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 화 이거슨!
제 18 화 이거슨!
씨앗이라는 것은 바람에 날아와서 땅에서 자라기도 한다. 그것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일이다. 물론 그럴 가능성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그런 일이 발생한다고들 들었다.
“그래도 이건······.”
내 눈앞에 있는 작물은 내가 잘 알고 있는 작물이다. 내가 심은 것이 아닐 뿐이다.
“암만 봐도 파인애플이 맞는 것 같은데? 이거 나무에서 자라는 게 아니었구나.”
내 눈에 있는 파인애플은 거의 다 익은 것으로 보이는 녀석이었다. 그렇게 한참 파인애플을 쳐다보니 알림이 뜬다.
-관찰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이름: 야생의 파인애플.
섬에서 자생하는 파인애플이다. 과육이 달고 매우 맛있다. 파일애플은 피부를 곱게 만들어주며, 트러블을 억제한다.
“능력치 올려주는 녀석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내 생각이 맞았네. 그나저나 이거 시연이랑 오마니께서 아주 좋아하시겠네. 그치, 남자에게 좋은 게 나왔으면 여자한테도 좋은 것이 나와줘야지.”
난 파인애틀에 대한 항목을 찾기 위해서 내가 사왔던 여러 책을 뒤졌다. 다행히 거기에서 파인애플에 대한 것을 찾을 수 있었다.
“나무에서 자라는 게 아니란 말이지.”
그냥 파인애플의 생긴 게 그래서 그런지 난 파인애플이 나무에서 자라는 열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관엽식물에 가까운 녀석이고, 의외로 집에서도 키울 수 있다고 한다. 난이도는 있겠지만.
“꺾꽃이를 해서 키우면 된다는 거네. 어렵지는 않겠어. 하긴 여기 날씨면 뭐 잘 자라긴 하겠네. 그런데 얘가 꽃들이 모여서 합체한 겹열매였단 말이지. 처음 알았네. 지금까지 살면서 먹은 파인애플의 양이 적지는 않을 텐데······ 파인애플을 보니 역시 피자인가?”
냐앙!
호야가 뭔가 나를 상당히 협오스럽다는 듯이 쳐다본다.
“너 사람 맞지? 뭔 파인애플 피자를 혐오까지 하고 그래?”
개인적으로 난 파인애플 피자를 좋아한다. 익은 파인애플이 더 달게 느껴지기도 하고, 내 입에 맞는다. 물론 그걸 싫어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넓고, 취향은 각각 존중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니까.
“내가 민트초코를 싫어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민트초코를 매우 좋아한다. 예전에 친하던 동생이 진짜 맛있다고 내게 민트초코를 권해서 먹어본 적이 있다. 그 후로 한 동안 녀석과 말을 섞지 않았다. 하지만 뭐 그건 그놈의 취향이니까. 존중한다. 내가 먹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파인애플이 또 탕수육 소스로 만들면 맛이 죽인단 말이지. 좋았어. 오늘은 요리다!”
난 화덕을 만들기 시작했다. 주변에 진흙도 있고 흙도 좋아서 벽돌을 만들기 수월했다. 벽돌을 만드는 방법은 회사에서 틈틈이 인터넷으로 알아왔다. 그렇지 않아도 텐트 생활을 청산하고 여기에 벽돌로 만든 집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일단 벽돌이다. 백야. 간식먹을까?”
크뢍!
백야가 내게 달려들어 얼굴을 내 몸에 부비적거린다.
“대신에 형아 일부터 도와주고, 오케이?”
크뢍?
백야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놈이 이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난 알 수 있다.
“형이 널 위해 준비했어.”
난 밖에서 바퀴를 사왔는데, 수레를 하나 만들어서 거기에 바퀴를 장착했다. 이것도 밖에서 인터넷으로 배워온 것이다. 수레의 재질이 목재라 그런지 목공예로 분류가 되는 것 같아서 시도해본 것인데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목공에 스킬로 그럴듯한 개수레······ 아니 호수레를 만들었다. 백야의 등과 어깨에 연결해서 잘 끌 수 있게.
“따라와.”
크뢍!
“일단 간식 반만 먹고 시작할까?”
크롸롸뢍!
“너 형이니까 이렇게 해주는 거야. 세상이 얼마나 삭막하고 그런데. 밖에 나가면 막 호랑이 등쳐먹는 사람들이 널렸다고. 그러니까 형 말 잘 들어야 한다?”
촵촵촵, 크뢍!
