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학개론-62화 (62/182)

제 62 화 징벌의 시작 –2

제 62 화 징벌의 시작 –2

이토 히로시는 잘린 팔을 잡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난 조용히 말했다.

“소리 지른다고 누가 널 도와주러 오지 않아. 그리고 내 기분은 더 더러워지겠지?”

전생에 무슨 깡패였던가? 갑자기 협박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하지만 이건 협박이 아니라 진심이다. 정말 난 저놈을 잘근잘근 해체할 자신이 있다.

“힐.”

“헙!”

난 놈의 잘린 팔에 힐을 써주었다. 이렇게 자비로워도 되냐고? 절대 아니다. 저놈의 잘린 부위에 힐을 사용한 것은 다시는 팔을 붙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저대로 아물어 버릴 테니까. 아닌가? 아니면 말고.

“이게 무슨 짓이지?”

“왜 네 친구는 팔아먹고 네 팔 하나 잃어버리는 건 그렇게 속상해?”

“······.”

이토는 입을 다문다.

“이제부터 내 말에 잘 대답해야 할 거야. 아니면 넌 몸의 하나하나를 잃어버리면서 절대 죽지는 못할 테니까. 힐로 널 계속 죽지 않는 상태로 만들 생각이거든.”

잔인하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잔인한 짓이니까. 하지만 난 그렇게 할 것이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놈들에게는 얼마든지 잔인해질 필요가 있으니까.

“시우야······.”

오히려 선우가 말리려고 한다. 아마도 친구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일 테나까. 그렇지만 난 멈추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놈을 잘근잘근 씹어먹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퍽! 냥!

“어?”

호야가 내 뒤통수를 때렸다. 그리고 갑자기 정신이 확 든다.

“뭐지? 내가 왜······.”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인가? 아니다. 그렇다면 하카시가 나와 절친이었나? 당연히 직접 만난 적도 없다. 어느 정도 동질감은 든다. 반려동물을 위해서 삶을 포기했던 그의 마음이 이해가 갔었으니까.

그럼 레오 때문에? 레오를 위해서 복수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만, 이게 레오를 위한 복수인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건 게이트의 영향이다. 내가 게이트의 물건을 이것저것 내다 팔았던 것처럼.

“게이트 이 새끼.”

침착함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분노가 일어난다. 이것은 온전한 나의 분노다. 이전에 게이트가 나를 조종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 때는 그냥 넘어갔다. 그게 게이트 주인의 의무인가 보다 하고. 하지만 이건 아니다. 나에게 살육을 강요하고 있다.

“선우야, 저놈 잠깐 잡고 있어봐. 뭔가 이거 이상하다.”

“그래, 알았어.”

선우는 곧장 놈에게 다가가 놈을 포박한다. 그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선우에게는 이런 일이 익숙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뭐,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계속 이렇게 간섭한다면, 난 게이트에 다시 들어가지 않을 거야. 네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정확히 말해. 다시 나를 조종하려고 하면 차라리 죽어버리겠어.’

난 집중의 최대한 끌어 올려서 게이트에게 의지를 전달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

-스킬 침착함(패시브)이 진화합니다.

-스킬 명경지수(패시브, 액티브) MAX를 얻었습니다.

“이게 뭐하는 짓이지?”

갑자기 침착함 스킬을 진화시킨다? 나랑 장난 하자는 건가? 혹시나 해서 난 명경지수 스킬을 관찰해보았다.

-스킬 명경지수(패시브, 액티브) MAX.

항상 침착함을 유지한다. 스킬 소유자의 정신에 그 어떤 외부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액티브 스킬로 사용하면 대상의 정신을 보호한다.

그러니까 명경지수라는 스킬을 주면서 다시는 내 정신에 침범하지 않겠다는 의미인 것 같았다. 직접적인 메시지를 내게 전달하지 못하니 이런 방법을 쓴 것 같다.

난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템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일단은 여기서 넘어간다.

