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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학개론-74화 (74/182)

제 74 화 작은 혁명-2

제 74 화 작은 혁명-2

누나의 말에 따르면 장기를 재생하는 것만이 아니라, 일단 모든 세포들을 재생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절단된 지 오래 된 그런 부분은 제외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하지만 이정도만 해도 정말 말도 안 되는 효과다. 이게 세상에 발표되고, 사람들이 이용하기 시작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오늘 누나의 이야기에서 가장 포인트는 노화를 막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역전 시킬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피부를 재생시키고, 장기를 재생시킨다. 그렇다면 노인이 젊음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건 너무 간 것 아닐까요?”

“그래,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 그런데 이론상으로는 가능해. 그리고 그건.”

“해서는 안 될 일인 것 같은데요.”

이게 문제다. 윤리적인 관점 그런 것은 둘째치고 본능적인 거부감이 든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거부감은 다른 사람들도 느낄 것이다. 아, 그 대상이 자신이라면 얘기는 좀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생각하면 그렇지 않을까?

물론 이 경우에 한 가지 조건이 더해진다면 다를 수도 있다.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트롤의 피라는 것은 바다처럼 거의 무한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누나의 설명을 들어보면 한 사람을 완전히 재생시키는데 들어가는 트롤의 피는 거의 3마리 정도의 분량이다. 트롤의 씨가 마를 때까지 잡는다고 해도 이건 사실상 모든 인류가 혜택을 받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아니, 모든 인간은커녕 동네 하나도 그렇게 만들지 못할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결국은.”

“있는 자들의 전유물이 되겠지.”

“그것을 위해서 연구를 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죠?”

“당연하지.”

“그렇다면 누나가 하려고 했던 표적 치료로 장기를 재생시키는데 필요한 트롤의 피는 어느 정도예요?”

“대략 200ml정도. 그러니까 시중에 파는 작은 우유 하나 정도라면 보면 돼.”

“그것도 적은 양은 아니네요.”

“그렇지. 하지만 트롤 한 마리가 보통 죽기 전까지 피를 받아냈을 때에 50리터 정도가 나온다고 하더라. 그렇다면 트롤 한 마리를 잡아서. 250인분의 장기재생 치료제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지.”

트롤 한 마리에 250명 분의 장기를 재생시킬 수 있다. 이 정도면 상당히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인간의 피가 5리터에서 6리터라고 본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이건 성인 남성 기준이다. 그런데 트롤은 그 열 배에 해당하는 피를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죽기전까지 심장이 미친 듯이 피를 만들어낸다고 봐야 하는 것 같다. 어차피 인간 기준으로 생각할 일은 아니니까.

아무튼, 그런 트롤의 피라면 한 마리로 250명의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기술이랄까? 아니지, 이건 기술이 아니라 트롤의 피가 대부분 다 한 거라고 봐야겠지? 이걸 세상에 내놓기는 쉽지 않을 거야.”

“아무래도 그렇겠죠. 우리가 뭐 의료기업도 아니고. 사료회산데, 큭큭.”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고 해서 이것을 상용화할 능력이 우리들에게는 없다. 누나는 생명공학을 하는 사람이니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치료제의 성분이 트롤의 피라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걸 생각하면 그것도 참 어려운 일일 것 같다.

“몰래 소매 넣기 하듯이 몇 명 살려볼까?”

“와, 이 누나 겁나 위험한 분이시네.”

소매 넣기라는 것은 게임을 할 때 고렙이 쪼렙 뉴비들에게 몰래 선물을 넣는다거나 그런 행위를 말하는 것일 거다. 그런데 소매 넣기로 몇 명을 살려본다는 것은 환자 몰래 치료제를 투여해보겠다는 얘기가 아닌가?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이 누님이 발전하면 앞으로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농담이야, 농담. 하지만 딱 한 사람은 그렇게 할 생각이야.”

“네?”

“주연이 동생.”

“동생분이 왜요?”

“심장에 문제가 있거든. 이제 고등학생인데.”

“이식은 어려운가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장기기증에 매우 부정적이라고 봐야지. 시신을 온전히 유지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유교사상의 영향이랄까?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은 많은데, 공여자는 적으니까.”

