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9 화 새로운 아이템.
제 49 화 새로운 아이템.
회사에 출근할 준비를 하면서 가슴에 품어두었던 그것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사직서.
이건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품고 있는 물건일 것이다. 마치 아직 당첨금을 확인하지 않은 로또 용지처럼 말이다. 로또와 사직서가 어떻게 같은 거냐고? 같다고 본다. 로또도 확인하기 전까지는 행복하다. 사직서도 언제든 내가 이걸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할때는 행복하다.
결과에 도달하면 둘 다 슬퍼지는 물건들이라는 점에서 난 공통점이 있다고 본다. 난 오늘 이것을 부장의 면상에······ 던질 생각은 전혀 없다. 나름 잘 해주시던 분인데 그건 진짜 양아치나 할 짓이니까. 그냥 정중하게 드리고 나올 생각이다.
“와, 최 대리님! 휴가 끝나셨어요?”
“아, 네.”
여직원들이 나를 무척이나 반긴다. 이미 선우네 가게를 가르쳐줬음에도 말이다. 그러고보니 다들 피부가 장난이 아니다.
그런 여직원들 사이에 잠깐 둘러싸여서 막간의 행복을 느낀 후에 부장님께 찾아갔다.
“부장님. 이거요.”
부장님은 내가 내민 것이 뭔지도 확인하지 않으신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예상을 했다고? 아마 내가 그런 얼굴로 부장님을 쳐다 봤나보다.
“게이트 주인이 되면 회사를 그만두는 편이 낫긴 하지.”
그것도 알아? 또 그런 표정으로 봤나보다.
“자네는 표정을 좀 더 숨길 필요가 있을 것 같네. 예전에는 안 그러더니. 그건 그렇고, 그때 회사 앞에서 날 구해준 것은 정말 고마웠네.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하지. 아, 수박이 더 은인인가?”
“기억이 나세요?”
난 정말 놀랐다. 내가 게이트 주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보다 그때의 일을 기억한다는 부분이.
“수박을 계속 먹으면서 조금씩 기억이 나더군. 그런데 이상하지? 다른 사람들은 전혀 기억을 못해. 왜 그런지 아나?”
“아시고 싶지 않을 것 같은데요?”
“하긴 많이 안다는 것이 꼭 좋은 일은 아니지. 그나저나 축하하네. 게이트의 주인이 된 것.”
“어떻게 아셨습니까?”
“계란이나 수박이나, 파인애플. 이런 것들이 다른 게이트에서 나온다는 이야기는 전혀 못 들었거든. 나도 다 인맥이 있지.”
“그럼 다른 직원들도?”
“아니, 아마 강 과장 정도가 알걸? 그래도 입이 무거운 사람이니 어디가서 이야기를 하지는 않을 걸세.”
“그건 잘 알죠. 사실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렇겠지. 그래도 수박은······.”
“제 친구가 계속 가게에서 팔 겁니다. 수박 쥬스로 팔고 있으니 그거 드시면 될 걸요. 아마 일주일에 한 번만 드셔도 자존심은.”
“커험! 내 자네가 큰 일을 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
지금까지 내 행동을 생각하면 부장님이 알게 된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행이라면 부장님은 내가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고, 수박의 공급처이기에 다른 곳에서 말할 분은 아니라는 정도.
“그럼 앞으로는 게이트에서만 일할 생각인가?”
“아마, 그렇게 되겠죠. 근데 좀 아깝긴 하네요.”
“뭐가 말인가?”
“사실 사료를 만들 생각을 했거든요. 제가 가진 게이트의 재료들이 좀 특출난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이용해서 치료용 사료를 만들 회사를 세워볼까도 생각했는데······.”
“잠깐, 그러니까 창업을 생각했다는 건가?”
“네, 그럴까 생각했었습니다. 아무래도 회사에서 그런 것을 만들기에는 출처를 밝혀야 되는데 그게 좀 꺼려져서요.”
“음······.”
부장님은 한참 고민을 하신다. 그러다가 입을 여신다.
“그럼 우리 회사의 자회사 형식으로 치료 전문 사료 회사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떤가?”
“네?”