“이토 히로시. 잘 들어. 하카시는 죽었고, 하카시의 게이트 권한은 나에게 넘어왔다. 그리고 그 게이트는 보다시피 너희들이 찾을 수 없는 곳에 있어. 자, 그럼 이제부터 난 하카시에게 게이트를 받은 대가로 뭘 할까?”

이토 히로시가 인상을 쓴다.

“인상 펴. 어차피 너 아니라도 입을 열 놈들은 자위대에 가면 많을 것 같은데? 안 그래? 그리고 난 어떤 놈이 이 일을 지시했는지도 알아. 야마토 삼등육좌라는 놈이지?”

내 말에 이토의 표정이 굳어진다.

“그런데 이상하단 말이지. 겨우 이게 삼등육좌 나부랭이가 계획할 일로 보이지가 않아. 미스릴이라는 엄청난 보물을 그놈 혼자서 꿀꺽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그럼 윗선은 어디까지일까? 총리? 아니면 일왕?”

“······.”

“대답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참고로 난 그 모두를 죽일 수도 있는 사람이야. 애매하다? 그럼 일단 죽이지 뭐. 어차피 내가 누군지도 너희들은 모를 텐데. 그리고 다른 놈이 대가리로 올라와? 그럼 또 와서 죽이지. 계속 그렇게 죽이다보면 대가리가 되고 싶은 놈이 있을까?”

물론, 이건 허세다. 가능할지 아닐지는 모른다. 마음먹으면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은데, 현대에서 모든 단서를 피할 자신은 없다. 이게 문제다. 죽이는 것은 가능해도 그게 나라는 사실을 완전히 숨기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

솔직히 왜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게이트의 조종은 아니다.

“그리고, 네 가족들도 모두 같이 보내줄게.”

“이놈 그게 무슨!”

“넌 네 친구는 팔아먹었으면서 네 가족은 소중한가보지? 그건 너무 이기적인 거 아냐?”

가족이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고, 그 가족이 누군지 알 길도 없다. 하지만 이런 놈들은 똑같이 협박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내 말이 사실일 거라고 믿을 것이다. 왜? 자기는 그렇게 했을 테니까. 그래서 나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을 테니까. 악인에게는 악인의 방법으로 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자, 그럼 얘기를 시작해볼까?”

대뜸 팔부터 잘라버린 내 모습에 놈은 여러 가지로 머리를 굴리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토 히로시는 열심히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더 분노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하카시의 시신이 이곳에 없는 이유가 하카시를 데려다가 캡슐 같은 곳에 넣어두고 실험을 했다는 거다. 마약을 주사하면서 계속해서 생명유지 장치로 생명을 유지하려는 실험.

이미 하카시가 아니라 인부였던 사람들로 실험을 했었단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하카시에게 적용을 한 거고. 하지만 게이트는 그런 하카시를 죽게 해준 것 같다. 아마 하카시 스스로 죽기를 바랐을 테니까.

그게 아니라면 게이트가 하카시를 보호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실험을 했던 놈들은 하카시 게이트에 속한 놈들은 아닐 거다. 그랬다면 하카시에게 위해를 가하지 못했을 테니까. 아마 놈들은 그 사실도 알게 되었거나, 알았을 것으로 본다.

어쩌면 음흉한 일본은 게이트에 대해서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보자. 왜 하카시를 배신했지? 하카시는 네가 친구라고 네놈을 게이트에 들어가게 해주기도 했는데?”

“큭, 애초에 그런 것은 그런 놈이 가져서는 안 되는 거였으니까.”

“그렇군. 역시 쓰레기한테 이유따위는 없는 거군.”

난 그대로 이토 히로시의 목을 베어버렸다. 사람을 죽인 것이다. 그것도 직접적으로. 하지만 명경지수의 발현인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냥 냄새나던 음식물 쓰레기를 집안에서 수거통에 집어 넣은 느낌? 딱 이토 히로시는 그 정도의 인간이었다.

“오빠······.”

“시우야.”

“왜?”

두 사람은 머뭇거리다가 서로 고개짓을 하더니 결국 시연이가 입을 연다.

“길 알아?”

“뭐?”

“자위대 가는 길 아냐고.”

“아니.”

“근데 왜 벌써 죽여!”