“외국이라고 다 장기기증을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치, 근데 비중은 훨 높아.”

그런 이야기도 읽은 기억이 있다. 정말 유교사상이라는 것이 알게 모르게 한국 사회에는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그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부분도 분명히 많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다. 딱히 뭐가 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부분이라고 본다.

“참고로 전 장기기증 서약한 사람입니다.”

“잘했네.”

장기기증을 서약하면 스티커를 보내준다. 그것을 자신의 신분증에 붙이고 있으면 불의의 사고로 죽게 되면 그것으로 사망자가 장기기증을 희망한 사람인지 구분을 할 수 있다.

내 주민등록증과 면허증에도 스티커가 붙어 있다. 요즘도 스티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주연이의 동생은 일단 살리고 보는 걸로 하죠. 그런데 부작용은 없어요? 미국 같은 일이 벌어지면.”

“말했잖아. 그건 피를 밖에서 가공한 것이 문제였다고.”

“확신해요?”

“확신하긴 해. 하지만 그래도 한 번 더 확신하기 위해서 네가 봐주는 편이 좋지 않을까? 너 ‘관찰’스킬 가지고 있잖아?”

“아, 그러네.”

누나가 치료제를 내게 내민다. 보기에는 혈액팩 같이 생긴 것이다. 그것을 난 관찰하기 시작했다.

-관찰 스킬을 사용하였습니다.

아이템: 장기 재생 수액(9레벨).

표적이 되는 장기에 수액을 공급할 경우 장기가 재생한다. 인체에 적용이 가능하다.

설명은 간단하다. 효능이 따로 붙지도 않았다. 하지만 시스템은 이것이 사람의 장기를 재생시켜준다는 설명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누나의 말처럼 확실히 장기 재생 치료제라는 이야기다.

“시스템도 누나의 말이 맞다고 그러네요.”

“그래? 다행이다.”

“그럼 바로 주연이 동생한테 써볼 생각이예요?”

“별다른 효능이나 부작용 같은 것은 없었지?”

“표시되는 것은 없어요. 그렇다면 없는 걸 거예요.”

“다행이네.”

“그럼 시술은 어디에서?”

“그래서 말인데, 너희 집에 의료기기들을 좀 들여놔도 될까?”

“우리 집을 불법 의료원으로 만드시게요? 그건 좀 무리죠. 우리 집을 감시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아, 외부에서는 그러려나?”

“네, 게이트 주인들은 알게 모르게 감시랄까? 보호랄까? 그런 것을 하지 않겠어요?”

게이트 주인은 보호겸 감시를 하는 경우가 많다. 게이트 주인이 죽으면 게이트가 사라지니 자원이 사라지는 겪이다. 그러면 국가적으로도, 인류에게도 손해가 된다. 하카시처럼 반려동물이 있고, 반려동물이 그 권한을 가지고 있다가 다른 이에게 전해주는 것이 아닌 이상은.

“그럼 어디서 하지?”

“노멀하게 그냥 병원에서 해요. 무슨 죄를 짓······는 게 맞나?”

“그치, 일단 불법이 맞지.”

“그럼 아예 임상실험을 해보는 편이 좋지 않겠어요?”

“응?”

“임상실험을 하고 더 진행 안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임상실험에 성공한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제품으로 출시되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실험은 성공했지만, 단가를 맞추기 어렵다던가 하는 이유로 폐기되는 것들도 있지 않겠는가?

그럼 임상실험 자체는 불법이 아니니 허가를 받고 해보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러네, 그렇게 하면 되겠다. 땡큐.”

뭐 이쪽으로는 누나가 인맥이 있을 테니까 상관없다.

“자, 이제 제일 중요한 두피 재생 크림? 그건 트롤의 피가 얼마나 들어가요?”

“그건 뭐 트롤의 피 200ml면 200개쯤 만들 수 있어.”

“오오, 트롤 한 마리면 뽕을 뽑겠네요.”

“그치.”

“그거 팔아서 병원이나 하나 세울까요?”

“응? 병원? 그게 그렇게 잘 팔리려나?”

