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8 화 새로운 손님.
제 68 화 새로운 손님.
구청 입구를 나오는데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여러 사업체 관련업자들과 기자들이었다. 아마도 새로 게이트가 등록되었다는 사실이 외부로 알려진 것 같았다. 이런 일이 종종 있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난 그다지 당황하지 않았다.
애초에 당황을 하기에는 내 스킬 명경지수가 너무 고차원적이다.
그런데 그때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누군가 최면을 시도합니다. 스킬 명경지수가 발동됩니다. 돌려주시겠습니까?
예전에 같은 상황일 때 나왔던 메시지는 이랬다.
-상대가 최면을 시도합니다. 저항하시겠습니까?
그런데 누군가 최면이라는 것이야 저 사람들 중의 하나를 의미하는 것일 테고, 문제는 그 뒤의 얘기. 저항이 아니라 돌려주겠냐고 묻는다. 명경지수가 발동을 하면서 말이다.
“그래.”
그러자 한 사람의 눈이 살짝 풀린 것이 보인다. 난 그 사람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그가 내 앞으로 온다.
“당신이 누구고, 나에게 최면을 걸어서 뭘 하려고 했는지 사실대로 얘기해주세요.”
그러자 남자가 말한다.
“난 대후 그룹의 기획조정실에 근무하는 정창길 과장입니다. 그리고 헌터이며, 최면술사입니다. 새로운 게이트 주인이 등장하면 그에게 최면을 걸어서 대후 그룹에 유리하게 계약을 진행하는 것이 임무입니다.”
유리한 계약을 하기 위해서 최면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알아본 바로는 최면이 만능은 아니다. 특이 이 남자 정창길의 최면은 겨우 2레벨. 이정도면 암시 정도를 걸 수 있을까?
정작 되받은 정창길은 더 심각하게 당한 것 같지만. 난 방금 최면을 어떤식으로 사용하는지 깨달았다. 그래서 최면을 쓰자면 쓸 수 있다. 하지만 뭔가 이건 좀 꺼려지는 거라 보류했다. 나중에 정 필요하다면 그때 스킬로 등록할 생각이다.
“실시간으로 방송하고 계신분 계신가요?”
누군가 손을 든다. 그렇다면 이것은 빼박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이런 더러운 짓을 한다는 것이 세상에 생방송으로 나간 상황. 뭐 물론 나중에는 온갖 변명을 하면서 꼬리자르기를 하겠지만, 당장은 이걸로 만족이다.
“우리 게이트에 대해서 궁금해서 오신 것 같은데, 우리 게이트는 섬입니다. 그것도 아주 작은 섬. 그게 뭘 의미하는지는 아시겠죠? 나중에 여유가 되면 휴양지로나 개발하려고, 작게나마 농사나 지어볼까 합니다. 아직도 관심 있으신 분?”
내 말에 기자들과 기업들은 내 뒤에 따라온 김미영 팀장을 쳐다본다.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이라는 얘기. 그러자 나에게는 흥미가 식었는지, 이번에는 정창길 과장에게 달라붙는다. 난 그래서 정창길 과장에게 말했다.
“있는 그대로 말씀하세요.”
“네! 질문 받겠습니다.”
“내일일보 김가영 기자입니다. 조금 전에 한 말이 사실인지 진위여부를······.”
기자들이 정창길 과장에사 집중하는 사이에 난 김미영 팀장에게 물었다.
“어떻게 실시간으로, 아니지. 아까부터 알았으니 찾아왔겠죠? 이거 문제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서 망명 전에 생각을 해보라구요? 조금 어이가 없습니다만?”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일체 변명을 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는 보통 하나다. 자기가 잘못을 하지는 않았지만 책임을 지겠다는 태도. 아마 그녀의 팀원이나, 윗선이 정보를 흘린 것 같다. 그럼 김미영 팀장에게 따져봐야 의미가 없다.
“앞으로 제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네요. 아마 거기에는 오늘 있던 일이 적지 않게 작용을 할 거라는 것은 예상이 가시죠?”
“입이 두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럼 다음에는 웃으면서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이름만 아니면 참 신뢰 갈만한 인물이었다. 아마 나중에 다시 인연이 이어질 거라는 생각도 든다. 게이트를 관리하는 부서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그럼 전 이만.”
“네, 살펴가세요.”
