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학개론-53화 (53/182)

제 53 화 후쿠시마 사태.

제 53 화 후쿠시마 사태.

보통 소설 속이라면 1만 대 1천의 대결에서 유리한 쪽은 헌터 쪽일 거다. 헌터라면 최하급 몬스터라고 할 수 있는 고블린 열 마리 정도는 처리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이건 소설 속의 흐름과는 다르다. 고블린은 내가 상대를 해봐서 알지만, 그다지 대단한 전투력을 가진 녀석들은 아니다. 이건 소설과 일치한다.

문제는 헌터들이 소설의 헌터들처럼 능숙하게 몬스터를 사냥하던 이들이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속보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아나운서가 매우 당황한 표정으로 뉴스를 끝낸다. 그도 그럴 것이 헌터들이 고블린들에게 사냥당하는 모습이 방송에 송출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 처참했다.

고블린은 전투가 아니라 사냥을 한다. 사냥의 목적은? 먹이 확보다. 사람을 죽이고 그 자리에서 그 살을 뜯어 먹는 모습이 방송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음······ 심각하구나.”

“네, 아무래도 별다른 준비도 없이 충돌한 것 같네요.”

후쿠시마에 존재하는 어떤 게이트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고블린들. 고블린들은 상당히 공격적이었고, 굶주려 있었다. 후쿠시마의 상황을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일. 후쿠시마는 원전 사태 이후에 생명이 살기에 적합한 곳은 절대 아니다.

일본은 후쿠시마가 안전하다면서 홍보를 하지만, 정작 제대로 된 자료는 공개하지 않는다. 뭐랄까? 우리가 안전하다고 믿고, 모두가 그렇게 믿어주면 안전한 곳이 된다라는 이상한 신념이라도 있는 것 같다랄까?

애초에 그게 일본의 종특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것이 그나마 조금이라도 통했던 시절은 정말 아날로그만 존재했던 시절이다. 지금은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이 실시간으로 중계가 되는 세상이다. 그런데 그런 것이 먹힐 리가 있나.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후쿠시마가 현재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이 살 수 없다는 것은 동물도 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잘 있으려나?”

“그 사람이 누구니?”

“예전에 다큐로 본 적이 있거든요. 후쿠시마 원전 폭발 후에 버려진 동물들을 돌보기 위해서 후쿠시마로 돌아간 사람 얘기요.”

“음······ 그렇겠구나. 동물들은 이해를 할 수 없는 일이니. 거기에서 도망을 가는 것도 못하겠구나.”

동물들은 대부분은 후쿠시마 원전때 죽었고, 죽지 않은 동물들은 그곳에서 그대로 살아가다가 죽게 되었을 것이다. 개들은 주인이 사라진 것을 이해하지 못해서 기다렸을 것이고, 고양이들은 억지로 이사를 하지 않는 이상 자신이 살던 곳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애들이 저렇고, 소나, 돼지, 닭 같은 가축들 역시 주인이 피난을 가면서 챙겨갔을까? 급하게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야하는 상황에서? 아닌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다큐에 나왔던 사람은 우연히 원래 살던 곳으로 가봤다가 버려진 동물들이 많은 것을 보고 그 동물들을 돌보기 위해서 자신도 후쿠시마에 남게 되었다고 했다. 스스로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자각은 충분히 있었지만, 그래도 버려진 동물들을 또 버려둘 수 없었다고 한다.

나라면?

호야가 저곳에 혼자 남겨져 있고, 호야를 세상이 받아주지 않아서 계속 저곳에 살아야 한다면 떠날 수 있을까? 아마 나도 남는 것을 택할 것 같다. 가족을 버리고 살아갈 자신은 없으니까.

“그런데 말이다.”

“네.”

“게이트에서 고블린들이 나온 것 아니니?”

“그렇겠죠. 갑자기 등장을 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후쿠시마 지역 안에 게이트 주인이 있었다는 얘기겠구나.”

아버지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저 안에 게이트 주인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야 말이 되니까.

“혹시 게이트 주인이 일부러 고블린들을 풀어놓은 것은 아닐까?”

아버지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원망했을까?”

