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1 화 저들에게 무슨 일이?
제 71 화 저들에게 무슨 일이?
아직까지 세상에 좀비 사태가 터졌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 사실 미국이 아무리 돌았다고 해도 그런 사태를 벌일 이유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뭐, 모두가 죽자고 그런 짓을 벌일 수도 있긴 하겠지만, 그래서야 권력자들도 남는 것이 없지 않은가.
‘그건 좀 비현실적이지. 그렇다고 적국의 한 가운데에 좀비를 투하한다?’
이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미국의 현재 적국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이라면 그게 매우 효과적일 수도 있다. 워낙에 인구가 많은 나라이니까.
그런데 그 후가 문제다. 좀비 사태가 벌어진다면 그게 제어가 되겠는가? 결국 세상이 망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니 그것은 시험의 부작용으로 일단은 접어두었을 가능성이 크다. 뭐 미국이 궁지에 몰리면 그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없다고 하긴 그렇지만, 사실 현실에서 미국이 그럴 일이 생기는 것이 이미 아포칼립스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내가 미국을 좋아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그런 강대국이 그런 짓을 해야 할 정도로 궁지에 몰리는 상황이면 정말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다. 난 곰곰이 누나의 이야기를 생각해보았다. 그러다가 다시 누나에게 물었다.
“애초에 무슨 실험이었어요?”
“장기 재생 실험이었어.”
“장기 재생이요?”
“어, 말 그대로 죽어가는 장기를 되살리는 실험이었지. 트롤의 피를 이용해서.”
“트롤의 피라면 우리도 많이 가지고 있긴 한데······ 그건 다 치료제로 만들어서 사용해요.”
“트롤의 피가 많다고?”
누나가 오히려 놀라서 물으신다.
“네, 제가 잡아 온 것들도 많고, 선우랑 우리 가족들이 잡아 온 것들도 상당히 많을 걸요. 선우에게 소유권을 넘겨서 변질되지 않은 것도 많구요.”
“야! 넌 그런 얘기를 왜 안 했어?”
“언제는 물어봤고? 애초에 누나가 트롤의 피로 뭘 한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데 대뜸 가서 누나한테 ‘나 트롤의 피 많다.’그러라고?”
선우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있는 얘기니까. 애초에 트롤의 피로 포션을 만들 생각을 하지 저런 장기 재생 같은 것을 보통 사람은 생각하지 못한다.
“아니, 그런데 미국에서도 트롤을 잡았다구요?”
“수십 명이 크게 다치면서 잡았지. 다행히 죽은 사람은 없었지만.”
수십 명이 레이드를 했다는 이야기다.
“누나도 거기 있었어요?”
“아니, 난 헌터라고 해도 연구원이었으니 직접 전투를 할 일은 없었어.”
“아, 그러겠네요. 근데 누나 혹시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난 누나에게 말했다. 그러자.
“어, 말해봐.”
“혹시 수학 같은 것들도 스킬로 등록이 되던가요?”
“당연하지. 수학만이 아니라 기초 과학들도 다 스킬로 등록 가능했어. 난 생명공학까지는 등록 못했었고, 치료술이라는 스킬이 생겼었지. 아마 비슷한 구분으로 보는 것 같더라고.”
“책을 읽어서?”
“책만으로 등록되는 것도 있고, 실험을 해야 하는 것도 있는데, 실험은 알다시피······.”
“네, 도구를 가지고 넘어갈 수 없었겠죠?”
“그래, 그래서 대장장이 스킬을 가진 사람들과, 공예를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실험도구들을 만들려고 난리가 아니었지. 미국 내에서는 사실 바다까지 열려 있는 게이트가 없어서 유리를 만들기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아. 그런데 여기라면.”
일단 유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래가 필요하다고 들었다. 그것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몰라도 말이다. 그것 외에 여러 가지 화학적인 것들이 필요하다고 들었는데, 대체역사 소설을 보면 많이들 나온다. 어떻게든 그런 곳들에서도 유리를 만들어낸 후에야 여러 가지 발전이 이뤄지지 않던가.
“그러니까 우리도 대체 역사 소설처럼 유리부터 만들어야겠네요?”
“가능하겠어?”
