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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학개론-9화 (9/182)

제 9 화 어쩌면 우리 게이트는

제 9 화 어쩌면 우리 게이트는

아버지의 통찰력을 무시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빨리 아시게 될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아버지에게 숨기는 것은 더 말이 안 되는 일.

“네, 게이트가 내 방에 생겼습니다.”

“음······. 역시 그렇군. 그럼 지난번에 가지고 왔던 멧돼지도 그런 거겠네?”

“네, 정확히는 체력을 5나 올려주는 고기예요. 아마 그래서 드시고 난 후에 우리 가족들 체력이 좋아졌을 걸요.”

“역시 범상치가 않더라니. 그런 거였군? 이번 것들은 그럼 뭐냐?”

“물고기는 지능을 3 올려주고, 파는 힘을 1, 양파와 배추는 체력을 1씩, 고추는 민첩을 1, 무는 정신력을 1, 딸기는 지능을 1 올려줍니다. 최초 섭취시에는 바로 오르고 그 후에는 꾸준히 섭취하면 오른다고 하네요.”

“그거 뭔가 상당히 대단한 거 아니냐?”

아버지의 말씀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려진다면 좀 그렇긴 하겠죠?”

“그런데, 이게 그 상태창이 열리지 않은 사람이게도 그대로 적용될까?”

나도 이게 가장 궁금한 부분이다.

“아버지 지난번에 멧돼지 드신 후에 어떠셨어요?”

“확실히 체력이 좋아진 느낌은 들더라.”

“그래요?”

“어.”

“그럼 제가 계속 가져다 드리는 것들을 드셔 보세요. 그리고 게이트 안에서 작물이 엄청 빨리 자라요. 이것들 아버지가 지난번에 주신 씨앗으로 재배한 것들이예요.”

내 말에 아버지는 크게 놀라셨다. 몇 년차밖에 되지 않은 농부시지만 그래도 농부시다. 그러니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 아실 것이다.

“왜 그러지? 거긴 작물이 잘 자라나?”

“작물이 잘 자라는 것 같기도 하고, 시간비가 달라요. 여기 한 시간이 거기 다섯 시간이더라구요.”

“진짜?”

“네.”

“그거 참······ 나같은 사람이 들어가면 더 빨리 늙는 거 아니니?”

생각해보니까 그렇다. 시간비가 다르다면 여기서 한 살 먹을 동안에 저쪽에서는 다섯 살을 먹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한 가지 아닐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바로.

“호야.”

냐앙!

호야가 재빨리 내게 몸을 날린다. 저게 공격이라면 난 오늘로 아버지 앞에 불효자가 되는 거다. 세상 제일 큰 불효가 뭔지를 생각하면 알 거다. 하지만 다행히 호야는 나를 보호하듯 사뿐히 안겨왔다.

호야는 그 안에서 최소 10년이 넘는 세월을 보냈다. 호야가 실종될 당시에도 호야의 나이는 일곱 살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대충 스무살이 되었다는 것인데, 고양이들의 평균 수명은 16년 정도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것은 집고양이의 경우다. 길냥이들의 경우는 오래 살아야 몇 년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그렇다. 물론 오래 사는 집냥이들은 30년도 산다지만, 호야는 전혀 노화가 진행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고양이들이 노화가 되더라도 사실 크게 달라지지는 않지만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사람으로 따지면 광대가 튀어나와 보이게 되는 것처럼 얼굴이 살짝 홀쭉해진다. 호야는 여전히 동글한 얼굴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게이트 안에서는 노화가 진행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

최소한 지구와 게이트의 차이점이지 않을까 싶다. 반대로 저쪽 생물이 이쪽으로 넘어봐도 비슷하지 않을까? 물론, 이건 가정일 뿐이지만.

“호야가 사실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서 실종되었던 거였어요.”

“뭐?”

“그러니까 아마 호야는 거기에서 십수 년을 보내고 나를 다시 만났을 거예요.”

“허······.”

아버지는 안타까운 눈빛을 하고 호야를 쓰다듬으신다.

냐앙.

호야는 그런 아버지의 손길에 기분좋은 듯이 골골송을 한다. 확실히 호야를 보면 나도 그 안에서 나이를 안 먹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게이트라는 곳, 우리도 들어갈 수 있는 거냐?”

