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 화 빡침의 미학.
제 32 화 빡침의 미학.
미노타우르스 두 마리와 목검을 쥔 나. 일단 내가 쥐고 있는 목검이 그냥 나무 조각은 아니다. 무려 아이템인 마나목 목검이다. 마나전도율이 높고, 강철만큼이나 단단하고, 날카롭다고 설명도 나와있다.
문제는 단단한 것은 알겠는데, 날카로운지는 모르겠다는 점이다. 그랬다면 카락이 몸이 이미 난자되어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카락이는 나한테 두들겨 맞으면서 상처는 없었다. 멍이 든 것은 뭐 몸 색깔이 나랑은 달라서 잘 모르겠고.
“왜 날카롭지 않지?”
난 이부분에 대해서 아주 짧게 고민을 해봤다. 어쩌면 내가 날부분을 날카롭게 가공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 짧게만 고민하느냐? 당연하다.
쿵! 쿠궁!
미노타우르스들이 나를 공격하고 있으니까.
“최소한 현재 날카롭지는 않아도 단단하기는 하다는 거지.”
난 목검에 마나를 집중했다. 대략 2할 정도의 마나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리고 예전의 나와는 다르다. 난 검술도 익힌 남자란 말이지······ 라고 외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내가 익힌 헤르티안 초급 검술 3레벨의 검술은 베기, 찌르기, 막기가 전부다.
팍! 파박!
“어라? 이게 왜 때문에 막아지지?”
미노타우르스는 덩치에 어울리는 도끼를 들고 덤빈다. 그 전에 왔던 녀석은 가지고 있지 않았던 무기를 들고 있다는 이야기. 그때 그 녀석은 뭐 워낙에 훅하고, 활로 죽여버렸기에 전투능력에 대한 고찰을 할 틈이 없었다.
그런데 난 지금 두 마리의 미노타우르스를 상대로 그럴듯하게 잘 막아내고 있다. 이게 검술의 힘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염병!”
미노타우르스 두 마리가 서로 연계를 해서 공격을 하기 시작하자 내 얕은 검술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왼쪽 놈이 내 머리를 향해서 도끼를 휘두르고, 오른쪽 놈이 내 허리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말이 휘둘렀다지. 저거 맞으면 대충 아름드리 나무라고해도 한방 컷이 될 것 같은 공격이다.
내가 선택한 회피방법은 구르기였다. 그것도 옆으로 구르기. 앞으로 굴렀다가 미노타우르스의 입에 직행할 테니까. 그렇게 구른 후에 곧장 검에 마나를 더 불어넣고, 오른쪽 미노의 도끼자루를 강하게 내리찍었다.
퍽! 뚜둑.
오른쪽 미노의 도끼자루가 그대로 부러졌다. 그 후에 난 왼쪽 미노의 도끼자루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있는 힘껏.
빡!
왼쪽 미노의 도끼자루도 부러트렸다. 내 마나목 목검이 날을 제대로 세우지 않아서 날카롭지는 못할망정 강철보다 단단한 녀석이다. 거기에 마나전도율이 높았고, 난 마나를 거의 반이나 쏟아부어서 나름 회심의 일격을 가한 것이다.
도끼자루가 부러진 미노 두 마리가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놈들의 표정을 읽어보자면 대충 ‘이건 반칙 아니냐?’라는 표정이다. 도끼날을 막고, 공격하는 것이 정석이라는 듯이. 뭐 지들끼리 그렇게 싸우는건 내가 관여할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난 거기에 따라줄 의무가 없다.
“새꺄, 애초에 도끼들고 목검한테 덤비는 건 반칙 아니고?”
내 말에 놈들이 움찔거린다. 이놈들도 내 말을 알아듣는 것 같다. 그럼 이놈들도 길들여? 그건 안 될 것 같다. 카락이야 나보다 약하고, 만만한 놈이라 가능하지만, 얘들은 호야가 없으면 통제가 안 될 테니까.
“2라운드 시작이다. 이시키들아.”
이제 입장이 좀 바뀌었다. 맨손의 미노타우르스 두 마리와 몽둥이······ 아니 겁나 단단한 목검을 들고 있는 나다. 거기에 난 베기(라고 쓰고, 때리기라고 읽짜)와 찌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검술 능력자다.
미노타우르스들이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친다. 하지만 거기에는.
하아악!