***
김미영 팀장덕분에 내 게이트에 대한 기사는 딱 한 줄이 나갔다.
-새로 등록한 게이트의 지형은 섬, 관광지로 개발될까?
대신에 다른 기사가 아주 난리가 아니다.
-대후 그룹의 도 넘은 행위 어디까지 용납될 것인가?
-대후 그룹의 공식 입장. 직원의 일탈일 뿐이다. 이 해명이 우스운 이유.
-대후 그룹의······
대후 그룹이 난리가 났다. 내덕이라고 하긴 좀 그렇고. 이미 이런 짓을 저질러왔을 곳들이 경각심을 가질 정도의 사건은 될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대후 그룹은 정창길 과장의 일탈이라 했다. 하지만 애초에 대기업에 근무를 하던 사람이 게이트에서 왜 최면 스킬을 익혔을까? 그리고 대기업의 기획조종실에 있는 과장이 최면을 익히고 있으면 그동안 게이트만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곳에 그것이 사용되었을까?
갑자기 세상은 최면 스킬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국회에서는 최면 스킬을 가진 사람들의 의무 등록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하고, 이례적으로 만장일치로 빠르게 통과되었다. 아마 최면을 통해서 자신들이 조종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다.
***
우리 시호 영지는 오늘도 잘 돌아가고 있다. 오크들은 기사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수련중이고, 여자 오크들은 아주머니들과 수다를 떨며 작업을 한다. 서로 대화가 된다는 것이 참 대단한 부분인데, 내가 옆에서 보면 각자 자기들의 언어로 얘기를 하는데 웃고, 즐거워한다.
내가 모르는 통역 스킬이라도 있는 건가? 그런 의심이 들 정도.
두무리 마을 분들은 각자 자신들의 일에 매진하고 있으시다. 농부일을 하시는 분들은 매번 농작물들을 보며 즐거워하시고, 축산을 하시는 분들도 자신들의 가축들을 보며 즐거워하신다. 그리고 이 모든 물품들은 선우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판매되고 있다.
물론 아주 특별한 것들은 그곳에서도 판매하지 않는다. 우리 회사의 사장님을 통해서 알음알음 판매를 할 뿐이다.
선우네 가게에서 가장 잘 팔리는 것은 역시 수박과 파인애플. 이것만으로 우리 게이트는 유명해졌다. 그래서 게이트의 헌터가 되고 싶다고 신청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김미영 팀장의 연락이 왔었다.
하지만 난 당장은 영지민을 늘릴 필요를 못 느낀다. 그럴 필요가 없기도 했고, 당장 더 늘려봐야 영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사이에 아저씨, 아주머니들도 각성을 하셨다. 모두가 사이좋게 섬 미노타우르스 곰탕과 광산 미노타우르스의 곰탕을 드시고, 최소 2개 이상의 스킬을 보유하게 되신 것이다.
랜덤이라 여러 가지 골때리는 상황들이 좀 벌어지긴 했지만, 다들 착한 분들이라 괜찮았다. 그중에 가장 신기한 스킬을 각성한 것은 촌장님이셨다. 촌장님은 거짓말 탐지기라는 액티브 스킬을 얻으셨는데, 이게 대박이다. 그분 앞에서는 절대로 거짓말을 못한다. 그냥 바로 알아 보신다. 그리고 그런 스킬을 우리 영지에 매우 도움이 되는 스킬이어서 나도 즐거운 기분이 든다.
“오빠, 오빠!”
“왜? 왜?”
“저, 저기 이상한 게 숲에서 나왔어.”
“이상한 거?”
“어, 빨리 와봐.”
영주성이 거의 완성단계라 이쪽에 신경을 쓰고 있는데 시연이가 와서 나를 끌고 간다. 그리고 내가 가보니 숲에서 나온 것은.
“와, 뭐지?”
내 눈앞에 있는 이 무엇인가 둘.
딱 봐도 남녀라는 것은 알 수 있다. 아니, 수놈이랑 암놈이라고 해야되나? 왜 이런 얘기를 하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켄타우로스?”
신화에 등장하던 켄타우로스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
여자 켄타우로스가 뭐라고 중얼거리고 그 후에.
“안녕하세요, 인간이여.”
“헐.”
시연이가 깜짝 놀란다. 방금 저 여자가 중얼거린 것은 일종의 통역마법인 것 같았다. 난 그 흐름을 잘 살펴보았고.
