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 화 크지 않만 안정적인.
제 19 화 크지 않만 안정적인.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그것은 탕수육 소스를 부어먹는 사람과 소드를 찍어먹는 사람. 그런데 사실 이건 웃기는 얘기다. 그렇다면 소스를 안 먹고 그냥 먹는 사람은 뭐란 말인가?
상당히 드물긴 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도 있다. 우리 부서에도 그런 사람이 한 명 있다. 신입사원인데, 이 사람은 그냥 튀김 자체를 간장에 찍어먹는다. 소스가 입에 안 맞는다고.
그렇다면 난 어느쪽인가?
사실 내 취향은 부먹이다. 어릴 때 아버지에게 그렇게 배워서 그렇다. 난 바삭한 튀김도 좋아하지만 살짝 눅눅해진 그 느낌도 좋아한다. 그래서 난 소스를 부었다.
혹시나 호야는 찍먹인가 살폈는데 호야는 놀랍게도 무소스파였다. 잽싸게 튀김 하나를 물고 튄다.
“야, 뜨거워!”
내 말을 들은 건지 몇 걸음 튀다가 튀김을 떨어트린다.
냐앙!
지가 사고를 쳐놓고 나를 째려본다. 뭔가 상당히 억울하긴 하지만 원래 냥이란 저런 거니까 참는다. 그보다 걱정이 된다 괜찮은지. 그래서 난 곧장 호야에게 다가가서 호야를 살폈다. 엄청 멀쩡하다. 생각해보니 얘가 이정도로 다치는 게 기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빠가 어련히 줄까! 조금 기다려 식히고 먹어 혹시라도 잇몸이라도 다칠라.”
냥.
이번에는 얌전히 기다린다. 내장을 다 먹은 백야도 뭘 주나 싶은지 기다린다. 튀김 같은 것이 얘들한테 별로 안 좋을 거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얘들은 보통 고양이나 호랑이가 아니니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도 기름은 올리브 오일을 사용했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제 먹어보자!”
적당히 소스가 탕수육을 적신 것을 보고 난 제일 먹음직 스러운 녀석 하나와 파인애플을 함께 젓가락으로 잡았다. 그리고 기쁘게 입으로.
“와, 개쩐다.”
놀라서 탕수육을 한참 보니 알람이 뜬다.
-아이템: 피부를 재생시키는 파인애플 탕수육.
파인애플 소스를 곁들인 탕수육이다. 먹으면 체력 5가 오르고, 피부가 재생된다. 맛이 뛰어나지만, 소스를 찍어 먹으면 피부재생 효과가 반감한다.
“푸하하하.”
시스템이 부먹을 강요한다. 사실 피부와 관련된 재료는 파인애플이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묘하게 부먹을 강요하는 느낌이긴 하다.
“그라쥐! 이게 탕슉이쥐!”
-요리(액티브)스킬 레벨이 5로 올랐습니다.
이제 요리 스킬이 5레벨로 올랐다. 그랬더니 역시나 4레벨에서 부족했던 부분이 떠오른다. 부모님댁에 가면 이걸 해드려야겠다. 그렇지 않아도 시연이가 여드름자국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는데, 이 탕수육을 먹으면 나아지리라 기대를 한다. 보통때는 화장으로 가리고 다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재생이면 피부의 상처 같은 거만 낫는 건가, 아니면 피부 자체가 젊어진다는 걸까?”
이건 실험대상이 필요한 문제다. 다만 파인애플 피자는 몰라도 파일애플 소스 탕수육은 체력 능력치가 오르기에 우리 가족에게 대접을 할 생각이다. 물론 이것도 돼지고기를 보통 돼지고기로 사용하면 괜찮을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대접을 해야 할 사람은 없다.
“자, 이제 먹었으니까 자자.”
자자는 말에 백호가 자리를 잡고, 나와 호야가 백호의 배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천국이 뭐 별거냐? 이게 천국이지.”
백야가 배를 빌려주고, 호야가 내 품에 파고들어서 내게 꾹꾹이를 하며 애교를 부린다. 그런데 뭐가 더 필요하겠는가. 인생 별거냐는 생각도 들 정도다. 거기에 맛있는 음식으로 잔뜩 배를 채웠다.
“자자.”
눈을 감으니 스스르 잠이 온다.
***
회사에 출근을 하니 직원들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다. 뭔가 자기들끼리 소곤거리면서 나를 가리킨다. 이건 뭔가 일이 있다는 이야기다.
