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 화 냥줍? 난 오줍이다.
제 31 화 냥줍? 난 오줍이다.
“너, 이리 와.”
내가 오크에게 손짓을 하자 녀석이 재빨리 내 앞에 선다. 얘가 왜 이럴까? 그걸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겁을 잔뜩 먹은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지를 앞에두고 지 검술을 카피하면서 죽이지도 않고 한참 가지고 놀았다고 생각할 테니까.
“내 말 알아듣는다고 그랬지?”
끄덕끄덕.
“너 검술 누구한테 배웠어?”
얘가 하는 짓을 볼 때 얘가 헤르티안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본다. 이 검술이 최상급까지 있다면 최소한 헤르티안 본인이 이 오크라면 나한테 이렇게 당할 리가 없으니까.
갸웃?
못알아듣는 건가? 아니면 모르겠다는 건가?
“너희 오크 중에 너랑 똑같이 검 쓰는 놈 많아?”
끄덕.
이번에는 그렇다고 한다. 그러니까 대충 이녀석의 대답을 유추해보자면 지도 어디서 배운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이녀석이 속한 오크 부족이 전부 같은 검술을 익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름 뭐야? 나 최시우. 얘는 호야. 쟤는 백야, 얘는 까망이.”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녀석이 말한다.
“카락. 카락.”
“네가 카락이라고?”
끄덕끄덕끄덕.
“그러니까 넌 카락?”
끄덕.
이 오크의 이름이 카락인 것 같다.
“이제 문제는 이놈을 어떻게 처리를 하냐는 건데.”
움찔.
카락이 몸을 움찔한다. 그런 녀석에게 난 몇 가지 실험을 해보고자 했다. 이렇게 지가 숙이고 들어오는데 그냥 쳐 죽이는 것도 좀 그렇다. 이건 말을 알아듣는 닭과 소를 잡아먹는 것과는 좀 결이 다르다.
양쪽 다 말을 알아듣는데 뭐가 다르냐고? 일단 첫 번째로는 닭과 소는 죽이는 이유가 먹기 위해서다. 하지만 오크는 못 먹는다. 얘는 내가 처음 관찰로 살펴보았던 18렙짜리 섬오크는 아니다. 물론 섬오크도 오염된 고기라 못 먹느다는 얘기가 있었다. 얘도 마찬가지다. 아무튼 죽여서 먹을 것이 아니기에 우선 먹기 위해서 죽이는 것이 아니라는 부분인데 말을 알아듣고, 알아서 숙이는데 죽이긴 좀 그렇다.
두 번째는 소는 아니지만, 닭과는 달리 오크는 일을 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소설에서 흔히 아인종이라고 부르는데 아인종이라는 말 자체가 인간과 비슷한 종족이라는 의미다.
인간과 비슷한 종족이라는 얘기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비슷하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 소가 생긴 후로 밭일이 편해졌다. 쟁기만 해도 여러 소가 끌어서 밭을 갈기 시작하니 작업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계속해서 그 모든 것을 조율하고,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 문제다. 그렇다고 밖에서 인력을 수급해오기에는 게이트의 보안도 문제지만, 안전하다는 보장을 아직 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그런데 얘를 어떻게 잘 가르쳐서 일을 시킬 수 있다면 밥만 주면 될 것이고, 딱히 죽는다고 해서 내가 손해 볼 일은 없다는 것. 얘를 죽였을 때에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소량의 경험치다. 처음 봤던 섬오크보다 레벨도 낮다. 그러니 매우 소량의 경험치일 것이다. 그러니 실질적으로 얘를 죽여서 내가 얻을 것은 별로 없고, 얘를 잘 길들이면 얻을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카락.”
“카락, 카락!”
마치 잔뜩 군기가 들어 있는 이등병 같은 모습이다.
“내가 널 살려줘야겠냐?”
끄덕끄덕끄덕끄덕!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난 그런 녀석을 보고 백야를 쳐다보며 말했다.
“백야, 사료좀 가져와봐.”
백야가 현재 먹고 있는 사료는 우리 회사에서 만든 동물성 단백질 함량이 엄청 높은 고단백 사료다. 백야를 위해서 특별히 회사 연구팀에 부탁해서 만들고 있는 사료다. 연구소장님께 수박을 비롯한 친구가 구해줄 수 있는 여러 가지 게이트 식재료를 제공해주기로 하고 받는 것이다.