“켄타우로스 맞습니까?”
“당신들의 언어로 우리 일족을 그렇게 부르는군요. 우리는 우리를 바람의 일족이라고 불러요.”
“그렇군요.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우리 영지가 당신들과 부딪친 일은 없었을 텐데요?”
“아, 오해가 있으시군요. 우리는 당신들과 싸우러 온 것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우리도 우리의 전사들을 이끌고 왔겠죠. 물론······. 별 의미는 없었을 것 같긴 하지만.”
여자 켄타우로스는 호야를 살짝 보고는 그렇게 말한다. 호야를 알아보는 것을 보니 저 말은 사실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무슨 일로?”
“교류를 하기 위해서죠. 우리들에게 없는 것이 당신들에게는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당신들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숲에서 구할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것들이죠.”
“일단 숲에 뭐가 있는지를 잘 모르는데요?”
“아······.”
여자 켄타우로스는 자신있게 말했다가 내 말을 듣고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전 숲의 초입에서만 놀고 있죠. 우리 호야 선생님이 그 이상은 허락을 하지 않아서요.”
“그렇군요······.”
난 계속해서 그녀를 관찰로 살펴보려고 했지만, 내 관찰로도 그녀를 꿰뚫어 보기는 어려웠다.
냐앙!
호야가 귀찮다는 듯이 내 어깨에 올라온다. 그러자 갑자기.
-관찰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관찰(액티브)스킬의 레벨이 8이 되었습니다.
이름: 헬레나.
소속: 바람의 일족.
직업: 신녀.
더는 자세한 능력치를 볼 수 없습니다.
관찰레벨이 8이 되었음에도 그녀의 정보는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그만큼 그녀가 나보다 격이 높은 존재라는 의미일 것이다. 내가 아직도 호야의 레벨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처럼.
“헬레나, 그래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그녀가 깜짝 놀란다.
“내 이름을 어떻게······.”
“영주의 권한이죠. 우리 영지에 들어온 존재의 이름 정도는 파악할 수 있어야겠죠?”
“그렇군요. 역시 영주의 권능은 생각보다 강하군요.”
솔직히 영주의 권능이라고까지 할 것이 있나 싶다. 그리고 방금 전가지 안 보이던 것이 보인 이유는 분명 호야가 뭔가를 해줬기 때문일 것이다.
역시 만능 치트키는 호야다.
“그래서 필요하신 것이?”
“식량입니다.”
식량.
사람이 살아가는데도 가장 중요한 것이고, 어떤 생명체든 식량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 그리고 켄타우로스들도 식량이 부족한 것 같았다.
“식량이야 얼마든 있습니다. 다만 그에 걸맞은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그쪽에서도 제가 필요로 할만한 것을 내주셔야겠죠?”
“물론이예요. 오늘은 그저 인사만 한 것으로 하죠.”
“네, 그럼 준비가 되시면 다시 찾아와주세요.”
“네.”
헬레나와 그녀의 호위기사로 보이는 켄타우로스. 둘의 무장 상태는 훌륭했다. 미스릴로 도금을 한 것 같아 보이긴 했지만, 미스릴로 된 갑옷과 무기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반인반마. 그런데도 아름다워보일 정도였다. 괴물처럼은 보이지 않았다는 것. 무엇보다 신녀인 그녀의 권능인지 몰라도 다른 종족과 대화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럼 일주일 뒤에 찾아오도록 할게요, 영주님.”
“네, 그럼 그러세요.”
그녀와 그녀의 기사는 그렇게 다시 숲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난 호야를 보며 물었다.
“호야, 너 저 일족 알지?”
냐앙?
호야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귀여운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나 최시우 쉬운······남자라 거기에 또 깜빡 넘어간다.
“어구구 우리 호야가 애교를 부렸어요? 그래 바람의 일족이건, 물의 일족이건 무슨 상관이냐?”
움찔.
호야가 움찔거린다.
“뭐야? 진짜 물의 일족도 있는 거야?”
냐앙.
호야가 딴청을 부린다. 진짜 있나보다. 다행인 것은 바람의 일족이 적대적이지는 않아 보인다는 것. 하지만 호야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니 그냥 약탈로 이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냥가자, 호야!”
냐앙!
호야가 신나서 대답한다. 아직 난 약한 영주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내가 상대해야 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