“그거야 당연하죠. 하지만 그게 우리 가족에게 더 좋은 일일까에 대한 고민은 좀 해보고 결정해야 될 것 같아요.”

내 말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신다.

“게이트 안에서 나오는 것들은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주지 마라. 욕심을 부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보물은 지킬 수 있을 때 가치가 있는 거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능력치를 올려주는 식재료들. 이것이 어떤 파장을 가지고 올지는 솔직히 나도 장담하기 힘들다.

“처음에는 게이트 안에서 나오는 것들은 다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난 처음 들어본다.”

“그러게요. 다들 비밀로 하나 했었는데 아닌 것 같죠?”

“이런 것들이 게이트에서 나온다면 분명 세상에 난리가 났겠지. 아니면 정말 네 말처럼 소수를 위해서 비밀을 지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고.”

아버지의 말씀이 옳다. 내 게이트에서만 있는 것들이거나, 아니면 소수의 가진자들을 위해서 비밀이 강요되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아요.”

“뭐가?”

“아버지가 주신 씨앗들이요. 씨앗들을 심고, 작물을 제가 수확하기까지 현실 시간으로 하루 정도가 걸렸어요. 그렇다면······.”

“대규모로 작물을 재배할 수도 있겠다는 얘기구나.”

“네, 그렇다면 과연 비밀을 지킬 필요가 있었을까요?”

금방금방 자라는 작물들을 수확하면 얼마든 많은 이들이 나눠먹을 수 있다. 물론 가격은 비싸겠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도 비밀을 지켰을 수도 있어. 그들의 사고방식을 우리와 같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하긴, 그것도 그렇겠네요.”

“아무튼, 당분간은 비밀을 지키는 것에 집중하자. 비밀이 알려진다면 난 바로 네 엄마와 시연이를 데리고 너한테 갈 거다.”

아버지의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된다.

“네,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일이 생기면 바로 와주세요.”

“그래, 알았다.”

한동안은 아버지와 나만의 비밀이 생겼다.

***

가족들과 식사를 한 후에 난 새로운 씨앗들과 재배법을 배워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장 게이트를 넘었다. 밤이니까 집에서 자도 되겠지만, 사실 게이트 안에서 자는 편이 훨씬 오래 잘 수 있으니까.

선우에게 사온 야전침대는 매우 편안하다. 이렇게 편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요즘은 이런걸 참 잘 만들어, 그치?”

냐앙.

호야는 호야만의 침대를 설치해주었다. 고양이 해먹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고양이들이 매우 좋아하는 물품이다. 호야는 특히 이 해먹을 좋아했다. 그래서 새로 사서 설치를 해준 거다.

“마음에 들어?”

냥!

호야는 발라당 배를 까고 누워서는 나를 보며 웃는 듯이 말한다. 동물에게 표정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려인들은 안다. 동물들이 얼마나 많은 표정을 가지고 있는지. 저건 호야가 매우 즐거워하는 표정이다.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던 모습 말이다. 몇 년을 이 모습이 보고싶어서 눈물을 흘리고는 했다. 집에 돌아오면 나를 반겨주던 호야가 없다는 사실이 미칠 듯이 마음이 아팠던 적이 많았다.

사실 게이트의 주인이 된 것보다 호야를 다시 만난 것이 내게 가장 행복한 일이다.

“그래도 씨앗은 뿌려놔야겠지?”

냐웅.

호야는 귀찮다는 듯이 계속 누워있었다. 그런 호야를 한 번 쓰다듬어준 후에 난 밖으로 나와서 땅을 고르기 시작했다. 부모님 댁에서 가지고 온 도구들을 이용해서 밭을 갈았다. 그리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옹달샘을 찾았다. 거기에 물이 계속해서 솟아나서 매우 유용하다. 심지어 맛도 좋다.

이번 밭은 상당한 규모로 여러 가지 작물들을 심었다. 이전에 심었던 것들은 부모님댁에 가기 전에 심었고, 이번에는 수박과 참외, 파프리카, 부추 같은 것들을 심었다.

그러자 알림이 떴다.

-스킬 농사의 레벨이 2로 올랐습니다.

스킬업.

처음 있는 일이다. 아마도 상당한 규모로 밭을 만들어서 스킬이 레벨업을 한 것 같았다.

