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화 숨겨라.
제 7 화 숨겨라.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선우의 상태창이었다.
[ 김선우(9레벨)]
직업: 궁수.
힘: 18, 민첩: 20, 지능: 13, 정신: 14, 체력: 16, 눈썰미: 7.
스킬: 궁술(패시브) 3레벨.
상당히 단촐한 상태창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선우의 레벨이 9라는 것과 녀석은 궁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것이 말하는 것은 하나다.
“너······ 헌터였냐?”
바로 헌터라는 것.
내가 게이트의 주인이 된 후에 지금까지 상당수의 사람을 만났지만, 그중 상태창을 보게 된 것은 선우가 처음이다. 아마 그것은 헌터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역시 너 게이트 주인이 된 거냐?”
선우의 질문에 난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은 가벼운 행동을 하는 것 같지만, 행동을 할 때는 한없이 무거운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이렇게 확신해서 묻는다는 것은 그렇게 믿고 있다는 이야기.
솔직히 말해서 언제 선우에게 말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어.”
“역시 그랬군. 그런데 내가 헌터라는 것은 어떻게 알았냐?”
“그거야 네 상태창이 보이니까.”
“너 ‘관찰’스킬 가지고 있냐?”
“맞아.”
“대단하다. 게이트 주인 중에도 그 스킬을 가진 사람은 상당히 드문 편인데.”
처음 듣는 이야기다. 애초에 게이트의 주인이 어떤 스킬을 가지게 되는지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어떤 게이트냐?”
“작은 섬이다. 아마도 섬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은 힘들어 보이고, 근처에 다른 육지나 섬은 보이지 않고.”
“그닥 돈이 되지는 않아 보인다는 거네?”
“정답.”
“그럼 넌 뭘 할 생각이냐?”
“뭘할 생각이냐라······ 사실 별 생각 없는데?”
“나름 너답다고 해야 하나?”
선우는 살짝 쓴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그런데 너 궁술을 어디서 배웠냐?”
“어디서 배우긴 살라고 스스로 터득한 거지.”
“살라고? 누가 너 죽인다던?”
내 질문에 선우는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빨았다가 내쉬며 입을 연다.
“게이트라는 것이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그렇게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내가 들어갔던 게이트는 더더욱 그랬고.”
“왜? 몬스터라도 있어?”
“몬스터도 있었지. 하지만 무서운 것은 사람이다. 넌 우리가 법의 테두리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느껴본 적이 없지?”
선우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인다. 태어날 때부터 법의 테두리 안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쭉 그렇게 살았기에 그것의 고마움 같은 것을 느껴볼 일은 없었다. 비슷한 경우라면 군대 정도가 그럴까?
세상의 상식이 외면되는 집단.
물론 군대가 완전히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사회를 경험하게 되는 것은 분명했다.
“어떤 게이트를 들어갔던 거냐?”
“내가 들어간 게이트가 특별한 게이트는 아니다. 그냥 흔한 게이트였지. 자원이 있고, 몬스터가 있고, 사람들이 많이 들어가는.”
게이트 중에는 그런 곳들이 분명 있다. 흔히 말하는 입장료와 세금이라 불리는 것을 내면 출입이 가능한 게이트. 아마 선우가 간 곳은 그런 곳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거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
“흔히 이야기하는 게이트 실종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게이트 실종사건.
쉽게 말해서 게이트에서 사람이 사라지는 사전을 일컫는다. 그리고 그런 일은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선우가 말하는 것처럼 게이트 안에서는 공권력이라는 것은 상당히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결국 그 안에서는 힘이 결국 권력이 되고, 권력을 가진 이들이 권력을 휘두르면 무서운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고, 아마도 사람들의 상상은 상당 부분 진실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
“넌 역시 놀라지 않는구나?”
“내가 직접 경험한 일도 아니데 놀랄 이유가 있냐?”
“하긴 넌 그런 녀석이지. 너 그거 아냐? 호야 실종만 아니었으면 난 네가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생각했을 거다.”
