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5 화 반려 동물의 의미.
제 55 화 반려 동물의 의미.
게이트 앞에서 난 한참을 생각했다. 저 게이트는 분명히 후쿠시마로 향한다. 이건 거의 백프로라고 본다. 그렇지 않고서야 여기에서 잘 살던 고블린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리가 없으니까.
나름 사냥을 할 때 우리는 고블린의 개체수를 조절했다. 숲의 초입에 사는 고블린들은 우리 영지의 자산이다. 당장 우리 가족들이나 선우에게는 경험치가 안 되는 놈들이지만, 풋풋하게 자라나고 있는 오크 꿈나무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경험치 공급원이 되니까.
그래서 언젠가부터 조절을 하고 있던 녀석들이 몽땅 사라졌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가끔 닭도 투하해주고, 나름 먹고살 수 있게 해주고 있는데 말이다. 결국 결론은 그놈들은 은혜도 모르고 후쿠시마로 갔다는 얘기. 물론, 이게 자의로 간 것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여기에 게이트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난 게이트에 관찰을 사용헸다.
-관찰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이름: 한시적 쌍방향 게이트 91B(소유자: 없음).
사용기한: 지구 기준 30일.
게이트의 정보가 떴다. 한시적 쌍방향 게이트라는 것은 저쪽에서 이쪽으로 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것으로 저 게이트가 후쿠시마로 향한다는 것은 거의 확신이 되었다. 그렇다고 후쿠시마로 들어갈 생각은 들지 않는다.
고블린들은 무서울 것이 없다. 1만이라고 해도 시간이 걸릴 뿐이지 다 처리할 자신도 있다. 내게는 최강의 라이터가 있으니까. 그 정도면 학살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방사능 피폭이다.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못 가지.”
밖에서 방사능 방호복을 사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근데 그게 일반인들에게도 파나? 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어머니에게 향했다. 박성환 씨의 경우로 고통 감소를 중첩해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
“어? 이게 왜 튀어나오지?”
어머니의 신제품이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리고 이것은 시스템의 농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물건이었다.
아이템: 비단 조끼(7레벨).
모든 외부의 오염과 병균을 막아준다. 숙련되어가는 재봉사가 만든 제품으로 내구성도 뛰어나다. 화살이나 독침 같은 것에 강한 저항력을 가진다.
“왜? 옵션이 별로니?”
“아뇨. 옵션이 너무 뛰어나서요. 이게······.”
“음 오염과 병균을 막아준다라니. 애매한 것 아니니?”
“포인트는 모든 오염이죠. 즉, 후쿠시마 원전 사고 났던 지역으로 가도 멀쩡할 거라는 얘기구요.”
“어머, 그럼 방호복 역할도 한다는 거니?”
“네, 아마 바이러스도 침투를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방호복으로는 완벽하겠네요. 여러모로.”
“그렇구나. 그럼 일단 몇 벌 더 만들어야겠네. 우리 가족들이 상시 입고 다닐 수 있도록.”
“아, 그게 좋겠네요.”
후쿠시마만 생각했는데, 어머니는 가족의 건강을 생각하신다. 확실히 이런 부분은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다. 그리고 난 어머니에게 한 가지를 더 부탁드렸다.
“엄마, 호야가 입을 수 있는 것도 하나 만들어주세요. 아, 까망이 것도.”
“그래. 바로 만들어줄게.”
내가 가면 호야도 가는 거다. 아마 내가 안 데려가려고 해도 따라올 것이다. 그렇다면 호야에게도 예쁜 색동 저고리를 입혀줘야 하지 않겠는가. 싫다고 질색을 하겠지만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 지금은 입힐 수 있을 것 같다.
강아지들도 싫어하는 애들은 싫어하지만 옷을 입히는 것은 크게 난이도가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고양이에게 옷을 입히는 것은 매우 힘들다. 일단 고양이가 고장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고장난 고양이라고 아마 너튜브에 검색해보면 나오는 영상들이 있을 것이다. 고양이는 옷을 입으면 못 움직이는 애들도 많다. 심한 스트레스를 주는 행위이기에 스트레스에 취약한 고양이에게는 하지 말아야 한다.
