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0 화 너의 이름은?(여기까지 무료 연재분입니다.)
제 50 화 너의 이름은?
고통감소.
사실 현대인들 중에 통증 몇 개 정도 안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선우네 아버지의 경우는 당뇨가 심하셔서 말초신경에 이상이 생기는 부작용을 가지고 계신다. 덕분에 땅을 맨발로 밟으면 엄청난 지압 판을 밟는 것처럼 통증이 느껴지신다고 한다.
이건 당뇨를 가지고 있는 환자들 사이에서는 흔하게 벌어지는 일 중의 하나라고 한다. 혈액에 당분이 많아지면서 순환이 잘 안 되고, 몸에서 가장 먼 곳이라고 할 수 있는 발부터 이상이 생기는 증상이다. 그래서 당뇨 환자들은 발에 상처 관리를 잘 해야 한다고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상처가 나고, 그 상처가 썩으면 결국 절단을 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니까.
솔직히 이 옷이 통증을 없앨 수는 있겠지만, 당뇨를 근본적으로 치료를 하지는 못한다. 통증은 감소시키는 것이니까. 하지만 통증에 대한 병은 당뇨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류머티즘성 관절염에서 시작해서 CRPS라고 불리는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이라는 병까지.
특히 CRPS의 경우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통증이 항시 유지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정말 끔찍하다. 마땅한 치료제도 없다는 것이 더더욱 암울한 상황. 그런 환자에게 저 옷을 보급할 수 있다면?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고통감소라는 것은 전투에도 매우 도움이 된다. 우리들이 사냥을 할 때도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목이 잘린 트롤이 나를 공격했을 때, 정말 장난이 아니게 아팠다. 그런 통증을 감소시켜준다면 정말 유용한 아이템이다.
“엄마, 다른 것들도 좀 만들어보실래요? 개량 한복 말고 조끼 같은 형태도 좋을 것 같구요. 간편하게.”
“그럴까? 의욕이 샘솟는데? 호호호.”
당신이 만든 것이 매우 뛰어난 아이템이 된다. 이건 만들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기쁨이다.
그렇게 어머니는 여자 오크들과 옷 공장을 차리시게 되었다. 이제 저 옷은 밖에서 실험을 해봐야 할 부분이다.
“전 아버지한테 가볼게요.”
“그래.”
난 아버지가 계신 밭으로 향했다. 밭에서 아버지는 늘 웃고 계신다. 심는 대로 자라고, 자란 결과물이 심지어 이전 것들과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뛰어난 작물이 나오니 어찌 기쁘지 않으실까. 거기에 축산까지. 요즘은 섬 멧돼지를 키워보면 어떨까 하는 말씀을 하신다. 다 큰 녀석들은 키우기 어려울지 몰라도 새끼 때부터 키운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돼지는 뭐든 잘 먹는다. 그래서 우리 게이트 안에서 생산되는 잉여생산물의 상당 부분을 소화할 수 있다. 그래서 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소보다 빨리 번식을 하고, 한번에 낳는 새끼의 숫자가 비교가 안 된다. 거기에 맛이 장난이 아니지 않은가.
“새로운 작물은 없어요?”
“있더라. 내가 심지 않은 건데.”
“네? 어떤 거요?”
“저거.”
아버지가 가리키는 것은 나무들이었다. 확실히 언제 저기에 저런 나무가 자란 것인지 의문이다. 그래서 관찰로 살펴보니.
이름: 섬 커피나무.
섬에서 자생하는 커피나무다. 열매를 잘 볶아서 차로 마시면 풍미가 뛰어나다. 산미는 다소 적은 편이나 고소함이 비상식적이다. 차로 마시면 각성 효능이 있다. 일정 시간 뇌의 활동을 자극한다. 부작용은 없다.
각성 효능을 가진 커피나무.
“대애박! 저거 커피네요.”
“설마 했는데, 정말 커피니?”
“네, 능력치를 올려주는 것은 아닌데 각성작용을 하네요. 뇌의 활동을 자극한다고 그러네요. 중요한 것은 부작용은 없다고 그러구요.”
“오호? 우리 시연이한테 물대신 먹여야겠구나.”
“계속 먹여야죠. 큭.”
