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2 화 충돌.
제 52 화 충돌.
선우는 벌통을 잡고 뭔가를 하고 있다.
“김 집사!”
“오, 영주님. 그동안 만수무강하셨습니까?”
“넌 사극을 좀 봐야겠다. 그게 최선이냐?”
“뭐? 어쩔!”
“됐고, 부모님은?”
“일단 이번 주말에 들어오시기로 했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시다고 하시니.”
게이트에 들어온다는 것은 보통 사람에게는 상당히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당연히 시간을 드릴 수밖에 없다.
“잘했다. 그래서 양봉은?”
“지난번에 여왕벌들 잡아넣고 갔었는데, 이제 꺼내 봐야지.”
“그래, 그럼 결과물 나오면 얘기해주고. 난 어머니한테 갔다 올게.”
“그래.”
인간 영지민들이 모두 들어와 있게 된 것을 보고 난 어머니께 향했다. 어머니가 계시는 곳은 양봉장의 반대편이다. 어머니는 별로 신경을 안 쓰시는데 여자 오크들이 벌을 싫어했다. 여자들이 벌레를 싫어하는 것은 종족과는 무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
“왔니? 이거 좀 봐봐라.”
“네.”
어머니가 내게 넘겨주신 것은 조끼에 가죽을 덧댄 형태로. 갑옷이라고 하긴 그렇고, 꼭 작업 조끼 같은 느낌이었다.
-관찰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아이템: 온도 조절 조끼(2레벨).
조끼를 입고 있으면 입은 사람이 원하는 쾌적의 온도로 체온을 유지시켜준다.
“와. 그러니까 이건······.”
난 어머니에게 아이템에 대해서 설명을 드렸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무척이나 좋아하신다.
“그렇지 않아도 이걸 만들어 입고서 좀 시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거든. 그랬더니 정말 시원해지지 뭐니? 고통 감소인가 그 옵션은 아닌 것 같은데, 아마 가죽이 들어가서 그런가? 이건 어떠니? 이건 그 천이랑 같은 걸로 만든 건데.”
다른 조끼를 보여주신다. 말이 조끼지 매우 얇아서 양복의 베스트 느낌의 옷이다. 이것은 다행히 원래 원했던 고통 감소 옵션이 달려 있었다.
“역시 천의 문제였나봐요. 이건 제대로 옵션이 나왔어요. 그 천으로 만든 것들에 고통 감소가 나오는 것 같아요.”
“그렇구나. 그럼 저걸로 일단 몇 개 더 만들어봐야겠다.”
“네, 그러세요. 그런데 힘들지 않으세요?”
“힘은 무슨. 내 평생 이렇게 재미있는 일은 처음이다. 그리고 엄마 체력이 몇인데 힘이 들겠니? 우리 가족 중에 내가 체력도 제일 높지?”
탱커 계열의 어머니는 심지어 나보다도 체력이 높으시다. 전직을 하실 때에 체력에 엄청난 보너스를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실 힘들 일은 없는 건가?
“그래도 쉬엄쉬엄 하세요. 주변 풍경도 한번씩 살펴보시구요. 말타고 다니시면서.”
“그래, 그렇게 하마.”
“엄마는 여기서 주무실 거죠?”
“어. 시연이랑 아마 여기 있지 싶은데? 넌 내일 아버지랑 회사에 갔다 온다고?”
“네, 밖에서 일단 사료 회사부터 만들어 보려구요. 아, 강아지 옷 같은 것들도 나중에 만들어야겠네요.”
“오호, 좋은 생각이다. 그러고 보면 넌 참 동물들을 좋아하네.”
“호야 덕분이죠.”
호야가 없었다면 난 보통 동물을 좋아하는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호야를 얻고서 내 새끼가 예쁘니 다른 집 애들도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고통받는 애들을 보면 마음이 찢어진다. 어찌보면 난 참 적성에 맞는 회사를 잘 들어간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강아지랑 고양이 옷도 만들면 좋을 것 같네.”
“네.”
어머니는 샘플로 옷을 몇 개 챙겨주신다. 나가서 사용해보라는 의미라 그것을 받았다.
“백야! 어딨니?”
내 물음에 백야가 미친 듯이 달려온다. 그리고는 그대로 내게 머리를 박는다.
크왕!
서운했나보다. 요즘 백야와 시간을 많이 못 보낸 것 같다. 길들인 녀석인데 신경을 못 써줬다.
“가서 쉬자.”
