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 화 게이트 주인의 의무?
제 43 화 게이트 주인의 의무?
가족들과 선우의 레벨업은 별다른 이상 없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10레벨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물으셨다.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는데?”
“그거 20렙, 30렙에 다시 나올 거예요. 그때 선택하세요.”
“야! 그게 무슨 소리야?”
선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몰랐던 사실이었던 것 같다.
“늦게 선택할수록 특별한 직업을 얻거든.”
“와, 큰일날뻔했네. 정예 궁수라길래 바로 전직하려고 그랬는데.”
다행히 아직 선택하진 않은 것 같았다.
“어머, 난 이게 무슨 말인가 한참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머니도 아직.
“난 마음에 드는 게 없는데?”
시연이다.
“넌 뭐가 나왔는데?”
“물의 검사, 물의 마법사. 두 개.”
시연이는 원래 검도선수였기에 검술 스킬이 생성되었었다. 내가 할 때는 그렇게 안 생기더니. 아무튼, 검술이 생긴 후에 뭔 만화를 본 전지, 검에 물의 기운을 둘러싸고 싸우기 시작하는데, 이게 의외로 강력하더라. 절삭력이 아주 작살이었다.
내가 보기에 쟤는 그냥 타고난 싸움닭이 아닐까 싶은 부분이다.
“자, 다들 오늘 고생하셨으니까 일단 쉬시구요. 엄마, 저녁 좀 부탁드릴게요.”
“그래, 시연이 따라와.”
“어.”
우리 어머니는 강하시다. 그래서 시연이를 잘 다루신다. 그렇게 둘이 식사를 준비하러 가시는 것을 보고 난 아버지와 선우에게 말했다.
“혹시 통나무집 만들어보신 분?”
“·········.”
“·········.”
하긴 우리가족도 그렇지만, 선우네 가족도 서울토박이다. 즉,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
“그래도 오늘은 텐트에서 잔다고 해도 일단 통나무 집이라도 만들어야 될 것 같은데요. 5주나 있어야 하고, 주말에도 들어오시고 그러면.”
일단 5주간 렙업을 하고, 주말을 이용해서 게이트에 들어오게 할 생각이다. 주말농장처럼 그렇게. 우리 가족이 강해지는 것은 그만큼 안전해진다는 이야기가 될 테니까.
게이트를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까? 솔직히 이 부분에 대해서 난 회의적이다. 계란을 파는 것은 어쩌면 기만일지도 모른다. 그것으로 게이트의 존재를 알 수도 있고, 선우가 헌터 자격을 잃었는데, 계속해서 물건을 팔게 되면 그것도 의심을 살 것이다.
그런데 왜 난 그런 행동을 할까? 솔직히 말해서 나도 모르겠다. 정말 돈이 필요해서? 딱히 지금 나한테 돈이 필요할 일은 없다. 그럼에도 난 그것들을 내다 팔고 있다. 이 안에서 잉여생산물이 되기 때문에? 아니다. 그런데 왜 그런 짓을 할까?
“게이트?”
“응? 뭐가?”
선우가 무슨 소리냐는 듯이 묻는다.
“아니, 게이트가 나를 움직이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게이트가 너를? 어떤 식으로?”
선우의 질문에 내가 파인애플과 수박, 그리고 검은 콩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선우도 묘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지 않아도 얘기하려고 그랬는데, 저거 왜 파냐?”
“그치? 상식적으로 보지면 안 팔아야 정상이지? 그런데 팔게 된다? 그럼 난 왜 그런 짓을 할까?”
우리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난 일단 이 게이트라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 왜 등장했는지가 궁금하구나.”
“네? 그거야······.”
그 이유를 알 수가 있나? 거기에 뭔가 이유가 있나? 그냥 생겼으니까 생겼나보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지 않을까?
“지금까지 시우 너한테 들은 걸로는 게이트는 게이트의 주인을 보호한다. 그래서 권한을 강력하게 주지. 출입을 통제할 수도 있고, 출입권을 뺏으면 능력이 사라지기도 하고.”
“그렇죠.”
“그렇다면 게이트가 원하는 것은 뭐지? 왜 게이트가 게이트의 주인을 보호하지? 애초에 그걸 게이트가 하는 거라고 누가 생각한 거지?”
