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학사의 무공백과-102화 (79/114)

제102화

청수향 (9)

더욱 놀라운 점은 가검이라는 점이었다.

내공도 없고, 날도 세우지 않았고, 심지어 살기조차 품지 않았는데 이 정도로 날카롭다니?

저절로 호기심이 생겼다.

“한 번 시험해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담로검은 시선을 지나치게 끌어서, 수련검을 차고 나온 참이었다.

유운은 수련검과 공야묵의 검을 서로 맞부딪혔다.

가볍게 부딪힌 순간.

채애앵…!

텅!

놀랍게도 수련검이 반동강이 나버렸다.

“검이 이렇게 쉽게 잘린다고?”

“수련검이라 해도 허투루 만든 검이 아니거늘!”

백리세가의 엄격한 품질 검사를 통과한 검을 이리 수월하게 압도하다니?

호기심이 생긴 유운이 살짝 내기를 끌어올려서 검을 휘둘렀다.

검기도 아닌, 미약한 기운에 불과했는데.

캉!

모루 끄트머리가 종이처럼 잘려나갔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정말 잘릴 줄 모르고….”

“아무리 이 검이 뛰어나도 그리 쉬울 리가 없을 터인데.”

유운과 공야묵은 서로 감탄했다.

“정말 훌륭한 검이로군요!”

강도나 예기는 묵철로 만든 검을 능가했고, 가볍기까지 했으니.

어지간한 명검과 어깨를 견줄 수준이었다.

감탄하며 살피던 유운이 멈칫했다.

“가만. 설마 재료가…주철? 가장 흔한 무쇠로 이런 검을 만드셨다고요?”

“그걸 어찌 한눈에? 역시 백리 학사다우십니다.”

오해 이후 서로의 신분을 확인한 차였다.

공야묵이 공손한 자세로 설명을 이어갔다.

“평생 쇠붙이를 다루다 보니, 작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새로운 금속 제련법을 발견하셨군요!”

“그렇습니다. 제가 만든 날붙이는 쉽게 상하지 않고, 더 날카로우니. 결코 검노의 검에 못지않다고 자부합니다.”

“실로 놀라운 일이로군요!”

유운의 얼굴에 감탄이 깃들었다.

명검을 만드는 데는 장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특별한 재료 역시 필수였다.

천하백대보검 역시 대부분 만년한철, 운철과 같은 것으로 만들어졌다.

‘그러한 금속은 희귀하기 짝이 없지.’

하지만 공야묵의 검은 달랐다.

평범한 금속으로 명검을 양산해 낼 수 있다면?

‘천하백대보검에 비할 것이 아니로구나!’

보검 한 자루가 아무리 대단해도 어찌 명검 백 자루, 천 자루를 당해낼 수 있겠는가?

전장의 판도가 바뀔 물건이었다.

“다만 이놈에게도 약점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하셨지요?”

“그렇습니다. 이놈이 어두울 때는 괜찮은데….”

공야묵이 검을 들고 햇빛 아래로 나아갔다.

피시식.

마치 횃불이 꺼지듯, 검이 하얀빛을 잃었다.

“이놈을 강화하느라 몇몇 첨가물을 넣었는데. 그중 한 놈이 빛을 거부하는지라.”

“빛이라….”

“하지만 그것만 극복하면 됩니다. 그러면 완벽한 놈이 나오게 될 겁니다.”

들뜬 목소리로 말하는 공야묵은, 노인이 아닌 한창때의 장년인 같았다.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당연히 시간과 돈입니다.”

“묵철보다도 뛰어난 철입니다. 기꺼이 거액을 투자할 자가 많을 터인데. 어째서 공방(工房)을 찾아가지 않으셨습니까?”

“과연! 제가 잘못 보지 않았군요.”

공야묵은 유운의 맑은 눈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술의 가치를 알았으니 거래를 제안하거나, 심하면 겁박해서 빼앗아갈 수도 있을 터인데.

유운에게서는 한점의 욕심도 보이지 않았다.