시연이는 조금 더 똑똑해질 필요가 있다. 누가 뭐래도 수험생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뇌를 좀 활성화시키면 태풍의 전학생 같은 소리를 좀 안 하려나.
“능력치가 올라가지 않는 부분이 난 오히려 마음에 드는구나.”
“저두요.”
사실 능력치가 오르면 그게 더 처치곤란이다. 차라리 이렇게 효능이 극대화된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이걸 내다 팔지는 좀 생각을 해 봐야 되겠지만.
“섬 멧돼지는 어떻게 되고 있냐?”
“일단 오크들한테 새끼들을 좀 잡아 오라고 할 생각이에요. 카락이 그런 걸 잘하거든요.”
“그래? 그럼 돼지 축사도 만들어야겠구나.”
“그것도 오크들이 알아서 지을 테니까, 아버지는 돌보기만 하세요.”
“그래.”
“그럼 고생하세요.”
“고생은 무슨! 재미가 아주. 마을 사람들 여기로 데리고 오고 싶을 정도다.”
“어? 그거······ 괜찮을 지도 모르겠네요.”
농사의 프로들은 아버지나 내가 아니다. 가평에서 농사를 짓던 분들이다. 그런데 지진으로 인해서 집만이 아니라 논과 밭까지 난리가 났다고 한다. 그분들은 1년 농사를 지어서 그것으로 먹고사시는 분들이다. 그런데 올해는 완전 난리가 난 거다. 국가에서 지원이야 해주겠지만, 그것으로 충분할까?
돈의 문제가 아니라 상실감이라는 것이 엄청나게 휘몰아칠 것이다. 그분들은 논밭에서 키우는 작물과 소, 돼지 같은 것들을 거리낌 없이 자식 같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다. 그런 분들이 자식을 잃은 거다. 내가 호야를 잃었을 때 느꼈던 그 상실감처럼.
어차피 내 영지는 키워야 한다. 그렇다면 그분들을 우리 영지에서 농사일을 하게 하면 어떨까? 물론 시골에 산다고 사람들이 다 착할 거라는 착각은 하면 안 된다. 하지만 부모님이 살던 마을에는 못된 사람들이 없었다.
흔히 귀농하면 시골 인심이 좋아서 편하게 살 거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외지인을 꺼리고, 핍박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부모님이 살던 마을 사람들은 처음부터 부모님을 잘 도와주셨고, 지금까지 그 관계를 잘 이어오고 계시던 분들이다.
“한번 생각해봐야겠어요. 그분들을 영지민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어? 그것도 괜찮겠네?”
“네, 그분들이야 프로니까요.”
정말 가능성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려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가평에서 여기까지 오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데······. 어쩌면 크게 어렵지 않을 수도 있을 것도 같다. 어차피 그분들은 지금 임시 숙소에서 지내고 계신다고 하니까.
확실히 생각해볼 문제였다.
“임시 숙소를 잡는 것을 한 번 알아봐야겠네요.”
“그래, 그래라.”
아버지와 몇 가지 상의를 한 후에 난 시연이가 있는 문제의 대장간으로 향했다.
***
“어이, 마녀 대장장이.”
“누가 마녀래!”
“너. 내 눈앞에 있는 태풍의 전학생을 꿈꾸는 정신 나간 마녀.”
“인정. 내가 좀 정신이 나간 것 같긴 해.”
시연이가 쿨하게 인정한다. 저러니 뭐라고 더 하기도 애매하다.
“그래서 작업은 잘 되고 있냐?”
“당연하지. 이거 봐.”
시연이가 자신있게 검을 하나 내민다. 그리고 난 진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이템: 물의 기운이 깃든 강철검(4레벨).
공격력: 97~124.
효과: 물의 화살(액티브) 2레벨, 검술레벨 +2, 힘 +4, 민첩 +4.
섬에서 나오는 철로 만들어진 검이다. 부르티아 대장장이 기술로 만들어져 동급의 검보다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아직 숙련되지 못한 대장장이가 만들었지만, 물의 기운을 깃들게 한 점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마나전도율이 매우 높다.
내가 만들었던 강철검보다 레벨도 1 높고, 스킬까지 달려 있다.
