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 화 너희가 원한 게 이런 거야?
제 57 화 너희가 원한 게 이런 거야?
총을 쏜 랜은 황당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헌터가 등장한 시대에 총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당연히 소용이 있다. 게이트 밖에서는.
게이트 안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총이지만, 게이트 밖에서는 여전히 잘 작동하고, 사람도 잘 죽여주는 것이 바로 총이라는 무서운 무기니까.
아직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스킬, 예를 들어 ‘실드’같은 스킬은 생기지 않았다. 이건 내가 사용하는 것은 실드가 아니라······ 어? 아닌 게 아닌가? 내가 사용하는 것이 아닐뿐 시스템이 나에게 실드를 만들어 주는 거 아닌가?
마침 랜은 나에게 다시 총을 쏘려고 하고 난 이번에는 집중해서 게이트가 만들어주는 실드 스킬을 관찰했다.
탕!
총알이 나를 향했고, 당연히 게이트가 쳐주는 실드 스킬이 펼쳐졌다. 실드 스킬은 촘촘한 벌집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외부에서 가해지는 충격을 상쇄시키는 구조로 보인다.
‘조금 더.’
내 말을 알아들은 걸까? 랜은 소총을 자동으로 두고 나에게 그대로 갈기기 시작했다.
투두두두두두.
틱틱틱틱틱틱.
랜은 멋진 놈이었다.
-관찰(액티브) 스킬의 레벨이 5로 올랐습니다.
-스킬 실드(액티브) 5레벨을 얻었습니다.
드디어 ‘힐’에 이어서 다시 마법이라고 할 수 있는 ‘실드’스킬을 얻게 되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게이트가 나를 보호할 때 사용한 것은 실드 스킬이었다. 난 즉시 실드 스킬을 사용해보았다.
‘실드’
다른 사람도 있으니 속으로 조용히 시동어를 외친다. 물론 안 해도 되긴 하는 것 같지만. 그러자 내 눈에 게이트가 만들어주었던 실드가 그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게이트가 사용하는 실드와 내 실드의 차이점이라면 누가 사용하냐 뿐일까? 실드는 5레벨로 시작했다. 관찰의 대상 레벨이 높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는 것은 게이트가 내게 사용하는 실드는 더 높은 레벨이거나 더 고차원적인 방어마법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
“아, 미안. 형이 잠깐 딴 생각을 하느라고. 아무튼, 이제 슬슬 정신 차릴 때가 되지 않았나? 랜, 다시 묻는다. 똑바로 대답해야 될 거야.”
“무, 무슨.”
“인정하기 싫어하는 것이 너희들 종특이라는 것은 알고 있으니까 닥치고 대답해. 하카시를 죽인 게 너냐?”
난 공포를 시전하면서 물었다. 그러자 나와 눈이 마주친 랜이 미친 듯이 떨기 시작한다. 거기에 바지에 지리기까지 했다. 랜의 주변에서 랜을 호위하듯이 있던 놈들은 이 상황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멍하니 있었다.
그럴 거다. 내가 공포를 사용한 것은 랜뿐이니까. 게임에서처럼 공포에 걸리면 미친 듯이 여기저기 뛰어나니면 좋겠지만, 내 공포는 그대로 대상을 얼어붙게 만든다. 이게 어쩌면 더 편한 것인지도.
“마지막으로 묻는다. 이번에 대답하지 않으면 넌 죽는다.”
“그, 그그그.”
“하카시를 죽인 게 너냐?”
하카시는 일기장에 자위대에서 자신에게 한 짓에 대해서 적어놨지만 정작 자위대의 누가 그랬는지는 적어놓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번거로운 작업을 하는 거다.
“나, 나, 나는 아냐. 나, 나는 아냐!”
“그럼 누가 그랬지?”
“야, 야마토 삼등육좌가 그랬어.”
“좋은 정보랑 이것저것 고맙네. 아, 이건 진심이야. 그래서 특별히 난 너를 죽이지 않을 거야. 네 부하들도.”
“저, 정말인가?”
“어, 난 안 죽여.”
“하지만 그 늑대는?”
“아, 레오? 못 알아보네? 얘가 하카시가 키우던 레오인데 말이지.”