침착하다는 것은 감정기복이 심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런 사람 중에 어떤 이들은 사이코패스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사이코패스라고 해서 모두가 살인마인 것은 아니다. 반사회적인 인격장애라는 말이 곧 범죄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까.
아무튼, 이 녀석은 내가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했었다는 이야기다. 워낙에 감정기복도 드러내지 않고, 그래서인 것 같아 이해는 간다.
“하고 싶은 얘기가 뭔데?”
“게이트 공개할 거냐?”
“별로 그럴 생각 없는데?”
내 말에 선우는 웃는다.
“잘 생각했다. 어차피 자원도 별로 없어 보이면 그냥 혼자 다녀라.”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나를 따로 부른 거냐?”
“앞으로 여기로 찾아오지 말고, 그냥 따로 전화로 주문해.”
“하고 싶은 얘기는 게이트를 숨기라는 거지?”
“맞아. 그게 알려지면 똥파리들이 붙을 거다.”
“게이트가 똥이냐?”
“따지지 말고. 직접적으로 너를 죽이려고 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네 가족을 인질로 삼고, 네가 게이트를 열게 만들 거다.”
이건 생각해보지 못했던 얘기다. 나를 협박하는 거야 뭐 대수롭지 않게 생각되지만, 가족을 인질로 삼는다? 이건 좀 문제가 될 일이다.
“그리고 강해져라. 그럼 다 해결된다.”
“내가 말하지 않았냐? 내 게이트는 작은 섬이라고. 거기가 뭔 몬스터랜드도 아니고 강해지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긴 그러려나?”
선우는 고개를 끄덕인다. 보통의 게이트는 대륙의 어딘가와 연결이 되는 것이 보통이라고 했다. 나처럼 섬과 게이트가 연결되는 케이스가 확률적으로 생각해도 흔하지는 않을 거다.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
“그렇다면 역시 비밀이 답이다. 주말에 어디 캠핑이라도 다녀와라.”
“뭔 그렇게 위장하라고?”
“어. 지금 단계에서 널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듣고보니 맞는 말이다. 캠핑장비를 그렇게 구입해놓고 실제로 캠핑은 가지 않는다? 이건 좀 의심스럽게 보일 수 있는 부분 같았다.
“궁금한 게 있는데.”
“뭐?”
“헌터 중에 너 정도면 어느 수준인 거냐?”
선우의 레벨은 나보다 높지만 능력치는 낮다. 나에게 없는 눈썰미라는 능력치가 있긴 하지만 그건 아마도 궁수와 관련된 능력치로 보였다.
“나? 상당한 수준일걸. 잘나가는 헌터라고 해봐야 겨우 20레벨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으니까, 물론 이건 ‘관찰’스킬을 가진 사람이 봐야 알 수 있는 건데, 미국에서 개발한 기계 중에서 사람의 레벨을 측정하는 도구도 있다고 들었다. 아무튼 내 수준은 9레벨. 헌터 중에는 중간 정도 위치겠네. 제일 높은 레벨의 헌터가 20레벨 초반이라고 알려져 있거든.”
알려져 있다는 것은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더 많을 거라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게이트라는 것 자체가 애초에 신세계로 치부되는 현실이다. 개척지라는 이야기다. 옛날 개척지의 정보를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 좋다고 알렸을까? 아니었을 거다. 아마 자신들이 꿀을 빨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빨고 난 후에나 알리거나, 알려졌을 테니까.
“생각보다 대단하지 않은데?”
“미친놈. 네가 진짜 헌터들의 싸움을 못봐서 그딴 소리를 하는 거다.”
“그럴 수도 있겠지. 내가 말하는 건 그냥 레벨을 보고 말하는 거야.”
“9레벨 되는 게 쉬운 줄 아냐?”
내 레벨은 8이다. 뭐 호야가 떠먹여주다시피 오른 레벨이긴 하지만 선우와 나는 겨우 1레벨밖에 차이가 안 나고 능력치는 전반적으로 내가 더 높다. 능력치가 높은 이유는 아마도 섬에서 나는 식자재때문일 거다.
