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 화 탐사준비.
제 37 화 탐사준비.
“어때? 이 정도면 숲의 입구 정도는 들어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내 말에 호야는 잠시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땅바닥을 세 번 내리치며 말한다.
냥냥! 냥냥냥!
“그러니까 최소한 순식간에 3발 정도 연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들어가자고? 음, 그건 나도 찬성.”
이번에 제작한 ‘바람의 각궁’은 일단 내 수준에서 엄청난 아이템이다. 하지만 이것을 가지고 있다고 내가 무적이 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우선은 이것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궁술 스킬의 레벨도 올릴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출근해야지. 나가자.”
냐앙.
매일 출근을 해야 된다는 것은 어떻게 보자면 좀 손해인 부분이 있다. 그래도 지금까지 내가 그 회사에서 한 것들이 있기에 아쉬운 마음도 든다.
“호야, 회사 가지 말까?”
냐앙.
“그래 내 마음대로 할 일이지. 일단 휴가를 쓰자. 그동안 못 쓴 것들 다 써버리자.”
난 회사갈 준비를 하다가 다시 옷을 벗고 부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최 대리, 무슨 일이야?
“안녕하세요, 부장님.”
-아침에 괜히 전화를 했을 리는 없고, 무슨 일이 있나?
“네, 집안에 사정이 좀 생겨서 급히 휴가를 써야 될 것 같습니다.”
-얼마나?
“일단 2주 정도 휴가를 쓰고 싶습니다.”
갑자기 전화를 해서 2주나 휴가를 쓰겠다고 하는 내 얘기에 부장님은 굉장히 황당하실 거다. 그런데 의외다.
-내가 기억은 나지 않는데 최 대리가 나를 위해서 뭔가를 해준 것 같거든? 그리고 그동안 휴가 안 썼지? 이번 기회에 푹 쉬면서 집안 사정이 뭔지 몰라도 잘 해결해. 그래도······.
“수박은 제 친구가 배달해드릴 겁니다.”
-하하하, 내가 어디 수박 때문에 그런가? 아무튼 잘 쉬게. 강 과장한테도 내가 얘기해두지.
“네, 감사합니다.”
사실 방금 내가 한 것은 보통 회사원이라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집안에 누가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면. 그런데 난 지금까지 제대로 휴가를 써본 적이 없었다. 거기에 기억은 못해도 부장님은 내가 목숨을 구해준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덕분에 2주라는 휴가가 생겼다. 단순히 회사를 가기 싫어서 가지 않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내가 더 강해지지 않으면 내 주변 사람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자각이 조금 생겼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무슨 소년탐정 김 씨는 아니라도 내가 있는 곳에서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수단을 강구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냐앙?
호야가 가소롭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솔직히는 출근하기가 귀찮다는 것이 크긴 하지. 인정.”
사실 이게 제일 크긴 하다. 인정한다. 누가 아닐까? 출근이라는 것은 매우 귀찮은 일이다. 그리고 창업에 대한 준비도 좀 필요하긴 하고.
난 다시 선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수박쥬스와 파인애플 잼, 검은 콩 두부를 챙겨서 선우의 가게로 향했다.
***
“오픈은 한 거냐?”
“어, 주로 오후에 연다.”
“장사는 잘 되냐?”
“당근이지. 없어서 못팔어. 슬슬 소문이 나서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웃긴건 손님들이 SNS같은 곳에는 올리지 않는다는 거야. 왜 그런지 아냐?”
“널리 공유하고 싶지는 않은 거겠지. 그러면서 가까운 사람에게만 얘기를 할 거고.”
“오? 천잰데?”
“내 지능이 얼만지 알면 넌 쓰러진다.”
실제로 내 지능의 수치는 보통 사람의 열 배다. 그게 날 천재로 만들어주는 것 같지는 않지만.
“오, 렙업좀 하셨쎄요?”
“내 레벨을 듣는 순간 넌 끝장나. 듣고 싶냐?”
“어, 듣고 싶은데?”
“새끼, 안 속네. 큭큭.”
“속겠냐? 크크크.”
