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3 화 작은 혁명-1
제 73 화 작은 혁명-1
호야의 한심하다는 눈빛과 함께 사람들에게 일단 임시 출입허가를 내준 후에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누나가 데리고 온 연구원의 숫자는 총 다섯. 다섯 명은 들어오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지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맞지? 여긴 그 거지 같은 미국 게이트와는 차원이 다르다니까.”
“진짜······ 한국에 이런 게이트가 있다니 놀랍네요. 그리고 여기에 트롤의 피가 많다구요?”
아마 나이는 누나가 제일 많은 것 같다.
“어, 기대려 봐. 선우야!”
누나가 선우를 부르자 저 멀리서 선우가 백호를 타고 달려온다.
“우어어어어!”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멋들어지게, 내가 보기에는 개쪽팔리게 백호에서 뛰어내린다. 어디서 장만한 것인지 망토까지 하고 있다. 시연이가 만들어준 강철맨 전신갑옷에 망토라니······. 내가 오그라들어서 죽고 싶을 정도다.
“불렀어?”
강철맨 슈트의 헬멧부분의 오른쪽 귀부분을 돌린다. 누른 게 아니라 돌리는 거다. 그러자 얼굴 앞부분이 열리면서 얼굴이 드러난다.
방금 전까지 사냥을 하고 온 것인지 몰라도 땀범벅에 내가 보기엔 개웃긴다. 아무튼, 선우가 그렇게 똥폼을 잡는 이유는 오늘 들어오는 연구원 다섯 중의 셋이 여자라는 얘기를 들어서인 것 같다.
문제는 그 안에 자신의 첫사랑이 있다는 얘기는 못 들은 것 같다. 누나도 참 이런 부분에서 짓궂은 것 같다.
“오······빠?”
“네?”
선우가 오빠라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주연을 쳐다본다. 그리고 선우는 서둘러 이번에는 얼굴 왼쪽의 작은 동그라미를 돌린다. 그러자 다시 얼굴이 가려진다.
“큭큭큭.”
자동으로 슈트가 입혀지고, 벗겨지는 기능까지는 아직 무리다. 그래서 저렇게 곳곳에 수동으로 해줘야 되는 부분들이 있다.
애초에 저게 자동으로 입혀지고, 벗겨지려면 기계공학쪽의 영역이지 않을까? 기계공학자를 한 명 섭외해야 하나. 이건 나한테도 해당하는 부분이라 고민을 해볼 부분이다.
“너, 너는 주연이?”
“어, 그런데 얼굴은 왜 다시 가려?”
쟤는 정말 몰라서 묻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 즐기는 걸까? 매우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큭큭.”
퍽! 냐오아.
내 어깨에 앉아 있던 호야가 다시 내 뒤통수를 때린다.
“뭐? 친구 쪽팔려 하는 거 보고 좀 웃으면 안 되냐?”
그런 나한테 호야가 말한다.
냥냥! 냥냥냥냥.
“첫사랑 자체가 없는 게 더 쪽팔리는 거라고? 너어······ 그렇게 심한 말을!”
생각해보니 쟤는 쪽팔릴 일이 있긴 하지만 난 그것도 없다. 어찌나 퓨어한 남자인지 깨끗해도 너무 깨끗해서 진공상태의 과거를 가진 내 과거가 갑자기 쪽팔려진다.
풉!
그래 놓고 지는 웃는다. 이 양면성의 고양이 같으니. 아무튼, 다시 관전 모드.
“너······ 이과였어?”
난 깨달을 수 있었다. 저 시키가 왜 차였는지. 이래서 쟤랑 나랑 친구였나보다. 누구보다 끈끈한 우정의. 한심한 것은 저놈인데 나도 한심해지는 느낌적인 느낌.
“오빠는 참 변한 게 없네.”
화사하게 웃으며 말하는 주연. 그런데 왜 그 웃음 속에 칼이 숨겨 있는 느낌일까?
“하하하, 그게 내 장점이지.”
하지 마! 그러지 말라고.
“그러게, 그게 오빠 장점이지. 잘 지냈어?”
“나야 뭐 그렇······지?”
“그랬구나. 난 오빠덕에 잘 지내게 된 게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는데 오빠는 잘 지내고 있었구나?”
역시 여자의 대화법은 어렵다. 우리 호야와 대화를 하는 것이 훨씬 쉬울 정도다. 그때 누나가 내 옆으로 다가오신다.
“네가 보기엔 어때?”
“어떠냐뇨?”
“내 등신같은 동생?”
“참고로 누나.”
“응?”