게이트는 게이트의 주인을 보호한다. 권한을 주면서. 그렇다면 그 권한을 게이트가 줬을까? 아니면 게이트가 이 세상에 나타나게 한 그 어떤 존재가 줬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게이트가 게이트 주인을 보호한다고만 생각하기는 힘들 것 같다. 게이트를 세상에 보낸 그 어떤 존재가 있을 수도 있는 거니까.
그렇다면 게이트 주인을 통해서 게이트, 혹은 게이트를 세상에 보낸 이가 하고 싶은 일은 뭘까? 좋게 생각하면 게이트의 물건을 교류하게 만드는 것. 그런데 이 교류라는 것도 제한적이다. 지구의 물건 중에서 이곳에서 작동하지 않는 물건들도 많으니까. 그렇다면 그게 교류일까?
“결론은 네가 왜 저것들을 내다팔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거지?”
심플한 성격의 선우가 말한다.
“그렇지.”
“근데, 어차피 그것을 팔 때의 너는 네가 아닌가?”
“아닐 리가. 분명히 내가 판다는 생각은 있지. 그리고 웬지······ 그래야 하는 것 같고.”
“그래야 하는 것 같다? 결국 게이트의 물건을 세상에 전파해야 한다는 그런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이 네 무의식을 자극한다는 그런 얘기냐?”
아버지의 말씀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건 네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구나. 그리고 그래서 제가 가족들이랑 선우를 이리 데리고 온 거고?”
“아무래도 안전이라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아버지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럼 당장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 우리가 강해지면 그만큼 안전해지고, 할 수 있는 일도 늘어나는 것일 테니까. 선우의 얘기처럼 이 게이트가 최상급 게이트를 뛰어넘는 축복받은 게이트라면 그게 가능하겠지. 그리고 아빠가 보기에는 말이다.”
“네.”
“이 게임은 결국 게이트 주인끼리의 경쟁, 혹은 전쟁이 될 거로 생각한다.”
“네?”
“네가 영주라고 했지? 영주라는 것은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
아버지의 말에 난 내가 깨닫지 못했던 부분을 깨달았다. 결국 영주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영지를 지키고, 발전시켜나가는 것. 그렇다면 영주라는 직업을 나만 가지고 있을까? 아마 대부분의 게이트 주인들은 일정 조건을 만족하면 영주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영주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다른 영주와 경쟁을 하게 된다. 전쟁이라는 것도 결국은 경쟁의 수단 중의 하나니까.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는 그런 경우가 별로 없지만, 가까운 일본만 해도 전국시대라고 다이묘끼리 그렇게 난리를 치지 않았던가. 그게 단순히 일본의 민족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영주, 영지라는 것은 결국 그런 존재들이 아닐까 싶다. 서양도 마찬가지고. 중앙집권의 권력이 영주들을 강력하게 제어할 수 없다면 필연적인 일일 거다. 그런데 중앙집권이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없다. 게이트를 한 곳에서 모두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으니까.
게이트의 주인들이 가지는 절대적인 권한. 게이트의 주인이 죽으면 게이트의 주인이 다른 사람에게 넘거가는 것이 아니라 게이트가 사라진다. 이건 실제로 있던 일이라고 했다. 물론 모든 게이트가 그럴 거라는 것은 성급한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 옛날의 영지전처럼 게이트끼리 싸우게 되는 날이 올 거라고 아빠는 생각한다.”
“말씀을 들으니 나도 아버지 말씀에 공감한다. 확실히 앞으로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지.”
게이트 주인을 고사시키는 방법. 간단하다. 게이트 외부에서 아무도 게이트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면 된다. 인간이 혼자서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뭐 난 가능할 것도 같긴 하지만.
“네, 의견은 잘 들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할 일에 집중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죠?”
“그렇지.”
“그럼 나무나 하러 가죠.”
내 말에 아버지가 살짝 움찔하신다.
“결론이 왜 그렇게 나냐?”
“당장 우리가 할 일이니까?”
“오크들 시키면 안 되냐?”
“너 쟤들 이길 수 있냐? 난 가능하다만.”