호야가 눈을 동그랗고 귀엽게 뜨고 미노타우르스들을 겁준다. 정말 귀여워 죽겠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귀여운 거고, 미노타우르스들이 보기에는 엄청 무서운가보다. 그것을 보다가 난 뭔가 떠올랐다.
“아, 등신. 나 스킬도 있었는데.”
공포(액티브) 1렙벨이라는 흔치 않은 스킬이 나한테 있었다. 이걸 까먹고 있던 것은 당최 평소에 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한 번 써보기로 했다. 지금 나한테 남아 있는 마나는 대충 반 정도. 그 중의 5분의 1을 사용해서 공포를 시전했다.
그러자 왼쪽 미노가 갑자기 덜덜 떨기 시작했다. 오른쪽 미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니까 왼쪽 미노한테는 먹혔고, 오른쪽 미노한테는 먹히지 않았다는 것 같다. 아무튼 공포가 먹히지 않은 녀석에게 달려가서 난 미친 듯이 수련했던 검술을 펼쳤다.
왜 이놈을 패냐고? 왼쪽 미노는 나한테 공포심을 느끼는 상태였고, 오른쪽 놈은 나름 버티려는 상태였으니까. 그렇다고 오른쪽 미노가 만만하다는 것은 아니다. 녀석은 근육질의 몸을 이용해서 나름 버텼다.
꾸엑!
하지만 뼈때리기는 버티기 힘든 것이 국룰이 아닌가. 난 녀석의 정강이뼈를 집요하게 공격했다. 하체를 공격하면 내가 위험할 수도 있지만, 난 지나가듯 녀석의 정강이를 집요하게 노렸다. 녀석은 나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지만, 힘은 몰라도 민첩은 내가 이 녀석들보다 한수 위였다.
애초에 우리 호야가 나를 암살하려고 이런 애들을 데리고 왔을 리가 없다. 쉽지 않아도 내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뭐,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내가 위험해지면 호야가 나섰을 거라는 건 분명하다. 우리는 소울메이트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난 오른쪽 미노를 공격하며 호야를 보았다. 우리 귀여운 호야는 그 귀여운 얼굴로 열심히 나를 응······원은 개뿔. 자고 있다. 그것도 발라당 뒤집혀서 백야의 배에서 잔다. 마치 지루한 축구경기를 보다가 잠이 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덕분에 난 빡친 느낌을 오른쪽 미노에게 풀어버릴 수 있었다.
빡빡! 빠바박! 빠바바바박!
움메! 움움움!
오른쪽 미노는 미친 듯이 울어댔다. 미노타우르스가 소머리를 한 괴물이라지만 소울음 소리로 우는 모습은 뭔가 기괴하다. 그리고 기분이 나쁘다. 그래서 더 미친 듯이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그러자 알림이 뜬다.
-헤르티안 초급 검술(액티브)의 레벨이 5로 올랐습니다.
-버서크(액티브) 1레벨 스킬을 배웠습니다.
두 개의 알림. 하나야 검술 레벨이 올랐다는 것이니 그런가보다 생각했지만, 다른 하나의 알림은 놀라웠다.
버서크.
관찰 스킬을 사용해보았다. 전투 중에 그럴 여유가 있냐고? 있다. 오른쪽 미노는 뻗은 상태고, 왼쪽 미노는 더 미친듯한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다. 아마 원래 공포에 걸렸는데, 내가 오른쪽 미노를 개패듯이 패는 것을 보고 더 공포에 질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버서크(액티브) 1레벨.
분노를 양분삼아 공격력을 증폭시킨다. 공격력이 증폭되는 반대급부로 방어력은 약해진다.
내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스킬이다. 게임에서 전사들이 많이 사용하는 그것. 일명 버서커 모드라고 할 수 있는 스킬. 공격력을 올리고 방어를 포기한다. 근데 이게 나에게 맞는 스킬인지는 모르겠다. 지금 나는 공격력을 올려서 상대를 제압하는 스타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내 안전을 최우선하며 싸워야하는 입장이니까.
다행인 점은 액티브 스킬이라는 것. 그러니까 내가 작정하고 안 쓰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근데 과연 안 쓰게 될까? 그건 장담하기 어렵다. 근데 이 스킬은 왜 생긴 걸까? 호야가 최후엔 나를 지켜줄 거라고 믿고 있다가 배신당한 배신감에 빡쳐서? 아마 그게 제일 맞을 것 같기는 한데. 이것도 호야의 큰 그림인가?
