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학개론-17화 (17/182)

제 17 화 어쩌면 이거 생각보다.

제 17 화 어쩌면 이거 생각보다.

‘나는 비록 씨가 없지만······.’이라는 한 줄의 설명. 이것이 어떻게 발현될까라는 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설명대로라면 자기는 씨가 없지만, 자기를 먹는 이들에게는 씨를 많이 줄 것이라는 의미로 보이기도 하는데, 이게 말 그대로 임신확률을 높여주는 것인지, 아니면 남자들의 그 어떤 자존심을 세워주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물론 양쪽 모두 매우 훌륭한 옵션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용도는 상당히 다를 것이다.

“효과를 입증할 방법이 있으려나?”

국립과학연구소에 의뢰를 한다면 알 수 있을까? 정확히는 뭐라고 하고 의뢰를 해야 할까? 이게 남자한테 참 좋은데 뭐라고 설명을 못하겠다고 해야되나?

“사실 딱히 인증을 받을 필요는 없지. 굳이 그게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이 씨없는 수박을 인증받아야 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농담으로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바퀴벌레를 전멸시킬 수 있는 제일 빠른 방법에 대해서.

방법은 간단하다. 바퀴벌레가 남자한테 참 좋은데 설명을 하기 힘들다는 좋다는 소문이 나면 된다. 그럼 머지않아 바퀴벌레는 전멸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다면 남자들만 바퀴를 잡을까? 아닐 수 있다.

이 수박도 굳이 공식적인 인정을 받지 않아도 입소문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공식적인 인정을 받으려면 어느 게이트에서 나왔다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절대로 내가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입소문을 내는 편이 좋다.

‘이게 사실 어느 게이트에서 나온 거라는 데 남자한테 참 좋다고 그러네?’정도의 소문만 퍼지게 한다면 충분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팔 것인가? 나에게는 영혼의 친구 김선우가 있다. 그놈은 원래가 헌터인 놈이니 녀석을 이용하면 방법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려면 일단 이 수박의 효능을 확인해봐야겠지?”

아버지에게 먼저 드려볼까? 그랬다가 때늦은 동생이 생기면······ 일단 둘 중에 어떤 효능이 있는지부터 확인을 해본 후에 드리던가 해야겠다.

일단 게이트 안에서 난 검술을 수련했다. 열 시간 넘게 수련을 했지만, 아직 검술 스킬이 생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계속 한다면 검술 스킬이 생길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실망하지 않았다.

그 후에 난 달걀 200개를 삶았고, 100개를 따로 구웠다. 이게 간단한 작업 같지만, 달걀을 잘 삶는 것은 의외로 쉽지 않다. 굽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그래서 이 작업을 하면서 요리 스킬이 렙업을 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이것도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다.

난 그리고 나서 충분히 숙면을 취하고 수박과 달걀을 챙겨서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

회사에 출근하면서 나에게는 새로운 루틴이 생겼다. 달걀을 매점에 납품하는 일이다. 삶은 달걀은 개당 500원에 구운 달걀은 개당 700원에 팔았다. 물론 이것은 우리 아버지의 양계장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 않아도 아버지한테 양계장을 만들어달라는 말씀을 드렸고, 아버지는 곧장 양계장을 만드신다고 했다. 그러니 별 문제는 없다. 원래 매점 이모와 친하기도 했고.

“최 대리, 그건 뭐야?”

“아, 이거요? 게이트에 헌터로 활동하는 친구놈이 가져다 준 건데 남자한테 좋다고 하는데 뭐 어떻게 좋은지는 아직 안 먹어봐서.”

“어머! 나한테 한 통만 팔어.”

“네? 이걸요?”

“내가 10만 원 줄게.”

“한 통에요?”

“당연하지. 게이트 물건이면 그 정도는 할걸?”

달걀 300개를 팔아서 내가 오늘 받은 돈은 삶은 달걀 10만 원과 구운 달걀 7만 원으로 17만 원이다. 그런데 수박을 한통에 10만원에 사신단다. 그러면 하루에 27만원의 부수입이 생기는 거다. 27만원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주 5일 근무를 하면서 27만원을 5일간 벌면 얼마겠는가? 일주일에 135만원이다. 그럼 짜먹는 간신 정도는 마음껏 살 수 있는 금액이다. 거기에 수박은 한 통이 아니지 않은가.