“마, 말도 안 된다!”
“믿어달란 말은 안 해. 참고로 얘도 너희들을 공격하지 않을 거야. 이건 약속하지. 레오 알았지?”
크르릉.
레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놈들이 안심하듯이 한숨을 내쉰다. 그래서 난 놈들에게 선물을 안겨주었다.
“게이트 출입 권한 삭제.”
“헉!”
“이, 이런.”
“말도 안 돼!”
“그럼 잘 살아 봐.”
켈켈켈켈, 켈켈케.
헌터의 능력을 잃은 놈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수십 마리의 고블린들이 등장해다. 놈들은 호야를 피해서 도망치는 중이었고, 마침 도망가는 길 앞에 랜과 그의 부하들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난 살짝 레오와 까망이를 데리고 자리를 피했다. 약속은 지킨 거다. 나나 레오가 공격을 하지는 않았으니까.
“레오, 참아. 쟤들보다 더 중요한 놈이 있다고 하니까. 그런데 삼등육좌면 높은 놈인가?”
군대를 다녀왔지만, 내가 다녀온 군대는 한국군이기에 계급 체계가 다른 자위대의 계급에는 무지하다. 사실 관심도 없었고. 하지만 이제는 알아봐야 할 필요가 있었다.
“호야, 저기 떨어진 스마트폰 주워다 주면 안 되겠지?”
하아악!
“알았어. 내가 갔다 올게.”
호야는 방금 고블린들을 모아서 몰아왔기에 더 부탁을 하는 것은 내 목숨이 위험하다는 판단에 난 스스로 움직였다.
“저기, 이거 주인 분? 대답이 없으시네? 그럼 제가 좀 씁니다.”
물론, 대답은 할 수 없었을 거다. 고블린들과 미친 듯이 싸우······ 아니 먹히고 있다고 해야 되나? 그로테스크한 모습이지만 의외로 난 침착했다. 내 침착함에 시스템도 응답을 할 정도로.
-침착함(패시브) 스킬의 레벨이 6으로 올랐습니다.
난 더 침착한 놈이 되었다. 사실 어쩌면 선우의 말처럼 난 사이코패스까지는 아닐지라도 소시오패스 정도는 되는 인간이 아닐까?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뭐 중요한 거라고 오래 생각하겠는가. 스마트폰을 들고 난 돌아섰다. 그런데 고블린 한 마리가 나를 향해 다가온다.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호야는 무섭고 난 만만해 보이나보다. 그래서 라이터를 꺼내드는 순간.
키룩!
그 고블린의 옆에 있던 고블린이 놈의 팔을 잡아당긴다. 그리고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라? 너 나 아나 보다?”
키룩, 키룩.
모른척한다.
“모른척 하면 죽는다.”
그러자 땅바닥에 엎드려서 내게 절을 한다. 아마 살려달라는 거로 보인다. 나름 똑똑한 놈이라는 얘기다.
“야, 너 이리와봐.”
키키룩, 키룩키룩.
“안 죽여. 근데 안 오면 죽인다.”
그러자 재빨리 달려온다. 이걸 난 왜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느낌이지?
“너, 우리 게이트 출신이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왜 여기에 왔는지 알아?”
이번에는 고개를 젓는다. 아마 지들도 모르는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 영지의 고블린들은 자의로 이곳으로 온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다른 애들도 그래?”
끄덕끄덕.
얘들도 나름 피해자라고 해야 되나? 하지만 얘들은 몬스터다. 카락과 이놈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왜 얘들을 몬스터라고 단정짓느냐고 하면 얘들은 생산활동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편협한 기준이라고 할지 몰라도 나한테는 그렇다. 그래서 얘들은 영지민으로 받을 생각이 없다. 하지만 경험치 공급원이 필요했기에 녀석에게 말했다.
“볼일 끝나면 돌아와라. 안 그러면 다시 나를 만날 거다.”
키룩키룩!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가라.”
키루룩!
고블린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서 다른 고블린에게 뭔가를 떠든다. 그리고는 이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는다. 나름 똑똑한 고블린인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다가 난 호야와 애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
고블린들이 랜을 비롯한 자위대를 어떻게 했는지는 끝까지 보지 않았다. 사실 고블린 정도는 성인 남자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소설에 나오는 설정이 거짓이 아니라는 이야기. 하지만 숫자가 저렇게 많으면 그건 얘기가 다르다.
