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9 화 이러면 죽여야지?
제 69 화 이러면 죽여야지?
“아빠! 파인애플 쥬스 왜 없어?”
“그거······ 어제 못 샀다.”
“실망이야.”
혜미는 아빠인 광현을 보며 눈을 흘긴다. 그렇다고 혜미가 버릇 없는 딸은 아니다. 그냥 피부에 트러블이 워낙에 잦은 딸일 뿐이다.
“오늘은 꼭 사오마!”
광현이 주먹을 불끈 쥐며 그렇게 말한다. 그러자 혜미가 베시시 웃는다.
“아빠, 최고!”
광현의 가게는 선우네 잡화점이라고 원래 캠핑용품을 팔던 가게가 업종을 변경한 곳이 있는데 바로 옆집이다. 치킨 맛집으로 유명한 광현은 경제적으로 아쉬울 것이 없다.
다만 치킨집이라는 특성상 오픈 시간이 조금 늦기 마련인데, 덕분에 오픈 시간에 맞춰서 선우네 잡화점에 가면 물건이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늘은 아예 일찍 나서기로 했다. 그런 그에게 광현의 와이프 미현이 말한다.
“여보, 거기 수박이 그렇게 좋다던데······.”
“크흠. 알았어. 내가 아주 다 쓸어 올게.”
광현은 곧장 가게로 향했다. 그리고 바로 선우네 잡화점을 찾았다.
다행히 아직 오픈을 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이미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선우네 잡화점은 1인당 각 물품들을 2개까지만 판매하고 있다. 그런 배짱 장사를 해도 오픈하면 금방 물건이 동이 날 지경이다.
광현이 대충 보니 오늘은 세이브다. 충분히 원하는 것을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
그때 그의 곁에 선우에 잡화점의 사장이 다가온다.
“광현 씨.”
“아, 김 사장님.”
“하하하, 여기 줄 서 계신 겁니까?”
“네, 우리 혜미가 파인애플 못 사오면 집에 올 생각을 말라네요.”
광현은 부러운 눈길로 선우네 잡화점 김 사장을 쳐다본다.
“그렇지 않아도 한 번 따로 만날까 했는데, 지금 잠깐 시간 될까요?”
“그게······.”
줄을 바라보는 광현. 그런 광현에게 김 사장이 웃으며 말한다.
“원하는 건 따로 팔아드릴게요.”
“하하, 그렇다면야.”
이 정도 융통성은 김 시장의 권한으로 가능하다. 항상 그러는 것도 아니고, 일 때문인데 그것을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둘은 선우가 만들었던 가게로 이동했다. 그곳은 현재 카페로 개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어수선하지만 일단 앉으세요.”
“네.”
광현을 주변을 둘러보았다. 요즘은 카페라고 하면 상당히 인테리어에 신경을 쓰는 곳이 많다. 한국의 카페들은 외국에도 유명하다. 너튜브만 봐도 한국의 예쁜 카페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올 정도니까. 하지만 이곳은 카페라는 기능만을 중요시 여기는 곳 같은 느낌이다.
몇 개의 테이블과 천장은 오히려 내장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은 창고형 대형상점에서나 볼법한 그런 모습이다.
“인테리어가 아직 안 끝났나봐요?”
“거의 끝난 거예요. 중요한 것은 커피거든요.”
“커피가 맛있나보죠?”
“그냥 커피가 아니거든요.”
“아!”
그냥 커피가 아니라는 말 하나에 광현은 납득이 갔다. 파인애플과 수박, 두부와 꿀에 이런저런 물품들.
파인애플 주스를 사러 왜 사람들이 줄을 서 있겠는가? 그게 게이트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효능이 보통의 파인애플과는 전혀 다르니까. 그렇다면 여기에서 파는 커피도 그럴 것이다.
“부럽네요.”
“아들이 친구를 잘 둔 덕이죠. 뭐 그 녀석이 어린 시절부터 저도 오래 봐온 녀석이나 좋은 놈이기도 하구요.”
“그렇군요. 그런데 전 무슨 일로.”
“이 닭고기로 한 번 치킨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어서요.”
김 사장이 닭고기를 하나 내놓는다. 그것을 보던 광현은 고개를 갸웃한다.
“저희는 납품받는······ 설마?”
“맞아요. 게이트에서 키우는 닭이죠.”