내 말에 백야가 내 팔을 물고서는 우리의 지정 자리로 인도했다. 원래라면 사람에게 길들여지지 않았을 녀석인데 이제는 그냥 덩치큰 고양이, 아니 강아지 같다. 얘는 좀 성격이 그렇다.
우리가 지정 자리로 가니 까망이와 뭉치도 미리 와 있다. 얘들은 조금 더 점잖은 성격이다. 그리고 백야를 침대삼아 누우니 까망이와 뭉치도 옆에 자리를 잡는다. 호야는 당연히 이미 내 품에 파고 들어 있다. 이 평화로움에 잠시 눈을 감았더니 그대로 난 꿈나라 게이트로 들어갔다.
***
아이들과 잠을 자는 것은 정말 기분이 좋은 일이다. 심지어 이제 동물 친화 스킬이 8레벨까지 올랐다. 더 다양하게 동물들의 이야기를 알아듣게 되었다.
그렇게 힐링을 하고 있는데, 카락이 다가온다.
“왜?”
크롹크롹크크큭!
새끼 멧돼지들을 잡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오크들이 지은 축사로 가보니 내가 만든 것보다 훌륭하다. 그래서 이 축사를 지은 녀석이 누군가 보니 카락이다. 카락에게 건축 스킬이 생성되었고, 이미 4레벨까지 올렸다.
“장하다.”
내가 카락의 머리를 쓰다듬으니 카락이 고롱고롱 소리를 낸다.
“야, 그거 너희 거 아니잖아?”
움찔.
카락은 호야와 백야를 흉내낸 것이리라. 근데 오크가 골골송이 가능하다고? 놀라운 일이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해. 그럼 넌 내가 제일 애정하는 일꾼이 될 거니까.”
크롹!
이게 뭐라고 기뻐한다. 그리고 이게 뭐라고 옆에 있는 애들은 부러워한다.
“그래서 몇 마리냐······ 와.”
새끼 멧돼지들이 40여 마리나 된다. 어미들은 다 어디 갔지? 어미들은 아마 잡아먹은 것 같다. 아무튼, 새끼들을 이렇게까지 데리고 왔으니 이제 돼지를 키울 때였다.
난 돼지들에게 좋아 보이는 작물들을 먹이라고 지시를 하려고 하는데 아버지가 등장하셨다.
“쟤들 이거 먹여야겠다.”
아버지는 소 수레를 끌고 오셨는데 수레에는 젖소의 젖이 가득 들어 있었다. 젖소의 우유를 살펴보니 이게 또 대박이다.
이름: 섬 젖소의 우유.
매우 고소하고, 입안에서 풍미를 한껏 살려준다. 섭취시 성장이 촉진된다.
“성장 촉진!”
“음?”
“이 우유 먹으면 성장이 촉진된다고 그러네요.”
“헐, 대박인데? 나도 효과 있을라나?”
“글쎄요. 한번 드셔보세요. 일단 시스템이 맛이 끝내준다고 그러네요.”
“맛은 진짜 장난 아니다.”
“저도 한 번.”
난 아버지가 주시는 잔에 우유를 따라 마셨다. 우유를 담은 통은 와인 통과 비슷하게 생긴 것인데, 이것도 내가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 우유통의 주인은 선우. 선우가 주인이라 우유가 상하지 않는다. 참 쓸모 있는 친구가 아닐 수 없다.
벌컥벌컥벌컥.
“크아. 진짜 고소함이 작살이네요.”
“그치? 아주 맛이 끝내준다. 멧돼지 새끼들이 아직 젖을 먹어야 할 때인 것 같아서 가지고 왔지.”
“잘 하셨어요. 이거 먹이면 되겠네요.”
새끼 멧돼지들에게 우유를 공급해주니 멧돼지들이 미친 듯이 그것을 먹는다. 그것을 보고 난 카락에게 얘들이 어느 정도 클 때까지 우유를 공급해주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유유자적 선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
“야, 빨리 이거 봐봐.”
선우가 내미는 것은 꿀이다. 밖에서 가지고 온 꿀통에 꿀을 담고 있었다. 그러다가 조금씩 나와 아버지에게 꿀을 나눠준다.
일단 관찰로 살펴본 꿀의 효능은 숙취해소였다. 꿀물이 숙취에 좋다고들 하던데 솔직히 난 술을 거의 먹지 않아서 모르겠다. 하지만 시스템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틀림없다는 얘기.
“이거 숙취해소에 장난 아니라는데?”
