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1화
[ 104화 ~ 110화를 대폭 수정하였습니다.
4/4(화) 오후6시 이전에 읽으신 분들은 다시 다운 부탁드립니다. 불편을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
각자의 꿈 (8)
“…경이롭군요.”
은하 상점을 둘러본 유운의 소감이었다.
- 고작 그것뿐이더냐? 허허. 너도 참 대단하구나.
- 으으으… 이놈아, 이건 아니지, 이건 아니다! 환호하고 깜짝 놀라다 못해 뒤로 벌렁 넘어져도 부족할 판이거늘!
유운이 너무 담담하니, 두 신선이 오히려 황당해했다.
무려 우주가 인정한 보물창고가 아닌가?
진귀한 영약, 절세비급은 물론 신병이기, 심지어 신선조차 탐내는 보패들로 가득했다.
- 운아, 제대로 본 것 맞느냐? 네가 모르는 엄청난 물건들이….
- 혹시 돈이 부족해서 그러느냐?
종남일패가 흥분해서 외쳤다.
별 부스러기 수십여 개.
보통은 많은 금액이지만, 은하 상점의 보물을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 나에게 좋은 방법이 있다. 아직도 내기를 잊지 못하는 신선들이 많으니, 그들에게 자리만 제공하면…!
종남일패는 마음이 급했다.
당장이라도 누군가 물건을 채어갈 것만 같았다.
그럴 리가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내기라. 그리하면 큰돈을 벌겠지요. 그런데 그것이 옳은 길입니까? 그저 제가 성장한다면, 어떤 수단이든 상관없습니까?”
- 허, 허나 그들이 스스로 원해서….
“도박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유운이 조용히 설명했다.
확률? 운?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조급함’ 그리고 ‘탐심’이었다.
“저는 잘 모르나, 그분들께서 그리 간절히 별 부스러기를 원하시는 데는 나름의 간절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왜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매달리겠는가?
상황이 너무 절박하여.
혹은 그것을 간절히 원해서.
혹은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실수를 통해 이익을 취하는 방법으로, 어찌 도에 이르겠습니까?”
쿵!
두 신선은 머리를 두들겨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 허허허, 네 말이 맞다. 욕심에 눈이 멀어 본말이 전도되었구나.
- 신선이라는 자가, 젠장. 종남의 무인이라는 자가. 미안하구나, 운아.
두 신선 앞에서 유운이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이 별 부스러기는 저만의 것이 아닙니다.”
- 그게 무슨 소리냐?
“보십시오.”
유운은 각 동영상의 조회수를 가리켰다.
유운의 비무 영상도 조회수가 높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소화가 옷을 받고 환하게 웃는 영상.
만서각 모두가 함께 먹고, 마시고, 떠드는 영상.
소화와 설영이 투덕거리며 시끌시끌한 영상.
특히 후원금에서 소화의 지분이 컸다.
“어찌 저 혼자 이룬 성과이겠습니까?”
- 허나 저들은 알지도 못하지 않느냐?
“제가 알지 않습니까.”
- ……!
한점의 흔들림도 없는, 올곧은 대답이었다.
- 그렇다고 함부로 보물을 내어줄 수는 없다. 이는 두루마리라는 기적이 안배하는 바와 어긋나니….
“그렇다면 기다리겠습니다.”
- ……?
“그들을 위해 쓸 기회를 기다려서, 그들을 위해 쓰겠습니다.”
- 운이, 이 녀석…!
두 신선은 울컥했다.
가슴 한편은 답답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은,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두루마리 너머, 유운이 듣지 못하는 공간.
- 기적을 남을 위해 쓰겠다? 크흐. 이런 말 들어본 적 있나? 이게 화산의 제자일세. 하하하!
매화검선이 잔뜩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 이 친구, 술도 안 먹고 취하긴가? 크하하, 같이 취하세나.
종남일패도 기꺼운 표정으로 웃어젖혔다.
- 그런데 솔직히 아쉽기는 하네. 운이의 재능이라면….
종남일패가 입을 쩝쩝거리며 덧붙였다.
- 그렇게만 생각할 게 아니야. 오히려 잘된 일이지.
- 무슨 말인가?
- 사람 마음이 간사해서, 돈이 있으면 쓰고 싶고 보물을 보면 갖고 싶지 않나?
- 그야 그렇지. 나부터도 당장 눈앞에 신비한 묘약이 있다면, 사버리고 말걸세.
- 그렇게 야금야금 쓰다 보면, 정말 귀한 물건들은 사지 못하지 않나.
- 흐음. 듣고 보니 그렇구먼. 차라리 잘되었군.
- 무엇보다 우리의 운이가 아닌가.
- 으하하, 맞아. 우리의 운이지!
단순한 말속에는 깊은 믿음이 담겨있었다.
- 자신을 위해서는 조금도 쓰지 않을 녀석이지만, 모두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전부 다 쓸 녀석이네.
- 그렇지, 그렇고말고.
매화검선이 거기에 덧붙였다.
- 무엇보다 나는, 두루마리가 운이를 선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믿네.
매화검선은 그날 보았던 어둠을 떠올렸다.