“의외로 제가 뭘 만드는데 재능이 있더라구요. 누나, 그러면 장기 재생이라는 실험은 실패했다는 거죠?”
“맞아. 동물실험만 성공을 했었고, 인체실험은 실패했던 거지.”
“원인은요?”
“내 예상으로는 트롤의 피가 문제였어. 한정된 자원으로 계속 실험을 하면서 변질되었거나, 너무 희석시켰거나.”
“트롤이 미국에서도 잡기 힘든 몬스터였어요?”
“장난하니? 당연히 잡기 힘들지. 40레벨대의 헌터 수십 명이 달려들어서 겨우 한 마리를 잡았는걸.”
미국에서 그것도 저런 중요한 실험을 하는데 필요한 트롤을 잡는데 40레벨대 헌터들을 동원했음에도 결과가 저렇다는 것은 생각보다 헌터들이 강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어쩌면 진짜 우리 게이트는 축복받은 게이트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누나, 일단 여기에서 스킬 생성에 집중해주시구요. 시간 되시면 애기들 공부좀 가르쳐주세요. 딱히 애들 공부를 봐줄 사람들이 없네요.”
“나도 사냥하면 안 될까?”
“원한다면 하세요. 대신에 제 부탁도 좀 들어주시구요. 안전한 사냥은 선우가 도와줄 거예요. 장비는 시연이가 만들어줄 거고요. 전 유리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 좀 알아봐야겠네요.”
“그래, 그리고 혹시······.”
“네.”
“같이 연구하던 사람들 중에 한국인이 몇 있는데 불러와도 되니?”
“게이트에 속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아시죠?”
“당연히 알지. 그리고 그 사람들은 다들 좀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았었어. 나는 그나마 성격이 그래서 다른 연구원들이랑 친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평생 공부만 한 사람들이 많아서.”
흔히 생각하는 공부만판 이과생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사회생활에 적합하지 않고, 그냥 혼자 연구만 하는 그런 이미지. 누나는 공부를 그렇게 하면서 엄청 외향적인 성격이라 사람들을 좀 휘어잡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나랑 선우도 겨우 한 살 차인데 꼼짝을 못하는 거고.
“누나가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모시고 와요. 우리가 해보죠. 그 장기 재생이라는 거.”
“트롤의 피가 그렇게 많다면 더 효과적인 치료제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야. 미국놈들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겠어.”
“당한 게 있으신가봐요?”
“아무래도 그렇지.”
대충 짐작이 갔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것은 다 도와드릴게요. 까짓거 우리나라에서 먼저 만들어버리죠.”
“좋았어! 해보자!”
“네.”
누나는 신이 나서 돌아갔다. 그런 누나를 선우가 작게 한숨을 쉬며 따라간다. 예전부터 하나에 집중하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조만간 살아 있는 트롤이라도 잡아 와야겠네.”
냐앙.
호야는 관심없다는 듯이 집무실에 만들어져 있는 호화로운 캣타워에서 그루밍을 하고 계실 뿐이다. 내 평생 본 그 어떤 캣타워보다 화려하다. 그 위에서 그루밍을 하다가 캣타워에 설치된 의자 같은 곳에 떡하니 앉더니 양앞다리를 좌우에 걸치고 날 쳐다본다.
“너, 뭔가 엄청 기분 나쁜데?”
풉!
비웃는다. 한 대 꼭 정말 언젠가는 때려주고 싶다. 물론 딱콩 정도 강도로.
***
난 잠깐 게이트 밖으로 가서 유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찾아봤다. 원시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너튜브에 자세히 나와 있다. 일단 내 목적은 유리세공 스킬을 만드는 것. 그렇게 방법을 알아낸 후에 필요한 것들을 사서 게이트로 넘어갔다.
그리고 한창 유리세공 스킬을 만들기 위해서 노가다를 할 때다.
“오빠, 걔들 찾아왔어, 켄타우로스.”
“어? 아, 그러네. 알았어. 가자.”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다 흐른 것 같았다. 바람의 일족이 과연 무엇을 가지고 왔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시연이와 함께 바람의 일족이 도착했다는 곳으로 갔다. 그랬더니.
“뭐지? 싸우자는 건가?”
