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 화 분노하다.
제 56 화 분노하다.
난 레오를 안아 들려고 했다. 그런데 기운도 없는 녀석이 그것을 거부한다. 내 손을 핥는다. 강아지나 고양이가 특정 상황에서 핥는 것은 애교가 아니다. 하지 말아 달라는 의미다. 성격이 좋은 아이들의 거부 의사라는 얘기다. 결국, 난 레오를 안아 들 수 없었다. 그대로 게이트 앞에 내려주고, 레오를 회복시키는 데 집중했다.
힐이라는 것이 외상에는 무척이나 좋은 마법이지만, 그게 내상까지 치료를 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혹시 몰라서 난 호야에게 말했다.
“호야, 할머니한테 가서 강아지 옷 한 벌만 받아올래?”
냥!
호야는 즉시 대답을 하고 우리 게이트로 향했다. 그사이에 난 레오의 주인이 어떻게 죽었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일단 하카시라는 사람의 시신은 여기에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죽는 모습을 레오에게 보여주기 싫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변을 더 둘러보다가 숨겨진 곳에서 두꺼운 일기장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난 일본어 스킬이 3레벨까지 오른 상태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레오를 찾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레오를 데리고 피난처로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레오는 이미 피폭을 당한 상태였다. 그리고 피폭당한 강아지는 불길하다며 사람들은 레오를 데려오는 것을 극렬히 반대했다. 그렇게 강아지가 안타까우면 가서 같이 살라고 말한다. 그래서 난 이곳에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하카시라는 사람이 왜 이곳에 살게 되었는지를 말하고 있다. 방사능은 피폭자는 전염병 환자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불길하다면서 거부를 했단다. 그래서 하카시는 레오와 함께 집에서 살기로 했고, 그랬더니 동네에서 온갖 동물들이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동물들을 돌보며 살게 되었다고.
매일 약을 먹으면서 동물들과 함께 지내는데 한 마리씩 곁을 떠나갔단다. 그럴때마다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던 자신이 혐오스럽다는 이야기도 써 있다. 그러다가 게이트가 나타났다고 한다.
게이트가 나타났으니 게이트를 신고하고 동물들의 치료와 연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국가에서는 게이트의 권리만을 원했고, 어느 날 레오를 안고 병원에 다녀오니 주변의 동물들을 죽이고 있는 헌터를 보았다고 한다.
‘너희들도 몬스터지? 킥킥’이라면서.
하카시는 즉시 그 헌터의 능력을 회수했다. 그랬더니 죽이겠다고 협박을 했단다. 어차피 곧 죽을 거라 생각하던 하카시는 죽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들이 나중에 몰래 와서 레오를 인질로 잡았단다.
아픈 레오를 미끼로 게이트를 이용하려고 한 것이다.
“하, 진짜 이 개새끼들을.”
내 눈앞에 있다면 미노타우르스 머리를 부수듯이 부술 자신이 있다. 얼마든지 부술 수 있다. 그런 놈들은 인간이 아니니까. 인간이라면 최소한의 양심이라는 것 정도는 있어야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 테니까.
점점 내 안에 분노가 차오른다. 난 계속해서 일기를 읽었다. 그러자 놀라운 부분이 있었다.
게이트에 들어가니 방사능 피폭 증상이 완화되었다는 부분이다. 내가 이미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 있던 이유가 있던 것이다. 아마 이것도 게이트 주인이기에 가능했으리라. 일반 헌터에게 그런 능력이 주어진다면 모두가 게이트를 가겠다고 난리를 쳤을 테니까.
하카시는 레오를 안고 사람들이 뜸한 시간에 들어갔었다고 한다. 입구까지만.
그래서 레오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고 적혀 있다. 레오가 게이트 주인의 반려동물이기에 같은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그럼 왜 죽은 거지?”
일부러 죽기를 바랐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렇다고 레오를 두고 죽는다? 이건 말이 안 된다. 난 하카시가 피폭으로 인해서 사망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자기 강아지를 돌봐줄 사람이 없는데 혼자 죽는다? 살 방법이 있는데?
