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학개론-70화 (70/182)

제 70 화 늘 누군가 엉뚱한 짓을 한다.

제 70 화 늘 누군가 엉뚱한 짓을 한다.

고양이들이 스크레치를 하는 것을 혹시 본 적이 있는가? 스크레치라는 행위는 고양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행위다. 원래 야생의 고양이라면 그것은 영역표시일 수도 있고, 반려 고양이라면 나름 같은 이유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행위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다고 해서 그게 사람이 보기에는 딱히 뭐 대단해보이지는 않는다는 점. 그럼에도 참 열심히 한다. 그것도 세상 진지한 얼굴로.

냐웅냐웅냐웅냐웅.

호야는 흥얼걸리면서 엄청나게 열심히 스크레치를 한다. 아주 사랑스럽고, 아주 귀엽고, 아주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빡친다.

왜?

난 다크 엘프들한테 둘러싸여 있으니까.

“호야! 쫌!”

하지만 우리 호선생께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으신다. 마치 나 따위는 어찌 되어도 상관이 없다는 듯한 태도다. 그렇다고 내가 막 다크 엘프들한테 당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마음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호야가 내 반려동물이라면 좀 옆에서 지켜봐 주고, 응원도 좀 해주고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아오 빡쳐!”

마침 다크 엘프 한 놈이 내게 검을 찔러온다. 난 놈의 검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엘븐 소드 검술로 인해서다. 그리고 난 그것을 아직 제대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검로가 보인다는 장점은 있다. 그리고 이 검의 검로가 보인다는 것은 중급이 된 헤르티안 검술로 압도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쾅!

그리고 사실 무엇보다 빡치는 것은 호야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얘들이 다 남자라는 것이 제일 빡친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그냥 사람도 아니고, 엘픈데. 엘프면 여자 엘프가 하나 정도는 섞여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어찌 된 것이 이 시키들은 다 냄새나는 남자놈들만 있단 말인가.

그렇게 분노가 차오르던 때.

-분노 수치가 일정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버서크(액티브) 1레벨 스킬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내가 심하게 빡치긴 했나보다. 그런데 이게 분노 수치가 있었어? 아무튼, 난 곧장 버서크 스킬을 사용했다. 어차피 너 죽고, 나 죽는 거다. 버서크 모드가 되자 다크 엘프들이 내게 조금씩 밀리기 시작한다. 그것을 보고 난 공포를 사용했다. 그랬더니 공포도 먹힌다.

“다 죽었어!”

결국 다크 엘프들의 목을 모조리 쳐버린 후에 난 호야를 째려봤다. 하지만 호야는 ‘어쩔?’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너어!”

냥!

“꼬우면 덤비라고? 내가 그럼······ 덤빌 줄 알고?”

최시우 주제를 아는 남자. 난 빠르게 분노를 가라앉혔다. 그러자 버서크 모드까지 자동으로 풀린다. 역시 호선생이 명약이다.

“그럼 다음 스테이지로 가실까요, 호 선생님?”

냐앙!

“아, 애들 뒤져보라고? 알았어.”

난 즉시 호선생의 코치에 따라서 다크 엘프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신기한 것이 하나 나왔다.

-관찰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아이템: 다크 엘프의 근원.

던전 ‘다크 엘프의 근원’에 들어갈 수 있는 도구입니다. 위치를 알고 싶으면 해당 아이템에 마나를 주입시키세요.

“와, 던전 입장권도 있는 거였어?”

말 그대로 이것은 던전 입장권이었다. 게임에서 많이 보는 바로 그것. 조금 흥미로운 것은 다크 엘프의 근원이라는 부분인데, 엘프가 저주받은 다크 엘프가 된 근원이 있다는 이야길까? 아니면 그들의 기록이 있는 걸까?

그것은 가보면 알게 될 일이다. 난 호야를 보며 물었다.

“네가 말한 게 이거야?”

냐앙! 냥냥냥!

“근데 더 뒤져보라고? 알았어.”

난 조금 더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작은 악세사리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떨어져 나간 머리의 귀에 달려 있는 귀걸이었다.

“아, 이거 엄청 찝찝한데?”

냥!

헛소리 말고 빨리 집으란다. 그래서 집어서 관찰로 확인을 해보았다.

