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 화 이름의 의미.(여기서부터 유료연재 시작)
제 51 화 이름의 의미.
정확히는 ‘브루고스 데스완 헤르티안’이라는 이름이다. 딱 봐도 귀족이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언데드가 되었음에도 느껴지는 기품이 있다. 보통 언데드라고 하면 ‘그어어어’하면서 느릿느릿 움직이는 그런 것을 생각하기 쉽지만 저 브루고스는 그런 부류와는 확실히 차이점이 있었다.
비록 언데드라고 해도 꼿꼿하게 몸을 세우고 있으며, 침 같은 것은 흘리지 않는다. 언데드면 침을 안 흘리는 게 정상이려나? 아무튼, 참 뭔가 귀족적인 느낌이다.
난 내친김에 관찰로 더 살펴 보았다.
이름: 브루고스 데스완 헤르티안(45레벨)
브루고스 지역의 영주였다. 죽음의 저주로 인해 언데드가 되었으나. 여전히 자신의 영지를 사랑한다. 자신의 영지가 점점 불모의 땅으로 되어가는 모습에 크게 낙심하고 있다. 헤르티안 가문의 일원으로 헤르티안 검술의 초급을 완전히 마스터하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한 것처럼 저 브루고스가 헤르티안 검술의 창시자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헤르티안 검술의 계승자 중의 하나는 분명했다. 아직 몇 레벨까지 있는지도 모르는 헤르티안 초급 검술을 마스터했다고 할 정도니까.
“호야, 그러니까 여기서 저놈한테 헤르티안 검술을 익히라는 거지?”
냥! 냥냥냥!
“내가 하는 꼴이 저놈이랑 비슷해서 데려왔다고?”
호야가 보기에 내가 검술을 하는 모습이 브루고스랑 비슷해서 데리고 왔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얘는 진짜 머리가 좋아서 그런지 나에게 필요한 것이 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느낌이다.
“쟤랑 싸워야 한다는 거지? 만만한 상대가 아니겠어.”
동렙의 네임드 몬스터. 그 전투가 결코 쉬울리가······.
퍽!
냥냥! 냥냥냥!
“뭐? 쟤한테 상대가 안 된다고? 너 아빠를 너무 띄엄띄엄 보는 거 아냐?”
호야의 말에 내가 발끈하니 호야가 턱으로 한 곳을 가리킨다. 그곳에는 기사의 갑옷을 입고 있는 언데드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는 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녀석들이.
“내가 응? 겨우 저런 놈들을······ 상대해야지. 암, 난 쫄 잡을 때가 제일 신나더라. 하하하.”
따지려다가 호야와 눈이 마주쳤는데 백야가 왜 호야를 그렇게 무서워하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더 웃긴 것은 그 와중에 귀엽다는 것.
“와라!”
호기롭게 외쳤다. 원래 이런 것은 그래야 한다. 근데 진짜 온다. 그것도 네 마리나.
난 호기로운 내 주둥이를 칼등으로 찍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으면서 녀석들과 간격을 확인했다. 그리고 라이터를 켜는데.
팍! 툭!
호야가 내 라이터를 쳐냈다. 이 정도면 호야는 분명 몬스터의 시전을 차단할 능력도 있을 것이다. 와오라는 게임을 할 때에 도적들의 주 업무.
캐스팅 끊기.
호야는 그것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었다. 문제는 몬스터의 캐스팅을 끊은 것이 아니라, 내 캐스팅. 아니 내 목숨줄을 끊은 것 같은 느낌이 문제라면 문제.
“야! 너무하는 거 아냐?”
냥!
강하게 커야 한단다. 강하게······. 내가 레벨이 몇인데 아직도 강하게 커야 하는 걸까? 하지만 우리 만렙 호야 선생이 그렇게 하라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야지.
난 내 강철검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헤르티안 초급 검술의 레벨이 어느덧 6레벨. 덕분에 마나를 검에 담는 것쯤은······ 1도 안 나온다. 그냥 더 잘 찌르고, 베고, 막을 수 있게 되었을 뿐. 마나를 담는 것은 그냥 내가 한다. 깡으로.
내 생각을 느낀 것일까? 시스템이 응답한다.