“그, 그 귀한 것을.”
“우리가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기왕에 우리 가게 옆에 있고, 인성 좋기로 소문난 분이니. 우리 게이트 주인이 인성을 중요시하거든요.”
김 사장은 광현을 잘 안다. 동네에 굶주린 아이가 있으면 말없이 데리고 와서 치킨을 먹이기도 하고, 언제든 치킨이 먹고 싶으면 자신을 찾아오라고 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그래도 안 오면 오히려 아이의 집을 수소문해서 치킨을 배달까지 해줄 정도.
이 정도 인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섬브란 닭을 맡겨도 될 거라고 시우에게 말했고, 시우는 대찬성했었다.
“이게 그냥 닭은 당연히 아니고. 무엇보다 맛이 예술입니다. 좀 있다가 가서 한 번 튀겨보세요. 저희들이 먹어보고 반했을 정도니까.”
“그, 그렇군요. 그럼 그······.”
“기력을 보충해주고, 무엇보다 살찌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다더군요.”
치킨이 살찌지 않는다. 살이 빠지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살이 찌지 않는다는 것은 엄청난 메리트다. 광현의 눈이 반짝인다. 그에게는 기력을 보충해준다는 얘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 그게 포인트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바, 바로 한 번 튀겨봐도 되겠습니까?”
“네, 기왕이면 튀겨서 이쪽으로 가져와 보시겠어요? 광현 씨 비법으로 튀긴 치킨을 먹어보고 싶네요.”
“금방 가져오겠습니다.”
김 사장은 광현이 보물처럼 닭고기를 안고 가는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시우가 보물이야······. 선우가 어쩌다 그런 친구를 얻은 건지 원. 하하하.”
김 사장은 커피를 한 잔 내렸다. 부작용 없는 각성작용을 하는 커피. 이 커피가 없으면 요즘 아주 머리가 둔해지는 느낌이다. 당연히 부작용이 없기에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
그렇게 시간이 좀 흐른 후에 광현이 치킨 박스를 들고 오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어서 오세요.”
“여기 해왔습니다.”
“벌서 군침이 도는데요?”
냄새부터가 미쳤다. 보통 치킨용 닭보다는 훨씬 크지만, 크다고 질기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기대가 컸다.
둘은 사이좋게 다리를 하나씩 잡고 입으로 가져갔다.
와사삭!
마치 과자를 씹을 때 나는 것 같은 소리가 나며 두 사람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대박!”
“와······.”
맛은 최상급이다. 닭은 가끔 닭 특유의 비린내가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오히려 닭에서 향이 나는 느낌이다. 입안에서 퍼지는 느낌이 미쳤다.
“이, 이거 얼마에······.”
“마리당 2만원입니다. 그러니 광현 씨는 그보다 훨씬 비싸게 팔아야겠죠? 프리미엄 치킨으로요.”
“게이트산이라고 표시를 해도?”
“물론입니다. 효능까지 잘 적어서 파셔도 됩니다.”
“하루에 공급 가능한 양은요?”
“일단 50마리부터 시작할까요? 양은 원하는 만큼 드릴 수 있어요.”
“다, 당장 부탁드립니다.”
“그럼 바로 가져오라고 연락을 할게요. 손질은 되어 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김 사장님.”
“뭘요, 좋은 사람이 좋은 행운을 얻어야 한다고 우리 게이트 주인이 그러더라구요. 하하하.”
광현은 배고픈 아이들에게 치킨을 나눠주는 것이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치킨집을 하는 이유도 어릴적 하도 그게 먹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돈이 없어서 치킨을 못 먹는 아이들이 못내 안타까웠고, 그래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것이 이런 행운으로 돌아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렇게 선우네 잡화점을 중심으로 시호 게이트의 상권이 점점 만들어지고 있었다.
***
“뭔가 방금 좋은 일이 생긴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야, 호야.”
냐앙?
“뭔 개소리냐고? 그래, 개소리다. 어쩔?”
퍽!
응징은 신속하다. 우리 호 선생은 가차없는 분이니까.
“그래서. 여기는 뭐가 나오는데?”
호야와 숲의 입구에서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주변의 풍경이 달라진다. 아직은 이렇다할 것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살짝 긴장이 되는 느낌이다.
