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학개론-29화 (29/182)

제 29 화 결심.

제 29 화 결심.

게이트에서 난 여러 가지 식재료들을 조달할 수 있다. 그것을 쉽게 밖에 팔지는 못한다. 이유는 내가 게이트의 주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게이트 주인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것이 뭐가 문제냐? 간단하다. 내가 가진 것에 비해서 내 힘이 아직은 부족하니까.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게이트에서 나오는 것들을 우리 가족과 선우 정도만 먹고 살기는 좀 무리가 있다. 밭은 점점 넓어지고, 양계장도 커지고, 이제 축사도 생겼다. 그럼 어딘가에서 이것을 소모시켜야 한다.

다행인 것은 난 사회생활을 이 사료 회사에서 시작했다. 식재료라는 것은 대부분 사료에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다니고 있는 이 회사에 게이트산 재료를 공급한다는 것은 힘들다. 일단 어디에서 구한 것인지에 대해서 정확히 설명해야 하니까.

그래서 내가 생각한 것은 하나다.

“창업을 하자.”

창업이라는 것이 어렵다. 당연한 일이지만, 자본도 필요하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그것들만 해결하면 된다.

그렇다면 다음 생각할 것은 뭔가?

내가 만드는 제품이 잘 팔릴 것인가에 대한 부분인데, 이것은 내 게이트 안에 있는 식재료들이 사료로 사용되었을 때 어떤 효과를 주는지를 떠올려보면 된다. 물론, 처음에는 조금 힘들 수 있겠지만, 팔리고,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 그 후에는 잘 팔릴 거다.

내가 할 일은 창업을 결심하고, 실제로 창업을 하는 일이다. 이게 가능한지에 대해서 잘 생각해봐야 한다.

이 부분에서 창업을 해야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아버지는 원래 사업을 하시던 분이고, 사업을 하시기에 충분한 통찰력을 가지고 계신다.

그렇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지금 다니는 회사를 배신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내가 노리는 시장은 치료용 사료다. 지금 우리 회사에서 기력을 회복하는 사료를 출시했지만, 사실 그 외에는 기능성 사료를 만들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크게 사업을 벌일 생각은 없다. 작은 공장 하나를 인수해서 그곳에서 기능성 사료와 치료용 사료를 만들면 어떨까 싶다.

동물들은 사람과 달라서 어디가 아파도 아프다고 표현을 하지 않는다. 사람에게 의존도가 높은 강아지들은 그런 경우가 간혹 있지만, 보통은 강아지들도 아픈 것음 숨긴다. 고양이는 말할 것도 없다. 그렇기에 상태가 매우 심각해지기 전까지 보호자가 자기 반려동물이 아프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또 운이 좋아서 반려동물이 아픈 것을 빨리 알게 되어서 병원에 데려간다고 치자, 그렇다면 치료는 쉬울까? 절대 쉽지 않다.

한국의 수의사들이 실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반려동물의 질병을 잘 치료하는 수의사들은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사람과 달리 반려동물들은 말이 통하지 않기에 치료를 받는 행위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먹을 것으로 치료를 하는 것이다. 주변에 노령묘에 신부전이 있는 고양이가 있다. 그 보호자는 아침저녁으로 고양이에게 피하수액을 주사한다. 50밀리씩 매일.

생전 주사라는 것을 놔본 적이 없는 사람이 갑자기 고양이에게 주사를 놔야한다. 고양이도 힘들고, 사람도 힘들다. 하지만 그래야 고양이가 조금 더 편하게 오래 살 수 있기에 해야 한다.

우리 부서의 김정희 씨가 바로 그런 경우다. 그래서 그녀는 매번 좋은 사료가 나오면 그것을 가지고 고양이에게 먹여보려고 노력한다. 주사를 놔주는 행위 자체가 힘들어서가 아니라, 주사를 맞아야 하는 고양이가 힘들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신부전에 좋은 사료는 나오긴 해도 그것을 치료할 수 있는 사료는 나오지 않는다. 사람이라면 투석이라도 하겠지만, 고양이는 그게 힘드니까. 그렇다고 이식수술도 생각할 수 없지 않겠는가?