“첫 번째 이유를 말씀드리면. 전통 있는 공방은 폐쇄적이고 구속력이 강해서, 저의 성정에는 맞지 않습니다.”

공야묵이 주먹을 불끈 쥐며 고개를 저었다.

젊을 때는 한 성질 했을 듯싶은 외모였다.

“대형 상단은 어떻습니까? 그들이라면 안정적인 지원을….”

“저 같은 어리석은 늙은이 따위는, 홀랑 잡아먹히겠지요.”

상단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선조의 유훈을 따라서, 무기 제작은 피하고 싶습니다.”

“……!”

이런 철로 무기를 만들어 판다면 가장 값비싸게 팔릴 터였다.

그런데 무기를 만들지 않는다?

공방도, 상단도 공야묵이 뭐라 하든 만들 것이 분명했다.

“저만의 비법으로 만드는지라, 백철을 녹인다 해도 다시 무기로 만들지는 못할 것입니다.”

“……!”

“갑옷 같은 방어구는 가능합니다만….”

공야묵이 조심스럽게 말면서도 한숨을 쉬었다.

무림인들은 거추장스럽다며 방어구를 잘 쓰지 않았다.

누가 들어도 헛소리로 여길 것이 분명했다.

“훌륭하군요.”

그런데 유운은 빙그레 웃으며 칭찬했다.

“무슨…?”

“무공이 없거나 약해 도움이 더 필요한 사람, 그런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아닙니까?’

한점 흔들림도 없는, 맑고 깊은 눈동자.

유운을 바라보니 가슴이 떨렸다.

“공자님께서 이 아이를, 제 자식을 거두어주십시오!”

공야묵은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

“……!”

지금 당장은 불완전한 기술이다.

장인 특유의 고집으로, 무기로도 만들 수도 없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해결된다면?

천하를 뒤흔들 가능성이 있는 기술이었다.

“편지를 써드릴까 합니다.”

“아아아…! 겨우 믿을 수 있는 분을 만났건만….”

공야묵이 허물어지듯 주저앉았다.

‘나의 기술을 이렇게 묻어야 한단 말인가!’

혼자 만들어서 파는 것도 생각 안 한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극히 위험한 기술이다.

눈앞의 공자와 같이 든든한 보호자 없이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었다.

절망하던 차, 이어지는 말에 눈을 번쩍 떴다.

“물건이란,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가야 하는 법이지요.”

“……!”

“마침 멀지 않은 곳에 그런 분들이 많은 문파가 있습니다. 호랑이처럼 사나운 무인들로 가득한데….”

“설마! 흑호방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바로 맞추셨습니다.”

청수향은 현으로 승격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구가 많고 번화하다.

흑호방은 수십 년간 그곳의 절반을 손에 쥐고 있는 패도 문파였다.

“본 파의 무인만 천여 명이 넘고, 휘하 문파까지 포함하면 이천은 너끈히 넘을 겁니다. 휘하 무인들이 매일 수련 인형과 방어구를 부스는 바람에 골치를 썩이고 있다더군요.”

“그, 그곳이라면 딱 적합하긴 합니다만….”

분쟁이 잦은 패도적인 문파다.

방어구도 수련 도구도 수요가 넘칠 터였다.

“혹여 잘못된 곳에 쓰일까 걱정이 되셔서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들리는 소문이 워낙 살벌한지라….”

“제가 직접 뵌 방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과묵할지언정, 의를 모르는 분은 결코 아니었지요.”

“방주는 그렇다 하여도 방도들의 성품은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방도들이라. 흑호방이 어떻게 일어나신 줄 아십니까?”

“천하의 이익을 모두 독차지하겠다며 일어선 정사지간의 문파라 들었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흑호방은 산골 마을의 사내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같이 마을을 지키고, 사냥하는 무리 말입니다.”

“그런 무리가 어찌 그리 강해졌단 말입니까?”

“큰 흉년이 지속되어 가족이 굶주리니. 남들이 찾지 않는 오지를 찾아 헤맸다고 하더군요.”

“……!”

“맹수는 물론 마물까지 상대하려니 손속이 잔혹할 수밖에 없지요. 하나 어찌 속마음까지 그렇겠습니까?”