아이템: 다크 엘프의 정수가 담긴 귀걸이(15레벨).

효과: 힘+20, 민첩+20.

엘프들은 원래 보석 세공에 특화되어 있던 종족이다. 현재 엘프의 틀에서 벗어난 존재이지만, 아직 그 잔재가 남아 있다.

설명은 단촐하다. 하지만 효과는 그렇지 않다. 힘과 민첩을 20씩 올려주는 악세사리다.

“찝찝한게 문제야? 그치? 얘들을 여럿 잡아서 이걸 잔뜩 얻어야겠어. 가자, 호야!”

냐앙!

호야는 시끄럽고 집에 가잔다. 그래서 난 호야의 말에 따라서 영지로 돌아왔다. 호야를 품에 고이 안고서. 호야는 어느 틈엔가 잠이 들어서는 잠꼬대로 입을 씰룩인다. 귀엽다. 너무 귀여워서 가끔 때려주고 싶다는 것이 살짝 문제긴 하지만 귀엽다. 그래서 그냥 참았다.

사실 안 참아봐야 뭘 하겠는가.

***

영지로 돌아오니 다들 생동감이 넘친다. 어르신들은 일단 능력치 올리는 식재료들을 다들 한 번씩은 섭취를 하셨기에 밖에 있을 때와는 다르게 기운찬 모습이었고, 성심원 아이들은 주변 풍경이 워낙에 좋다보니 뛰어노느라 바쁘다.

학교는 주 5일을 간다. 그런데 학교를 한 번 갔다 게이트로 돌아오면 며칠을 놀다가 학교에 가게 된다. 즉, 학교는 며칠에 한 번 가는 곳이 된 것이다. 성심원 원장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을 조금 걱정하기는 했지만, 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아이들은 매우 귀한 존재들이다. 그래서 사람들뿐만 아니라 오크들도 아이들을 귀하게 여긴다. 마찬가지로 오크 아이들도 다들 귀하게 여긴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기도 하는데 문제는 오크들의 성장이 훨씬 빠르다는 것. 그래서 어느 순간에 같이 놀던 오크가 아이들의 보호자가 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오크들과 더 스스럼없이 지낸다.

처음에 성심원 원장 선생님은 살짝 걱정을 하셨지만, 아이가 위험한 것을 한 오크가 구해주는 것을 보고 마음을 놓으셨다. 이 오크들에게 난 절대적인 명령권자다. 조금 심하게 얘기하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얘들을 내쫓으면 얘들은 앞으로 살아가기 힘들어질 테니까. 그래서인지 오크들은 절대로 내가 하지 말란 일은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 안에서 자신들의 영역을 견고하게 다져가는 중이다.

사람들과도 아무 트러블이 없이 잘 지낸다. 특히 아줌마 오크들이 장난 아니다.

난 영주로서 그런 장면들을 흐뭇하게 지켜보다가 거의 완성 단계에 접어든 영주성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살 수 있는 것은 우리 식구들과 기사단들 뿐이다.

기사단을 영주성에 두는 것은 전통적인 방법이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그 외의 사람들은 영주성을 중심으로 집을 지어가고 있는 중이다.

“왔냐, 영주?”

“누가 보면 내 이름이 영주인줄 알겠다.”

“뭘 따져.”

“됐고, 나 기다렸냐?”

“어, 누나가 오늘 시간 된다고 너 오면 알려달라고 그러네?”

“그럼 모셔 와. 집무실에서 기다릴게.”

“큭, 집무실이라고 하니 이상한데, 그게 맞는 말이라서 더 이상해.”

“나도 이상해 새꺄.”

“암튼, 알았다. 좀 있다 보자.”

“어.”

난 곧장 내 집무실로 향했다. 내 집무실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상당히 삐까뻔쩍하다. 광산에서 나오는 금과 은, 심지어 미스릴까지 사용해서 치장을 해놨다. 다행인 것은 마을 어르신들 중에 목수 일을 하던 분이 계셔서 과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 정도.

요즘 가구 만드는 일에 빠진 오크들이 그래서 많이 늘었다.

그렇게 집무실에서 기다리니 선우가 누님을 모시고 왔다.

“누나.”

“어, 같은 곳에 있으면서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드니.”