호야의 경우는 고장까지는 아니지만 매우 싫어한다. 그래서 예전에 산타 옷을 큰맘 먹고 샀다가 겨우 옷을 입히고 사진만 후다닥 찍고 벗긴 적이 있다.
“엄마, 호야것은 색동 저고리로 부탁드려요.”
“호호호. 그래.”
난 가뜩이나 귀여운 호야에게 색동 저고리를 입혔을 때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돌아섰다.
퍽!
호야가 갑자기 날아와서 내 뒤통수를 때린다. 내가 먼저 색동 저고리로 뒤통수를 치려고 했는데 당했다.
“왜? 뭐? 나 거기 갈 건데 넌 안 가게?”
냐앙.
“뭐? 내 표정이 불순했다고? 뭐가? 난 우리 귀여운 호야를 생각했을 뿐인데?”
호야가 꼬리를 세우고 내 주변을 맴돌면서 나를 관찰한다. 내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하지만 난 진실을 말했다. 뭔가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짓지만 난 떳떳하니까 그냥 넘어갔다.
“좀 있다가 고블린들 간 곳으로 가보자.”
냐앙.
다행히 위험하다고 얘기를 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가도 좋다는 거다.
“까망이도 데리고 가자. 거기 넓을 수도 있으니까.”
냥!
알았단다. 그래서 난 까망이를 준비시켰다. 그때 시연이가 다가왔다.
“따라와라, 인간.”
“오늘은 뭔 컨셉이냐?”
“난 자랑스러운 부르티아의 후예다. 예의를 갖춰라!”
“놀고 있네. 후예는 나고, 넌 나한테 배웠고.”
“아, 그런가?”
하긴 쟤가 나보다는 후예에 더 어울리긴 한다.
“그래서 왜 따라오라는 건데?”
“오빠를 위해서 이 어여쁜 미녀 대장장이가 준비를 한 것이 있지.”
“시끄럽고, 가자.”
“쳇.”
시연이를 따라가보니 매우 익숙해보이는 그 무엇이 있었다.
“강철맨?”
“음하하하하하. 찬양해라, 오빠놈아.”
뭔가 어설퍼 보이고, 색도 좀 다르긴 하지만 분명히 내 기억에 있는 강철맨의 상철 슈트였다. 문제는 어설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님아, 하의 실종 패션이 갑옷에도 적용되는 거였니?”
이게 문제다. 하의는 없다는 것.
“그게 내가 피규어를 상체만 가지고 있어서 말이지.”
당장 나가서 하의까지 갖추고 있는 강철맨 피규어를 사다줘야겠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든다.
“일단 보자.”
-관찰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아이템: 강철맨의 레플릭카 슈트(5레벨).
방어력: 322~431.
효과: 체력+10, .
강철맨의 슈트를 흉내내서 만든 갑옷이다. 강철맨의 기능은 전혀 없다. 하지만 방어력이 뛰어나다.
효과는 훌륭했다. 강철맨의 레플리카 슈트라고 시스템이 인정할 정도. 물론 여전히 하의 실종이라는 큰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
“하의를 대충이라도 만들어주련?”
“내 장인의 자존심이 용서치 않아! 마음이 시키지 않는 물건은 만들 수 없다!”
시연이의 말에 난 녀석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그러자 여기저기 상처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힐.”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마법 같은 마법인 힐로 시연이의 상처들을 치료해주었다. 나름 나를 위해서 이런 것들을 만들다가 저렇게 상처가······.
“아, 아까 자빠져가지고.”
아니었구나. 그냥 자빠진 거였구나.
“아무튼 하의는 용납할 수 없어. 정 허전하면 저기서 가져가던가.”
시연이가 가리킨 곳에는 내가 언데드한테 얻어온 갑옷이 있었다. 나름 두 벌은 전시를 해두고 있었다. 그 중의 하나의 하의를 벗겼다. 기분이 더럽다. 그래서 하의를 챙겨입어보니.
“가관이네. 어른들이 이럴 때 가관이라는 말을 쓰는 구나?”
시연이의 말처럼 가관이었다.
“됐고, 오빠 며칠 못 들어오니까 부모님 말씀 잘 듣고.”
“후쿠시마 가려는 거지?”
“어떻게 아냐?”