딱 봐도 근육근육한 켄타우로스 전사들이 대충 봐도 이십여 명이 그녀의 곁에 줄지어 서 있다. 무기 자체는 내리고 있는 상태였지만, 언제든 기사돌격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은 그런 상태?
“^$%^#$%^##@”
“안녕하세요, 영주님.”
“안녕했었죠. 그런데 이제 안녕할 수 있을지 걱정을 해야 하는 상황인가요?”
내 명경지수는 이런 순간에도 나를 진정시키고 냉정하게 주변을 둘러보게 한다. 헬레나는 호야를 두려워한다. 호야가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겨우 저 정도의 병력으로 우리를 공격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라면 이들이 바로 우리 거래의 대가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저를 포함해서요.”
“네?”
난 순간 이게 뭔 개소린가 싶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저와 이 전사들이 영주님의 영지민들이 될 것입니다. 대신 저희 부족에게 식량을 제공해주세요.”
헬레나가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이야기를 하자 다른 바람의 일족들도 고개를 숙인다. 이게 농담이 아니라는 이야기. 그런데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지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일단 내가 이해가 안 가서 그러는데, 당신은 바람의 일족에서 신녀의 직분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신녀는 저 혼자가 아닙니다. 여러 명이 있죠. 전 그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보통 신녀라고 하면 하나 아닌가? 이것도 고정관념인가? 이상하지만 상대가 그렇다고 하니 뭐라고 할 말이······.
“진실.”
거짓말 탐지기 촌장님이 진실이라고 하시니 진실인가보다. 그런데 언제 오신 거지?
“도대체 바람의 일족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 겁니까?”
“저희 일족은 총 2천여 명입니다.”
헐. 생각보다 훨씬 숫자가 많다. 만약 저들이 우리를 공격해온다면 우리는 대책이 없을 것 같다.
냐앙.
그때 호야가 헬라나의 등 위에 올라탄다. 뭔가 아무리 하체가 말이라지만, 좀 그래보이는데 호야는 전혀 거리낌이 없다. 그리고 헬레나의 등에 다가가더니.
하아악!
위협을 한다. 생각해보니 쟤들은 숫자가 2천이나 되는데 호야 때문에 우리를 공격할 수 없다는 뉘앙스로 말했었다. 우리 호야는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 걸까? 갑자기 든든하다.
“절대로 거짓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 일족의 식량 상태가 지금 그만큼 좋지 않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 일족이 있는 곳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호야에게 하는 말이다.
냐앙?
대충 거짓이면 죽는다는 얘기 같다. 그리고 헬레나는 호야에게 무척이나 쩔쩔매고 있다. 정말 두려워하는 것 같다.
“호야, 아빠가 얘기 좀 해도 돼?”
냐앙.
마음대로 하란다.
“일단 헬레나.”
“네, 영주님.”
“우리 영지의 영지민이 된다면 다시는 바람의 일족으로 돌아갈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내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각오하고 있어요. 일족의 멸망보다는 우리의 희생이 값어치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우리 영지민이 되는 것은 희생이라는 거군요?”
“그건······.”
“뭐. 됐고. 그런데 왜 내가 당신들을 받아줄 거라고 생각한 거죠? 애초에 내가 안 받아주면 그만아닌가요?”
“죄송합니다. 그 경우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일족은 여러 가지 재주가 많습니다. 전투에 능하기도 하구요.”
근육근육한 것이 딱 봐도 전투는 참 잘 할 것 같다. 거기에 통역 마법을 사용할줄 아는 헬레나까지. 그녀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통역 마법만은 아닐 테니까.
“2천 명이 먹을 식량이라면 아무리 내가 영주라고 해도 좀 무리가······.”
그때 카락이 사료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그것을 바람의 일족 한 명에게 내민다. 그리고 그것을 먹을 바람의 일족은 매우 만족한 얼굴을 보인다.
“없겠네요. 저것도 괜찮다면?”
사료회사에 다니고, 우리도 사료를 곧 생산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 게이트의 물건들은 불티나게 팔린다. 그러니 사료값은 그닥 문제가 될 것은 없을 것 같았다.
“물론입니다.”
헬레나의 말에 난 그녀와 20명의 바람의 일족을 영지만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궁금한 것은 도대체 저들에게 무슨 일이 있던 걸까? 호야는 알고 있는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