물론 밖에서 호랑이 등을 쳐먹을 수 있는 인간이 있긴 할까 싶긴 했지만, 이렇게 교육을 시켜놔야 한다. 내게 길들여진 백야니까.
“파인애플을 키워서 먹으려고 한 것 뿐인데, 왜 난 지금 벽돌을 굽고 있고, 화덕을 만들 생각을 해야 되는 거니, 호야?”
냐앙.
호야는 몸을 데구르르 구르면서 귀찮다는 듯이 대답한다. 저런 호야가 난 참 좋다. 고양이는 의도해서 귀여운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고양이의 행동은 사람에게 위안을 준다. 특히 복슬복슬한 털들을 만지고 있으면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우리 호야의 털은 보통의 고양이와 다르다. 약간은 기름진 부드러움이 있다.
아메리칸 컬의 특징으로 덕분에 장모종임에도 털이 거의 뭉치지 않는다. 털이 뭉칠 때는 몸이 안 좋을 때다. 그래서 호야가 방광염에 걸렸을 때 빨리 알아차리고 치료를 할 수 있었다.
“호야, 너 갈수록 뭔가 이 아빠를 약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어? 아니, 원래 좀 그랬나? 그랬던 것도 같고.”
게이트에 들어와 있으면 혼잣말을 많이 한다. 물론 남이 볼 때 혼잣말이지 사실 호야, 백야와 대화를 나누는 거다. 각자의 언어로.
“이렇게 해야 지겨운 게 좀 덜하지.”
난 나무로 벽돌의 틀을 만들고, 백야의 호수레를 통해서 옮겨온 흙으로 모양을 잡았다. 그리고 작은 가마터를 만들어서 그 안에서 벽돌을 굽기 시작했다.
덕분에 내 손재주는 어느새 13이라는 경이로운 수치까지 올랐다. 손재주는 참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능력치라는 생각이 든다.
벽돌을 굽고, 그 사이에 검술을 수련하고, 다시 벽돌을 굽고, 그 사이에 농작물을 돌보고, 이래저래 해서 결국 화덕을 완성했을 때는 내가 게이트에 들어온지 거의 40시간쯤이 흘렀을 때다.
“이제 열 시간 남았네? 내일 회사 갔다오면 주말이니까 주말에 본가에 갔다와서 게이트에 쭉 있자, 호야.”
냥냥.
호야는 이제 게이트가 더 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름 이쪽에서는 절대자에 가까운 녀석일 테니까. 뭐 그래봐야 내 아들이지만.
“자, 이제 대망의 파인애플 피자를 만들어보자꾸나, 탕수육하고. 음······ 백야 가서 멧돼지 한 마리만 물어와.”
크뢍!
백야는 내 말을 듣자마자 숲으로 달려갔다.
“이게 되네?”
설마 될까 싶긴 했다. 백야한테 사냥을 시키는 일. 그런데 백야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바로 숲으로 달려들어갔다. 그리고 조금 기다리니 섬멧돼지 한 마리를 물고 나온다. 지난 번에 잡았던 녀석보다는 작았는데, 아직 완전히 성체가 되지 못한 녀석이었나보다.
“그럼 요리를 시작하자.”
난 먼저 도우를 만들고, 피자 재료들을 아이스박스에서 꺼냈다. 그렇지 않아도 여기 파프리카라던가 이런저런 재료들이 있어서 한 번 해먹을 생각에 미리 챙겼던 것이다.
“난 원래 피자를 할줄 몰랐는데 뭔가 어렵지가 않은 느낌인데?”
현재 내 요리 스킬은 4레벨까지 오른 상태다. 달걀을 삶고, 굽는 것에서도 보너스를 받았고, 매일 요리를 해먹으니 경험치가 쌓인 것 같다. 그리고 이 게이트라는 곳에서 하는 행동 자체가 외부에서 하는 것보다 더 경험치를 많이 준다는 생각도 든다.
이게 내가 게이트 주인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게이트 자체가 그런 것인지는 나중에 누가 이곳에 오게 된다면 실험을 해볼 문제다.
피자를 화덕에 넣고, 불을 잘 살핀 후에 멧돼지를 도축하기 시작했다. 도축용 칼도 미리 준비를 해왔었다. 이장님에게 배운대로 난 도축을 했고, 알람이 떴다.
-도축(액티브) 1레벨 스킬을 얻으셨습니다.
도축이 아에 스킬로 생성되었다. 확실히 이 게이트는 여러모로 내게 특별한 것 같다. 일단 도축이라는 스킬이 생기니 조금 더 부드럽게 도축을 할 수있었다.