“넌 혹시 먹으면 능력치가 오르는 그런 음식 같은 거 아냐? 혹은 약이라던가?”
“야, 그런 게 있으면 난리 났을 걸? 먹으면 기운이 나는 고기나 식물 같은 종류는 종종 있지만. 왜? 뭐라도 주워먹었냐?”
“내가 그지냐?”
“난 그지겠냐? 원래 게이트 들어가면 이것저것 주워먹고 그런 거야. 그래서 뭔가 느껴지거나 하면 그런 것을 집중적으로 구해다가 내다파는 거지. 뭐 간혹 농장을 지어서 식용 가능하고, 효과가 좋은 것들을 아예 키우는 사람들도 있긴 하고. 물론 그런 사람은 거의 게이트 주인이거나 게이트 주인과 가족인 사람들이고.”
“왜? 언제 출입을 통제당할지 장담할 수 없으니까?”
“맞아. 기껏 개발해놨는데 게이트 주인이 출입을 막아버리면 말짱 헛것이 되는 거지. 그래서 보통 헌터들은 그냥 자기가 들고 나올 수 있는 것들을 사냥하거나 채집해서 들고 나와. 가지고 나올 때에 게이트 주인에게 정해진 비율만큼을 세금으로 내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게이트 주인이 갑이라는 이야기다.
“국가에서는 게이트 주인한테 세금 안 물리냐?”
“그거 몰랐냐? 국가가 공인한 게이트 주인은 면세다. 대신에 게이트 출입에 대해서 일정 부분 국가의 편의를 봐줘야 하지.”
대충 게이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게이트가 쓸만하면 게이트 주인은 국가와 공존을 선택할 수 있다는 거다. 국가는 게이트로부터 새로운 자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고, 그에 걸맞은 혜택을 게이트 주인에게 제공한다는 이야기.
어차피 게이트 출입이라는 것은 게이트 주인의 마음에 달린 문제다. 그렇기에 그것을 실질적으로 강제할 수는 없다. 협박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으로 얻어낸 출입권은 결국 한계가 있으니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한다는 이야기.
“물론 국가와 손을 잡았을 때의 이야기고, 보통 게이트 주인을 노리는 것은 기업들이나 범죄집단이라고 봐야지. 뭐 내가 보기엔 셋이 다 거기거 거기로 보이지만.”
국가와 기업, 그리고 범죄집단이 원하는 것은 하나다. 바로 돈. 게이트가 돈이 되니까 그렇게들 노리는 것이다.
“또 궁금한 게 있는데.”
“뭐?”
“그 안에는 사람 안 사냐? 그러니까 지구인 말고.”
“이계인?”
“어. 그런 사람.”
“글쎄다. 나도 들은 적은 없는데, 아무래도 있지 않을까 싶긴 하다.”
“왜?”
“문명의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기도 하거든.”
문명의 흔적이라. 내가 가진 섬에는 그런 것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안전에 대한 문제는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특히 가족의 안전에 대해서.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숨기는 거다?”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 나같이 눈치 없는 녀석도 네가 게이트를 얻었다는 것을 눈치챘으니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네가 가진 눈썰미라는 능력치가 거슬린다만?”
“쳇, ‘관찰’스킬을 가진 놈이란.”
“아무튼, 조언은 고맙다. 대충 내 게이트가 정리 되면 한 번 초청하마.”
“그래, 나도 궁금하긴 하네. 그래서 넌 그 안에서 그냥 놀 거라고?”
“작은 섬인데 그럼 거기서 뭘 하리? 아, 낚시했었다. 처음 보는 물고긴데 맛이 죽이더만.”
“헐, 그건 개부러운데? 담에 같이 낚시나 해보자고.”
“그래, 그러자.”
난 선우와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선우가 개조해준 활과 따로 챙겨준 각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장 게이트를 넘었다. 그러자 게이트 안에서 나를 반기는 것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