후쿠시마에 살고 있던 사람은 세상을 원망했을까? 아마 그럴 수도 있을 거라고 본다. 그래서 차라리 망해버리라는 심정으로 몬스터에게 길을 내줬을지도.

띠링.

그때 회사 사람들이 내게 톡을 보냈다. ‘실시간 후쿠시마 상황’이라는 너튜브 영상의 링크였다. 난 곧장 그것을 TV로 재생했다.

“저, 저런 멍청한 짓들을.”

아버지가 탄식을 내뱉으신다. 헌터들이 너무 멍청하게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들만 해도 고블린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해치울 수 있다. 가족들과 선우만 있어도 백여 마리는 순식간이다. 그런데 저 헌터들의 꼬라지는 그게 아니다.

-반자이!

‘반자이’를 외치며 닥돌을 한다. ‘반자이’는 만세를 뜻한다. 만세를 외치면서 돌격을 한다. 마치 2차 세계대전 때의 일본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런 돌격은 멍청하기 이를데 없다.

전쟁사에서 가장 황당한 전술로 평가받는 ‘반자이 돌격’이다. 영국군이나, 영연방, 미군들이 지겹게 들었다고 알려진 전술인데, 오죽하면 가장 황당한 전술이라고 평가를 했을까?

그런데 저게 아직도 일본을 움직이는 어떤 원동력이 되나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처참했다.

헌터들이 갈려나간다. 고블린들은 마비침을 사용한다. 그리고 마비침은 상당히 빠른 효과를 보인다. 지속 시간은 짧지만,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기에 선두가 마비침을 맞으면 진형이 개판이 될 수밖에 없다. 변변한 갑옷도 없어 보이고, 가끔 전국시대에 입었을 법한 갑옷을 입은 헌터들도 있지만, 어차피 아이템은 아닐 터. 헌터들은 말 그대로 갈려 나간다. 고블린들이 오히려 헌터쪽으로 이동을 하고 있을 정도.

죽은, 혹은 죽어가는 헌터들을 먹으면서 고블린들이 전진을 한다. 1만이라는 숫자가 진짜 무섭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예전에 고구려와 당나라가 싸울 때 고구려는 10만, 당나라는 100만 대군으로 상대했다고 하는데, 숫자만 들었을 때는 그게 대단한가란 생각을 했었다.

실제로 1만의 고블린들이 미친 듯이 달려드는 모습은 공포스러웠다.

‘반자이 돌격’을 외치던 헌터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종국에는 도망치는 헌터의 숫자가 싸우려는 헌터의 숫자를 압도한다. 멍청한 짓이다. 애초에 그냥 후쿠시마 안에 있을 때 포격을 가하는 것이 현명했을 거라 판단된다.

“저, 저런.”

아버지가 안타까워하신다. 왜 저런 멍청한 짓을 했을까? 후쿠시마 안에서만 활동하던 고블린을 이제는 후쿠시마 외부로 나가게 되었다. 고블린의 물결이 후쿠시마를 벗어나려고 한다. 애초에 후쿠시마 경계 지역에서 헌터들이 집결을 했었기에 이제 헌터들이 물러나면 일본은 그대로 처참하게 뭉개질 것이다.

“고블린들이 흩어지면 피해가 상상이 안 되네요.”

“그렇지. 그때는 폭격도 불가능하겠지.”

고블린들이 시가지로 들어가면? 폭격을 하면 시민들까지 위험해진다. 그리고 폭격으로 고블린을 완전히 전멸시킬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정말 헬게이트가 열린 거라고 봐야 한다.

“겨우 고블린들한테.”

“강릉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말씀드렸죠?”

“군인들이 진압했다며?”

“네. 우리나라야 휴전 국가니까 군인들이 곧장 투입되었죠. 피해는 있었겠지만 막아냈구요.”

“근데 일본은 후쿠시마라는 특이점 때문에 문제가 생긴거구나.”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때 카메라가 고블린에게 공격을 당해서 파괴된 것인지 영상이 끊어졌다. 위치로 보아서 드론이었던 것 같다.

“우리 일이나 하러 가죠.”

“그래.”

난 아버지와 집을 나섰다.

