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화 적응을 하자.
제 12 화 적응을 하자.
백야가 물고 나온 것, 그것은 동물이 아니었다. 사람으로 치자면 대충 대여섯 살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인간형태의 무엇. 포인트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형태의 무엇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난 이것이 뭔지 예상을 할 수 있었다.
“고블린?”
몬스터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판타지 소설에나 나오는 몬스터가 있다고? 뭔가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소설 빙의물의 주인공이 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정도가 아니라 제로다.
호야와 부모님과 내 친구와 직장까지. 모든 것이 그대로니까.
“음? 그럼 애초에 내가 소설의 주인공인가?”
이건 좀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 나 자신이 소설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오고 있었다면······ 그런 재미없는 내용을 30년 넘게 써왔다면 그 소설은 이미 폭망하고, 연재 중단이 되었을 테니까 그것도 아닐 거다.
난 고블린으로 보이는 녀석을 관찰해보기로 했다.
-관찰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이름: 섬고블린(12레벨).
섬에서 살고 있는 고블린이다. 고기는 오염되어 먹을 수 없다, 먹으면 죽을 수 있다. 먹는다고 딱히 능력치가 오르지 않는다.
정말 고블린이다. 섬고블린이라는 이름이지만, 고블린이다. 그리고 저 작은 놈이 12레벨인 것을 보면 나보다 강한 놈이라는 얘기일 거다.
백야는 섬고블린을 땅에 내려놨다. 그것을 보자마자 난 화살을 녀석을 향해 발사했다
파악! 끼엑!
고블린의 미간에 화살이 정확히 명중했다. 화살의 뒷부분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명중.
“저건 죽지.”
당연한 일이다. 인간 형태이건, 동물이건 뇌에 구멍이 나고서도 살아있을 수 있는 생명체는 없으니까. 내 생각을 확인해주는 알림도 뜬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이것으로 난 10렙이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니다.
-궁술(액티브) 1레벨, 스킬을 얻으셨습니다.
혹시나 했던 궁술 스킬이 생성되었다. 내게 생긴 최초의 전투스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와씨, 진짜 몬스터가 있을 줄이야. 도대체 저 숲은 정체가 뭐냐?”
숲의 둘레는 대충 내가 걸어서 한 시간이면 둘어볼 수 있을 정도다. 즉, 저 숲의 생태계가 이렇게 복잡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의미. 그렇다면 저 숲의 정체는 도대체 뭔가?
“호야, 저 안에 뭐 있지?”
냐앙?
호야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듣이 묻는다. 너무 복잡한 질문인가? 아니면 대답을 하기 싫어서 회피를 하는 건가? 난 가만히 호야를 쳐다보았다. 관찰 스킬과는 다르다. 그냥 쳐다보는 거다. 그러다 눈을 깜빡였다. 그러자 호야도 눈을 깜빡한다.
“야, 누가 고양이 키스 하자고 그러디?”
고양이 키스. 고양이가 서로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표현으로 서로를 쳐다보며 눈을 깜빡이는 행동을 말한다. 이것은 가끔 사람과도 하는 고양이가 있다. 그것을 고양이 키스라고 한다. 그런데 호야의 고양이 키스는 다분히 의도된 고양이 키스라는 것이 문제다.
왜냐?
얘는 원래 고양이 키스를 하지 않는 녀석이었으니까.
“너, 뭔가 숨기고 있지?”
냐앙?
여전히 못알아듣겠다는 표정. 그러면서 이번에는 배를 까뒤집고 드러눕는다. 이건 애교를 부리는 것이나, 복종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배를 째라는 표현이다.
난 그런 호야에게 들으라는 식으로 말했다.
“백야, 형아랑 안으로 들어가자.”
솔직히 호야는 새끼냥일 때부터 키워서 아빠, 아들이라고 했지만, 다 큰 백호한테는 좀······. 아니 얘가 어쩌면 나보다 형이려나?
크릉.
백야는 내 말에 대답하듯이 낮게 으르렁거리고는 숲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백야의 뒤를 따라서 나도 숲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백야의 앞을 호야가 막아선다.
하아악!
“이건 빼박이지?”
냐아앙?
호야는 또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럼 아빠 혼자 들어간다?”
냥!
호야가 내 다리를 잡는다. 정확히는 내 다리에 매달렸다.
“확실히 뭔가가 있지?”
냥.
“지금 내가 들어가면 위험하다는 거야?”
냐아앙!
“그럼 언젠가는 들어가도 되고?”