자신조차 긴가민가할 정도로 멀었다.
그러나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그 어둠이 진짜라면….
- 제갈공명의 계책 주머니라고 생각하세.
- 옳거니, 가장 위험할 때 쓰라는 뜻이로군!
가장 절박할 때.
죽음의 위기가 닥쳤을 때.
그때 한 줄기 빛이 되리라.
- 운이라면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가치 있게 쓰일 거라고 생각하네.
- 나 또한 그리 믿네.
두 신선은 서로 마주 보며 빙그레 웃었다.
* * *
타닥타닥.
모닥불 타오르는 소리.
서역풍의 대리석 바닥에, 북부 유목민의 천막.
그 사이로 흐르는 신비한 음악과 달콤한 술.
백호문이 준비한 저녁 연회는 꽤나 이국적이었다.
“꽃과 달로 지은 다락(花月樓)이라. 실로 운치 있는 이름 아니오? 과연 묘 소저의 사문답다고 할 수 있소.”
문사복을 입은 청년이 은근히 안쪽으로 붙어왔다.
“자네 같은 먹물이 어찌 묘 소저와 같은 미인을 지킬 수 있겠나. 그저 그녀를 위한 시를 지어주면 족하네, 껄껄.”
중년 사내는 호탕한 척하면서 묘가영의 위아래를 훑었다.
‘지겨워, 항상 똑같지.’
묘가영은 담비 털을 목에 감고 술잔을 들었다.
그러자 동시에 대여섯 명이 술병을 가져다 댔다.
“묘 소저, 나의 청하주부터 받으시오.”
“묘 소저, 그대에게 어울리는 봉밀주가 여기 있으니….”
말을 할 때마다 침을 꼴깍꼴깍 삼키니, 무엇을 생각하는지 뻔히 보였다.
반면 그 사내는 달랐다.
‘그냥 보이는 그대로의 사내지.’
그와 함께 있으면 몰래 보는 눈도, 험담하는 입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설마 다친 건 아니겠지?’
묘가영이 입술을 깨물었다.
뒤늦게 알게 된, 소수의 정보 상인들만 아는 사실이 있었으니.
유운과 신비은가의 충돌이었다.
묘가영이 다른 생각에 빠져있으니, 사내들의 대화도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그 이야기 들었는가? 무려 백리세가의 직계가 청수향에 왔다지 않나.”
“듣다마다. 첫날부터 아무도 모르는 기문진을 해체했지. 내가 바로 그 자리에 있었지, 껄껄.”
“흑산조가의 손 군사조차 꼼짝 못 했다지?”
이미 백리제일학사의 명성은 유주를 울리고 있으니.
그저 유운과 같은 공간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자랑거리가 되었다.
“소문에는 화공 방씨 못지않은, 신묘한 그림까지 그리신다더군. 전담 시비가 그걸 보고 눈물까지 흘렸다네.”
“무공에, 학문에, 진법에 그림까지? 어린 나이에 그토록 다양한 재주라니!”
“실로 천하의 기재로구만!”
영웅의 탄생은 언제나 사람을 흥분시켰다.
반면 그런 영웅을 시기하는 자 또한 필연적으로 생겨났다.
“학문은 어쩐지 모르나, 무공은 필히 과장되었을 걸세.”
“뻔하지. 적인걸이란 자는 낭인. 돈이면 뭐든지 다 하지 않나?”
“설마 짜고 치는 경극이라는 말인가?”
“잊지 말게. 흑산조가 역시 백리세가의 휘하. 결국, 백리를 빛나게 하는 땔감에 불과하지.”
그저 빛나는 별을 보는 것만으로 배알이 뒤틀리는 자들이니.
상당수의 사내들이 그 험담에 동참했다.
그걸 본 묘가영이 속으로 혀를 찼다.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구나.’
비무를 조작했다?
그것은 백리세가, 흑산조가 모두를 분노하게 하는 말이었다.
하나는 살아있는 권력자이고, 또 하나는 흉포한 짐승이니.
어느 쪽이든 결말이 좋을 리가 없다.
‘한 치 혀로 인해 흥하고 망하는 게 무림인데, 저리 어리석어서야.’
그럼에도 연회장에는 혀로 무덤을 파는 자는 많고도 많았다.
“그날 비무에서 유운 공자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아는가?”
“그까짓 것에 속아 넘어가니 천하가 백가 밑에 있는 걸세. 언제까지 그런 선동에 넘어갈 텐가?”
그때였다.
유운을 옹호하던 이들도, 유운을 은근히 욕하던 이들도 모두 숨을 멈추었다.
“저자, 설마 그자 아니야?”
“해원검이로구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유운이 연회장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함부로 움직이는 자는 없었다.
‘백리라니, 역사책에서 보았던 웅풍백리의 그 백리라니!’
‘으으…. 진짜 백리야? 진짜 천하백가?’
깃발을 드러내지 않았을 때는 너무 초라했기 알아차리지 못했고.
이름을 드러냈을 때는 너무 부담스러워서 감히 다가갈 수 없었다.
‘그래도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지.’