아마 랜과 그 일행들은 이미 고블린들의 양식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어야겠지만, 난 그놈들이 죽어도 싼 놈들이라 생각한다. 내가 손을 직접 쓰지 않은 이유?
간단하다. 그건 너무 편한 죽음일 것 같아서. 그래서 가장 끔찍한 고통 속에 죽으라고 고블린들에게 맡긴 것이다. 그렇게까지 해야 되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들이 하카시에게 한 짓을 보면 그것도 자비로운 거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난 누구의 스마트폰인지는 몰라도 잠금화면이 풀려있는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했다. 그리고 자위대에 대해서 검색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삼등육좌라는 계급이 우리나라로 치면 소령 정도 되는 계급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이 근처 어디에 자위대가 있는지도.
난 아까 그 고블린을 호야에게 데리고 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그 고블린이 잠시 후에 나를 찾아왔다.
“잘 들어라. 너희가 갈 길을 알려주마. 그러니까······.”
난 여러번 설명을 한 후에야 녀석이 말을 알아들은 것을 확인하고 최대한 많은 고블린들을 모아서 그곳을 공격하라고 했다.
죄없는 자위대원들도 있지 않겠냐고?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가 이렇게 고블린으로 난리가 나 있는데 자위대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 이미 그런 놈들은 국민을 지킬 생각이 없다고 봐야 된다.
심지어 그 부대에 있는 자위대원들은 대부분 헌터다. 그것도 하카시 소유의 게이트 안에서 헌터가 된 놈들. 그런데도 놈들은 고블린들을 막지 않고 있다. 랜의 말에는 사냥터라는 듯한 뉘앙스가 있을 정도였다.
그런 놈들을 위한 자비는 내게 없다. 대신에 다른 방향으로 간 고블린들은 잡을 생각이다.
“레오. 우린 다른 방향으로 간 고블린부터 처리하자. 하카시의 복수는 꼭 하게 해줄게.”
왕!
레오가 주변의 냄새를 맡더니 한 방향으로 튀어나간다. 난 호야를 안고 까망이에 올라탄 채로 레오의 뒤를 따랐다. 그러면서 스마트폰에서 일본이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는지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말도 안 되는 뉴스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재일한국인이 게이트의 주인? 일본에 앙심을 품은 재일한국인이 고블린을 풀었나?]
하카시의 집에서 난 그의 가족사진을 보았다. 재일한국인일 리가 없는 사진들. 그런데 일본의 언론은 이 사태를 재일한국인이 만든 일이라고 화살을 돌리고 있다. 그것도 교묘하게 물음표를 쓰면서. 아니면 그만이라는 듯이.
그 옛날 관동대지진 때 한국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고 외치던 그때처럼.
난 스마트폰에서 그것을 보고 고블린을 잡으러 가려던 걸음을 멈췄다. 고블린들을 꼭 내가 잡아줘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고블린을 잡으면 일본의 영웅이 재일한국인에게서 일본을 구했다는 식으로 나를 이용할 것이 뻔했다.
“호야, 어쩔까?”
냐앙.
호야는 내가 뭔 생각을 하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대신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나의 레벨업. 그런데 고블린들은 내게 경험치를 주지 않는다. 고로 우리 게이트로 돌아가자는 얘기다.
“레오 같이 가자. 너도 거기서 레벨을 더 올리고 오자.”
어차피 여기와 우리 영지의 시간비는 1:5다. 가서 대여섯 시간을 사냥하고 와도 여긴 1시간 정도일 뿐이다. 그러니 일단 가야된다.
그 사이에 일본이 어찌 될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죄없는 시민들은 구해야 하지 않냐고? 그런데 그들은 죄가 왜 없지? 선동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선동을 따르면 그들은 죄가 없는 건가? 그럼 그 죄없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을 만들어진 죄인들은? 그건 누가 책임지지?
내가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난 그렇게 결정했다. 어차피 내가 저들을 구해야 할 의무 같은 것은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