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학사의 무공백과-81화 (58/114)

제81화

백호문의 초대 (3)

“그렇게 좋으냐?”

유운이 자기 몫의 화산표설을 내밀며 말했어요.

“엄청요. 행복해요, 히히.”

소화가 배를 두들기며 다시 입맛을 다셨다.

붉은 꽃 위에 뿌려진 하얀 눈가루.

상큼하고 달콤함이 버무려진 맛이라니!

“냠냠. 너무 맛있어요, 진짜 진짜.”

소화는 화산표설을 한입 가득 담았음에도 더 먹고 싶어 했다.

면이나 고기, 야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모양새였다.

“여기서 더 먹으면 안 되는데. 꿀꺽.”

맞은편에서는 거암이 매콤한 면 볶음 요리를 한입에 삼킨 후 입맛을 다셨다.

반면 달달한 화산표설은 입에 맞지 않는지 손도 대지 않았다.

“그거….”

“그거….”

소화와 거암이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씨익 웃었다.

그리고 은근슬쩍 접시를 교환했다.

“히히히.”

“크하하!”

소화는 더 많은 화산표설을.

거암은 더 많은 볶음면을.

서로 만족스러운 거래였다.

“오늘만은 봐주신다고 했죠? 무르기 없음!”

“크흠. 공자님이 허락하셨으니. 하루 정도야 뭐. 으하하!”

두 사람은 간만에 허리띠를 풀고 마음껏 먹었다.

“교환을 통해 각자의 행복이 더욱 커진다라.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상도(商道)로군요.”

“이를 말씀이십니까, 허허허.”

그 모습을 본 유운과 장노가 같이 웃었다.

- 허허, 고놈들 참 맛있게도 먹는구나.

- 쯧. 신선놈들이 만든 음식이란 게 죄다 밍밍해서. 크으! 바싹 구운 오리고기랑 죽엽청을 다시 먹을 수 있다면, 내 소원이 없겠구나!

매화검선과 종남일패 또한 입맛을 다셨다.

- 화산표설이라. 한 번만 맛볼 수 있다면…!

진짜 화산과 관련이 없음을 안다.

그럼에도 화산이라는 단어에 끌릴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스승님들께 이곳의 음식을 꼭 대접하고 싶습니다.”

- 허허, 말이라도 고맙구나.

- 크흐흐. 죽엽청, 아니 노주(老酒)도 잊으면 안 된다. 그거 꼭 먹을 거다!

진심 가득한 유운의 말에 두 신선이 흐뭇하게 웃었다.

“으하하하!”

“주인장, 한 접시 더!”

“어이쿠, 저야 좋습니다만 이러다 배탈 나십니다.”

“옛말도 모르오? 오늘 배 터지게 먹으면, 내일 죽어도 좋으리라!”

“으하하,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대장님!”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소리.

향기로운 음식 냄새.

서로 부대끼며 터져 나오는 웃음.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스승님.”

유운은 빙그레 웃으며 품속의 두루마리를 꺼냈다.

[<녹화> 기능을 활성화합니다.]

[영상 초점을 맞추어주십시오.]

..

.

[새로운 영상을 제작합니다!]

두루마리에 일상의 행복이, 모두의 모습이 담겼다.

‘꼭 무공일 필요는 없지.’

유운은 뿌듯한 눈으로 주루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두루마리는 하늘이 내린 보물.

어찌 수련에 게으름을 피우겠는가?

그랬기에 항상 녹화해서 무공의 허점을 보완하는 데 쓰고는 했다.

하지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

이렇게 ‘삶’을 위해, ‘행복’을 위해 쓰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촤르르…!

맛있는 음식, 시답잖은 수다, 넉넉한 웃음.

서촌의 일상 모두가 녹화되었다.

그리고….

[영상 녹화가 완료되었습니다.]

[설정에 따라 자동으로 ‘업로드’합니다!]

평소 녹화가 종료되면 자동으로 도서관에 올라가도록 ‘설정’해두었다.

어차피 올린다 한들, 보는 것은 두 분 스승뿐이었으니까.

그런데….

비무도, 수련도 아닌 영상인데.

유운도, 두 신선도 보지 않았는데.

- 조회수 : 1.

- 조회수 : 3.

- 조회수 : 7.

..

.

처음으로 변화가 시작되었다.

* * *

서촌에는 백리제일학사가 있다더라!

진정 무학을 이해하는 무학사가 나타났다더라!

소문이 처음 퍼질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이 코웃음을 쳤다.

“학사 나부랭이가 무슨.”

“막내 공자가 본가로 돌아가고 싶어서 같잖은 수를 쓰는 게지.”

대놓고 험담을 하는 자들도 많았다.

하지만 주머니 속의 송곳을 어찌 감추겠는가?

“쯧쯧. 자네들이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일세. 하늘이 얼마나 큰 줄을 모르니….”