“장난해요? 천만 탈모인의 염원을!”

“우리나라 탈모인이 천만이나 된다고?”

“어떤 개그맨이 TV에서 그러던데요?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크림 한 통이면 확실히 머리 나는 거 아니에요?”

“그치.”

“그럼 대충 그거 한 통에 백만 원에 팔아도 되겠네요.”

“그렇겠지?”

“그럼 트롤 한 마리가 얼마로 변신하는 거죠?”

“이과한테 물어봐.”

“누나가 이과잖!”

“아, 그렇지. 50억쯤?”

트롤 한 마리로 50억을 번다. 이 정도면 병원 차릴 수 있는 거 아닌가?

“그 정도면 병원 차릴 수 있겠는데요?”

“그건 사업가가 알아서 할 일이지. 난 모르겠고, 난 트롤의 피와 파인애플을 결합해서 획기적인 피부재생연고를 만들 생각이야. 뭐 사람이 완전히 젊어질 수는 없어도 겉 모습 정도는 괜찮지 않아?”

노화를 역전시키겠다는 얘기로 들린다. 하지만 그걸로 수명이 연장되는 것은 아닐 거다. 그럼 뭐 괜찮으려나? 잘 모르겠다.

“알아서 하세요. 근데 알죠? 너무 드라마틱한 효과를 주지는 마세요.”

“알았어. 참, 그리고 동물병원도 하나 연계하는 것이 좋겠다. 애초에 네가 좋아하는 동물들에게도 장기 재생은 필요하니까.”

“아, 그럼 누나 아버님 가게 근처에 있는 그 동물병원으로 하죠. 거기 원장님 좋던데.”

“괜찮지. 멀리서도 찾아올 정도니까.”

“그럼 그렇게 진행하죠. 동물들 장기 재생에는 얼마나 들어가요?”

“고양이들이나 소형견은 대충 1ml정도. 대형견은 100ml정도 생각하고 있어.”

“네, 그럼 그렇게 준비해주세요.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료도 실험을 해볼 곳이 필요했는데 그 동물병원에서 해야겠네요.”

“그래. 거기 원장님이 참 좋아.”

누나의 말에 난 가만히 누나를 쳐다보았다.

“뭐? 왜?”

“마음에 드시는구나?”

“마음에 들면 뭐? 싱글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동생들이 그런 것도 알아오고 그러면 참 연구가 신날 거야, 그치?”

“알아오겠슴돠!”

“내가 그래서 널 좋아한다니까? 저 짐승같은 선우 놈은 어디에 내다 버려라.”

“잘 포장해서 버릴게요. 주연이네 앞에다가?”

“주연이는 여전히 생각하던데 저 짐승은 어때?”

“쟤도 주연이 못 잊고 있어요. 애초에 주연이가 첫 사랑이고······ 마지막 사랑일걸요?”

내 말에 누나가 한숨을 쉰다. 그리고 호야가 나를 보며 한숨을 쉰다. 뭐지? 왜 둘의 표정이 이렇게 닮았지?

냐앙.

호야가 내 어깨에 앉아서는 내 머리에 앞발을 올린다. 뭔가 기분이 나쁘다.

“너어, 하지마.”

냐앙.

“알았다고!”

니 첫사랑이나 챙기란다. 있긴 하냐고. 그래, 까짓거 만들고 만다. 첫사랑.

근데 첫사랑이 어디가면 만날 수 있는지를 모르겠다. 회사에서는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소문까지 퍼졌단다. 워낙에 여자를 보기를 돌 보듯 한다고. 지난 번에 회사 퀸카가 번호를 주겠다는 것을 내가 깔끔하게 차단하는 것을 보고 더 그런단다.

참고로 이 이야기는 아버지한테 들었다. 아버지가 나한테 남자 좋아하냐고 진지하게 물으시는데 깜짝 놀랐다.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를 내가 이상하게 보는 것은 절대 아니다. 취향을 존중한다. 다만 내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랐을 뿐.

“술이나 마실까?”

“가봐, 와인이 드디어 숙성이 끝났다고 하던데.”

얄미운 누나다. 하지만 난 또 와인을 살피러 터벅터벅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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