바람의 일족을 만난 후에 난 벌써 6일째 숲에서 사냥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제 레벨은 55다. 갈수록 레벨을 올리는 것은 지난한 일이었다.
이제 내일이면 바람의 일족이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들과 거래를 앞으로도 한다고 생각하면 내가 더 강해질 필요가 있다. 물론 호야가 있는 이상 상대가 경솔한 행동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호야가 없을 때도 생각을 하긴 해야 한다. 무엇보다 영주가 약하면 다른 게이트의 영주에게 먹힐 수도 있다. 물론, 이쪽은 희박한 가능성으로 보이긴 하지만.
“여기는······ 숲이긴 한데, 느낌이 상당히 다르다?”
언데드의 지역과도 다르고, 숲의 초입과도 다르다. 광산 게이트와도 다르고. 그렇기에 난 긴장을 풀지 않았다. 그때였다.
쉬쉭!
뭔가가 날아온다. 난 곧장 실드를 시전하고 몸을 피했다.
파파밧!
땅에 뭔가가 박힌다.
“화살?”
땅에 박히는 것은 화살이었다. 그렇다면 이 화살을 쏜 존재가 있다는 이야기.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보니 나무 위다. 나무 위에서 누군가 화살을 쐈다는 얘기.
누가 화살을 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곳을 향해 파이어 애로우를 하나 날렸다.
펑!
파이어 애로우가 그대로 터져나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인형이 하나 바닥에 떨어진다.
“엘프?”
색이 검다. 하지만 외향은 우리가 생각하는 엘프가 맞았다. 난 곧장 관찰로 상대를 살펴보았다.
이름: 저주받은 다크엘프(55레벨).
숲의 입구 안쪽에서 살아가는 다크엘프다. 숲의 저주를 받아서 이성을 잃고 본능만 남아 있다. 완벽한 몬스터화로 대화는 어떤 방법으로도 불가능하다. 모든 생명체에 대한 살의만 남아 있다. 궁술이 뛰어나며, 근접전에도 상당한 재능을 가진 종족이다.
그러니까 완전히 몬스터화가 진행된 엘프라는 의미였다. 그렇다는 것은 정말 저 세계수가 있는 곳까지 간다면 엘프가 살고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
땅에 떨어진 다크엘프가 이를 갈며 나에게 달려든다. 레이피어 형태의 검을 찔러오는데 그게 매우 날카롭다. 난 일단 몸을 피했다.
하지만 다크엘프의 검은 집요했다. 찌르기 일변도의 검술임에도 상당히 위협적이다. 그 두꺼운 검들 사이에 레이피어라는 검이 어떻게 생존했나 싶었는데 이런 것이었나보다. 워낙에 얇은 검이라 쳐내는 것도 쉽지가 않다.
하지만 난 이내 몸을 제대로 하고, 검으로 응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놈의 검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찌르기 전의 자세와 어깨의 움직임. 그리고 보폭 등등이 눈에 잘 들어온다. 그때였다.
-엘븐 소드 검술 초급(액티브) 1레벨 스킬을 얻었습니다.
다른 검술도 카피를 할 수 있는 거였나보다. 어쩌면 정말 내가 선택한 전투직업은 그냥 마법사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엘븐 소드 스킬을 얻고보니 더 자세히 상대의 검술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피하는 것도 어렵지 않아졌다. 솔직히 엘프를 만나면 어떻게든 대화도 나눠보고 싶긴 했는데, 이성을 잃은 몬스터 다크엘프에게는 그것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시스템이 말하고 있으니 죽이는 수밖에.
한참 난 상대의 검술을 흡수하듯이 배웠다. 그렇게 엘븐 소드 검술 초급이 4레벨이 되었을 때 상대가 지친 것이 눈에 들어왔고, 그대로 상대의 가슴에 내 검을 찔러 넣었다.
“크악!”
목소리가 남자다. 몬스터화 된 엘프라도 엘프는 엘프라 아름다웠는데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니 조금 더 내 손이 과감해졌다.
서걱!
놈의 목을 베었다. 그런데 피냄새가 나서 그런가 주변에 다크 엘프 둘이 눈에 들어온다.
“호야, 안 도와줄 거지?”
냐앙!
당연한 얘기를 하냐는 호야. 이 와중에 나무에 열심히 스크레치를 하고 있으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