“눈을 뜨고도 이런 기회를 놓친다? 나야 좋지, 껄껄! 먼저 서촌으로 가겠네!”

직접 본 자들, 겪은 자들의 입을 통해 유운의 명성이 널리 퍼졌다.

덕분에 가장 큰 이득을 본 집단은, 운연상단 그리고 서촌 그 자체였다.

“이것 봐, 얘들아. 우리 아빠가 사준 거야. 이쁘지?”

“와, 이쁘다. 어디서 났어?”

“저기 북방에서만 구할 수 있는 귀한 털이래. 부드럽지?”

한 여자아이가 부드러운 모피 목도리를 두른 채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늦은 여름. 땀이 삐질삐질 났지만, 친구들의 부러운 표정을 보니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짜잔! 이 장신구는 어때? 이쁘지?”

한 여자아이가 신나게 팔찌를 내밀었다.

팔찌 한가운데에는 파란 구슬이 박혀있었다.

“와, 진짜 옥 같아.”

“나도 아빠한테 사 달래야지.”

아이들은 서로의 보물을 살펴보며 조잘조잘 입을 놀렸다.

사람이 몰리는 곳에 돈이 몰리는 법.

목수든, 상인이든, 농부든 할 것 없이 서촌 모두가 부유해졌다.

덕분에 여자아이들의 모습도 달라졌다.

고운 옷과 예쁜 장신구.

시골 농부의 딸이 아니라, 큰 성읍에 사는 상인의 딸과 같은 모습이었다.

“흥, 그래도 내 옷만은 못할걸?”

“우와! 진짜 예뻐!”

“저거 서역에서만 난다는 비단 아니야?”

한 여자아이가 제자리에서 팽그르르 돌자, 곳곳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부럽지? 돈 있어도 아무나 못 구하는 거야. 우리 아빠니까 구할 수 있는 거야.”

촌장의 막내딸이었다.

늦게 낳은 딸이라고, 무리해서 값비싼 옷을 입힌 덕이었다.

“소화야, 너도 만져볼래? 어찌나 부드러운지 몰라.”

“응? 으응.”

소화가 주춤거리며 옷감을 만져보았다.

어찌나 부드러운지 손가락이 미끄러질 정도였다.

“뭐, 그럭저럭 괜찮네.”

소화가 별거 아니라는 듯 새침하게 손을 뗐다.

“후훗. 아무리 너라도 이런 옷은 못 구할걸?”

촌장의 딸, 홍아가 다 안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한때 투닥거리다가, 이제는 친한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자랑만은 별개였다.

홍아가 도도한 자세로 턱을 치켜들었다.

“얼굴에서 빛이 나는 거 같지 않아?”

“홍아가 우리 마을에서 제일 예쁜 것 같아.”

“맞아, 맞아.”

아이들이 홍아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저기서 광대들이 줄타기 놀이한다는데. 다 같이 구경하러 갈래?”

“좋아, 좋아!”

“가자!”

홍아가 가니까 아이들이 따라갔다.

몇몇 남자아이들은 홍아를 호위하듯 감쌌다.

“소화도 같이….”

박석호는 망설이면서 안 가려고 했지만, 인파에 휩쓸리고 말았다.

“…흥. 줄타기 따위 재미없어.”

소화는 시무룩한 얼굴로 조용히 빠져나왔다.

툭.

소화가 발로 돌멩이를 찼다.

“칫. 나도 예쁜 옷 입으면 이쁜데.”

소화는 물끄러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빨기 쉽고, 때도 잘 타지 않는 회색 저고리와 남색 치마.

소매에는 조그맣게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비(婢).

백리세가의 시비임을 나타내는 표식이었다.

갈 곳 없는 고아를 거두어준 은혜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나도 아빠 있으면 좋겠다.”

소화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흥, 내가 번 돈으로 사면 되지. 나 돈 많은 여자야!”

당차게 외치며 품을 뒤지더니, 나라 잃은 표정을 지었다.

“…당과 먹는 데 다 썼잖아?”

소화는 고개를 흔들더니 씨익 웃었다.

“옷이 뭐가 중요해? 내가 이렇게 예쁜데. 히히.”

어차피 시비 월봉으로는 못살 옷이다.

소화는 씩씩하게 만서각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오늘따라 만서각이 소란스러웠다.

“크흐흐. 왔느냐?”

거암이 솥뚜껑만 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지 않나.

설영은 기둥에 몸을 기댄 체 피식 웃었다.

‘뭐지? 이 이상한 분위기는…아하!’

다들 무언가 기대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나를 놀래주려고? 흥, 내가 당할 것 같아?’

특히 설영이 수상했다.

그간 많이도 놀렸으니, 짓궂은 짓을 해도 이상하지 않다.

‘안 놀랠 거야, 안 놀랠 거야.’