통제를 하려면 일단 쟤들보다 강해야 한다. 난 거기에 해당된다. 심지어 호야도 내 반려동물이다. 그러니까 오크들이 나에게 까불 가능성은 제로. 하지만 내가 안 보는 곳에서 선우를 괴롭힐 확률은? 정말 제로라고 할 수 있나? 얘들은 힘이 곧 권력인 애들이었다. 그런 애들을 부리려면 결국 힘을 키워야 한다는 말씀.
“가죠, 아부지.”
“그래, 선우야. 난 예전부터 네가 참 마음에 든다.”
“시우가 좀 살가운 면은 없죠.”
“내말이.”
아버지와 선우는 그렇게 얘기를 나누면서 나를 따라오신다. 그리고 내 어깨에는 호야가 있다. 난 호야의 따듯함을 느끼며, 외로움을 달래본다.
***
우리는 나무를 잔뜩 해왔다. 그 사이에 아버지와 선우도 벌목 스킬과 가공 스킬이 생겼을 정도. 나는 그 스킬들이 1씩 올랐다.
돌아와 보니 재미있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어머니와 시연이가 다른 여자 오크들과 오순도순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물론 대화는 보디랭귀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호호호호.”
“코록코록코록코록.”
즐거운 저녁시간이 될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 어머니는 여자 오크들에게 요리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여자 오크들은 어머니와 시연이가 입은 옷에도 상당한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는데, 오크라고 해도 여자는 여자인가보다. 거기에 대부분 여자 오크는 옷감을 만드는 일을 담당하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서 와.”
우리 셋과 오크 전사들, 그리고 카락까지 동원된 작업이었기에 우리는 상당히 많은 나무를 해올 수 있었다. 목공예 스킬을 가진 나는 그것을 통해서 통나무집을 지을 준비를 시작했고, 아버지와 선우, 그리고 카락이 나를 도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저녁시간이 되었고, 오크들과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식사를 했다. 처음에는 혹시 가족들이 오크들에게 거부감을 보이면 어쩌나 했는데, 별다른 거부감은 없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아직 선우는 힐끔힐끔 오크들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렇다고 적대하지는 않는다. 그냥 전에 들어갔던 게이트에서 쟤들과 싸웠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문제를 일으킬 정도는 아니라 별문제는 없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친 후에 통나무집을 만들 준비를 조금 하고, 어머니와 시연이는 여자 오크들이 옷감을 짜는 것을 배우다가 잠이 들었다.
매우 평화로운 하루였다.
***
아침이 되자 호야가 내 코를 깨물었다. 이건 호야가 밥을 달라고 내게 애교를 부렸는데, 내가 안 일어났을 때 하는 행동이다.
“야! 아프다고.”
냥!
앙칼지게 우는 호야를 보고 한 대 때리고 싶······다는 생각은 고이 접었다. 그럼 게이트가 사라질 거다. 왜? 내가 죽을 테니까.
난 호야에게 짜먹는 간식을 진상한 후에 백야와 까망이, 그리고 뭉치의 밥을 챙겨주었다. 내가 길들인 동물들은 내가 이 안에 있을 때는 내가 밥을 주지 않으면 밥을 안 먹는다. 따로 가서 사냥해서 먹으라는 지시를 하지 않는 이상.
아마도 이것은 시스템이 길들인 동물을 돌보라는 무언의 압박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길들인 동물들의 밥을 챙겨주자, 시연이가 빤히 나를 쳐다본다.
“왜? 뭐?”
“나도 까망이.”
“시연아.”
“왜?”
“너도 이제 어른 아니냐?”
“뭔 소리야. 나 미성년이거든? 사랑과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미, 성, 년!”
생각해보니 얘는 아직 고딩이었다.
“까망이는 왜?”
“타고 다니게. 얼마나 멋질까? 내 멋진 모습에 기절할지도 몰라.”
“불순해서 안 돼!”
“좋다. 그럼 나도 방법이 있다. 까망아!”
히이이잉.
까망이가 튄다. 눈치가 아주 귀신이다. 하지만 가족들에게도 탈 것을 만들어주긴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가급적이면 길들인 동물이 있다면 안전에 더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좋아, 오늘은 생포작전이다!”
오늘의 태마를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