뭔가 말이 안 된다. 그래서 계속 일기를 읽어 보았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았다.
“자위대란 말이지.”
자위대 때문에 하카시가 죽은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냐앙!
호야가 돌아왔다. 난 호야가 물고 온 강아지 옷을 레오에게 입혔다. 레오는 그것도 거부하려고 한다. 그런 레오에게 말했다.
“레오. 내 말 잘 들어. 네 주인을 누가 죽였어. 그리고 난 네 주인을 죽인 사람을 찾아갈 거야. 그런데 넌 여기 있을래?”
끼잉, 끼잉, 끼이잉.
저건 흐느끼는 거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지금은 느껴진다.
-동물 친화(패시브)스킬의 레벨이 9가 되었습니다.
동물 친화 스킬의 레벨이 올랐다. 하지만 그것이 전혀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더 아파왔다. 레오의 절망과 상실감, 그리고 분노가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왕왕!
레오가 몸을 일으키더니 내게 짖는다. 옷을 입혀달라는 거다. 난 레오에게 옷을 입혔다. 옷을 입은 레오가 몸을 일으킨다. 레오는 포메라니안이다. 이 작은 아이가 분노로 몸을 떨고 있다. 그러더니 레오의 몸에서 뭔가가 내게로 전해진다.
-쌍방향 게이트 HF842의 소유자가 당신에게 소유권을 넘기기 원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메시지를 보고 난 레오를 보며 말했다.
“레오, 네가 가지고 있어도 돼.”
왕!
“네 주인의 복수를 도와달라고? 이런 것은 없어도 된다고?”
왕왕!
레오의 나이는 10살이 훌쩍 넘었을 것이다. 하카시의 이야기를 보면 후쿠시마 원전 사태 때도 레오는 있었을 테니까. 지금까지 살아 있던 이유는 게이트 주인인 하카시의 반려동물이기 때문일 거다. 그러니 레오는 나름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을 나이라는 거다.
아마 사람들이 이 게이트를 탐냈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하고 있으리라. 그래서 나에게 딜을 거는 거다. 게이트를 줄테니까 자신을 도와달라고. 사실 게이트를 주지 않아도 난 도울 생각이지만.
“네 주인과 추억이 있는 곳인데 네가 그냥 가지고 있어도 돼. 난 게이트를 주지 않아도 널 도울거야.”
내 말에 레오가 나에게 다가온다. 내가 레오에게 눈높이를 맞추니 레오가 내 얼굴을 핥는다. 이건 거절의 의사가 아니라 친밀감의 표시다. 그냥 받아달라는 거다. 즉, 얘는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는 거다.
“레오.”
왕왕!
다시 메시지가 뜬다. 결국 난 레오의 뜻을 받아들였다.
-쌍방향 게이트 HF842의 소유권을 양도받았습니다. 해당 게이트의 위치는 시호 영지로 이동됩니다.
메시지와 함께 게이트가 사라진다. 그 게이트를 레오는 애잔한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나를 보며 다시 짖는다.
왕왕!
“그래, 도와줄게. 가자.”
복수를 내가 대신 해줄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 레오의 한이 풀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난 레오가 직접 복수를 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레오, 나한테 길들여져줄래?”
레오를 돕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 난 얘를 버스태울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왕왕!
레오가 받아들였고, 시스템이 인정했다. 그래서 우리는 영지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레오가 반대했다. 그리고 나를 이끌기 시작했다. 그래서 레오를 따라가니 고블린이 눈에 들어왔다.
으르르릉.
레오는 고블린을 보고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고블린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는다. 그런 고블린에게 난 공포를 사용했다.
끼에에엑!
고블린이 몸을 사시나무 떨 듯이 떨기 시작한다. 그리고 레오는 곧장 고블린에게 박치기를 한다. 하지만 고블린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러자 호야가 나서서 고블린을 쓰러트렸다. 그리고 레오가 고블린의 목을 물어뜯는다.