“우리 회사에서 투자를 하겠다는 거지. 대신 운영에는 일절 관여를 하지 않겠네. 물론 지분은 나눠야겠지만, 아마 우리 회사가 3정도, 자네가 7정도 되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난 부장님의 말에 잠깐 멍해졌다. 그리고 왜 그렇게까지? 거기에 그걸 부장님이 정할 능력이 되나?
“역시 자네는 표정을 좀 관리해야 될 것 같아. 그럴 능력이 되냐고? 이 회사의 오너가 우리 형이거든.”
“와! 부장님이 진짜 입이 무겁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는걸요?”
정말 몰랐다. 그런 소문도 돌았던 적이 없다. 그런데 사장님이 부장님의 형이었다니. 낙하산이라고 하기엔 부장님은 사원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오신 분이다. 능력도 있고. 꼰대 기질이 있긴 하지만, 바로바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나름 멋진 상사다. 그런데 배경까지 좋았을 줄이야.
“하하, 내가 입이 진짜 무겁지. 그리고 자회사 형식으로 한다면 자네가 굳이 출처를 어디에 알릴 필요도 없을 것이네. 우리가 게이트와 계약을 맺은 것이 비밀도 아니니까. 아마 다들 그렇게 생각하겠지.”
좋은 방법이었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
“왜 그렇게까지?”
“뭔가 대단한 것이 나올 것 같거든. 대신 우리는 지분만 가지고 있을 것이고, 운영은 자네가 알아서 하게. 아, 브랜드는 우리 브랜드를 사용하는 편이 좋지 않겠나?”
사실 그게 편하다. 진입장벽이 사라지는 것이니까. 지금도 기력회복용 사료는 엄청나게 팔리고 있다. 거기에 다른 치료용이나 기능성 사료가 추가된다고 해도 이상하게 볼 사람은 적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게이트의 재료들을 난 밖에다 풀 수 있게 된다. 내가 회사를 만들려는 이유는 잉여 식자재를 처리하려는 게이트의 의지랄까? 그런 것때문이었으니 굳이 이 제안을 거절할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자네는 우리 회사에서 파견 근무를 나간 것으로 처리할 거야. 물론 월급도 그대로 나갈 거고. 아마, 자네도 회사를 만든다면 다른 사람을 앞세울 생각이었겠지?”
“네, 제 아버지가 사업을 하시던 분입니다.”
“딱 좋네. 그럼 그렇게 진행하는 게 어떤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네요. 일단 아버님과 상의해보겠습니다. 아마 이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겠죠.”
“나도 형님한테 제대로 보고를 하도록 하지. 참고로 수박을 우리 형도 먹는다네. 하하하.”
사직서를 내러 왔다가 창업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남의 돈으로.
***
가평으로 가셨던 아버지는 저녁이 되어서 돌아오셨다. 시연이는 시무룩한 표정이었는데, 친구들과 갑자기 헤어지게 되어서 그런 것 같았다.
“동네 어르신들은 다들 괜찮으셨어요?”
“괜찮았다. 브란닭을 드시게 하고, 섬 멧돼지 고기도 넉넉하게 드리니 다들 기운이 넘치시더라.”
아버지가 가실 때 챙겨드렸던 것이다. 그것으로 마을 사람들이 기운을 차렸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진은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더구나. 여기저기 이상현상들이 벌어졌다고 그러더라.”
“예, 저도 봤어요.”
아버지 말씀대로다. 우리만 재수없게 지진에 당한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이상 현상들이 벌어졌다. 적도 지역에 눈이 내린다거나, 화산이 아닌 산에서 화산폭발이 일어난다거나 그런 일들. 다행히 빙하가 녹은 일은 없었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빙하가 있는 지역에서 빙하가 녹는 일이 발생했다면 정말 난리가 났을 테니까.
특이사항 한 가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명피해는 거의 없었다는 점.
“아, 그리고 회사에서요······.”
난 회사에서 부장님과 나눈 대화를 아버지께 들려드렸다. 그러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그렇게 하자고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회사의 자회사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치료용 동물 사료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회사를. 어차피 게이트가 혹은 게이트를 이 세상에 보낸 이가 내게 바라는 것이 게이트의 것들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라면 효과적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다.
“시연이는 좀 실망이 크겠네요.”