-스킬 마나 조종술(패시브) 3레벨이 생성되었습니다.
무려 3레벨의 스킬이고, 패시브다. 마나를 더 잘 다룰 수 있게 해주는 것.
“드루와, 드루와.”
난 황모 배우의 명대사를 읊조리며 몬스터들을 도발했다. 혹시나 해서 공포도 써봤는데, 언데드한테는 역시 공포가 먹히지 않는 것이 공룰.
기사의 갑옷을 입고 있는 녀석들은 빠르게 움직이지 않았다. 서서히 진형을 갖추면서 내게 다가온다. 녀석들의 정체는 ‘브루고스 영지 기사단’이었다. 레벨은 40으로 넷 모두 같았다. 녀석들이 다가오는데 불현 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주, 영지 기사단.
브루고스는 자신의 영지가 망가지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했다. 죽어서까지. 그럼 브루고스가 죽어서 영지가 망한 걸까? 영지가 망해서 부르고스가 죽은 걸까? 선후는 알 수 없지만, 영지의 멸망이 부르고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어쩌면 브루고스도 나 같은 게이트의 주인이 아니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당장은 이걸 막아야 되니까.
챙!
나의 강철검에 비견될 정도로 뛰어난 검을 가진 네 마리의 언데드 기사단. 이놈들은 정말 정식 기사라는 말이 어울리게 합공이 좋다. 그리고 검술 자체가 헤르티안 검술의 초급 단계를 거의 마스터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알지 못했던 응용법이라던가, 그런 것에서 배울 것이 많다. 그래도 네 마리의 합공은 정말 피똥싸게 힘든 전투다.
거의 20분 동안 전투가 이어졌다. 지치지 않는 언데드와 지치는 인간의 싸움은 이래서 힘든 거다. 금방이라도 난 지쳐서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버틴다. 그러자 내 안에서 마나가 내 몸을 휘감기 시작한다.
그리고 난 알 수 있었다. 마나 조종술은 단지 무기에만 마나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힐.”
난 내 몸에 힐을 사용했다. 상처도 거의 없는데 왜 힐을 사용하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힐은 그 자체로 회복을 해주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지금 미칠 듯이 고통스러운 이 근육들에게 ‘힐’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덤벼 새끼들아. 왜 너희도 지치냐? 힐 한 방 쏴줘? 힐!”
퍼석!
지금껏 팽팽했던 균형에 살짝 금이 갔다. 한 녀석의 팔이 그대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난 힐을 사용했을 뿐인데······. 생각해보니 얘들은 언데드라 신성력 쪽과는 상극이다. 그러니 ‘힐’이 곧 공격 마법이 된다는 얘기. 게임에서도 그러는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건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니까.
“아니, 더 게임 같나?”
이제 그 구분이 모호해진다. 하지만 한 녀석의 팔을 터트렸다는 것은 지금껏 유지했던 균형이 무너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난 회복된 몸으로 놈들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힐로 넷 다 잡을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가는 우리 호야 사부에게 뒤통수를 맞을 것 같은 느낌이라. 그냥 검으로 상대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집중(패시브) 레벨이 5로 상승했습니다.
-헤르티안 초급 검술(액티브) 8레벨로 상승했습니다.
시스템은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맞다고 증명해주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헤르티안 초급 검술(액티브) 9레벨로 상승했습니다.
-헤르티안 초급 검술(액티브) 10레벨로 상승했습니다.
-헤르티안 초급 검술(액티브) 스킬을 마스터했습니다. 헤르티안 초급 검술을 중급 검술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헤르티안 초급 검술의 마스터와 승부를 내야 합니다.
얼마 동안 검을 휘두른 걸까? 난 헤르티안 초급 검술을 마스터하고 말았다. 그리고 내 앞에는 부르고스 영지 기사단의 갑옷과 무기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죽였다고 표현을 해야 하나? 물리치고 나니 시체는 사라졌다. 그리고 갑옷과 무기만 남은 것이다.
난 그 중에 무기를 살펴보았다.
아이템: 헤르티안 장검(5레벨).
공격력: 103~154.
효과: 헤르티안 검술 레벨+3, 힘+7, 민첩+7, 체력+7.