냐앙?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는 대답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나 얘 말을 대부분 알아듣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동물친화 스킬때문인가?
“그럼 내가 여기서 백야가 물고 오는 애들을 사냥해서 레벨을 올리고, 최소한 백야랑 맞짱을 뜰 정도가 되면 들어갈 수 있는 거야?”
냐아앙?
대충 그렇다는 것 같다. 확실한 것은 저 숲은 뭔가 비밀이 있다. 말 그대로 비밀의 숲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안에 멧돼지와 늑대, 호랑이와 몬스터가 있을 리가 없다.
막말로 호랑이 하나만 있어도 저기 생태계는 끝장이다. 그런데 멀쩡해보인다. 자꾸 뭐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그렇다. 백야 같은 애가 저 작은 숲에 살았다면 분명 멧돼지나 늑대 같은 것들은 멸종했을 테니까.
“그렇다는 것은 저게 눈에 보이는 것처럼 작은 숲이 아니라는 건데······.”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이것 하나다. 저 안은 내가 생각한 세계가 아니다. 그렇다면 뭘까? 게이트 안에 또 게이트가 있을 리는 없을 거고.
“아니, 있을 수도 있나? 차원 게이트가 아닌, 이 차원 내의 다른 곳과 연결되는 게이트?”
그런 것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혹은 소설에 많이 나오는 공간 확장이 되어 있는 숲이라던가. 생각해보니 후자가 더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호야, 그럼 저기에 늑대나 고블린 같은 몬스터가 튀어나올 수도 있는 거야?”
냐앙.
그렇다고 한다.
“그게 날 위험하게 할 수 있어?”
냥!
호야가 가슴을 펴며 꼬리를 바싹 세운다. 이건 자기를 믿으라는 거다. 즉, 자신이 있는 이상 내가 위험할 일은 없다는 얘기같다.
“너만 있으면 내가 위험할 일은 없다고?”
냥냥!
그렇단다. 어찌 되었건 다행이다. 호야만이 아니라 임시긴 해도 내가 길들인 백야도 함께 있으니까. 이 정도면 내 베이스캠프에서 차분하게 사냥을 할 수 있는 토대는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좋아, 우리 15레벨까지 가보자.”
냥!
호야가 내 말에 대답을 하면서 백야의 등에 올라탄다. 그리고 백야의 등에 꾹꾹이를 한다. 저렇게 보니 꼭 백야가 호야의 어미 같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저 꾹꾹이는 뭔가 명령을 내리는 것 같았다. 백야가 곧장 다시 숲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
그리고 이번에는 두 마리의 고블린을 물고 나온다. 난 곧장 활로 두 마리를 처리했다. 개조한 활은 매우 성능이 뛰어났다. 사실 선우가 활을 어떻게 개조해서 이게 가능해진 것인지는 몰라도 성능이 확실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사냥이 매우 편하다는 것이니까. 이것은 버스다. 그것도 그냥 버스가 아니라, 최고급 리무진 버스다.
“캬하! 이게 사냥하는 맛이지.”
난 계속해서 사냥을 했고, 결국 예상했던 15레벨까지 올릴 수 있었다.
“오늘 사냥은 여기까지만.”
일단 오늘의 사냥을 끝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나는 어제의 나보다 훨씬 강해졌다.
[최시우(15레벨)]
반려동물: 호야.
힘: 40, 민첩: 30, 지능: 20, 정신: 20, 체력: 34, 손재주: 7.
잔여 포인트 : 0.
힘을 가장 높게 올리고, 나머지를 적당하게 올렸다. 그러니까 지금의 나는 보통 사람보다 4배는 힘이 쌔고, 3배는 민첩하고, 두 배는 머리가 좋고, 3배 이상 체력이 좋다는 거다.
그럼 나는 슈퍼맨이 될 수 있을까?
최소한 지금은 아니다. 백야와 잠깐 장난치듯이 씨름을 해봤는데, 꿈쩍도 하지 않더라. 즉, 그래봐야 난 백야보다 약하다는 것이고, 호야와는 비교가 안 된다.
“우리 호야 정도 강해지면 슈퍼맨처럼 될 수 있으려나?”
냐아앙.
호야가 웃는다. 얘는 진짜 속에 사람이 있는 것 같다.
“그래, 알았다. 우리 농사나 지으러 가자.”
난 밭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런 내 뒤를 호야가 따라오고, 또 백야도······ 따라온다.