그들은 마을을 지키는 자경대였고, 마물을 베는 마물 사냥꾼이었다.

“검은 호랑이가 되어서라도 마을을 지키겠다. 그것이 바로 선조의 유훈이니. 이보다 더 백도에 어울리는 문파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아아…!”

사람들은 모르는 비사에, 공야묵의 가슴이 뛰었다.

그렇다고 현실의 제약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조건은 좋습니다만. 그들이 저 같은 늙은이의 말에 신경이나 쓰겠습니까?”

노인의 귀에 들려오는 소문은 살벌했다.

“납품하는 병기의 개수를 속였다가 손이 잘렸다더라.”

“교묘한 말로 속이려다 가문이 통째로 털렸다더라.”

말 그대로 호랑이와 같은 자들.

등에 올라타면 두려운 것이 없으나, 등에 오를 기회조차 주지 않을 터였다.

“서신을 써드릴까 합니다. 방주께서 결코 저의 추천을 무시하지 않을 겁니다.”

“아아아…!”

공야묵이 감격에 겨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명문가의 후손이 직접 쓴 서신이라니?

그 자체가 품질 보증서이면서, 동시에 절대 안전을 보장하는 보호구였다.

“또 다른 서신도 써드리겠습니다.”

대량 공급에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법.

유운은 공야묵에게 운연 상단까지 엮어주었다.

“금만보 대인 역시 도를 아는 분이니, 과한 요구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운연 상단이 더 많은 이득을 가져가겠지만, 공야묵에게도 큰 이득이 주어질 터였다.

“오늘 처음 본 늙은이에게 이리 큰 도움을 주시다니. 공자께 아무런 이득도 없거늘….”

“어르신께서 만드신 물건이 사람을 지킬 것입니다. 천하에 이보다 더 큰 이득이 어디 있겠습니까?”

‘천하라. 실로 큰 그릇이시로구나!’

작은 이익 앞에 십 년 친구도 배신하는 세상이거늘.

공야묵은 탄복하며 유운을 우러러보았다.

* * *

“그래서 당장의 운영비로 쓰라고, 여유 자금까지 몽땅 주셨다는 말씀입니까?”

“돌아갈 때 쓸 여비는 남겼습니다.”

장노의 말에 유운이 겸연쩍은 듯 말했다.

“죄송합니다. 다시 넉넉지 않은 옛날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아닙니다, 다 공자님의 돈이 아닙니까.”

장노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운은 그게 써버린 돈을 말하는 줄 알았지만, 장노가 말한 돈은 그것이 아니었다.

‘길게 보면 매우 좋은 투자이지. 성공하면 모든 과실은 공자님께 돌아올 터이니.’

운연상단이 버는 돈 대부분은 유운의 돈이니.

유운 몰래, 유운의 재산은 쑥쑥 불어나고 있었다.

“돈은 잃으셨으나 마차는 잘 고쳤으니, 그것으로 되었습니다. 이번은 용서해 드리겠습니다.”

장노는 사실을 숨긴 채, 짐짓 농을 쳤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우리 간식은, 간식 먹을 돈은 있는 거죠?”

소화의 동그란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아무렴 우리 소화 먹일 돈까지 손댔겠느냐. 보는 눈이 몇 개인데.”

“히히, 그렇죠? 그럴 줄 알았어요.”

소화는 일행 몇 명을 가리킨다고 생각했지만, 이 또한 사실과는 달랐다.

- 우리 소화 먹을 돈에 손대는 순간 죽는다!

- 아무렴, 천하제일 병기가 무슨 소용이야, 당과가 더 중요하지.

- 흐흐흐, 어련히 잘할까. 걱정들 말게 그려.

신선들이 눈에 불을 켜고 난리 치던 모습이 생생한데, 어찌 간식을 굶기겠는가?

물론 그들이 보지 않았다 해도 다르지 않을 유운이긴 했다.

우여곡절 끝에 정비가 끝났다.

일행이 짐을 싸느라 객잔 안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그간 구경은 잘하셨습니까?”

유운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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