“저 쟤랑 둘도 없는 친구랍니다.”
“아!”
누나는 깊은 깨달음을 얻은 수행자 같은 눈빛으로 나를 보신다.
“너도 알고 있었구나?”
“그······ 그렇죠?”
“그래, 호야랑 천년만년 행복하렴.”
그러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는데 뭔가 기분이 오묘하다. 손끝에서 동정이 느껴진다. 이것도 스킬인가?
내가 어릴 때 그런 책이 유행을 한 적이 있다. 다른 별에서 온 남자, 여자 뭐 그런 제목이었던 것 같은데, 그냥 남자와 여자는 인간이라는 카테고리에 있지만, 사실 다른 종족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개와 고양이처럼 같은 반려동물로 치지만, 사고와 행동이 전혀 다른 그런 느낌? 그래서 내 선택은 역시 호야다.
“그치, 호야?”
냐앙?
“알았어, 개소리 안 할 게.”
난 호야를 품에 안았다. 또 이럴 때는 귀엽게 얌전히 안겨준다.
“김선우.”
“어?”
누나의 부름에 선우가 정신을 챙기고 대답한다.
“트롤의 피.”
“아, 따라와.”
선우가 사람들을 데리고 창고로 향한다. 그것을 보고 난 다시 유리공방으로 향했다. 대충 보아하니 저들의 검증은 깊게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물론, 저들이 다른 목적으로 이곳에 왔는지는 가려줄 분이 계시다.
우리 최강의 촌장님.
촌장님에게 저들에게 거처를 내주면서 다른 목적이 있는지 물어봐달라고 해둔 상태다. 인간 거짓말 탐지기이신 촌장님은 우리 영지의 진짜 보물이시다.
***
크락! 크로로! 크라락!
카락이 오크 일꾼 몇몇에게 유리 제조를 가르치고 있다. 지도 이제 2레벨이면서. 하지만 난 그것을 전혀 터치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왜?
쟤가 오크들 교육을 아주 잘 시키거든.
“잘 하고 있다, 카락. 오늘은 우리 유리 제조 스킬을 마스터······까지는 어렵고, 많이 올려 보자.”
유리를 만들어서 뭐에 쓸 것인가? 유리창을 만들겠지? 그런데 애초에 유리창 정도는 밖에서 가지고 들어오는데 별다른 제약이 없다. 그냥 무거울 뿐이다. 그런데 유리 비이커 같은 것은 가지고 들어오면 형태가 뭉개진다. 기계류가 작동을 하지 않는 것처럼.
그래서 내가 이짓을 하는 거다. 그러니까 이 게이트가 허락하고, 허락하지 않는 부분에 대한 아직 정확한 구분을 나는 알지 못한다.
낚싯대는 되고, 라이터는 안 되었던 것처럼. 그래서 실험도구들은 전부 만들어야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실험도구들이 무서운 것을 만들어낼 단초가 되는 것이기에 시스템이 막은 것이 아닐까?
아무튼, 당장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판유리다. 밖에서 유리를 가지고 올 수는 있지만,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것을 다 밖에서 가지고 오기는 무리가 있어서 가평 사람들만 겨우 이용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오크들에게도 밝은 집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유리창으로 다 바꿔줄 생각이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 유리를 뽑아서 그것으로 판유리를 만들었다. 지구에서 만드는 것만큼 깔끔한 판유리를 만들기는 어렵지만 그것은 스킬빨로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했다.
그렇게 며칠동안 난 유리 제작은 올리고, 드디어 유리 제작 스킬을 10렙까지 올릴 수 있었다. 그러자 새로운 스킬이 생성되었다.
-유리 제작(액티브)스킬이 MAX레벨이 되었습니다.
-유리 가공(액티브)1레벨 스킬을 얻으셨습니다.
-유리 세공(액티브)1레벨 스킬을 얻으셨습니다.
제작은 맥스가 되었고, 유리 가공과 유리 세공 스킬이 드디어 생겼다. 그래서 난 누나를 불러서 필요한 실험도구를 물어봤고, 그것들을 만들어서 제공해주었다.
그런데 여자 오크들이 갑자기 기웃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음? 왜?”
코로, 코로로 코코록.
“아, 그러니까 유리 세공으로 목걸이를 만들어줄 수 없냐고? 굳이 이걸로? 밖에서 더 좋은 걸 사다줄 수 있는데?”
하지만 여자 오크들은 이것을 원했다. 그래서 몇 개를 만들어주니 충성도 외에 존경심이라는 스탯까지 생겨났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저, 저도.”
“헬레나?”
“네.”
