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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학개론-54화 (54/182)

제 54 화 이건 또 뭐지?

제 54 화 이건 또 뭐지?

사무실은 매우 깔끔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딱 필요한 정도의 넓이를 가진 곳이었다. 여기도 사장님 소유의 건물이라는 것을 보면 확실히 잘 사는 집이 맞는 것 같다.

“마음에 드세요?”

“썩 괜찮구나. 윗층이랑 여기랑 두 개층을 사용하면 된다는 거지?”

“네. 아버지 옛날 회사 분들도 가능하신분은 모셔오세요.”

“그래, 그렇게 하자.”

“회사는 아버지한테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알았다. 공장도 내친김에 내가 알아보마.”

“그럼 공장장님 연락처 드릴게요. 한국에서 사료를 만들 수 있는 공장이 그렇게 많지 않을 거거든요.”

“그래, 꼼꼼하게 알아보고 결정하마.”

“네, 그럼 전 볼일 좀 보고 올게요. 엄마가 만든 조끼 때문에.”

“그래, 갔다 와라.”

난 나오면서 사장님에게 받은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전 최시우라고 합니다.”

-아, 연락받았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전 내키지 않습니다.

당연한 거다. 돈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을 테니까. 그래서 내키지 않을 수도 있고, 사기로 생각할 수도 있을 테니까.

“입어보시고, 바로 효과가 없다면 가지고 가겠습니다. 그리고 딱히 돈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저로서도 테스터가 필요한 상황이라서요.”

-음······ 그런데 왜 저한테.

“사장님께 주변에 그런 분이 있는지 추천을 해달라고 했는데, 박성환 씨를 추천받았을 뿐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알겠습니다. 주소를 찍어드리죠.

“바로 찾아봬도 되겠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그럼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잠시 후에 문자가 왔고, 난 문자에 적힌 주소로 향했다.

***

“안녕하세요?”

“안녕하다고 인사를 하고 싶은데 솔직히 안녕하지 못하네요.”

“아, 죄송합니다.”

원래 시원시원하게 생긴 이목구비에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진 미남이었는데, 지금의 박성환은 상당히 신경질적이고, 초췌한 모습이었다. 아마도 CRPS진단을 받은 후에 많이 바뀌었을 것 같다.

“괜찮습니다. 그냥 제가 좀 예민한 거죠.”

“그럼 바로 한 번 확인해보시겠습니까?”

“제품 설명이나 그런 부분은 건너뛰나요?”

“네, 저도 부탁을 받은 거긴 하지만 이게 게이트에서 만들어진 물건이거든요.”

“아.”

게이트에서 만들어진 물건이라는 말에 박성환의 표정이 살짝 풀린다.

“여기 이 조끼를 입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박성환 씨는 매우 조심스럽게 웃옷에 조끼를 걸쳤다. 장갑까지 끼고 있는 것을 보니 닿기만 해도 고통을 느끼는 수준인 것 같았다.

“별다른 느낌은 없으신가요?”

내 질문에 박성환 씨는 장갑을 벗었다. 벗는 것 자체도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이미 익숙해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를 쳐다본다.

“어?”

“왜요?”

“고통이 안 느껴집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거의 안 느껴집니다.”

조끼의 옵션은 고통 감소다. 그러니까 고통을 완전히 없앤다는 의미는 아닐 거다.

“괜찮습니까?”

“몇 년 만에 이런 상태인지 모를 정도로 괜찮습니다.”

짝!

갑자기 박수를 한 번 치는 박성환 씨. 아마 평소라면 저런 행위를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하하하.”

“무리하시지는 마세요.”

“아뇨. 정말 괜찮습니다. 사람이란 말이죠. 큰 고통을 계속 느끼게 되면 작은 고통은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게도 됩니다. 지금도 손바닥에서 고통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평소에 비하면 정말······.”

박성환 씨가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정말 왜 이런 병에 걸렸는지도 모릅니다. 의사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어떤 사람은 마트의 카트에 부딪힌 것만으로도 걸리고, 어떤 사람은 정신적인 문제 때문에 걸리기도 하고, 그저 지나가다가 어디에 부딪힌 것만으로도 걸리기도 하고······.”