헤르티안 검술을 익히고 사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검이다. 다른 검술을 익힌 자에게는 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말 그대로 헤르티안 검술을 위해서 만들어진 무기였다. 살짝 잡아보니 그립감이 예술이다. 난 이 무기를 사용할 생각은 없다. 단지 이 무기를 보고 내가, 아니 시연이에게 무기를 만들게 할 생각이다. 아무래도 대장장이 일은 나보다는 시연이가 잘 하는 것 같으니까.
주섬주섬 갑옷과 무기들을 챙겼다. 그리고 부르고스를 쳐다보았다. 부르고스는 여전히 가만히 자리에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냐앙.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 부르고스는 내일 다시 만나도록 하자.”
호야가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 이유가 바로 이것때문일 것이다. 헤르티안 초급 검술은 마스터를 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 전에는 내가 몰랐던 부분들이 깨우쳐졌고, 검로가 더 부드럽고, 강렬하게 이어지게 되었다는 것 정도.
“기왕이면 천마신공 같은 거라도 배우면 얼마나 좋냐? 하필 이 동네는 그런 애들이 없어.”
딱 봐도 판타지 세계관이다. 그러니 천마신공 같은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워보인다. 안타까운 일이다.
냐아아아아.
호야의 긴 한숨. 그 한숨의 끝이 나에게 도달했다.
“미안. 쓸데없는 소리는 자제하마.”
냥!
“그래, 돌아가자. 이리와.”
내 말에 호야가 점프를 해서 곧장 나에게 안겨 온다. 호야를 안으니 세상을 품고 있는 느낌이다. 그렇게 오늘의 전투를 마치고 난 영지로 돌아갔다.
***
투두두둑.
난 갑옷 네 벌과 검 네 자루를 시연이 앞에 던져주었다. 그랬더니 시연이의 표정이 매우 삐딱하다.
“고객님, 외부 물건은 반입 금지입니다.”
“오빠가 목숨걸고 얻어 온 거다. 이게 뭐냐면······.”
난 시연이에게 아이템의 설명을 그대로 해주었다. 그러자 시연이의 눈이 반짝인다. 평생 얘를 봐 왔지만, 얘가 이렇게 눈을 반짝이는 것은 파인애플을 봤을 때와 지금 뿐인 것 같다.
“어쩐지 있어 보이더라니.”
“외부 물품 반입금지라며?”
“농담입니다, 고객님.”
“됐고, 여기에 물의 기운을 담아봐. 그래서 대성공이 뜨면 오빠가 가져가마.”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시는 것 아닙니까, 고객님?”
“어디 보자 게이트 권한 삭제 메뉴가 어디 있더라······.”
“왕처럼 모시겠습니다!”
태세 전환이 아주.
“오빠가 요즘 많이 힘든 애들이랑 싸워서 그래. 네가 렙업이 막힌 이유가 내 레벨하고 차이가 별로 안 나서 그런 것 같거든.”
“음 그러려나? 난 영지의 규모 때문에 렙업이 막힌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시연이의 말에 난 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생각해보니 내 레벨 때문에 영지민들의 레벨업이 막혔다는 것은 조금 말이 안 된다. 그럼 다른 게이트 주인들도 레벨을 막 높여야 되지 않겠는가. 오히려 시연이의 말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날이 오게 되다니.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봐야 해.”
“오빠, 뜨거운 철의 맛을 한번 볼래?”
“사양할게.”
“흥!”
시연이는 곧장 내가 가지고 온 검들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감탄을 한다. 대견하다.
“와, 뜯어 보면 알 수 있는 수준까지 간 거냐? 내 동생 대단한데?”
“아닌데? 뜯어 보면 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모르겠어서 고개를 끄덕인 건데?”
“보통 그러면 끄덕이는 게 아니라 고개를 저어야 정상 아니냐?”
“오빠는 아직도 여동생이 정상일 거라고 믿고 있구나? 기특한데?”
시연이의 말에 난 할 말을 잃었다.
“아까 엄마가 찾던데? 엄마한테나 가봐.”
“알았다.”
난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마 신제품을 만들어내신 것이리라. 그런데 선우가 들어온 것이 보여서 방향을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