“아까 잠깐 나가서 보고 왔거든. 솔직히는 나도 가고 싶지만, 난 오빠의 발목을 잡는 소설 속 여동생은 아니고 싶어서 참는다.”
“딱히 발목이 잡힐 것 같지는 않다만. 아직 안전한지 확인이 안 되었으니 오빠만 다녀오마.”
“아까 거기로 가는 거지?”
게이트는 시연이도 보았을 것이다.
“어, 대충 상황만 보고 올거야.”
“알았어. 잘 다녀와.”
“그래. 많이 컸네, 내 동생.”
그렇게 말하면서 시연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데.
“진짜 컸는데?”
평소와 위치가 다르다.
“훗! 우유에 커피를 타서 마시고 있지. 커피 우유다.”
우유가 성장을 촉진시킨다더니 우리 시연이는 아직 클 키가 남아 있었나보다. 대충 보니 예전보다 한 3센티미터는 더 큰 것 같았다. 예전에는 162였는데 지금은 165쯤 되어보인다. 참 잘 자라는 동생이다.
“커피는 꼭 마시고.”
“기분 나빠.”
“응, 아니야.”
커피를 마실 대 우리 시연이는 참 좋은 아이다. 안 마시면 애가 약간 맛이 가는 느낌이고. 아무튼, 좋은 커피다.
난 조금 쉬다가 어머니한테 가서 호야와 까망이의 옷을 챙겼다. 그리고 나서 호야와 까망이를 타고 숲으로 들어갔다.
***
게이트를 건너오니 숲이었다. 후쿠시마의 어딘가로 예상되는 곳. 게이트 안에서는 작동되지 않던 스마트폰의 전원이 들어온다. 이것으로 이곳이 게이트 안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물론 신호는 잡히지 않는다. 로밍을 하지 않았으니까. 나름 불법 입국인데 로밍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냐앙!
주변을 둘러보는데 호야가 내 다리를 툭 친다. 그리고는 한 방향을 가리키더니 재빨리 달려간다. 난 그런 호야를 따라서 까망이를 몰았다.
“확실히 일본이긴 한가보군.”
호야가 서 있는 곳 앞에는 일본식 가옥이 있었다. 일본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그런 가옥.
냐앙.
호야의 울음 소리가 이상하다. 슬프게 들린다.
“왜?”
냐앙.
호야가 안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나도 까망이한테서 내려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 안에 숨을 헐떡이고 있는 강아지 한 마리가 있다.
“힐!”
난 곧장 강아지한테 힐을 퍼부었다. 몇 번이나 계속해서 힐을 하자 강아지가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난 그런 강아지를 가만히 살펴보았다.
-관찰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관찰(액티브) 스킬의 레벨이 9로 오릅니다.
이름: 레오.
반려인: 요시모토 하카시(사망).
요시모토 하카시의 반려견이다. 게이트의 주인인 요시모토 하카시가 사망함에 따라 게이트를 인계받았다.
특이사항: 요시모토 하카시의 사망을 받아들이지 못함. 게이트 안에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게이트를 오픈시킴.
숨이 컥하고 막히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레오의 주인인 요시모토 하카시라는 인물이 게이트의 주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주인이 죽으면서 게이트의 권리가 레오에게 넘어간 것. 그런데 정작 레오는 요시모토 하카시의 사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늘 그렇듯이 게이트 안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게이트를 계속 열고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 틈에 고블린들이 튀어나왔고, 고블린들은 레오를 죽이면 게이트가 닫힌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기에 레오를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이트 안에서라면 얼마든지 게이트 주인이라도 공격을 하는 놈들이지만, 게이트 밖에서라면 다를지도 모른다. 게이트 주인이 죽는다는 것은 게이트가 닫힌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닐까?
끼잉, 끼잉.
레오가 하염없이 게이트를 바라본다. 저 게이트는 내가 온 게이트와 다르다. 관찰로 살펴보니 쌍방향 게이트였다. 레오는 자기가 죽어가면서도 하염없이 게이트를 바라보고 있다. 원래 악의를 가진 인물이 게이트를 오픈시켰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크게 벗어났다. 레오는 그저 주인이 저 안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난 사진을 보았다. 그리고 요시모토 하카시가 동물들을 살리기 위해서 이곳에 들어와서 살던 그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하아, 미치겠네."
욕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