“아니, 이게 뭐라고 이걸.”
“아름다우니까요.”
“겨우 유리가? 우리 광산에는 보석도 있는데?”
“이것은 원하는 모양으로 가공이 가능하지 않아요?”
“보석도 깍아서 그렇게 만들 수는 있는데······ 아닌가?”
유리는 녹여서 이런저런 모양을 만뜨는 것이 용이하다. 하지만 약하다.
그러자 헬레나가 주문을 외운다. 그러더니 유리에 주문을 때려박는다. 그리고 작은 망치를 들더니 내리친다.
퍽!
쨍그랑이 아니라 퍽이라는 소리다 난다. 그리고 가늘게 세공했던 유리는 멀쩡한 모습이다. 길고 가는 유리가 망치를 버텨낸 것이다. 난 관찰로 유리를 살펴보았다.
-관찰 스킬을 사용하였습니다.
아이템: 강화 유리 세공품(8레벨).
마법으로 강화된 유리다. 어떤 물리적 충격에도 깨지지 않는다. 8레벨 이하의 마법에 면역을 가진다.
별다른 효과는 없었지만, 이것 자체만으로 엄청난 물건이 되었다.
“헬레나.”
“네.”
“그 강화 마법?”
“네, 맞아요. 가르쳐드릴까요?”
“부탁해요. 그럼 헬레나가 원하는 것을 내가 만들어줄게요.”
“좋아요!”
난 헬레나를 통해서 통역 마법과 강화 마법을 배울 수 있었다. 유리를 강화해서 어떤 물리적 충격에도 깨지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엄청난 메리트였다. 게이트 안에서도, 그리고 지구에서도.
***
“오빠, 오빠!”
“왜? 왜?”
“그거, 그거.”
“뭐? 뭐?”
“강철멘 슈트에 꼭 필요한 거 알지?”
강철맨 슈트의 눈 부분은 현재 그냥 뚫려 있는 상태다. 그 사이로 화살 같은 것을 맞게 되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그 부분을 강화 유리로 채울 수 있다면 방어력은 더 올라간다.
“준비해놨지.”
“내가 이래서 오빠를 사랑한다니까.”
“이럴 때만?”
“파인애플 피자 만들어줄 때랑?”
“큭. 오빠 것부터 해놔.”
“알았어.”
시연이가 신나서 만들어둔 보안경을 잔뜩 가지고 갔다.
그리고 난 제작한 실험도구들을 가지고 누나의 연구실을 찾았다. 오크 건설팀의 스킬이 날이갈수록 발전하고 있었다.
조만간 우리 영지를 도시로 발전시킬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걔들은 요즘 도로를 정비한다고 정신이 없다. 최근에 숲에서 날아온 나무 씨앗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갑자기 우리 영지에 생겨난 나무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고무나무라고 한다. 그래서 수레 바퀴를 더는 밖에서 가지고 오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고무의 가공은 내가 직접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가장 기쁜 일이다.
연구원 중에 화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있어서 그가 오크들에게 고무를 가공하는 방법을 가르쳤고, 오크 일꾼 중에서 고무를 다룰 수 있는 애들이 생겼다.
그렇게 우리 영지는 하루하루 발전해가는 중이다.
“누나.”
“어, 왔니? 그거야?”
“네. 주문하신 실험 도구들이에요.”
“역시 이게 필요했어.”
누나는 매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말한다.
“그거 알아?”
“뭐요?”
“트롤의 피를 가공하지 않고, 밖으로 가지고 나가면 효능이 확 떨어져.”
이건 몰랐던 일이다. 사실 밖에서 치료제를 사용해보지 않아서 몰랐다.
“그래요?”
“어, 그런데 미국은 그렇게 실험을 하고 있거든. 아마 실험이 실패한 이유가 그거인 것 같다.”
그런 차이가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러니까······.”
누나의 이야기는 미국의 실험방식에 대한 것들이었다. 애초에 그들은 그 차이 자체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자신도 여기에 와서 알게 되었다고. 애초에 트롤의 피가 그런 실험을 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그럼 장기 재생이라는 것이 가능해질 수도 있겠네요?”
“더한 것도 가능할 수도 있어.”
“더한 것이라면?”
“음 가볍게는 일단 두피를 재생시킬 수 있지.”
“어? 그거 발모제?”
“결과는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와! 그럼 두피를 재생시키고, 검은 콩을 먹으면?”
“완벽해지는 거지. 풍성풍성하게.”
드디어 대박 히트 상품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이건 팔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다른 것으로는······.”
누나의 설명을 들을수록 난 오히려 불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