아, 포인트는 저거였나보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닐 거다. 두 사람의 걱정스러움 표정은 감춰지지 않으니까.

“여기 일본놈 스마트폰.”

“아, 그렇지? 그럼 별 걱정 없겠······.”

띠루리.

전원이 꺼졌다. 충전을 안 했으니 당연한 건가? 두 사람의 표정이 굳는다. 그리고 나도 굳었다.

***

자위대로 향하는 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고블린 로드의 후보자가 길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

키룩.

“우리 한 가지 생각을 해보자. 넌 앞으로 우리 영지로 돌아가서 고블린 족장이 되는 거야. 그런데 너희들을 영지민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어. 너희들은 경험치를 공급해주고, 숲의 생태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거든.”

키르룩!

고개를 끄덕인다. 놀라운 것은 이놈이 내 이야기를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블린들을 계속해서 우리는 사냥할 거야. 아마 숲의 몬스터들 중에도 너희를 사냥할 놈들이 있을 거고. 이해하지?”

키룩.

“그런데도 고블린 로드가 되어볼래? 물론, 네 힘으로 네 운명을 개척하는 것은 허락한다. 네가 스스로 고블린의 다른 운명을 개척한다면 그때 스스로 굴레를 벗어날 수도 있어. 그것도 허락할게. 어때?”

이건 사실 엄청 잔인한 얘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소나 돼지, 닭들도 비슷한 운명이지 않은가? 먹기 위해서 죽이느냐, 레벨업을 위해서 죽이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고블린 로드 후보자는 한참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내게 말한다.

키루룩 카룩 카투룩.

“너희들을 전멸시키는 일은 없을 거야. 약속하지.”

이것으로 이놈은 고블린 로드로 전직을 할 것이다.

“앞으로 넌 고블랑이다.”

키룩!

“이름 너무 대충 짓는 거 아니냐?”

“내가 생각해도 우리 오빠의 네이밍센스는.”

“그럼 너희가 지어보던가.”

“고블고블?”

“고블링?”

난 두 사람을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똑같은 것들이다.

“됐고, 고블랑.”

키룩!

“고블린들을 데리고 공격 시작해. 아까 주워온 미스릴 무기들 써도 된다.”

키, 키키릭.

“됐어. 그런 것까지 안 뺏어.”

나한테 줄라고 꼬불쳤다는 얘기는 누가 믿을까.

“시작해.”

고블린들의 숫자는 대충 봐도 몇 만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놈들이 모두 고블랑의 지시를 따른다. 왜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몰라도 이놈은 시스템도 고블린 로드 후보로 표시를 해줄 정도다.

고블랑과 고블린들의 공격으로 후쿠시마 근처에 만들어진 자위대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

야마토 삼등육좌.

그는 일찌감치 자위대에 투신한 인물이다. 자신의 미래는 자위대에 있고, 옛 대일본 제국의 영광을 되살리는 데 온 힘을 다 하는 것이 자신이 태어난 이유라고 생각하는 극우 성향의 군인이다.

‘언젠가 자위대를 자위군으로 승격시킬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일본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서만 자위대를 운용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이미 수십 년 전의 일이라 이제는 내부에서부터 분위기가 다른 경우가 많다.

전쟁을 할 수 있는 군대를 가지기 위해서 헌법을 개정한다는 움직임. 이토 히로시는 야로 총리의 열렬한 지지자다. 다시 일본 제국을 이룩하는 것이 꿈이라는 얘기. 그런데 갑자기 게이트라는 것이 세상에 등장했다.

그리고 그가 주둔하고 있는 후쿠시마에도 게이트가 생성된 것을 확인했다. 우습게도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후쿠시마 주둔지 근처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가치의 게이트가 등장한 것이다.

사실 그가 이쪽으로 부임한 이유는 하나다. 너무 급진적이라는 것. 그런 그에게 날개를 달아줄 게이트의 존재가 그는 반가웠다.

게이트가 자신의 뜻을 이룩해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남자를 보기 전까지.

“네가 야마토 삼등육좌냐? 일단 이름은 맞는 것 같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