소화는 걸으면서 틈틈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렇게 유운의 서재로 들어섰을 때였다.

“소화야 왔느냐? 일찍 왔구나, 허허허.”

오늘따라 장노의 웃음조차 이상했다.

“네, 노야. 청소 좀 하려고요.”

소화가 먼지떨이를 들고 다가갈 때였다.

“소화야, 네가 보기에 이 옷 어떠하냐?”

유운이 벽에 걸린 옷을 보며 물었다.

옷을 본 소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 진짜, 와, 와….!”

학의 깃털처럼 하얀 옷.

앞은 만개한 분홍 연꽃이 수놓아져 있고, 뒤는 금빛 수실로 공작이 그려져 있었다.

차라라…!

곳곳에서 투명한 보석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화려한 옷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파르르…

등 뒤에는 조그마한 날개 장식이 달려있으니, 마치 선녀의 옷과 같았다.

“요즘 번화한 현성에서는 이런 형태의 연회복이 유행이라더구나.”

“진짜 예뻐요! 진짜 선녀님 옷 같아요!”

소화는 옷을 보더니, 환하게 웃었다.

“잘 생각하셨어요, 공자님. ”

“……?”

“아가씨께서도 분명 기뻐할 거예요.”

소화가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우리 둔탱이 공자님이 달라졌어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서문요란 아가씨 같은 분이라면야….’

비록 속은 쓰리지만,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소화의 말에 유운과 장노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설마 이게 그녀를 위한 옷이겠느냐? 잘 보거라.”

“네?”

당연히 귀한 집 아가씨에게 줄 옷이라 생각했다.

시녀장은커녕, 본가의 아가씨들조차 이런 옷 입는 걸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보면 볼수록 이상했다.

‘작아?’

비교적 키가 큰 서문요란은 물론, 어지간한 성인 여성이 입기에도 작았다.

마치 조그마한 소녀를 위한 옷처럼.

딱 자신 정도의 키를 가진 여자아이를 위한 옷처럼.

“어? 어?”

소화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지나치게 화려해서 부담되느냐? 하하. 그럴 줄 알고 내가 우 대인에게 특별히 부탁해놓았단다.”

툭.

유운이 허리춤을 건드리자, 옷이 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늘거리는 날개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화려한 꽃무늬는 수수한 소나무 무늬로 바뀌니.

선녀가 날개옷을 벗고 인간의 옷을 입은 듯한 모양새였다.

“허어. 영물 ‘촉조’의 깃털로 만든 옷이라더니. 보면 볼수록 놀랍습니다.”

옆에 있던 장노가 감탄했다.

수컷 촉조는 암컷 앞에서는 화려하게 깃털을 부풀리고, 적 앞에서는 깃털로 몸을 숨기는 영물이었다.

“주군, 정말 신기합니다. 옷이 눈앞에 있는데도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원할 때는 찬란하게 빛나고, 원치 않을 때는 몸을 숨기니.

촉조의 깃털은 어지간히 권세 있는 자들조차 쉽게 손에 넣지 못하는 보물이었다.

“이, 이게 설마?”

“네 옷이란다.”

유운이 빙그레 웃으면서 소화에게 옷을 건넸다.

사르륵.

닿는 순간, 마치 솜사탕을 만진 듯 손에 감겼다.

비단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부드러움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고생하였지만…어찌 너와 장 노야만 하겠느냐?”

장노가 등을 보이며 앞에서 유운을 지켜주었다면, 소화는 뒤에서 유운이 넘어지지 않도록 힘을 준 존재였다.

“작지만 너에게 주는 선물이니…허엇?”

빙그레 웃던 유운이 깜짝 놀랐다.

뚝. 뚝.

커다란 눈망울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공자님, 엉엉. 나는, 저는…엉엉. 보잘것없는 시비인데. 끄윽. 끄윽.”

그렇게 장난기 많은 아이가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고 대성통곡을 하니.

“소, 소화야.”

유운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주춤거리자, 장노가 조용히 눈을 찡긋했다.

‘이럴 때는 그냥 안아주시면 됩니다.’

보이지 않는 말을 알아듣고, 유운이 소화에게 다가갔다.

“누가 그러더냐? 네가 그저 시비라고.”

“……?”

“너는 내 가족이 아니더냐.”

토닥토닥.

유운이 부드럽게 웃으며 소화를 안아주었다.

“으아아앙! 공자님!”

소화가 펑펑 울면서 안겼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올려다보다, 뒤편의 동경을 보았다.

“끄윽. 끄윽. 이러면 못생겨 보이는데. 소화는 이쁜데.”

패앵.

코를 풀더니, 환하게 웃는다.

그러다 옷을 보고 다시 엉엉 운다.

“하하하!”

“허허허!”

울고 웃는 소화를 보며 모두가 함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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