‘그의 옆에 서는 것만으로도 가문의 지위가 달라질 거야!’
몇몇 용기 있는 자들이 움직이기 직전.
타악.
묘가영이 고양이처럼 사뿐하게 사람들 사이를 비집더니, 금세 유운 옆에 섰다.
“지난번에는 몰랐는데, 안 좋은 일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혹시 속은 괜찮아요? 뇌기는 보이는 상처보다 안 보이는 상처가 더 위험해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호의에는 호의로 보답해야 하는 법.
유운은 빙그레 웃으며 두 손을 모았다.
“저 때문에 방해가 된 것 아닙니까?”
유운이 원래 그녀가 있던 장소를 가리켰다.
여러 사내들이 목이 빠져라 이쪽을 보고 있었다.
“저 새ㄲ…, 저 새로운 분들이랑은 업무차 어울린 거예요. 오해하지 마세요.”
“오해하지 않겠습니다. 오해는 사람을 잡아먹는 무서운 친구니까요.”
“알고 보면 정말 사소한 오해인 경우가 진짜 많죠.”
묘가영이 옆에 붙어서 계속 말을 걸었다.
“어찌 보면 우리 화월루도 오해 때문에 태어난 조직이니까요.”
“어떤 일이 있었길래?”
“진짜 별거 아니에요. 술 취한 사내놈이 시조님을 기녀로 오해하고 수작질을 부렸나 봐요. 시조님께서 그자를 손보고, 그자는 복수한답시고 의형제를 불러오고, 시조님은 살기 위해 북해로 도망치고….”
“…….”
“물고 물리는 뻔한 이야기지요. 사소한 것 때문에 죽고 사는 이야기.”
“우리 인생이 원래 그렇지요. 다 지나고 보면 사소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가끔 나이와 안 어울리는 말 하는 거 아세요?”
“땅과 하늘도 그렇지요. 서로 전혀 다르고, 안 어울리는데 항상 붙어있지 않습니까?”
“와 진짜. 방금 너무 나이 든 스님 같은 거 알죠?”
묘가영이 수상하다는 듯 유운을 훑어보았다.
“아무리 봐도 이상해. 어떻게 이 나이에 이런 느낌이지? 애 늙은이?”
“그런 말, 정말 많이 듣습니다.”
“진짜 그럴 거 같아요.”
두 사람은 말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타닥타닥.
잠시 대화가 멈추었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공자는 꿈이 뭔가요?”
“크게는 선조의 유지를 잇는 것이고. 작게는 존경하는 무림 선배의 성취를 따라잡는 것이지요.”
“에이, 너무 평범하잖아요.”
“제가 원래 평범합니다.”
두 스승이 들었다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어이없어했을 말이었다.
“저는요, 오라버니랑 같이 천하를 여행하는 게 꿈이었어요.”
“었다면….”
“지금은 못 하죠. 돌아가셨으니까.”
“…….”
“아무 말 안 하시네요?”
“뭐라 이야기해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저 듣겠습니다.”
유운의 말에 묘가영이 피식 웃었다.
“그래요, 그게 더 좋네요. 괜히 위로한다고 교훈 이야기하면 기분 나쁠뻔했어요.”
묘가영이 문득 유운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참 신기해요.”
“뭐가 말입니까?”
“어쩜 우리 오라버니랑 이렇게 닮았는지.”
묘가영이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유운의 하얀 피부에 닿자, 깜짝 놀라 내렸다.
“미안해요. 이거 생각해보니 거짓말 같네요, 호호.”
죽은 여동생, 죽은 누나, 죽은 어머니.
사내들에게 지겹도록 들은 이야기였다.
“그렇게라도 기억할 수 있으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아….”
유운이 어떤 상황인지 모를 리 없다.
평범한 문인 출신 어머니는 아이를 낳다가 일찍 죽었고, 아버지 역시 불의의 사고로 요절.
기억할 얼굴조차 없는 사람이 바로 유운이었다.
“외로울 때 언제든 연락해요. 한 잔 사줄게요.”
“기억해놓겠습니다.”
유운은 떠나가는 묘가영을 배웅했다.
그녀는 통통 튀더니 다른 연회장으로 사라졌다.
“이 또한 그녀가 사는 방식이겠구나.”
감상에 젖을 시간도 없이, 남이랑 어울리는 직업이라니.
유운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펑, 펑!
종이를 적시는 물감처럼 노란 폭죽이 번졌다.
인적이 드문 정원을 돌아갈 때였다.
‘…고수!’
등줄기가 서늘했다.
기감이 경고하고 있었다.
만만치 않은 강자가 등 뒤에 있다고.
“이 밤에 누구신지요?”
유운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펑펑!
폭죽의 노란 불빛 아래, 뜻밖의 얼굴이 보였다.
“소협, 잠시만 시간 괜찮으시겠습니까?”
“황 소문주님? 소문주님께서 어인 일로…”
조학선검 황철균.
바로 백호문의 소문주였다.
새로 탄생할 대문파의 수장이 되리라 추측되는 사내이자.
이제껏 ‘어느 문파도 꾸지 못했던 꿈’을 꾸는 사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