“그럼 그렇게 하세요. 대신에······.”

“알지. 이건 비밀이지? 걱정마.”

“네네.”

역시 매점 이모는 센스가 넘치신다. 내가 괜히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난 매점 이모에게 한 통을 팔았다. 모든 것은 현찰박치기다. 그리고 현찰은 언제나 마음을 든든하게 만든다.

매점 이모와 거래를 한 후에 기분좋게 사무실로 올라갔다. 그러자 부장님이 쾡한 얼굴로 나를 맞이한다.

“어서 와, 요즘 나보다 늦게 출근하네?”

“어? 그거 꼰대······.”

“어허! 뭐라고 한 거 아냐.”

난 출근 시간 전에 도착했기에 당당했다. 그리고 요즘 윗사람들 ‘꼰대’라는 말에 매우 민감하다. 그런데 이건 나 같은 중간 위치에 있는 사람이 말을 해줘야 한다. 일반 사원들이나 신입사원들은 말하기 힘든 거니까.

“부장님이 너무 일찍 출근하시는 거예요. 그거 은근 부담입니다만?”

“에효, 나라고 일찍 오고 싶겠어?”

“집에 무슨 일 있으세요?”

“그냥······ 최 대리. 결혼 늦게 해라. 아니 웬만하면 하지 마라.”

씁쓸한 중년 남성의 그 비애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커피나 한잔하시죠?”

“그럴까?”

난 부장님과 옥상으로 향했다. 요즘 옥상에는 자판기 커피가 아니라 아메리카노나 카푸치노, 라떼 같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머신이 있다. 물론 자판기보다는 비싸다. 하지만 카페보다는 훨씬 싸다.

‘커피나무도 심어볼까?’

그것도 괜찮을 것 같다. 술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내가 좋아하는 것은 커피다. 내 섬에 커피를 심으면 어떤 커피가 나올까 궁금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라떼시죠?”

“어.”

난 기분좋게 부장님에게 라떼를 한 잔 선물했다, 오늘은 마음만 부자가 아니라 현찰도 많았으니까.

“여기요.”

“땡큐. 근데 웬일이야? 커피를 먼저 마시자고 하고?”

“그냥이요. 뭐 새로 출시하는 사료가 잘 팔리기도 하고 그래서 말이죠.”

“하긴 그거 최 대리가 연구소에 가져다준 거였지?”

“네. 그런데 굳이 제가 갈 필요가 있었나요?”

“공장 사람을 보낼 수도 있지. 그런데 윗 사람들이 어디 그래? 못 믿는 거지. 그래서 본사에서 사람을 보내서 시작부터 깔끔하게 하자는 거고.”

“그렇게 못 믿어서 어떻게 회사를 운영한데요?”

“그런데 그래야 하는 게 맞긴 하지. 사람 믿었다가 나중에 문제 생기면 어쩌려고?”

그런가? 라는 생각이 든다.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심정적으로 이해가 가는 부분은 아니지만.

“그래서, 무슨 일이신데요?”

“내가 늦게 결혼한 거 알지?”

“알죠.”

“그래서 내가 애도 늦게 낳았잖아?”

“그쵸. 이제 초등학생이죠?”

“어, 이제 1학년이야.”

“그런데요?”

“마나님이 우리 동식이 동생을 낳고 싶어 해.”

“아하. 그럼 부장님이 조금 더 힘을······.”

“힘이 나야 말이지. 이제 나도 40이 넘었어.”

부장님의 나이는 이제 마흔둘이다. 슬슬 힘이 부족할 때인가 싶다.

“제 친구가 헌터거든요.”

“헌터 친구가 있어?”

“네, 그 친구가 저한테 선물을 한 게 있어요.”

“선물? 뜬금없이 그건 왜?”

“그게 남자한테 참 좋다는데······ 그 관찰 스킬인가로 누가 확인을 했다는데 씨 없는 수박이라는 수박인데, 설명이 ‘난 씨가 없지만······.’이라고 하네요?”

내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부장님은 내 손을 덥썩 잡으신다.

“최 대리! 아니 시우야. 내가 너 사랑하는 거 알지?”