당연히 내가 레벨이 얼마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는 선우. 이 녀석의 희망을 아직 깨트리고 싶지 않다. 조금 나중에 짓밟아버릴 거다. 아주 땅바닥에서 처절하게 구르면서 배아파할 수 있도록.
“그래서, 넌 그 안에서 계속 쥬스랑 잼만 만드냐?”
선우의 질문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힐링이냐?”
“나름 힐링이다. 뭔가를 만드는데 집중을 하고, 그게 돈이 된다면 힐링 아니냐?”
“뭐, 나름 그렇긴 하겠네.”
“넌 언제 들어가볼래?”
“나보고 섬노예가 되라는 거냐?”
“새끼 예리한데?”
“사양이다. 당분간은 그냥 있을란다.”
“출입 권한은?”
“그건 일단 얻긴 해야 할 것 같긴 하다.”
난 선우에게 꼬리곰탕을 한 그릇 내밀었다.
“이거 일단 먹어봐라.”
선우는 지금도 능력치가 몇몇 개는 올랐다. 그동안 내가 준 것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으로 출입권한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스킬이 생길 때 출입권한을 요구한다. 가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이 녀석에게 원거리로 출입권한을 주기 위해서 미노타우르스 꼬리곰탕을 챙겨온 거다.
“뭐냐?”
“주면 먹어라.”
내 말에 선우는 바로 꼬리곰탕을 먹기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 후 내게 알림이 떴다.
-게이트 주인의 권한으로 게이트 출입권한을 허가하겠습니까?
‘허락한다.’
내가 선우에게 출입권한을 허가하자 선우의 눈에 놀람이 서렸다.
“뭐냐?”
“그게 랜덤하게 스킬을 개방시켜준다. 최초섭취시에만.”
“와, 개사기네.”
“이것들은 뭐 사기 아니냐?”
“그건 그렇지.”
“알면 감사해라, 시캬.”
“압도적 감사!”
선우는 웃으며 내게 절을 하는 척을 한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과 정말 오래 친구로 지냈다. 중학교 때 내가 죽을뻔 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우리는 학교에서 산으로 소풍을 갔었는데, 내 실수로 낭떠러지에서 굴러떨어진 것인데, 그때 옆에 있던 녀석이 선우였다. 떨어진 것은 나 혼자였는데, 이 녀석은 기어코 옷을 밧줄삼아 내게 내려왔었다.
그리고 굳이 침착하게 구조대를 기다리는 날 붙잡고, 울며불며 소리소리를 질렀던 녀석이 선우다. 솔직히 귀찮았지만, 그래도 내가 그런 상황에서 지 목숨까지 거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상당히 위안이 되는 일이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었다.
이 얘기를 왜 갑자기 하냐고? 선우는 정말 내게 둘도 없는 친구라는 것을 시스템도 얘기를 해주는 것 같아서다.
[ 김선우(1레벨)]
직업: 무(無).
힘: 15, 민첩: 14, 지능: 15, 정신: 17, 체력: 18, 눈썰미: 7.
스킬: 보존(패시브) 1레벨.
레벨 초기화를 당해서 1레벨이 되었음에도 능력치는 녀석이 레벨일 때보다 오히려 높은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눈썰미라는 특수 능력치는 왜 그런지 몰라도 초기화되지 않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녀석이 얻은 보존이라는 스킬.
-관찰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스킬 보존(패시브) 1레벨.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이 변질되지 않는다. 1레벨에 60일간 변질을 막아줄 수 있다.
이건 뭐랄까? 장사를 해야하는 선우에게는 딱 필요한 스킬이었다.
“이게 뭐냐?”
“고딴식으로 쳐다보지 마라. 그거 랜덤이다.”
진짜 랜덤이다. 우리 가족들이 어떤 스킬을 얻었는지를 생각하면 당연하다.
“랜덤 맞냐?”
“내가 널 속여서 뭐 하겠냐?”
“뭐, 하긴. 나름 나쁘지 않은 스킬인데? 장사하기 편하겠어.”
물건들이 변질되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지금 선우에게는 최고로 필요한 스킬이었다. 내가 물건을 선우에게 넘기면 그것의 소유자는 선우가 된다. 그러니까 선우가 팔고 있는 물건들은 60일간 변질되지 않는다는 이야기.