“몰랐네요.”

정말 몰랐다. 그런 무서운 병의 시발점이 되는 것이 저런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억울했습니다. 전 기부도 열심히 했고, 어디에서 갑질을 해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나한테 이런······. 크흑.”

난 박성환 씨를 토닥여주려고 손을 뻗다가 멈췄다. 접촉만으로도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읽을 적이 있어서다. 한참을 그가 진정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난 그에게 말했다.

“괜찮으시면 한 벌 더 입어 보시겠어요?”

“네?”

“이 조끼의 옵션이 고통 감소입니다. 그러니까 고통을 없애지는 못하지만 감소시켜준다는 것이죠. 그럼 혹시 중복해서 입으면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입어보겠습니다.”

박성환 씨가 바로 조끼를 하나 더 받아서 위에 입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손뼉을 친다.

짝!

“화, 확실히 더 줄었습니다. 이제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요.”

“그럼 하나 더.”

“네.”

총 세 벌을 입고서 그는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이 옷을 제발 자신에게 팔아달라고 사정을 한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에게 팔아주세요.”

“선물로 드릴게요.”

“아닙니다. 게이트에서 제작된 거라면 엄청난 가격일 텐데.”

“실험이 필요했다고 하니 그것으로 됐습니다.”

“하지만······.”

“대신 앞으로도 실험을 좀 도와주세요. 그리고 이 일은.”

“비밀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도 한 가지만 약속을 받고 싶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실험이 끝나면 저 같은 사람들에게도 옷을 팔아주십시오.”

“물론입니다.”

박성환 씨는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의 표정이 처음 그를 봤을 때보다 많이 좋아졌다. 그것으로도 만족스러운데 고통 감소라는 옵션이 중복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도 큰 수확이다. 이제는 조끼 형태와 다른 형태로 만들면서 고통 감소가 어느 정도 될지를 지켜봐야 될 것 같다.

***

박성환 씨의 배웅을 받으면서 난 그의 집에서 나왔다. 그리고 선우의 가게로 향했다.

선우는 게이트와 가게를 오가면서 물건을 팔고 있는데, 이미 물건들은 다 팔린 상태였다.

“왔냐?”

“어. 다 팔렸네?”

“당연하지. 하루에 한 시간만 장사를 해도 될 정도다. 개꿀.”

“꿀도 팔게?”

“영주님 정신 차리세요! 이런 사람 아니잖습니까!”

“알겠네, 김 집사.”

“큭. 근데 후쿠시마 난리가 아니라더라.”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와 본거다. 너 알던 헌터들은 그쪽 소식 뭐 들은 거 없다니?”

“그렇지 않아도 나도 궁금해서 여기저기 물어봤지. 다른 게이트 다니는 양반들도 연락해봤고.”

내가 선우를 찾아온 이유다.

“그래서 뭐라디?”

“그 중에 마당발인 양반이 있는데, 일본 헌터들 수준이 별로래. 뭐랄까? 쟤들 좀 이상하다고 그래야 되나?”

“이상해?”

“어, 레벨업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대부분이 10레벨 정도 되면 채집에 동원된다고 그러더라고. 일본은 게이트를 국가에 귀속시킨다는 얘기도 있고.”

“그게 되나?”

“워낙에 세뇌가 잘 되는 나라 아니냐.”

일본은 세뇌가 잘 된다. 그게 진짜 무서운 점이다. 자만당이 오랜 시간 장기집권을 해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총리가 문제가 있어도 기회를 줘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 2차 세계대전의 가해자이면서 피해자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 이게 일본이다.

그러니 어쩌면 게이트는 국가의 자산이라고 하면서 돈을 쥐어주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물론 그렇게 간단할 것 같지는 않지만. 저들의 사고방식은 보통 우리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으니까.

“그래서?”

“이번에 동원된 헌터들도 그렇다고 하네. 그 중간중간 자위대 소속의 헌터들이 분위기를 잡고.”

“아, 그 반자이 돌격?”

“봤냐?”

“봤지. 실시간으로.”