놀랍게도 레오는 레벨업을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하카시의 집 주변에 있는 고블린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
관찰로 살펴본 레오의 레벨은 25다. 웬만한 헌터들보다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왜 그런지 몰라도 레오는 자신의 게이트에서 나온 고블린을 잡을 때 경험치를 많이 받았다. 어쩌면 자신이 싼 똥을 자신이 치우라는 게이트의 의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한창 고블린들을 잡으니 레오의 레벨은 결국 30레벨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놀라운 변화.
레오에게 스킬이 생겼다. 그것도 ‘거대화’라는 스킬이었다. ‘거대화’를 사용한 레오는 그레이 울프만큼 거대해졌다. 여전히 생긴 것은 가위컷을 한 포메라니안의 모습이라 귀엽다는 것이 나름 웃긴 부분이긴 했지만. 그런데 그것은 작은 레오를 내가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고, 하얀털을 가진 레오의 거대화는 하얀 늑대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해진 레오는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거대해진 상태로 레오는 고블린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이미 하카시의 집 주변은 다 정리했고, 이젠 후쿠시미 전역으로 돌아다니면서 고블린을 정리한다. 그렇게 잡은 고블린의 숫자가 거의 3천에 달한다. 그리고 35레벨까지 올랐다.
***
레오의 레벨을 올려주고 있는데 저 멀리서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잠깐만요! 거기 헌터입니까?”
“······.”
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가 다시 말한다.
“허가 없이 여기서 사냥하시면 안 됩니다. 어서 나가세요.”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허가없이 사냥을 하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한다.
“허가가 왜 필요하지? 몬스터는 죽여야 되는 것 아닌가?”
“그것은 우리 자위대가 알아서 할 문제입니다.”
“알아서 해서 이런 상황을 만들었나?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도록?”
“좋게 말하니까 내가 우습나? 난 대일본 제국의 자위대 간부다! 감히 내가 좋게 말하는데 어디서 말대꾸야!”
자위대 간부란다. 그래서 난 물었다.
“하카시는 어떻게 한 거지, 랜?”
“어, 어떻게 내 이름을? 누구냐?”
난 강철맨 레플리카 슈트를 입고 있다. 그렇기에 상대는 내가 누구인지를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난 관찰로 저놈 랜이라는 이름을 가진 놈의 정보를 볼 수 있다.
놈의 레벨은 24. 고렙 헌터가 보통 20이라고 믿고 있는 선우의 입장에서는 초고렙에 해당하는 놈일 거다. 하지만 옆에 있는 레오보다도 한참 레벨이 낮다.
“대답해라. 아니면 공격하겠다.”
놈의 말에 난 양손을 들어 올렸다. 공격할 뜻이 없다는 듯이 그러자 조금 안심하는 것 같다. 그때 난 호야에게 말했다.
“호야 고블린 좀 몰아와.”
냥.
호야는 재빨리 움직였다. 아마 잠시 후면 고블린들이 잔뜩 등장할 것이다.
“난 하카시의 친구다. 그런데 하카시는 이미 사망한 것 같더군. 하카시의 일기장을 보니 네놈들이 하카시에게 못된 짓을 한 것 같은데?”
“마, 말도 안 돼. 그놈에게 너 같은 친구가.”
“말 너무 막 하는 거 아냐? 후회할 텐데?”
“흥!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네놈이 고블린들을 사냥하는 것을 봤다. 테이머인가? 운 좋게 늑대를 길들였다고 해도 결국 본체는 약할 텐데? 그리고 우리에겐 이것도 있지.”
총이다. 놈이 총을 꺼냈다. 저건 좀 무섭긴 하다. 하지만 나도 믿고 있는 부분이 있다.
“쏴봐.”
“이, 이놈이.”
“그 전에 대답부터 하고. 랜, 네가 죽였냐? 하카시를?”
“이익!”
탕! 툭.
놈이 나를 향해 총을 쐈다. 하지만 총알은 내 앞에서 그대로 멈췄다. 벽에 부딪친 것처럼. 이 현상은 하나다. 게이트에 속한 헌터는 게이트의 주인을 공격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이번 공격에 놈은 알았을 것이다. 자신이 속한 게이트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친절한 시스템이 알려줬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