“그거야 둘 다 바빠서 그렇죠. 일단 앉으세요. 커피 드릴까요?”

“그래.”

“선우 너도?”

“어.”

난 세 사람이 먹을 커피를 내린 후에 우리 셋은 마주앉았다.

“네가 게이트 주인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그건 저도 마찬가지죠. 그게 누가 원한다고 되던가요?”

“하긴 그렇긴 하지. 그나저나 내가 미국에 있었다는 얘기는 들었지?”

“네. 거기에서 오래 계시지 않았어요?”

“그랬지. 그리고 거기에서 원치 않게 헌터 일을 하기도 했고.”

내가 선우를 보니 어깨를 으쓱한다. 지도 몰랐다는 얘기다.

“아니, 남매가 다 헌터일을 했으면서 서로한테는 얘기를 안 했다구요? 남매 사이에 문제 있는 거 아닙니까?”

“난 이게 정상이라고 보는데?”

“나도.”

“그런가? 우리 시연이는 무슨 일이 있으면 쪼르르 전화를 해서 조잘조잘떠드는데.”

“선우가 그런 귀여운 맛은 없지.”

“아, 인정.”

선우가 나를 한 번 째려보고는 다시 커피를 마신다.

“그래서 하시고 싶다던 말씀은?”

“미국이 게이트를 이용해서 뭔가를 만들고 있다는 것은 아마 다들 들어봤을 거야.”

이미 그런 비슷한 음모론은 너무 많아서 다 걸러듣기도 힘들 지경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뭐 유명한 얘기니까요. 걔들이 뭘 안 한다고 하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요?”

“내 생각도 그래.”

선우도 내 말에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일이 아냐. 시우 넌 내가 생명공학 전공한 거 알지? 얘는 잘 모르는 것 같다만.”

선화누나는 생명공학을 연구했다. 그로 인해서 미국으로까지 가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생명공학은 현재 게이트로 인해서 엄청난 기대주가 된 상태다.

“쟤는 반쯤 짐승이니까요. 전 아직 사람이라서 알고 있습니다.”

“그래. 내가 헌터가 된 이유가 뭐였겠니? 그것 때문이었어. 내가 연구하던 부분을 게이트에서 나오는 뭔가로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네.”

“그리고 어느정도 성과를 보였어. 그런데 문제가 생겼지.”

“문제요?”

“어, 임상실험을 동물을 대상으로 했을 때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문제가 없어서 사람에게 했더니······.”

“했더니?”

“변형이 생기더라.”

“변형이요?”

“쉽게 말해서 멀쩡했던 사람이 몬스터가 되었다고 할까?”

“몬스터요? 우리가 아는 그 몬스터?”

“어. 하지만 게이트에서 나오는 종류는 아니었고, 오히려 좀비나 구울에 가까웠지.”

“참고로 이 게이트 저쪽에는 좀비랑 구울도 있어요. 그건 그렇고. 그러면 아포칼립스 되는 거 아닙니까? 좀비 사태 터지고 막?”

“맞아. 그 연구소가 그렇게 폐쇄되었어.”

난 이 이야기에서 이상한 점을 느꼈다.

“그런데 누나는 어떻게 살아오신 거예요?”

“난 마지막 실험 전에 발을 뺏거든.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서.”

“아하, 그럼 결과는?”

“죽어가던 연구원이 나에게 영상을 보냈더라고. 다행인지 아직 그것에 대한 조사까지는 들어오지 않았었고, 난 한국으로 돌아온 거지. 그랬더니 네가 게이트 주인이 되었다고 해서 차라리 이 안에 있자 싶었고.”

“그러니까 요점은 미국이 위험한 짓을 하고 있다는 얘기네요? 그런데 그런 짓을 미국만 할 리는 없을 거고. 소위 강대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은 다 하고 있겠군요.”

내 말에 누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혹시 모르니 최악을 대비하자는 거지.”

최악을 대비한다. 솔직히 좀비 사건은 거기서 끝났다고 한다. 그 지역을 날려 버렸고, 그 후에 다시 좀비가 된 사람은 없다고 알려졌으니까. 중요한 것은 알려진 것이 그렇다는 얘기.

갑자기 내 삶의 장르가 전환되는 느낌이었지만, 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이 안에서라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