 못 했던 힘!

유운은 압도적인 고양감에 전율했다.

- 생(生)이란 그저 운명의 실에 얽힌 꼭두각시에 불과하니.

- 역천(逆天)의 검을 들어라!

- 베어라. 죽여라. 그들을 자유롭게 하라!

그림자가 그에게 속삭였다.

새하얀 눈밭과도 같았던 영혼에 검은 잿가루가 뿌려졌다.

유운의 눈이 검게 물들었다.

솨아아…!

유운의 검이 영혼 밖으로, 세상으로 향할 때였다.

우르르….

심상 세계가 무너질 뜻 흔들렸다.

그리고 천둥처럼 들려오는 소리.

[ 갈(喝)! ]

‘……!’

단 한 글자. 한지만 그 안에는 무한한 권능이 담겨있으니.

세상이, 영혼이 격하게 흔들렸다.

쿠르르릉!

바람이, 아니 폭풍이 불어닥쳤다.

하얀 눈을 뒤덮던 잿가루가 휘말려 날아갔다.

그리고 유운의 눈이 차츰 맑아졌다.

‘대체 무슨 일이…?’

백일몽에서 막 깨어난 듯 머릿속이 흐릿했다.

이내 유운은 전후 사정을 짐작해냈다.

‘내가 망아지경에 빠졌었구나!’

아무리 커다란 그릇이라도 바다를 담을 수는 없는 법.

아득히 높은 곳에서 벌어진 일들을 모두 기억해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머리는 몰라도 영혼은 느낄 수 있었다.

아찔할 정도로 황홀한 기운이 가득했으니까.

‘순간이겠지만…놀라운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 분명해.’

유운은 마음을 다스리며 되뇌었다.

다만 그 생각은 상식 범위 내에 있었으니.

‘강기지경, 이층위! 그 놀라운 경지를 엿보았구나!’

자신이 오른 경지를 짐작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누가 감히 상상하겠는가?

산을 오르다 갑자기 저 하늘 너머로 날아가리라고.

감당할 수 없는 깨달음은 나비처럼 날아갔다.

그럼에도 유운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기연을 얻었어!’

깨달음을 구하는 것은, 망망대해를 헤매는 것과 같다.

단지 바다가 크고, 넓어서 괴로운 것이 아니다.

어딜 봐도 똑같은 풍경이니….

위치. 방향. 목적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기에 더욱 힘들다.

그런데 지도가 있다면?

비록 정확하지 않더라도 큰 도움이 되리라.

지금 유운의 상황이 그러했다.

‘연 대협 덕분에 다음 단계로 가는 시간이 단축되겠구나.’

유운은 연자후가 잠들었을 서쪽 하늘을 보며 두 손을 모았다.

다만 유운은 알지 못했다.

찰나의 경험은 수십 년, 아니 백 년의 수련보다 더한 깨달음을 주었으니.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기연이었다.

‘연가의 무공이 이리 뛰어나다니. 본가의 신공 못지않구나!’

검기지경의 무공만 해도 충분히 훌륭한 무공이다.

그런데 그 너머를 자유롭게 넘나드니.

보기 드문 절세 무공임이 분명했다.

‘연 가주께서 실로 기뻐하시겠구나.’

유운은 흐뭇하게 웃으며 연씨 일가에게로 향했다.

그동안 겪은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숨겨진 보물이 생각보다 훨씬 크니, 유운 역시 기분이 좋았다.

“가주님, 감축드립니다.”

유운이 살짝 설레는 표정으로 두 손을 모았다.

상승 무공만 해도 탐내는 자들이 많다.

그런데 천하신공이다. 세상을 오시할 절대무공이다.

비록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나, 유운 역시 사람이었다.

- 고생하셨습니다, 공자님!

- 오랜 가문의 숙원을 풀어주시다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칭찬과 감사의 인사 정도는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 분위기가 이상했다.

‘……?’

연씨 일가의 얼굴은 시체처럼 창백하고, 몸은 허수아비처럼 흐물거리니.

마치 죽다 살아난 듯한 모양새였다.

사박사박.

한 여인이 부스러진 연석을 밟고 앞으로 나섰다.

머릿결은 삼단처럼 검고, 이마는 곱고 희며, 입술은 장미처럼 붉으니.

큰 성읍에서도 보기 드문 미녀였다.

얼굴은 옥으로 빚었으나 마음은 얼음으로 빚었구나!

다만 고고함이 지나쳐, 냉정하다고까지 평가받고는 했다.

그토록 흔들림이 없는 여인이었는데.

“공자님….”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연백련이 굳어버린 다리를 억지로 옮기더니.

쿵.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이마, 두 팔꿈치, 두 발꿈치 모두 땅에 대고 절하는 자세.

오체투지(五體投地).

전조의 황제만이 받을 수 있었던 극상의 예였다.

“여, 연 소저. 이, 이게 무슨?”

상상조차 못 하던 일에 유운이 깜짝 놀랄 때였다.

“짖으라면 짖겠습니다. 구르라면 구르겠습니다.”

“……?”

연백련이 고운, 그러나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평생 공자의 개가 되어 살 터이니. 부디 가족의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유운은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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