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 화 진입.
제 38 화 진입.
대장간이 만들어졌으니 일단 가장 중요한 것들을 갖출 필요가 있었다. 가장 먼저 강력한 불을 만들어줄 연료가 필요하고, 철을 만들 철광석이나 철괴가 필요하다. 뭔가 대체 역사 소설들을 보면 여기에서 연료가 되는 역청탄을 구하는 것에서 상당히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21세기에서는 그게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난 이미 역청탄을 구해두었다. 내게 각인된 대장장이 기술에서는 다른 이름이지만 그게 역청탄을 말한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걸 구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이제 철광석이나 철이 필요한데, 그동안 미노타우르스를 집중 사냥하면서 놈들이 가진 도끼를 모아놨다. 철광석을 밖에서 들여오는 것은 사실 어렵지 않다. 그냥 철괴를 사오는 방법도 있고, 강철을 사올 수도 있다. 현대에서 돈으로 안 되는 것은 없으니까.
하지만 굳이 내가 미노타우르스의 도끼를 이용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도끼의 철이 보통 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노타우르스의 도끼를 살펴보면 ‘섬에서 나오는 철로 만든 도끼다.’라는 부분이 있다. 이 도끼 자체가 이 섬에서 나오는 철로 만들었다는 이야기.
섬에서 나오는 것들은 하나같이 좋은 것들이 많다. 그러니까 아마도 이 도끼의 철도 밖에서 사오는 철보다는 좋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일단은 도끼들을 녹이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은 부르티아 대장장이 기술을 바탕으로 한다. 내가 너튜브를 보고 외웠던 것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디테일에서 다른 것들이 많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친 후에 드디어 검을 만드는 단계. 난 아무 생각없이 망치질을 하는 것에 집중했다. 이렇게 망치질을 해서 검의 완성도를 높인다. 소설에 나오는 드워프는 이 과정에서 혼신의 힘을 다 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그건 진짜였다.
탕! 탕! 탕! 탕!
소음이라는 것은 일정 간격으로 들리면, 어느 순간은 그것을 인식하기도 어려워진다. 지금 내 상태가 그런 것 같다. 이것도 하다 보니 뭔가 나름의 힐링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이 어떤 것에 집중하면 그 일이 조금 힘든 일이라고 해도 마음은 편해진다. 힐링이라는 것이 결국은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나를 가장 힐링시켜주는 것 중의 하나는 이거다.
-지속되는 노동으로 인해 힘이 1 올랐습니다.
-지속되는 노동으로 인해 체력이 1 올랐습니다.
-지속되는 노동으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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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올려주는 이 알림은 나를 기쁘게 한다. 현재 내 직업은 레벨업을 할 때 얻는 포인트로 힘과 민첩은 올릴 수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아예 안 오르는 건가 생각했는데, 다행히 그것은 아니었다. 힘과 체력이 이렇게 오르는 것을 보면 말이다. 민첩도 오르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민첩은 오르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망치질과 민첩은 연관이 없으니까.
그렇게 다섯 시간 정도를 꼬박 망치질을 해서 힘과 체력은 13, 14가 올랐다. 그리고 드디어 첫 번째 검이 완성되었다.
-부르티아 대장장이 초급(액티브) 스킬이 3레벨로 올랐습니다.
난 내가 만든 검을 관찰로 살펴보았다.
-관찰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아이템: 강철검(3레벨).
공격력: 73~97.
효과: 검술레벨 +2, 힘 +4.
섬에서 나오는 철로 만들어진 검이다. 부르티아 대장장이 기술로 만들어져 동급의 검보다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아직 숙련되지 못한 대장장이 기술로 아주 뛰어나진 않다. 마나전도율이 매우 높다.
뭔가 막 초심자의 행운이나 그런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검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마나목 목검보다는 훨씬 뛰어나니까.
“나쁘지 않아. 두어 개 더 만들다보면 더 나아지겠지. 그보다 일단 먼저 만들 것이 있지.”