분량이 상당하긴 하지만, 사실 큰 연구가 필요한 것도 아닌 것이라 어렵지 않게 거래를 할 수 있었다. 연구소장님이 좋은 것은 왜 이런 것이 필요한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이렇게 가지고 오게 된 사료를 백야에게 실험적으로 먹이고 있는데 백야는 주식이라기보다는 간식을 먹듯이 사료를 먹는다 한번에 세숫대야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주니 심심할 때마다 씹어먹는다.
그것을 난 오크에게 줘보았다. 얘도 딱 보니 육식을 좋아하게 생겼고, 단백질이 많이 필요한 녀석으로 보여서다.
“쿠락?”
“먹어. 입에 맞을 지는 모르겠지만.”
내 말에 녀석이 그것을 조심스럽게 먹기 시작한다. 몇 개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가 삼키더니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뭐지? 입맛에 맞아?”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양손으로 입에 넣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정신없이 씹어먹는다. 그런 녀석의 모습을 가만히 보니 섬오크와 달리 이 녀석은 뭔가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좀 마른 것 같기도 하다. 오크라고 하면 근육근육하고, 두툼한 살집을 바탕으로 전투를 벌이는 녀석들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 녀석 상태를 보니 전투에 적합한 녀석으로 보이진 않았다.
“근데, 넌 내가 만만해보였냐?”
생각해보니 갑자기 확 열이 받는다. 날 만만하게 봤으니까 덤빈 것이 아니겠는가?
“카락아, 그거 잘 먹은 후에 우리 교육을 좀 받아볼까?”
두들겨 패서 일단 복종을 시켜볼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녀석이 먼저 사료를 다 먹고 내게 바싹 엎드린다.
“쿠룩! 쿠루루룩!”
“뭐지? 알아서 기는 거야?”
웃기는 놈이다. 알아서 기려고 하니 이거 두들겨 팰 타이밍을 놓쳤다.
“맛있냐?”
“쿠롹!”
눈이 반짝인다. 오크의 눈이 반짝이다니 뭔가 끔찍한데 웃긴다.
“너 앞으로 여기서 내가 시키는 거 하면 먹을 것들을 준다. 어때?”
“쿠록!”
“좋다고?”
“쿠록!”
얘들도 언어가 있긴 한 것 같은데, 도대체 알아들을 수는 없다. 다행히 이놈이 내 말을 알아듣는 것 같으니 다행이다.
“다 먹었으면 따라와.”
녀석이 입을 스윽 닦더니 따라온다. 난 녀석이 도구를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검을 쓸줄 아는 놈이니까. 그래서 녀석에게 삽을 쥐어주고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가르쳤다. 의외로 지능이 높은지 금방 내 말을 알아듣는다.
퍽퍽! 퍼버버벅!
“와, 대박.”
나도 근력이나 민첩이 높아져서 삽질마스터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삽질을 잘한다. 그런데 이녀석이 삽질을 하는 것을 보니 난 한 수 접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거기 그렇지. 잘하고 있어. 백야, 얘 도망가지 못하게 잘 감시해. 그렇다고 죽이지는 말고.”
크뢍!
백야는 재미있는 장난감을 만난 표정으로 눈이 반짝인다. 저 눈빛은 잘 안다. 반짝이는 낚싯대 장난감이 있는데 그것을 볼 때의 호야 표정이다. 겁나게 쉽게 망가지는데 고양이들이 워낙 좋아해서 잘 팔리는 물건이다. 백야의 눈빛이 바로 그 호야의 눈빛이다.
“그럼 난 검술을 좀 더 연마해봐야겠다.”
오크 카락과 협의를 마친 나는 검술을 더 연마하기로 했다.
***
헤르티안이라는 미지의 존재가 만들었다는 검술. 이 검술은 뭔가 엄청 심오한······ 그런 것은 없다. 내 머릿속에 들어온 검술지식은 엄청 기본적인 것들이다.
무슨 무협 소설에 나오는 검로나 그런 것이 없이, 기본적인 베기와 찌르기 같은 것의 정자세가 내 마리에 각인되어 있다. 사실 이게 맞는 것 같기는 하다. 내가 익히고 있는 것은 초급이다. 그런데 초급이 막 날아다니고 그런 것이 있을 턱이 있나. 다만 조금 더 검을 제대로 잡고, 휘두르고, 찌를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뿐이었다.