‘젠장, 들킨 건가?’
사람들이 저렇게까지 한다는 것은 결국 내가 게이트의 주인이라는 것을 들킨 것인가 싶었다.
‘어디에서 들킨 거지?’
이제 결국 내 자리의 서랍속에 봉인 되어 있던 녀석을 풀어야 하는 것인가 싶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봉인해두는 그것. 사직서라는 슬픈 이름을 가진 봉인서.
“결국 이걸 내야 되는구나.”
솔직히 기분이 좋지는 않다. 사회인이 되어서 내가 애쓰고, 노력했던 직장이다. 나름 인정받았고, 회사에서 새로 개발한 상품이 인정받을 때면 내가 그것을 만든 것도 아닌데 괜히 기쁘고 그랬다.
“씁.”
괜히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다. 그렇게 과장님 앞으로 갔을 때 과장님이 묻는다.
“최 대리?”
“네, 저 이거.”
내가 사직서를 책상에 점잖게 내려놓으려는 순간 과장님의 입이 열린다.
“피부에 무슨 짓을 한 거죠?”
“사······ 네?”
“시우 씨 피부요. 도대체 피부에 뭔 짓을 한 거죠?”
“어······ 제가요?”
“네, 거울 안 보셨어요?”
“아.”
그러고 보니 아침에 샤워하고 나오는데 뭔가 피부가 좋아보인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남자라면 다들 거울 앞에서 자기가 생각보다 잘 생겼다거나, 멋지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까. 그냥 그런 내 자의식이라고만 생각했다. 애초에 내 피부 상태에 대해서 큰게 관심이 있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뭐가 달라졌나요?”
“그걸 모른다구요? 말도 안 돼! 아무리 남자라지만 어쩜 그런 차이를 모를 수가 있죠?”
참고로 우리 과장님은 여성분이시다. 나보다 나이는 다섯 살 쯤 많으시고, 매우 능력이 있고, 매력적인 분이시다. 다만 일중독자라 피부에 트러블이 많고, 늘 그것 때문에 고민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다시 피부가 안 좋아지는 악순환을 겪으시는 분이다.
‘가족만 생각하고 강 과장님을 생각하지 못했다니.’
멍청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 간절히 효과를 보기 원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잊었다니.
“과장님, 옥상으로 따라오세요!”
“음?”
일단 이 자리에서 파인애플을 꺼내는 것은 위험했기에 옥상으로 따로 불렀다.
“그거 사······.”
“쉿! 따라오세요.”
사직서라는 말을 입밖으로 내뱉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난 서둘러 그 말을 하고 옥상으로 향했다. 그런 나를 보고 강 과장님이 따라오는 것을 보았다.
***
“강 과장님! 사랑합니다!”
“어? 이거 고백? 제가 아무리 결혼이 늦었어도 취향이 있는데.”
“억! 그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만.”
난 궁서체로 말했다.
“풉! 시우 씨는 가끔 재미있어요. 농담을 농담으로 받은 거예요.”
“아, 네. 그리고 이거요.”
난 가방에서 잘라온 파인애플을 꺼내서 강 과장님께 드렸다.
“파인애플?”
“네. 그냥 파인애플이 아닙니다. 제 친구놈이 헌터인데······. 설명 더 안 드려도 되죠?”
“어머! 끄럼 부장님 드렸다는 수박이랑 비슷한 경우?”
“얘기 들으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저도 수박을 좀 구해볼까 하고 있었어요.”
“미혼이신······.”
“오빠 줄 거거든요.”
“아, 주제넘는 참견이었네요. 행복하세요.”
“친오빠 준다구요. 불임으로 고생하는 부부라.”
“그······ 저도 그렇게 이해했습니다만?”
큰일날뻔했다.
“그럴 거라고 믿어요. 그리고 수박 좀 구해주실 수 있을까요?”
“네, 친구한테 구해달라고 해보겠습니다.”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강 과장님이 저 처음 회사 들어왔을 때 저를 얼마나······.”
“괴롭혔죠.”
“그랬죠. 그때 이게 신입사원 태운다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습니다. 훈련을 잘 시켜주신다고 생각했습니다. 덕분에 동기들 중에 제일 먼저 대리도 달았구요.”
“그거 알아요? 요 며칠 시우 씨가 정말 밝아진 거?”
“제가 원래 속이 밝은 남자였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죠. 하하하.”