검을 완성시켰으니 다음으로 만들 것은 갑옷이 아니냐고? 아니다.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라이터를 만들어야지. 성냥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모양빠지는 짓을 할 수는 없지!”
라이터를 어떻게 만드느냐? 일단 그 유명한 지포 라이터를 난 분해해서 몇 개를 가지고 들어왔다. 가지고 들어오는 것 자체는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이 구동부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느냐? 웃기는 것은 부르티아 대장장이 기술은 이런 기계류도 만들 수가 있단 말이지.”
드워프라고 하면 보통 이런 것들도 만들고 그런 것은 당연하다. 원래 소설을 봐도 그렇지 않은가? 물론 직접 드워프를 본 적이 없으니 그게 맞는다고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이런다고 해도 뭐 문제가 될 것이 있나?
지포 라이터는 생각보다 만들기 어렵고, 또 어렵지 않았다. 검을 만드는데는 다섯 시간이나 걸렸지만, 지포라이터를 완성시키는데는 12시간이나 걸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결국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크하하하하! 다 죽었어!”
이제 게임 끝이다. 내 가장 큰 무기는 강철검이 아니라, 이 라이터니까.
라이터는 관찰로 살펴봐도 다른 설명은 없었다. 그냥 라이터라는 설명 하나.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시스템도 이것을 라이터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게이트 안에서는 기계류는 작동하지 않는다. 막연하게 난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라이터보다 훨씬 복잡한 낚싯대는 작동을 했다. 구동부를 보면 라이터보다 낚싯대가 훨씬 정교하고, 복잡하다.
“그럼 이 두 개의 차이는 뭘까?”
난 이 부분에서 여러 가지 가설을 만들었다. 그리고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한 가지.
“낚싯대는 무기가 될 수는 없지만, 라이터는 무기가 될 수 있다. 라이터 자체로 무기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라이터로 불을 만든다는 것은 파괴로 이어질 수 있지.”
냐앙?
“낚싯대로 팰 수도 있지 않냐고? 예리한 지적이야. 하지만 애초에 그럼 몽둥이도 이곳에서 사용할 수 없어야지?”
냐앙.
호야는 모르겠다는 듯이 발라당 누워버렸다. 아무튼 내가 생각한 가설은 그것이다.
위험성.
낚싯대는 위험한 물건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라이터 같은 간단한 구동부를 가지고 있는 물건은 위험할 수 있다는 것. 이게 아닐까 싶다. 물론 이것은 내 생각일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것을 내가 이 세상에 구현한 것에는 별다른 제약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치익!
라이터에 불이 켜진다. 이 간단한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지구에서는 사실 잘 몰랐다. 파이어스틸을 이용해서 불을 붙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게 훨씬 편하다는 것은 당연하다.
애초에 모델이 된 라이터는 전쟁 중에 군인들이 담배를 피우는데 라이터들이 작동을 하지 않아서 만들었다는 설이 있는 라이터. 웬만해서는 기름만 잘 먹여두면 불이 안 켜지는 일은 없다는 거다.
“다 죽었으! 이제 갑옷만 만들면 된다.”
갑옷은 처음부터 풀플레이트 메일 같은 것을 만들 수는 없다. 가볍게 내 심장을 보호할 수 있는 갑옷을 만들기로 했다. 그것을 만드는데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충 모양은 ‘스파르타’를 외치던 양반들의 상체에 입던 그런 갑옷 모양과 비슷하다.
“호야! 이정도면 입구컷은 아니겠지?”
호야가 내 말에 나를 꼼꼼히 쳐다본다. 그리고 앞발로 내 갑옷을 툭툭 쳐보기도 한다. 툭툭 치는데 아프다. 하지만 난 프로니까 아픈척을 하지 않는다. 덕분에 호야가 허락했다.
냥!
들어가도 좋다고 한다. 호야의 허락이 떨어진 것이니 난 쫄다구들을 데리고 숲의 입구로 향했다.