살짝 호야를 쳐다보니 여전히 세상모르고 잔다. 아무리 호야가 똑똑해서 그렇게까지? 그건 좀 오바인 것 같다.
“에라. 더 맞자.”
난 기왕에 발동된 버서커 모드를 유지하면서 오른쪽 미노를 완전히 작살냈다.
음머어어!
오른쪽 미노가 최후의 비명을 지르며 죽었다. 이제 남은 것은 왼쪽 미노 한 마리. 난 녀석에게 다가가 오른쪽 미노의 피가 진득하게 묻어 있는 마나목 목검을 들러올렸다. 그런데 그때.
음······머.
왼쪽 미노가 죽어버렸다.
“뭐, 이런.”
공포에 질려서 심장마비가 온 것이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간단하다. 관찰 스킬에 그렇게 나오니까.
-레벨이 올랐습니다.
두 마리의 미노와 사투······까지는 아닌 것 같고, 전투를 끝내자 레벨이 올랐다. 이제 내 레벨은 26이고, 힘과 민첩이 50이 되었다. 그간 주워먹은 것도 있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일반인 기준으로 다섯 배나 힘쌔고, 민첩해졌다는 의미.
뭐 일반인과 비교를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싶긴 하지만.
“헉헉헉헉.”
전투가 끝나자 갑자기 피곤이 몰려온다. 그래서 주저앉으니 카락이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난 녀석이 지친 틈을 이용해서 나를 공격할까 싶어서 녀석을 쳐다보났다. 그러자 화들짝 놀라면서 미노타우르스의 시체를 한쪽으로 조심스럽게 옮기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작은 칼을 꺼내서 도축을 하려고 한다.
“잠깐! 카락이 이리와.”
크롹!
카락이가 후딱 달려온다.
“저쪽에 가면 도축용 칼이 있을 거다. 그걸로 해라. 근데 너 칼을 숨기고 있었냐?”
내 말에 녀석이 바짝 엎드려서 벌벌 떤다.
“한 번만 더 무기를 숨기고 있다가 걸리면 저렇게 된다.”
난 오른쪽 미노를 가리켰다. 나한텥 맞아죽은 녀석. 그것을 보고 카락이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도축해봐.”
아무래도 도축은 카락이 나보다 훨씬 전문가이리라. 난 그대로 자리에 누울까 하다가 백야가 눈에 들어왔다. 백야한테 가서 누울까 싶었는데 몸에서 피냄새가 난다. 그래서 그냥 누웠다. 그렇게 누워서 카락이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카락은 희번덕한 눈으로 미놑타우르스를 해체하기 시작했는데, 얼핏 웃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해서 섬찟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저건 원수를 해체하는 그런 느낌? 어쩌면 미노타우르스들이 쟤네 부족을 잡아먹기라도 했나보다. 그랬다면 카락이 저런는 것도 이해는 간다.
그렇게 난 깜박 잠이 들었다.
***
잠에서 깨어나니 몸이 개운해진 것이 느껴진다. 난 그대로 몸을 씻고, 입고 있던 옷들도 벗어서 대충 빨아볼까 하다가 그냥 버리기로 했다. 그래서 검은 봉지에 옷을 담았다. 뭔가 이런 것들을 여기에 버리는 것을 꺼려져서다. 그러자 카락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뭐? 왜?”
카락이 내가 버리려는 옷을 가리킨다.
“이거 입겠다고?”
끄덕.
생각해보니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녀석에게 옷을 줬다. 어차피 츄리닝이라 신축성은 충분했다. 카락은 내 츄리닝을 받아서는 신이나서 입는다. 지퍼를 사용할줄 몰라서 내가 시범을 보이니 몇 번 해보고 능숙하게 사용한다. 하긴 그정도 지능은 충분히 있어 보였으니까.
그렇게 옷을 입혀놓으니······ 츄리닝입은 오크가 됐다. 그냥 딱 그렇다.
“어디 보자.”
난 카락이 해체한 미노타우르스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이 자식 겁나 쓸모가 많은데?”
그냥 퍼팩트 그 자체였다. 그때 카락이 미노타우르스의 몸에서 뭔가를 끄집어 내서 내게 내밀었다.
“어?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