침착함 스킬 때문에 감정변화가 별로 없는 인간으로 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호야를 잃어버린 후에 난 더 표정이 없어졌었다. 호야를 잃어버리고, 얘가 어디에서 헤매고 다닐까라는 생각을 하면 웃는 것조차 죄스러운 기분이 들 때가 많았으니까.
그리고 게이트를 얻고, 호야를 만난 다음 요즘 나는 행복하다. 가족들의 건강도 챙길 수 있고, 호야가 곁에 있으니 세상이 아름답게 보일 지경이다. 내가 여자친구가 없는 이유가 호야 때문인가보다.
모태솔로여도 외롭지 않은 것은 호야가 있기 때문이다.
‘어? 이거 좀 문제가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보기 좋으니까 앞으로도 그렇게 웃고 살라는 얘기에요.”
“네, 그럴게요. 호야를 찾았거든요.”
“호야를 정말 아끼시네요. 여자친구가 질투하겠어요.”
“없······.”
“미안해요.”
“그렇게까지 미안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은 그다지 필요성은 못 느끼거든요.”
“풉! 이 파인애플. 정말 이거 때문에 시우 씨 피부가 좋아진 거예요?”
“이게 피부에 참 좋다고 하더라구요. 그렇다고 마사지하시지는 말고 드셔야한다고 하네요.”
“호호호. 알았어요. 아무튼 고마워요.”
“다음엔 비쌉니다, 고객님.”
“피부를 위해서라면 보너스를 포기할 각오도 되어 있으니 걱정마세요.”
“네!”
남자에게 수박이라면 여자에게는 파인애플인 것 같다. 돈아끼지 않을 상품이 말이다. 뭐 천만 탈모인을 위해서 검은 콩도 심어 놨긴 한데 그것도 효과가 있으면 좋겠다.
당장에 기업들만큼 돈을 벌지 못해도 매일매일 소소하게 수십만 원은 벌게 생겼다. 매점이모도 숩박을 더 가져다 달라고 하셨다. 벌써 효능을 보셨는지는 몰라도 필요하시다고 하셨다. 그래서 월요일에 챙겨드리기로 했다.
사무실로 돌아가니 부장님이 나를 안으신다.
“넌, 진짜 좋은 놈이다.”
“벌써요?”
“응?”
“아니에요.”
남자한테 참 좋은 게 맞았나 보다. 이제 검은 콩이 내가 기대한 것처럼 발모관련 능력만 붙어 있다면 웹소설에 나오는 삼대장의 완성이 될 것 같다. 검은 콩 말고 발모에 좋다는 것들을 다 심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
토요일, 일요일 보다 금요일 저녁이 더 설렌다. 왜? 이틀을 쉬게 되는 거니까. 정작 토요일 오전은 이미 이틀에서 한참 시간이 지난 것 같아서 아쉽지만 금요일 저녁은 아직 주말이 시작되지 않았으니 더 기분이 들뜬다. 난 그런 들 뜨는 기분으로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고 토요일 오전에 찾아뵙겠다고 했다.
그리고 선우를 만나서 완성품 각궁을 하나 입수했다. 활이 아니라 각궁이다. 녀석이 헌팅을 갈 때 사용한다면서 진짜 주기 싫어하는 표정으로 나한테 빌려주었다.
이 각궁을 빌린 이유는 간단하다. 목공예로 각궁을 만들어보기 위해서. 예전에도 각궁을 선우가 주긴 했지만, 그건 뭔가 좀 완성도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목공예로 각궁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준이 있어야 하고, 그 기준을 위해서 선우의 각궁을 빌려온 것이다.
“호야, 넌 아빠가 손재주가 있다고 생각하니?”
냐앙?
“뭐야, 예전에 캣타워 조립할 때 열 시간 걸렸던 걸 기억하는 거야?”
조립식 캣타워는 어렵다. 남들이 다 쉽다고, ‘전 여자지만 혼자서 삼십분만에 완성했어요.’라는 후기를 보고 샀지만, 열 시간이 넘게 걸렸다. 분명 그 여자의 댓글은 알바였으리라.
“마! 캣타워는 완성품이 튼튼한 거야.”
물론 내 주장이다. 그정도로 손 재주가 없던 나였는데, 게이트에 들어와서 손재주라는 능력치가 생긴 후로는 달라졌다. 지금처럼.
“이게 내가 만든 활이라고? 심지어 아이템이야?”
내가 만든 활은 아이템이었다. 그것도 그렇게 구하기 힘들다는 장비 아이템. 시스템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니까 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