그것을 따라서 난 열심히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이라는 것은 매우 지겹고 지루하고, 짜증날 수도 있는 것이다. 예전에 드럼을 배운 적이 있다. 뭔 생각이 들어서 드럼을 배운 것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드럼을 배우려고 학원을 가니 그 학원은 매우 한산했다.
사람이 없었다는 얘기다. 그래도 집에서 가까우니 거기서 배우는데 난 왜 드럼학원에 사람이 없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일명 따대기라고 부르는 고무판을 치는 행위. 드럼학원에 등록을 하고 난 3개월동안 그것만 했다. 드럼은 쳐보지도 못했다. 따대기를 치는 것은 매우 지루하고, 지루하고, 지루하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난 후에 드럼을 직접 연주할 수 있는 과정에 들어갔을 때 난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지겨웠던 과정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 일이었는지. 나중에 다른 학원에서 드럼을 배운 녀석과 드럼을 쳐볼 일이 있었는데, 화려한 것은 녀석이 더 잘 하긴 했다. 하지만 녀석은 박자가 제대로 맞지 않았다.
리듬악기의 중심이 되는 드럼이 박자를 잡아주지 못하면 그건 이미 드럼의 역할이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 들어보니 녀석은 며칠 따대기를 치고, 바로 세트 드럼을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제대로 정박을 때리기 어려웠던 것이리라. 하지만 난 3개월을 메트로놈을 두고 따대기만 치는 과정을 겪었기에 정박의 개념이 녀석보다 월등했다.
검술을 수련하는데 드럼 얘기가 왜 나오냐고?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기초검술이라는 것은 따대기를 칠 때와 마찬가지로 지루하다. 하지만 검을 제대로 내가 다룰 수 있게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흔히 무협 소설을 보면 그런 이야기들이 있다. 검은 손이나 팔의 연장선이라고. 그것을 자신의 손이나 팔처럼 익숙하게 다뤄야한다고. 그 말이 이해가 간다. 의외로 무협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가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 검술 수련을 하다보니 알람이 떴다.
-헤르티안 초급 검술(액티브)의 레벨이 3으로 올랐습니다.
역시나 난 내 게이트가 너무 좋다. 내 노력을 무시하지 않는다. 난 땀을 닦고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랬더니 카락이 삽질을 끝내고, 밭을 돌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라?”
녀석은 밭에 난 잡초를 제거하고, 열매들을 정성스럽게 따서는 한 곳에 모으고 있었다.
“쟤가 농사를 알어?”
저 행위 자체가 매우 능숙하다는 것은 의외로 오크가 사냥으로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녀석들이라는 이야기다.
“의외로 복덩이가 들어온 것 같은데?”
보통 다른 판타지 소설을 보면 엘프를 줍는다거나, 드워프 같은 애들을 줍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난 오크다. 하지만 뭐 나쁘지 않다. 막대할 수 있고, 밥만 먹이면 계속해서 노동력을 쓸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될 테니까. 나름 만족스러운 줍줍이었다.
“자! 그럼 검술 레벨도 하나 올랐겠다. 다시 렙업을 시작해볼까? 백야, 이번에는 미노타우르스 한 마리 몰고와.”
크루룽.
백야가 싫은 기색을 보인다. 아무래도 미노타우르스는 백야가 만만히 볼 놈이 아니기에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난 단호하게 말했다.
“미노타우르스 잡으면 그 고기 줄게.”
갈등한다. 지난번에도 미노타우르스의 다른 부위는 다 백야가 먹었다. 엄청 맛있게 먹는 것을 봤기에 다시 말한 것인데 결국 백야가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런 백야의 등에 호야가 올라탄다.
냐앙!
자기가 데려온단다. 호야가 드디어 밥값······은 늘 귀여운 걸로 하고 있었으니 뭐. 결국 호야는 나를 렙업시키기 위해서 나서는 걸로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에 미노타우르스 두 마리가 등장했다.
“야! 한 마리씩.”
하지만 호야는 단호했다. 설렁설렁 전투를 하는 것을 더는 지켜보지 않겠다는 것처럼. 난 잡고 있던 목검······.
“야, 나 목검이라고!”
하지만 미노타우르스는 이미 덤비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