길들였다는 것은 내 바운더리 안에 얘가 들어와 있다는 의미일 거다. 그래서 나를 따라온다. 딱히 농사를 할 때는 시킬 일도 없는데 이렇게 쫄래쫄래 따라오는 것을 보면 나름 귀엽기도 하고 막 그런다. 물론 그렇다고 얘가 맹수라는 것은 아직 변하지 않는 사실이겠지만.
“그럼 앞으로 얘도 내가 먹여 살려야 되는 건가?”
호랑이용 사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생닭을 주고, 고깃덩어리를 주는 것이 보통 동물원에서 호랑이에게 주는 사료라고 볼 수 있다. 사료가 있다고 해도 얘를 먹이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사료가 필요할 일이다.
“다행인 점은 내가 사료 회사에서 일을 한다는 거지.”
직원할인으로 사료를 싸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랍의 부자들을 위해서 치타용 사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한 번 알아봐야겠다. 일단은 그동안 내가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해봐야겠다.
“백야, 이리와.”
해보고 싶었던 것. 그것은 호랑이에게 짜먹는 간식을 먹여보는 것이다. 너튜브에서 본 적은 있는데, 진짜 그런지 보고 싶었다. 너튜브 호랑이는 잘 안 먹던데. 그리고 확인했다.
촵촵촵!
백야도 역시 고양이다. 얘도 짜먹는 간식에는 환장을 한다. 사람으로 따지면 손 끝에 살짝 꿀을 찍어 먹는 느낌이려나? 궁금하긴 했지만, 일단 지금은 저거 한통은 먹여야 얘가 좀 얌전해질 것 같다. 엄청 지금 흥분했다. 아마, 처음 맛보는 것일 테니까.
호야를 위해서 몇 통이나 사다놨었는데, 두 통을 그대로 백야의 입에 털어넣었다.
“뭔가 아빠가 돈을 많이 벌어야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호야.”
냥.
“알았어. 어떻게 벌어보자. 당장은 여기 있는 것을 내다 팔 수는 없겠지만.”
난 백야를 달래고, 백야가 드러눕는 것을 확인했다. 백야의 배쪽으로 호야가 자리를 잡는다. 이렇게 보면 호야가 영락없는 백야의 새끼처럼 보이지만, 실제 서열은 반대라는 것이 아이러니다.
“일이나 하자.”
난 아버지에게 받아온 작물들을 확인하고, 새로 수확을 한 후에 그것들을 다시 밭을 만들어서 심었다. 이제 밭이 처음보다 많이 커졌다.
농사 1레벨일 때와 2레벨일 때는 확실히 달랐다. 밭일을 끝낸 후에 텐트로 돌아오니 백야가 텐트앞을 막고 누워 있다. 그것도 사람처럼 발라당 뒤집혀서. 가끔 고양이들이 저렇게 자는데 얘도 원래는 고양이인 것이 아닐까?
“계속 보니 나름 귀엽기는 하네.”
난 백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원래 예민한 동물들은 건드리기만 해도 잠에서 깨는 것이 보통인데 얘는 나를 믿어서 그런지 내 손길에 오히려 골골송을 부르며 계속 잠을 잔다.
냐앙.
호야가 잠꼬대를 한다. 그래서 다른 손으로 호야를 쓰다듬었다. 둘은 참 잘 잔다. 그렇게 쓰다듬다가 나도 백야에 기대고 잠이 들었다.
***
날이 밝았다. 온전히 게이트 안에 있으니 밖과는 시간이 다르다. 밖에 살짝 나가서 시간을 확인해보니 아직 출근시간까지 3시간은 남아 있다. 즉, 이곳에서는 15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이야기.
그래서 처음 예상했던 일을 해보기로 했다.
“회사생활에 도움이 되는 스킬을 익히는 거지. 일단은 영어부터.”
난 영어회화책을 펼치고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몇 시간 후에 스킬이 생겼다.
-집중(패시브) 1레벨, 스킬을 얻으셨습니다.
영어가 아니라 집중이라는 스킬이 생겼다. 딱히 나쁠 것은 없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몇 시간 뒤에.
-영어(패시브) 1레벨, 스킬을 얻으셨습니다.
20여 년을 학교와 밖에서 영어를 공부했는데, 겨우 1레벨이라는 것이 뭔가 서글펐다.
하지만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생활스킬들도 생성시킬 수 있다는 것.
“이제 회사생활은 끝장이다! 음하하하!”
하아, 뭔가 현타가 오는 것 같다. 이제와서 그게 정말 의미가 있나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