지금까지 본 아이템을 생각해봐도 제작템으로는 최고다. 가만히 시연이를 관찰해보니 부르티아 대장장이 스킬이 벌써 5나 된다.
“얘는 진짜 뭐지?”
“왜? 내가 강철맨이 될 때까지 대장장이에 올인 할 거야!”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 시작한다. 뭐, 외관만이겠지만. 그런데 물의 기운은 어떻게 검에다가 때려박은 거냐?”
“어? 정말 그거 된 거야?”
“아, 그러니까 이 검이······.”
관찰 스킬이 없는 시연이는 정작 검의 옵션이 보이지 않았기에 설명을 해주었다.
“우와, 진짜 대박!”
시연이가 검을 잡고 휘두르는데 검에서 푸르스름한 기운이 깃든다. 저게 물의 기운인 것 같았다. 그럼 나는 불의 기운을 검에 담을 수 있나? 하지만 난 아직 불의 화살 같은 마법이 없다. 어쩌면 난 진짜 재능이 바닥인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도 아이템을 만들어내고, 시연이도 만들어내고, 아버지는 산삼을 증식시키셨는데 난 뭔가 이도 저도 아닌 느낌?
“하아, 인생.”
뭔가 현타가 온다. 그때 호야가 내 어깨에 올라와서는 내 얼굴을 핥는다.
“그래! 나한테는 네가 있지. 그치, 호야?”
그러자 호야가 턱짓으로 짜먹는 간식을 가리킨다. 닥치고 저거나 따라는 얘기. 난 호야의 명령에 짜먹는 간식을 조공했다.
냥냥! 냐웅냥냥!
“시끄럽고 사냥이나 가자고?”
냥!
그렇단다. 그렇다면 나는 호야의 말을 따라야 한다. 호야가 요즘은 내 주인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냥!
“간다, 가!”
“시연아, 가족들 무기도 좀 만들어둬.”
“걱정 마. 오빠것도 하나 만들어둘게.”
“땡큐. 오빠는 재료 구하러 간다.”
“어.”
시연이가 의외로 쓸모가 있다는 것에 감탄하면서 난 호야에게 멱살을······ 잡히듯이 숲으로 들어갔다.
***
“호야, 여기는 트롤 나오는 곳이 아닌데?”
트롤 마당이라고 부르는 곳과 다른 곳이다. 물론 트롤 마당이라는 것은 내가 붙인 이름이다. 트롤만 나와서 그렇게 불렀다. 그런데 오늘은 거기가 아니다. 숲의 가이드 호야님의 안내를 받아서 온 곳.
“스산하다.”
살면서 스산하다는 말을 입밖으로 꺼내본 적이 있나? 아마 없던 것 같다. 책으로 많이 본 말이긴 하지만 실제로 이 말을 쓸 일은 거의 없는 것이 보통이니까. 여기는 스산한 느낌과 땅조차 부스스한 느낌이 든다.
“땅이······ 매말라 있네?”
섬에서는 작물들이 잘 자란다. 작물들이 잘 자란다는 것은 땅이 비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섬은 대체적으로 그런 곳이었다. 트롤 마당조차도 말이다. 그런데 여기는 전혀 다르다.
“날씨는 가을인 것 같긴 한데······.”
날씨는 확실히 가을 날씨다. 트롤 마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스산함은 한겨울이라고 해도 믿어질 정도다.
“여기 뭐가 있어?”
냐앙.
호야가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뭐가 있다고 말하는 거다. 그래서 조금 안으로 들어가니 뭔가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어?”
화려한 금발에 귀족적인 옷을 입고 있는 남자 한 명. 분명 인간. 아니, 인간이었던 것 같은 그 무엇인가다.
아무리 세상이 달라도, 인간이라면 저런 피부를 가질 수 없을 테니까.
“내가 보기에 저건······ 언데드네.”
다행히 난 상대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워낙에 TV나 영화에도 많이 나오니까.
언데드. 죽었는데 죽지 않았다는 의미려나? 그런 종류의 몬스터다. 신기한 것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관찰로 지켜보니 더 놀라운 점이 있었다.
“헤르티안?”
저 언데드의 이름에 헤르티안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