“오호. 그거 돈이 되겠네.”
선우의 말에 난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작정하고 돈 벌 생각을 하면 장난 아닐걸?”
“하긴 그것도 그렇지. 그런데 아버님을 모시고 왔다는 것은 할 얘기가 있다는 거네?”
“아, 맞아. 그러니까 오늘······.”
난 부르고스를 만난 이야기를 해주었다. 부르고스가 영주였다는 사실과 부르고스의 영지 기사단도 언데드가 되어 있었다는 사실까지.
“그렇군. 결국 영지의 멸망이라는 것은 그런 식이려나?”
선우의 말에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시다가 묻는다.
“그런데 왜 이런 얘기를 네 엄마랑, 시연이는 빼놓고 하는 거냐?”
“어? 그러게요.”
내 말에 선우가 실실 웃으면서 말한다.
“남녀차별주의자.”
“딱히 그런 것은 아닌데······. 어쩌면 그랬나? 참 웃기는 일이네. 어머니나 시연이가 우리에 비해서 부족한 것도 없는데.”
내 말에 아버지와 선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부르자.”
“네. 백야, 까망아.”
백야와 까망이는 즉시 움직였다. 그리고 잠시 후에 우리들은 다 모이게 되었고, 부르고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다른 영지민들은 못 본 거니?”
어머니가 물으신다.
“네, 없었어요. 그리고 이제 부르고스 영지 기사단도 제가 전멸을 시켰으니 부르고스만 남은 거겠죠.”
“일단 이 부분은 더 지켜봐야겠네. 아직은 뭐라고 판단을 하기 어려운 것 같아.”
시연이가 의외로 정상적인 답변을 내놓는다.
“우리 시연한테 커피 주셨어요?”
아버지께 물으니.
“어, 잘 마시더라.”
그렇다고 하신다.
“그랬구나······.”
“뭐지? 이 기분나쁜 느낌은?”
“아냐, 커피 잘 마셔.”
“입에 딱 맞아. 완전!”
“잘했어.”
“기분 나빠.”
“기분 탓이야.”
“그 기분이 나쁘다고!”
“괜찮아.”
시연이가 인상을 썼지만, 그렇다고 오라버니에게 기어오르지는 않았다.
“그럼 결국 네가 부르고스 영주를 쉬게 해줘야 하겠구나.”
“네. 그게 도리인 것 같아요. 아버지랑 나갔다 온 후에 그렇게 하려구요.”
“그래, 그러자.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는 무슨 일이 있을 때는 모두가 모여서 이야기를 하도록 하자.”
“네, 아버지.”
다들 아버지의 말씀에 동의했고, 우리들의 영지 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
아버지와 밖으로 나온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아버지는 회사를 세울 건물을 알아보기 위해서 움직이기로 했고, 난 공장을 알아보기로 했다. 기존의 공장장님이 계시는 공장에서는 다른 사료까지 만들기에는 무리가 있으니까.
그렇게 나가기 전에 틀어두었던 TV에서 속보가 흘러나왔다.
-속보입니다. 일본의 후쿠시마 지역에 있더 고블린들의 숫자가 파악되었다는 소식입니다. 그 숫자가 상상을 초월해서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파악된 숫자는 대략 1만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수를 계속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는 중이라는 소식입니다. 이에 따라서 일본은 후쿠시마 지역에 폭격을 가할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후쿠시마가 결국 문제를 일으켰다. 고블린들은 번식력이 좋다. 오크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먹이사슬의 최하단에 있는 녀석들은 원래 종특이 그래야 한다. 그래야 생태계가 유지되니까.
문제는 저곳에 쟤들을 제어할 수 있는 포식자가 없다는 것. 그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때였다. 다시 속보가 흘러나왔다.
-지금 후쿠시마 지역으로 일련의 사람들이 진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저들의 정체는 소위 말하는 헌터들이라고 일본의 정보통이 전해왔습니다. 헌터와 몬스터의 전투가 곧 벌어질 예정입니다. 소설이나 웹툰에서만 나오던 일이 현실에서 지금 벌어지기 직전입니다.
“아버지. 좀 보고 가죠.”
“그러자꾸나.”
일본도와 여러 장비를 구비한 헌터들의 무리는 대략 천여 명에 달했다. 관찰로 저들을 살펴볼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느낌상 그렇게 레벨이 높은 이들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저들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그것을 보면 초보 헌터는 분명히 아닌 것이리라. 그리고 이어지는 첫 번째 충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