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화 갑자기?
제 21 화 갑자기?
게이트에서 챙길 것들을 다 챙긴 후에 난 집으로 출발했다. 잠은 게이트 안에서 잤기에 별 문제가 없다. 다만 조금 신경 쓰이는 것은 백야였다.
“백야 혼자 잘 있겠지?”
냐앙!
그렇단다. 호야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리라. 사람이 그래도 마음이 짠하고 그런 부분은 있다. 나랑 호야는 밖에서 이렇게 돌아다니는데 백야는 밖으로 나오면 안 되니까.
만약 백야가 밖으로 나오면 말 그대로 소설 속에 나오는 게이트 사태가 터진 것으로 오해를 받기 딱 좋을 거다. 혹시나 해서 백야를 게이트 밖으로 데리고 나오려고 시도를 해보았는데, 나올 수 없었다. 게이트가 백야를 건너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느낌이다. 브란닭은 게이트에서 산채로 꺼내올 수 있었다. 그런데 백야가 안 되는 것은 위협이 되기때문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알 수 있는 부분이 없기에 뭐라고 장담하지는 못한다.
“호야. 할머니, 할아버지 보고싶었어?”
냐앙!
그렇다고 애교를 부린다. 유독 어머니가 호야를 예뻐하셨다. 애가 기품있게 생겼다고 참 좋아하셨더랬다. 그래서 내가 호야를 잃어버리고 반쯤 정신을 놓고 있을 때도 어머니는 내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으셨다.
“아, 그때 생각하니까 또 마음이 그르네.”
냐앙.
호야가 스틱을 잡고 있는 내 손을 핥는다. 호야도 나와 떨어져 있던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때는 지능이 지금처럼 높지도 않았을 테니까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 내던져졌다는 것을 느끼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미안.”
호야의 머리를 쓰다듬자 호야가 골골송을 부르며 부드럽게 자리에 눕는다. 그리고는 자기 앞발을 그루밍하기 시작한다. 그런 호야를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차도 막히지 않고 서울을 벗어나니 공기도 좋고, 여러 가지로 참 좋은 날들이다.
***
“저 왔어요.”
“왔니? 어여 들어와. 근데 뭘 그렇게 바리바리 싸가지고 왔어?”
“우리 가족 먹을 것들이요.”
“어디서 이런걸.”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도 얼굴은 웃고 계신다. 그때 시연이가 튀어나왔다.
“오빠, 뭐야!”
“뭐가?”
“왜 피부가 그런데?”
“타고나서?”
“우리 친남매로 알고 있었는데, 출생의 비밀이 있던 거였어?”
시연이는 공부를 하느라고 요즘 피부트러블이 장난이 아니다. 나름 고등학생이니까 학업 스트레스가 심하리라. 애초에 그래서 파인애플을 챙겨온 거기도 하고.
“사실 넌 저기 다리 아래서······.”
“그때 우리 여기 안 살았거든?”
“그래서 여기가 네 고향인 거지.”
“그런가? 그래서 막 여기가 좋고, 편하고 그랬던 건가?”
“믿냐?”
“믿겠어? 늙은 오라방이랑 놀아준 거지. 아무튼, 그래서 피부 왜 그런데?”
“이거나 받아라.”
난 그렇게 말하며 통에든 파인애플을 던져주었다.
“뭐야?”
“그거 먹으면 나처럼 된다.”
그때였다. 분명 시연의 손에 들려 있던 파인애플 통이 순간 사라졌다.
똑깍.
그리고 파인애플이 어머님 입 속으로 들어가신다.
“너희는 아직 젊어서 괜찮아. 급한 건 나거든.”
틀린 말씀은 아니지만. 더 있는데.
“엄마 많아요.”
내 말에 어머니 표정이 굳으신다.
“진작 말하지. 자, 시연이 먹어.”
“와, 내가 진짜 다리 아래에 가서 부모님을 찾아봐야 하나?”
시연이가 어머니와 나를 째려본다. 하긴 그럴 나이다.
“다들 여기에 앉자.”
우리 셋의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아무래도 게이트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려는 것 같다.
“네.”
우리는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아버지가 나를 보며 말씀하신다.
“네가 직접 말해라.”
“네.”
난 내 앞에 있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호야를 쓰다듬다가 말했다.
“호야 잃어버렸던 거 다들 아시죠?”