“보상이 확실하네.”

확실히 레벨이 오르니 1레벨일 때에는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이 보였다.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모두 수정하고 보완했다. 아마 내일 회사를 다녀오면 수확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디보자.”

섬닭들의 울타리로 가보니 달걀을 품고 있는 녀석이 세 마리고, 병아리로 부화를 한 녀석들이 열 마리다.

여섯 마리를 들였는데, 벌써 이렇게 번식을 한 것이다.

“대박.”

놀라울 정도의 번식력이다. 달걀이 병아리가 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농작물들과 마찬가지로 가축으로 분류된 애들도 빨리 자라는 것 같았다.

“와, 이 게이트는 별 볼일 없는 그냥 휴양지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대박인 것 같은데?”

진짜 대박인 것 같다. 문제는 이 대박을 어떻게 지키고, 앞으로 이 대박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는 부분일 것이다.

“일단 자자.”

난 호야를 품에 안고서 야전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

긴 휴가를 다녀온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아, 회사 때려칠까?”

애초에 게이트에 들어가서 스킬이라는 것이 생겼을 때에 내가 하려고 했던 것은 회사생활에 도움이 되는 스킬을 익혀서 회사에서 꿀을 빠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의외로 게이트가 꽝이 아니었고, 어쩌면 엄청난 대박일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나니 정작 주객이 전도되어서 회사에 가기 싫다는 생각이 들고 있으니 참 사람이 간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일단은 가야지.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면 이상하잖아. 호야, 아빠 회사 다녀올게. 심심하면 게이트 가서 놀다와.”

냐앙!

세상만사 귀찮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와서는 내 다리에 스윽 머리를 부비적 거리고 돌아가서 캣타워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햇볕을 쬐기 시작한다.

“난 진짜 다시 태어나면 너로 태어나고 싶다. 넌 꼭 나로 태어나라. 알았지?”

괜히 호야에게 심술을 부리고는 집을 나섰다. 그리고 회사로 출근.

“최 대리, 어제는 잘 쉬었어?”

“그게 쉰 겁니까? 격리하고 있으라는 의미 아니었어요?”

정 부장님은 내 말에 움찔했지만, 역시 회사 짬밥이 있어서 그런지 금방 회복했다. 저 양반도 ‘침착함’스킬이 있거나, 아니면 ‘기만’같은 스킬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최 대리를 생각해서 쉬라고 한 거지.”

“네,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나왔습니까?”

“어, 방금 나왔어. 볼래?”

“당연하죠.”

난 검사결과지를 들고 살펴보았다. 그리고 정 부장님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무슨 말이래요?”

검사지라는 것은 한글과 영어로 쓰여 있었지만, 과연 이것이 한글이고, 영어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제목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좋다는 거야. 우리 사료에 넣으면 아픈 애들한테 매우 좋다는 거지. 그리고 아픈 애들한테 매우 좋다는 얘기는······.”

“비싸다는 얘기겠네요.”

“그렇지. 우리도 이제 시그니처 사료를 만들 수 있게 된 거지.”

사료를 만든다는 것이 별것 아닌 것 같겠지만, 매우 정교하고, 복잡하다. 그래서 한국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외국에서 만든 사료를 주로 먹이는 이들이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게 좋으니까.

우리 사료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래 사료를 만들어온 회사들과의 격차는 쉽게 줄이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재료에 게이트산 브란닭을 첨가하게 된다면? 함량에 따라서 효과는 다르겠지만, 우리는 상당한 히트상품을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

주로 수출을 담당하는 내 입장에서는 드디어 외국에 큰소리치며 수출할 수 있는 사료를 만들게 되었다는 의미.

“샘플은 언제 나온답니까?”

“조만간 나올 거야. 최 대리는 그 닭을 수급하는 일에 지장이 없도록 가서 계약을 맺어줘.”

“그거도 제가 해야되는 업무입니까?”

“이번까지가 노는 일이라고 생각해. 이 제품이 나오기 시작하면 아마 정신없을 테니까.”

맞는 말이다. 그리고 수출 담당인 내 입장으로서도 환영할 일이다.

“여기로 가면 되네.”

난 사양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다른 게이트 주인이 어떤 인물인지 궁금하기도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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