까망이를 타고, 백야를 옆에 끼고, 카락도 옆에 있다. 카락을 백야에 태울까 했지만, 카락이 무서워해서 못했다. 백야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서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얘들을 다 데리고 온 이유는 간단하다.
“혼자는 무서우니까!”
혼자는 무섭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까 같이 간다. 내가 크면 쟤들도 커야된다.
“들어가자.”
둘러보니 긴장은 나만 한다. 생각해보니 이것도 당연하다. 얘들은 원래 저기에 살던 애들이니까.
그렇게 숲에 한 걸음 들어가니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세상이 달라졌다는 얘기가 있는데, 진짜 세상이 달라졌다.
***
겨우 한 걸음이다. 한 걸음을 들어오니 다른 세상이다. 여기는 섬에 있을 수가 없는 지역이다.
왜?
“밀림이니까.”
막연히 숲이라고 생각했던 곳은 밀림이었다. 무슨 다큐에서 본 아마존 지역 같다랄까?
“호야, 여기가 숲 안쪽이 맞아?”
냐앙!
그렇단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여러 가지 시선들이 느껴진다. 그 시선의 주인은.
펑! 끼엑!
고블린이었다. 선빵필승의 법칙에 따라서 난 곧장 활을 날렸고, 고블린 두 마리가 관통되어서 죽었다.
“얘들아, 다 죽여!”
내 말에 카락이 평소와 다른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자기 칼을 휘두르며 고블린들에게 달려든다. 백야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까망이까지.
호야는 내 어깨에 앉아서는 그런 애들을 구경한다. 늘 느끼는 거지만, 자기가 무슨 새인 것처럼 내 어깨를 이용하는데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 호야는 언제나 깃털처럼 가벼운 사랑스러운 녀석이니까. 그렇게 내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호야를 보는데 호야의 표정이 일그러져있다.
냐앙?
“뭐하냐고? 너 예뻐하고 있잖아.”
퍽!
호야가 내 뒤통수를 날린다. 무지하게 아프다.
냥! 냥냥! 냥냥!
“왜 놀고 있냐고? 아, 알았어.”
난 호야의 말에 활을 들었다. 그리고 고블린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
고블린 부족 하나를 거의 지워버렸다. 덕분에 나는 레벨이 1 올랐고, 애들도 레벨이 어느 정도씩 올랐다. 죽인 고블린들의 사체에서 쓸만한 것이 있는지는 카락이 살펴보았다. 카락은 이것저것들을 주워와서는 한곳에 모았다. 그다지 쓸만한 것은 없어 보이지만, 쇠붙이들은 있어 보인다. 이것들은 녹여서 카락이 무기를 만들어주고, 방어구도 좀 챙겨줘야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애가 너무 헐벗었다. 그리고 까망이와 백야에게도 나름 갑옷을 만들어줄 생각이다. 얘들도 뭐라도 입혀주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우리는 전장을 정리하고 그 다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무기를 점검하고, 이 주변이 안전한지를 확인하는 것.
밀림 같은 지형이라 안전을 확보하는 것과 일단 거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앞으로 난 이 숲에서 나를 성장시켜야하니까. 호야가 바라는 것은 내가 레벨을 올리는 것이다. 어느 정도까지 레벨을 올리기 바라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카락아. 네 친구들은 어디 사냐?”
내 말에 카락이 움찔한다. 어? 얘가 지금 뭔가 내 말을 오해한 것 같은데.
“그러니까 너희 부족을 작살······ 아니 사냥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가급적이면 난 너네 부족을 몰살시키고 싶지는 않거든.”
절대로 그런 생각은 없다. 그냥 몇몇 쓸만한 애들이 있으면 카락이 데려왔으면 한다는 그런 정도?
움찔.
이 시키 내 생각을 읽는 건가? 갑자기 딴짓을 한다.
“우리 얘기를 해볼까?”
크, 크킥.
카락이 겁먹은 모습으로 눈알을 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