“냉장고 팔아도 되겠다.”
“그럼 손님들이 사가겠냐?”
“아, 그런가?”
“당연하지. 아무튼 두부가 변질되지 않는다니까 그건 진짜 다행이네.”
확실히 그건 다행이다. 두부는 변질되기 쉬운 음식이니까. 두부는 수박이나 파인애플처럼 곧장 효과가 나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아직은 그렇게 잘 팔리고 있지 않다. 그러니 더 필요한 스킬인지도 모른다.
“두유도 만들어봐야겠어.”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너 너무 섬에서 혹사되는 거 아니냐?”
“그럼 와서 돕던가.”
“싫다. 당장은 게이트에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다.”
이 녀석은 게이트에서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느낌상 게이트 출입 권한을 포기한 것이 꼭 나 때문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어디든 문제가 생기는 거지.”
내 말에 선우는 수박쥬스를 한 모금 마시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야, 온라인 게임을 해도 길드니 클랜이니 그런 곳에 들어가 보면 결국 문제가 생기는데, 현실에서 그것도 수익과 관련된 게이트에서 문제가 안 생기겠냐?”
어쩌면 그게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모이면 문제가 생기는 것. 내 게이트가 평온한 이유도 그런 것이 아닐까?
“아무튼, 그래서 2주는 휴가라고?”
“어, 그럴 생각이다.”
“잘 했다. 좀 쉬어라.”
“쉬겠냐? 뭐라도 해야지.”
“왜 그렇게까지 하냐?”
“내가 게이트의 주인이니까. 최소한 내 게이트가 안전하다는 확실이 들어야 쉬지.”
“너 사냥하냐?”
“사냥도 한다.”
“필요하면 형아 불러라. 내가 같이 잡아주마.”
“너야말로 쉬고 싶다며?”
“뭐 그렇긴 하지. 하지만 정 필요하면 불러.”
“그때처럼 옆에서 울어주게?”
“야이!”
“농담이다. 큭큭.”
“미친놈. 그러니까 내가 널 미친놈이라고 하는 거야.”
선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는다.
“간다.”
“그래.”
난 선우의 가게에서 나와서 대장간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찾기 위해서 여기저기를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
게이트 안에 대장간을 만드는 일은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 무려 드워프의 대장장이 기술이라 그런지 대장간을 만드는 것부터 꼼꼼하고, 제약이 많았다.
사실 대장간이라는 시설 자체가 만만한 것이 아니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끝이 보인다.”
밖의 날짜 기준으로 3일이 더 지나서야 게이트 안에 대장간이 완성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고생을 한 것은 카락이 으뜸이다. 그 외에 소들도 나름 고생을 했다. 이런저런 노동력으로 많이 쓰였으니까.
“짜잔!”
대장간이 드디어 완성되었다. 그것을 시스템도 알려준다.
-부르티아식 초급 대장간이 완성되었습니다.
-부르티아 대장장이 초급(액티브) 스킬레벨이 2로 올랐습니다.
무려 부르티아식 대장간이란다. 하긴 내가 애초에 그것을 목표로 만들긴 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대장간을 왜 만들었냐?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무기. 목검으로 숲의 초입이라고 하지만 내 목숨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판단. 활은 원거리 무기다. 당연히 근접전에 필요한 무기도 있어야 한다. 밖에서 일본도 같은 것을 봤는데, 미노타우르스도 썰기 힘든 수준이었다. 그래서 서양검을 알아보려니 그건 배송 자체도 오래 걸리고, 생각보다 많이 뛰어나 보이지 않았다. 결론은 내가 만들어 써야 한다는 것.
기왕에 대장장이 스킬도 생겼으니 써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다. 그리고 두 번째는 첫 번째와 비슷한 이유인데 갑옷을 만들기 위해서다. 아무리 내가 체력이 높다고 쌩으로 얻어맞으면 위험하니까.
“그럼 일단 저것들을 녹여보자.”
대장간에서 처음 녹일 철은 그동안 모은 미노타우르스의 도끼날들이다. 이것으로 새로운 무기와 방어구를 만들 생각이다.
“아자아자아자! 숲 입구가 얼마 안 남았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