“갑자기 전학을 가게 되었으니 아무래도 그렇지.”
나름 시연이는 학교에서 정의의 사도가 되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과하게 힘을 사용하거나 하지는 않았겠지만. 그 꿈이 산산이 부서진 것이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들어가 봐라.”
“네.”
난 시연이의 방에 노크했다.
똑똑.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시연이가 노트에 뭔가를 적고 있다.
“뭐하냐?”
“컨셉을 새로 정리하고 있어.”
“뭔 컨셉?”
“원래 내가 학교에서 정의의 사도가 되려고 했잖아?”
“그랬지. 근데 너희 학교 엄청 평화롭지 않았냐?”
“맞지. 그래서 좀 문제긴 했어. 정의의 사도가 활동하기 위해서 빌런을 키워야되나 그런 생각도 살짝 했을 정도로.”
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시연이를 쳐다보았다.
“생각만! 그냥 생각만 했다고.”
“뭐, 실천할 틈도 없었으니까. 일단 그래서?”
“내 새로운 컨셉은 태풍의 전학생이야!”
“그거 표절 아니냐?”
“뭐? 왜? 어쩔?”
“아무튼, 그래서 전학하자마자 학교를 뒤집어 놓는 것이 네 계획이다 이거야?”
“당연하지.”
“시연아.”
“응?”
“우리 검정고시 보자.”
“······.”
“가만히 있는 학교를 왜 뒤집는데?”
“하긴 좀 그건 빌런 같지?”
“당연하지.”
“알겠어. 참 그리고 호야 데려가.”
호야가 시연이를 한심하다는 듯이 보고 있었지만, 시연이는 전혀 못 느끼는 것 같았다.
“할일 없으면 게이트 가서 대장기술이나 올리던가.”
“어? 오빠 없을 때 들어가도 돼?”
“내가 언제 안 된다고 그러던?”
“아, 그치.”
“대신 숲으로는 가지 말고. 거긴 진짜 장난 아닌 애들도 나오니까. 어차피 레벨도 지금은 더 못 올리잖아?”
“알았어. 그럼 태풍의 전학생 대신에 미녀 대장장이에 도전하겠어.”
시연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곧장 게이트로 향한다. 그리고 뒤이어 아버지와 어머니도 게이트로 들어가셨다. 난 문단속을 한 번 확실히 한 후에 게이트에 따라들어갔다.
***
아버지는 소들을 돌보고 계셨고, 시연이는 들어오자마자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쟤가 정말 나보다 대장장이 레벨이 더 오를 것도 같다. 그리고 어머니는.
“어? 그거 뭐예요?”
“이거? 네가 지난번에 만들어준 베틀로 만든 옷감으로 옷을 지었지.”
어머니가 만든 옷은 개량 한복 스타일의 옷이었다. 우리 어머니가 이런 쪽으로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다.
“와, 팔아도 되겠는데요? 엄마가 이렇게 디자인을······.”
“베낀거지.”
“아, 그렇구나.”
하긴 팔 것이 아니라면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이 옷 자체가 문제다.
-관찰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아이템: 개량 한복 상의(3레벨).
방어력: 140~174.
효과: 체력+5, 고통 감소.
섬 누에고치에서 뽑은 실과 섬 목화에서 뽑은 실을 조합하여 만들어진 걔량 한복이다. 뛰어난 디자인을 차용하여 만들어졌다. 뛰어난 방어력을 가지고 있으며 입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감소한다.
“미쳤네······.”
“뭐?”
“아니, 이거 성능이요.”
“성능? 한복이 그냥 한복이지 뭔.”
“아, 그러니까요······.”
내가 개량 한복의 성능을 말씀드리자 어머니가 깜짝 놀라신다. 저 정도면 방탄복이나 방검복 따위는 그냥 씹어먹고도 남을 성능이 아닐까? 거기에 고통 감소라는 옵션. 저것도 특이하다. 입고 있기만 해도 고통이 감소한다. 그렇다면 평소에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입어도 효과가 있다는 걸까? 이것은 저 옷감의 효능일까? 아니면 옷을 만드신 어머니의 능력일까? 어머니는 이미 재봉이 5레벨이시다. 그래서 실험이 필요했다.
누가 뭐래도 이건 대박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