누군가는 그런 말을 할 수도 있다. 겨우 동물이 아픈 거 가지고 요란을 떤다고. 하지만 반려동물을 왜 반려라는 말을 붙여서 쓰겠는가?

반려(伴侶)라는 말은 사전적 의미로 볼 때 ‘짝이 되는 동무’라는 말이다.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그 어떤 감정이라는 것이 있다. 반려동물은 가족이다. 가족이 아프다고 버리는가? 그럴 수 없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 자신의 반려동물을 보며 떠올리는 소원이 있다.

‘아프지 말고, 오래 살다가, 고생하지 말고 떠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다. 아프지 않게 오래 살고, 죽을 때가 되면 고생하지 않고 죽기를 바라는 마음. 이것은 결국 사람들이 자기 가족을 위해 비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나 역시 호야가 언젠가 내 곁을 떠나게 된다면 그렇게 편안하게 떠나기를 기도한다. 뭐, 지금 봐서는 호야가 나보다 오래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아무튼, 치료용 사료라는 것은 그래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난 전문적인 치료용 사료를 한 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용도 만들 수 있지 않겠냐는 질문은 당연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치료를 받는 것이 동물들보다 수월하다. 그러니 치료를 잘 받으면 불치병이 아닌 이상은 병을 이겨낼 수 있다. 굳이 내가 아니라도 된다는 얘기.

“아버지랑 얘기를 해봐야겠네.”

창업을 결심했다고 해서 내가 당장 회사를 그만둘 일은 아니다. 치료용 사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준비할 일도 많다. 여러 전문가에게 자문도 구해봐야 할 일이다. 그러니 일단은 회사를 열심히 다닌다는 것이 결론.

“최 대리.”

“네, 부장님.”

오늘도 난 열심히 회사생활을 한다.

***

퇴근 후에 선우를 만났다. 선우는 가게를 벌써 계약했다고 한다. 이제 오픈할 일만 남았다고.

“그런데 가공식품만 팔자, 수박은 쥬스로, 파인애플이랑 포도는 잼으로 어때?”

선우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편이 훨씬 편할 것이다. 상할 일도 없고.

“그게 좋겠다. 그리고 내가······.”

난 사료를 만드는 회사를 창업할 거라는 이야기를 선우에게 들려주었다. 선우는 내 이야기를 듣고 매우 기뻐한다. 이녀석은 강아지를 키운다. 두 마리의 강아지를 키우는데 하나는 포메라니안이고, 하나는 셔틀랜드 쉽독이라는 품종이다.

둘 다 누군가에게 맡겨서 키우게 된 녀석들이었다. 그중에 포메라니안은 털이 안 나는 증상을 겪고 있다. 흔히 포메에게 잘 나타나는 증상으로 털을 깍을 때 바리깡으로 밀면 그런 일이 종종 벌어진다. 그래서 포메들은 보통 가위컷을 하는데 샵에서 속인 것 같았다.

그 후로 선우가 키우는 포메는 얼굴에만 털이 있고, 다른 곳은 듬성듬성 털이 난다. 그것이 강아지에게 스트레스일지는 모르겠지만 보호자가 보기에는 안타깝게 보일 수밖에 없다.

“이 두부 먹이면 우리 뭉치도 털이 자랄까?”

“모근의 문제라면.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언젠가 그런 작물도 나오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게다. 우리 뭉치 여전히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보기가 안쓰러워서.”

난 선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다리를 잃은 고양이나, 눈을 잃은 강아지 같은 애들이 간혹 있는데, 걔들은 스스로 잘 적응을 하며 살아간단다. 문제는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안타까워한다는 것.

하지만 생각해보면 노멀한 상태가 되는 것이 여러모로 더 좋지 않겠는가.

“일단 먹여봐. 근데 뭉치가 두부를 먹으려나?”

“뭐, 다른 간식이랑 섞어줘봐야지.”

“셀리는 문제 없고?”

“셀리는 살이 너무 쪄서 문제고. 보통 걔들 평균 체중이 8에서 9킬로그램이라는데 얘는 15킬로그램이 넘잖냐.”

“딱히 보기엔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는데.”

“보기에 문제가 없어도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겠냐?”

“하긴 사람도 그렇긴 하지.”