엄마와 시연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호야가 그때 게이트에 들어갔었어요.”
“뭐?”
“뭐야?”
난 그간 있던 일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오는 것들이 어떤 것들인지에 대해서도.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시연이는 멍한 표정을 지었고,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우리말고 누가 아니?”
“선우요.”
“음, 선우면 믿을만 하겠지.”
“네, 선우가 헌터였더라구요. 그래서 도움을 좀 받았어요. 하지만 선우가 알고 있는 것은 내가 섬 지형으로 된 게이트를 얻었다는 것까지예요. 거기에서 나오는 능력치를 올려주는 식재료들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어요.”
“음······ 나중에 알면 선우가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겠니?”
어머니 말씀도 맞다. 분명 섭섭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숨길 수 있을 때까지는 숨겨볼 생각이다. 굳이 알려야 할 시점이라면 선우에게도 전투를 시켜야 할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당장은 그럴 위험은 없어 보였기에 선우에게는 미안하지만, 당장은 알리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자 부모님이 시연이를 쳐다본다.
“왜? 뭐? 내가 어디가서 떠들고 다닐가봐? 내가 얼마나 깍쟁이 소리를 듣는데.”
“너희도 깍쟁이란 말을 쓰냐?”
“우리 선생님이 나한테 그러신다, 왜?”
“아니, 요즘 애들은 안 쓸 말이라서. 별다른 의미는 없어.”
사실 비밀을 잘 지키는 것은 의외로 남자보다 여자일 수도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난 가족의 비밀을 밖에 말할 정도로 바보가 아냐.”
“믿을게.”
“당연하지. 그럼 이 파인애플이 그런 거란 말이지?”
“어, 이 파인애플은 피부에 좋은 거야. 내가 이걸로 요리 해줄게. 그거 먹으면 더 좋아.”
“아싸!”
“요리는 무슨 엄마가 할게.”
어머니가 나서신다.
“아니예요. 저 요리 스킬도 있어요. 맛이 끝내주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우리집에 오븐 있었죠?”
“있긴 하지. 안 써서 그렇지.”
보통 집들도 오븐을 잘 쓰지는 않는 걸로 안다. 우리집도 마찬가지다. 이 전원주택을 지었던 분이 오븐을 설치했었는데, 그 집을 우리가 샀으니 그대로 있는 거다.
한식이 오븐을 사용할 일이 별로 없으니 처음에는 과자니 뭐니 해서 어머니도 조금 만드시다가 그만두셨다. 가끔 먼지만 닦으신다고 한다.
“그럼 됐어요. 기다리세요.”
난 호야를 시연이에게 맡기고 곧장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점심으로 먹을 것은 파인애플 피자와 파인애플 소스 탕수육이다. 고기도 섬멧돼지 고기를 가지고 왔기에 맛은 좋았다.
내가 만들어낸 요리는 게이트 안에서 만든 것과 같은 효과를 보였고, 파인애플 피자에 별다른 저항이 없는 우리 식구들은 그것을 즐겼다. 다만 강제 부먹을 해야 한다는 부분에서 시연이가 짜증을 냈었지만, 피부를 포기할 수는 없었으리라.
“우쭈쭈, 우리 호야 그렇게 무서운 곳에 혼자 있었어요? 얼마나 힘들었니?”
시연이는 호야를 물고빨고 아주 난리를 쳤다. 호야는 그런 시연이를 귀찮아하지만 싫어하지는 않았기에 참아주고 있었다. 고양이들은 저렇게 사람에게 참아주는 경우가 많다. 안기는 걸 싫어하지만 사람이 그러고 싶어하니까 잠깐 참아준다. 그런 경우다. 물론, 오래 참지는 않는다. 강제로 오래 안고 있으면 냥냥펀치를 얻어맞거나, 몸에 상처가 생길 것이다.
“네가 고생이 많다.”
난 호야를 구해줄 수 없다. 이곳에서 난 제일 약자니까. 시연이가 막내지만 나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막내라 내가 이기면 안 된다. 애가 엇나가니까. 그래서 오냐오냐 키웠더니 요것이 요망해지고 있다. 날을 잡아서 교육을 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파인애플을 끊는다던가 하는 방법으로.
“흐흐흐.”
“뭐지? 그 불손한 웃음은?”
“시연아.”
“왜?”
“오빠한테 막 고맙지?”