“사랑까지 하세요?”

“당근이지. 내가 시우 널 예전부터 참 끔찍하게 사랑했다.”

“부담스럽네요.”

“나한테 하나만 팔아줘라. 내가 10만, 아니 20만원 줄게.”

“매점 이모한테도 10만원에 하나 넘겼는데 부장님한테 20만원에 넘기면 저를 향한 사랑이 분노로 바뀔 것 같은데요?”

“그래? 내가 그래서 널 사랑한다니까.”

“네네. 가져왔으니까 이따가 하나 챙겨드릴게요.”

공짜로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공짜로 주는 것은 좋지 않다. 서로한테. 그래서 부장님에게도 10만원에 팔기로 했다. 이제 세 통이 남아 있는데 이건 선우한테 넘길 생각이다. 부장님에게 하나를 판 이유는 부장님에게 후일담을 들을 수 있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다.

오늘도 회사는 평온했다. 그렇게 평온한 회사에서 나름 열심히 일하고 퇴근 길에 매점에 들렀더니 매점 이모가 달걀이 인기 만점이라고 더 팔 수 있으면 팔아달라고 해서 알아보겠다고 한 후에 퇴근을 했다. 그리고 곧장 선우를 불러냈다. 그리고 녀석에게 세 통의 수박을 설명해준 후에 잘 팔아보라고 했다. 선우는 당장이라도 자기가 한 통 먹어보겠다고 침을 흘렸지만, 총각이 먹었다가 감당할 수 있겠냐는 내 질문에 입을 닫았다.

***

오늘도 평화로운 게이트에서는 백야가 박치기로 날 반겨주고, 호야는 해먹에 자리를 잡았다.

“백야, 너를 위해서 이 형아가 준비해온 것이 있지.”

선우를 불러낼 때에 대형 해먹을 부탁해서 받아온 참이다. 그래서 그것을 튼튼한 나무 두 개 사이에 단단히 고정해주었다. 그랬더니 백야가 미쳐 날뛰며 해먹으로 점프를 해서는 그대로 해먹과 함께 돌아가며 바닥에 떨어졌다.

“큭.”

크뢍!

역시 고양잇과 애들은 크나 작으나 하는 짓이 비슷한 것 같다. 백야의 코미디쇼를 한참 보다가 녀석이 겨우 해먹에 몸을 눕히는 것을 보고 난 밭으로 이동했다. 잘 자라고 있는 작물들을 보니 이게 뭐라고 막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어쩌면 내 천성은 회사원이 아니라 농부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양계장을 가니 닭들이 미쳐날뛰고 있었다.

“이게 몇 마리냐······.”

대충 봐도 5백 마리는 되어 보이는 양계장. 양계장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알림이 뜬다.

-관찰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이름: 미숙한 농부의 양계장(2레벨).

섬닭 517마리가 키워지고 있는 양계장이다. 하루 달걀 생산량 683개. 상태는 양호하며, 씨 없는 수박 효과가 적용중이다. 달걀 생산량과 병아리 생산량이 증가합니다.

“허, 이런 것도 보이네. 그런데 그렇다면 결국 이 씨 없는 수박의 효용은 아마도 정말 씨를 늘리는 용도인 것 같은데?”

수박의 효용이 그것인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남자에게 참 좋은 그것도 같이 적용되지 않을까? 애초에 자식을 보려고 해도 기운이 있어야 가능 한 부분이 아니던가.

그리고 이게 생각해보면 엄청 대단한 효능이라는 생각이 든다. 해마다 불임부부들이 쓰는 비용은 엄청나다. 그런데도 실제로 임신으로 이어지는 일은 크지 않고, 여성의 경우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고 한다. 그런 것을 이 수박으로 해결을 할 수 있다면?

“이거 생각보다 엄청난 것일 수도 있겠어.”

인구절벽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인류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위협 중의 하나다. 어쩌면 이 수박이 그 인구절벽 사태를 조금은 해결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괜한 인류애가 샘솟는다. 그렇게 혼자 히죽거리면서 밭을 둘러볼 때였다.

“어라? 이건 내가 심은 게 아닌데?”

처음 보는 작물이 내 밭에 떡하니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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