과체중이라는 것은 당장 문제가 없어도 나중에 문제가 될 경우가 많다. 그러니 뺄 수 있다면 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치료용 사료를 만들겠다는 생각에는 나도 양팔들고 환영이다. 근데 만만한 일은 아닐 거다.”

“만만한 일이 어딨냐? 너 여기 허가는?”

“오늘 서류들 다 집어 넣었다. 곧 사업자 등록 나올 거야.”

“그래, 괜히 허가 나오기 전에 물건 팔지 말고.”

“자식아, 내가 장사가 본업인 사람이야.”

선우는 웃으며 그렇게 말한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물었다.

“게이트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는 않고?”

“글쎄다. 딱히 헌터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냐. 어쩌다가 들어갔던 거지. 그래서 너한테도 얘기를 안 했던 거고, 언제든 그만둘 생각이었어. 그래서 그런지 별로 아쉽지는 않아. 내가 스킬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밖에서 위험할 일이 있겠냐?”

하긴 이 세상은 소설 속의 세상과는 다르게 게이트가 등장한 후로도 바뀐 것이 없다. 그러니 딱히 위험할 것도 없다. 특히나 세계 1위의 치안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은 더 그렇다.

“그래, 나중에 가자.”

“친구 잘 둔 덕에 돈 좀 벌어보자, 큭큭.”

선우와 나는 6:4로 계약을 했다. 내가 6이고, 선우가 4다. 난 5:5를 원했지만, 웃기지 말라고 선우가 7:3을 주장했다. 그래서 결국 6:4로 마무리 된 것이다. 가게의 운영을 비롯한 대부분을 선우가 처리하는 거니까 난 5:5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선우의 생각은 달랐다.

“뭐, 많이 벌어라. 네가 많이 벌어야 나도 많이 벌지.”

“그래. 들어가라.”

“어.”

가게는 깔끔했다. 그런 가게를 둘러보고 난 집으로 돌아왔다.

***

냥냥냥!

호야가 평소보다 조금 늦은 나를 나무란다. 왜 이렇게 늦게 왔냐는 얘기다.

“미안, 선우 좀 만나고 왔어.”

냥냥냥냥!

“알았어. 끝나면 바로 들어올게. 뭔 잔소리가 그렇게 많어.”

퍽!

응징이다.

“잔소리라는 말은 취소.”

냥! 냥냥.

“난 약하니까 밖에 오래 있으면 위험하다고? 내가 위험할 일이 뭐가 있냐? 세상이 얼마나 안전한데.”

내 말에 호야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뭐지? 왜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다는 눈빛이지?”

냐웅.

호야가 한숨을 쉰다. 잘못한 게 없는데 엄청 잘못한 느낌이다. 그리고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호야는 나보다 지능이 높다. 지능이 높다는 것은 나보다 똑똑하다는 것일 거다. 그 외에 감각이나 이런 부분이 나보다 월등하다. 그런 호야가 바깥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밖에 오래 있는 것을 위험하다고 나를 혼낸다. 결국 이런 것을 유추했을 때에 나올 수 있는 결론은.

“호야, 정말 밖에 위험한 게 있다는 거야?”

냥!

당연하단다.

“뭐, 총이나 차사고 그런 거?”

냥!

아니란다.

“그럼 밖에도 몬스터가 있다고?”

냥냥!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 몬스터가 밖에도 있다고? 브란닭을 게이트 밖으로 가지고 나오는 것이 가능했다. 그럼 백야도 밖으로 데리고 나올 수 있을 방법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지난번에는 백야를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것에 실패를 했지만, 뭔가 다른 방법을 강구해보지는 않았으니까. 백야는 몬스터로 분류될 수도 있는 아이다. 그렇다면 정말 바깥 세상에 그런 것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그런데 굳이 누가 그런 짓을 할까?

하지만 세상은 넓고 또라이는 많은 법이다. 게이트 주인이 모두 제정신일 거라는 기대는 버리는 편이 좋다.

“알겠어. 아무래도 나도 대비를 해야겠네.”

나만이 아니라 가족도 대비를 시켜야 할까? 고민이 되는 문제다. 하지만 아직은 확인된 것이 없으니 나부터 준비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