“얘기를 들어보니 헌터들이 거의 전멸했다고 그러더라. 그래서 한국에 도움을 요청한다고 하던데?”

“헐, 그걸 돕는다고?”

난 황당하다는 것을 감추지 않고 물었다.

“대가가 크다면?”

대가가 크다면 가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얘기를 하더라고.”

“재미있는 얘기?”

“어, 게이트를 흡수할 기회라고. 말을 하다가 멈추긴 했는데 말이지.”

“게이트를 흡수한다라······.”

게이트를 흡수한다는 말은 아무리 봐도 이상한 말이다.

“정말 그렇게 말했단 말이지?”

“어, 어디가서 비슷한 얘기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던데?”

그렇다면 정말 실수로 말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 게이트를 흡수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어쩌면 영지전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중세 시대에 영지를 파는 방법 중에 그런 것이 있었다고 들었다.

가짜로 영지전을 벌이고, 영주가 항복을 하는 형식. 군주의 눈을 피해서 영지를 거래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이런 일이야 어차피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언제든 벌어지는 일이니까. 지금도 회사 중에 그런 곳들이 있지 않은가. 의도된 부도를 내고 회사를 매각하는 것 같은 일.

아마도 일본의 게이트를 흡수한다는 것도 그런 식이 아닐까 싶었다.

“게이트를 흡수한다라······. 우리도 가능할까?”

“뭘? 일본에 원정가는 거?”

“아니, 미쳤냐? 거길 왜 가냐? 내가 말하는 건 게이트 흡수라는 거.”

“음 잘은 모르겠다만 가능하기는 하지 않을까? 아버님 말씀대로 결국은 이 게이트는 영지잖아. 영지전도 시스템은 인정할 것 같은데? 영주로 임명한 것도 시스템이잖아.”

그때였다.

-영지전 메뉴를 활성화 하시겠습니까?

시스템이 나에게 응답했다.

‘영지전 메뉴를 활성화 하면 우리가 공격당할 수도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차피 시스템이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은 활성화 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리라.

‘활성화한다.’

그러자 영지의 정보가 변경되었다.

[시호영지]

규모: 중소.

영지민: 107인.

영지 버프: 생산량, 생산속도 증가.

섬에 위치한 중소규모의 영지다. 영주가 매우 부지런하고, 영지민의 충성도가 높다. 영지의 생산량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현재 영지전이 가능한 상태이나, 지구 시간으로 한 달간은 먼저 공격받지 않는다.

우리 영지가 소규모에서 중소규모로 바뀌었다. 영지민이 107인이 되었다는 것은 오크들이 번식을 더 했다는 의미일테고. 무엇보다 영지전이 가능한 상태라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 이제 영지전 가능하다.”

“뭐? 미친.”

“그런데 아직 공격받지는 않는다고 그러네. 지구 시간으로 한 달은.”

“준비를 해야겠네.”

“그렇지.”

“참, 나랑 같이 헌터 하던 팀원들한테 물어보니까 네 게이트에 들어갈 의향이 있다고 그러더라. 사람들은 좋아.”

“그렇지 않아도 전투 인력이 필요했는데 잘 됐네. 한 번 만나보자.”

“그래, 자리를 마련하마.”

선우와는 게이트 안에서 만나기로 하고 난 집으로 가서 게이트를 건넜다.

***

“오빠! 어디 갔다가 이제와.”

“회사갔다 왔다. 왜?”

“고블린들이 사라졌어. 아까 재료구하려고 고블린들 잡으러 갔었는데 1도 없다.”

“뭐? 고블린들이 사라져?”

시연이의 말에 난 깜짝 놀랐다. 섬에 있던 고블린들이 사라졌단다. 그런데 후쿠시마에는 고블린들이 대량으로 등장했다. 그럼 그 고블린 중에 여기서 간 고블린도 있나? 뭔가 확인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고블린들이 있는 곳으로 갔더니 처음 보는 것이 눈에 보였다.

“게이트?”

게이트였다. 그리고 저 게이트가 고블린들이 사라진 이유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건 후쿠시마로 이어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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