***

회사에서는 내가 새로 생기는 자회사에 파견직으로 나가게 되었다고 이미 알려졌다. 겨우 하루 만에 이렇게 전격적으로 움직일 줄은 몰랐는데.

“최 대리, 아니 이제 최 과장인가?”

“갑자기요?”

“파견 나가면 이제 자네 직급은 과장일세. 그럴만 하니까.”

그러면서 내게 다가와서 귓속말을 한다.

“더 높게 해주면 문제가 될 것 같아서. 자네 아버님이 사장이라는 것도 비밀이니까 알아서 처신하게.”

“아, 네.”

“그래서 자네와 함께 파견 나갈 직원들을 추렸네. 이따가 명단 받아가도록 하게.”

“네, 부장님.”

회사에서 정신이 없었다. 매점 이모는 달걀을 달라고 성화였고, 당장은 아버지 양계장이 지진으로 무너져서 공급할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양계장이 지진이 나서 무너졌는데, 달걀을 계속 공급하면 안 그래도 이상한데 더 이상해지니까. 다른 직원들은 선우네 가게에서 구입을 하라고 알렸기에 나를 귀찮게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난 회사 입사 후에 두 번째로 사장님을 만날 수 있었다. 사장님은 뭔가 사장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어려울 것 같은 사람이었지만, 의외로 말도 잘 통하고, 내 비밀을 잘 가려주겠다는 약속도 받았다. 대신에 수박의 공급이 끊이지 않게 해달라는 나름 귀여운 부탁도 하신다.

뭔가 서류도 준비를 하셨고, 심지어 사무실까지 마련을 해주었다. 아버지가 사무실을 알아보러 가셨는데 말이다. 난 바로 아버지에게 연락해서 회사에서 준비한 사무실로 가시라고 알려드렸다.

“앞으로 기대가 크네.”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혹시 이거.”

“이게 뭔가?”

“체온을 유지해주는 조끼입니다.”

내 말에 사장님이 깜짝 놀란다.

“그, 아이템이란 말인가?”

“네. 원하는 체온으로 유지하게 만들어주니 속에 입으시면 됩니다.”

“허허, 이런 귀한 것을.”

귀한 것이 맞다. 밖에서는 부르는 게 값일 거다. 하지만 어차피 소문을 은근히 내야 하고, 이런 물건을 소화하려면 사장님 정도 되야 가능할 거다. 그래서 사장님에게 드렸고, 하나는 부장님께 드렸다. 재벌까지는 아니지만, 준재벌 정도 되는 집안의 사람들이니까. 우리 회사는 사장님이 오너지만, 사장님의 가문은 상당히 잘 나가는 집안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충분히 이런 물건도 소화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이 아이템의 값은 다른 걸로 치러야 하겠지?”

“설명드리지 않아도 아시리라 믿습니다.”

긴 말은 필요 없다는 것이 편했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말해보게.”

“주변에 혹시 통증이 심한 분이 있으십니까?”

“통증? 보통 나이가 들면 통증이야 어느 정도 달고 산다고 봐야되지 않나?”

“아, 노환으로 인한 통증도 포함되긴 하겠네요. 그보다는 CRPS환자 같은 극한 통증을 가진 환자도 필요합니다.”

“다른 아이템이 있나보군.”

“네.”

내가 조끼를 내밀자 사장의 눈이 반짝인다.

“이것도 조끼군.”

“무리 없이 입을 수 있으니까요.”

조끼라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속에 입어도 그만이고.

“마침 한 명이 있네. 내 친구의 동생인데 연예인이야. 박성환이라고 자네도 들어봤지?”

“아, 제가 좋아하는 배우네요.”

“그 친구가 갑자기 CRPS에 걸려서 활동을 중지했지.”

활동을 안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게 CRPS때문이라는 것은 몰랐다. 박성환은 30대 중반의 남자 배우로 훤칠한 키와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를 가진 배우다. 연기를 잘 하고 액션을 특히 잘했다. 그런 사람이 CRPS에 걸렸다면 정말 어려웠을 것이다.

“소개해주지. 여기 한 번 연락해보게.”

“네.”

난 사장님에게 연락처를 받은 다음에 회사에서 얻어준 사무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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