“뭐, 뭐가?”
“아마 몇 시간만 지나도 파인애플 효과가 나올걸? 그럼 그 파인애플을 누가 구해다 줄 수 있을까?”
내 말에 시연이 움찔한다.
“오라버니?”
“사극찍냐?”
“소녀, 오라버니를 오라버니라 부르는데 어찌 오라버니께서 언짢아 하신다는 말씀이옵니까?”
“와, 소오름.”
난 시연이와 투닥거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배가 꺼질 시간이 되어서야 미노타우르스의 꼬리뼈를 고아만든 꼬리곰탕을 내놨다.
“다들 이거 한그릇씩 드셔 보세요.”
스킬이 생긴다. 이 스킬이 어떤 것이 생길지는 알 수가 없다. 생각해보면 스킬이 생긴다고 했지, 미노타우르스의 스킬을 얻는다고는 하지 않았었다. 랜덤으로 스킬이 생긴다고만 했다.
그러니 내가 가진 ‘공포’라는 스킬도 랜덤으로 생성된 것이리라.
“이건 뭐니?”
“이걸 드시면 스킬이 생겨요. 랜덤으로.”
“랜덤?”
“네, 무작위로 생긴다는 얘기죠.”
“엄마도 그정도 영어는 알고 있다만?”
“아, 죄송.”
“그러니까 헌터들이 쓴다는 그 스킬이라는 것이 생긴다는 거지?”
“네, 그렇지만 무작위 스킬이라서 뭐가 생길지는 몰라요. 요리 같은 생산직 스킬일 수도 있고, 별 쓸모 없는 스킬이 생길 수도 있어요. 그리고 그보다 아에 안 생길 수도 있어요. 저 말고는 상태창이 열리지 않은 상태라.”
“하지만 그러면 체력이나 지능 같은 것들이 좋아진 것도 말이 안 되는 거지.”
시연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우리 가족들은 능력치를 올리는 식재료를 먹었다. 체력이나 지능 같은 능력치도 올랐다. 실제로 시연이는 공부를 더 집중해서 할 수 있고, 같은 문제를 볼 때에 예전보다 이해력이 높아졌다고 느껴진다고 말했다.
‘난 안 그렇던데······.’
내 지능은 스킬 사용 위력에나 영향을 미치나보다.
“그러니까 혹시 스킬이 생기지 않더라도 실망하거나 그러지 마시라구요. 나중에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면 스킬은 또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 알았다. 이제 와서 스킬이라는 거 얻는다고 뭐가 달라지겠니?”
“네 엄마 말이 맞다.”
부모님은 그냥 즐거운 이벤트 정도로 생각하시는 것 같다. 다만······.
“뭐 하냐?”
갑자기 사발에 물을 떠놓고 절을 하고 있는 시연이.
“어허! 신성한 의식을 방해치 말라.”
“엄마, 얘 요즘 도대체 무슨 드라마를 보는 건데요?”
“몰라. 달이 뜨지 않는 밤인가 뭔가 웬 현대에 왕조가 살아 있고, 흡혈귀가 나오고 그러던데?”
“뭐, 그런······.”
“소녀, 준비가 되었사옵니다.”
“야, 거기 그런 대사가 나올 리가!”
“오빠가 어떻게 알아? 오빠도 봤냐?”
“어, 나 활자 중독인거 잊었냐?”
“쳇! 암튼 줘봐. 이제 치성도 올렸겠다. 좋은 놈으로 하나 받아보자.”
시연이의 행동이 어이가 없으면서도 나도 살짝 저런 걸 하고 먹었으면 ‘공포’보다 훨씬 좋은 스킬을 얻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사람이라는 것이 다 거기서 거기라 생각하는 것도 비슷한 것이니.
나를 제외한 가족들은 경건하게 꼬리곰탕을 드셨다. 매우 경건하게. 아니라고 말씀하셨지만, 부모님또 나름 기대를 하고 계신 것 같았다.
그렇게 꼬리 곰탕 한 그릇씩을 다 비우신 그때였다.
-게이트 주인의 권한으로 게이트 출입권한을 허가하겠습니까?
“갑자기?”
여기에 게이트가 있는 것도 아닌데 게이트 출입권한을 허가할 거냐고? 이게 무든 뜬금없는 소리지?
이게 뭔가 하고 있을 때 뒤이어 다시 알람이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