그렇게 섬멧돼지를 도축하는 과정에서 내장을 백야에게 주니 백야가 좋다고 받아먹는다. 호야는 내장 같은 것을 먹는 그런 고양이가······ 아닌 줄 알았는데 둘이 잘 먹는다.
“너 뭔가 낯설다.”
하긴 내가 사료를 줄 수 있는 곳이 아니었으니 호야는 저런 것들을 먹고 살았을 터였다. 괜히 짠한 생각이 찔끔 들려고 하는데.
“너무 잘 먹는데?”
별미인가? 그런 생각이 든다. 육식동물들이 사냥감의 내장을 맛있게 먹는다는 얘기를 어디서 얼핏 본 것도 같은데 그런 건가 싶었다.
재미있는 것은 길들여진 백야는 여전히 호야를 무서워해서 호야가 먹고 남기는 것들을 먹는다는 점이다. 덩치가 아깝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호야랑 내가 맞짱을 뜬다면? 이라는 생각을 해보니 백야의 처지가 이해가 간다.
“호야, 아빠가 잘 할게.”
냐앙?
뭔 개소리냐는 표정.
“아빠한테 그런 표정 짓는 거 아냐.”
냥! 냐웅냐웅냐웅.
호야는 내 말에 대답하고는 다시 내장에 집중한다. 그 사이에 난 부드러운 살을 잘 잘라서 튀김옷을 입히고 탕수육을 만들기 시작했다.
“역시 탕수육은 못 참지.”
한 쪽에는 소스를 만들고, 탕슈육을 튀기는데 하나를 집어먹어 보았다. 바사삭하는 식감이 끝내준다.
“나, 요리 스킬 얻길 잘 한 것 같다. 큭큭.”
요리 스킬이 제일 만족도가 높은 느낌이다. 일단 이것들은 내 입에 들어가니까. 난 내가 먹을 양만 탕수육으로 만들고, 나머지는 아이스박스에 잘 챙겼다. 냉장고에 넣어놨다가 본가에 갈 때에 가져갈 생각이다. 가족들에게도 탕수육을 해드려야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는 사이에 화덕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느껴진다. 피자가 다 되어가고 있다는 의미리라. 본능적으로 난 피자를 언제 꺼내야 할지 알 수 있었기에 딱 적당한 때에 피자를 꺼낼 수 있었다.
“봐! 파인애플이 제일 잘 어울리는 음식은 피자라고!”
냥! 퍽!
호야의 냥냥펀치를 맞았다. 진심으로 때렸으면 난 피자처럼 되었을 거다. 하지만 다행히 우리 호야는 나를 사랑하니 살살 때렸······는데 겁나 아프다.
“아파!”
눈물까지 한 방울 나왔다. 그것을 보고는 호야가 내 몸을 타고 올라서는 내 뺨을 핥는다. 이런다는 것은 조금 전은 실수였다는 건데 그럼 진심 파인애플 피자에 대해 극혐한다는 의미다.
“호야, 아빠보고 솔직히 말해봐. 너 속에 사람 들었지? 파인애플 피자를 언제 먹어봤다고 극혐이야, 극혐이!”
생각해보니 예전에 내가 먹다 남긴 피자를 얘가 조금 먹은 것도 같긴하다. 그때부터 싫어했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뭔가 계기가 있었을 테니까.
“아무튼 남의 취향은 존중해야 하는 거야. 알겠어?”
냐앙.
호야가 머리를 부비적거리며 애교를 부린다. 애교스위치가 아주 지 맘대로 켜졌다, 꺼졌다 한다.
“요망한 것.”
난 호야를 안고 뒹굴렀다. 이게 행복이지, 뭐가 행복이겠는가.
“자, 그럼 한 입.”
쭉 느러지는 치즈는 그 자체로 이미 맛있다. 입에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벌써 맛있다.
“와아. 장난 아니다.”
피자는 진심 만족스러웠다. 이건 내다 팔아도 장난 아니겠어. 파자를 자세히 살펴보니 알림도 뜬다.
-아이템: 물광의 파인애플 피자.
파인애플을 주재료로 만든 피자다. 먹으면 피부에 물광을 낸 것처럼 피부가 좋아진다. 맛이 뛰어나지만, 호불호가 갈린다. 싫어하는 이들에게는 극혐의 음식이 될 수 있다.
“와, 시스템 너마저도.”
시스템도 불호쪽인가보다. 굳이 저런 설명을 넣은 것을 보면. 그나저나 효과가 끝내준다.
“그렇다면 탕수육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