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학개론-75화 (75/182)

제 75 화 와인의 제왕.

제 75 화 와인의 제왕.

포도가 나온 이후에 와인을 만드는 시도는 여러번 해보았다. 다들 나름 괜찮은 와인이 나오긴 했지만, 뭔가 딱 이렇다하게 맛있는 와인은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 가평 주민들 중에 양조장을 하시던 분이 게시는데, 그 분이 양조 스킬이 생겨서 그동안 그 스킬을 올리려고 엄청난 양의 술을 만드셨다.

덕분에 그분은 오크들의 신으로 추앙받을 정도다. 오크들이 아주 환장을 한다. 우리 게이트의 식재료로 주로 만드는 막걸리나 청주, 소주 같은 것들은 기가 막힌 맛이다.

평소에 술을 거의 안 먹는 내가 먹어봐도 맛있다고 느껴질 정도니까. 그리고 9레벨이 되시면서부터 와인에 집중하시기 시작했다. 최씨 아저씨는 그것으로 큰 돈을 버실 거라고 했다. 사실 막걸리나 청주, 소주 같은 것으로 큰 돈을 만지기는 어려우니까.

하지만 와인의 경우는 소믈리에게 인정을 받는다면 얘기가 다르다. 엄청난 맛에 체지방을 분해시켜주는 효능. 물론 와인으로 만들었을 때도 같은 효능은 존재했다. 근데 그것도 9레벨일 때의 와인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것도 충분히 상품성이 있었는데 최씨 아저씨는 만족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드디어 양조 레벨 맥스를 찍고 만든 와인을 선보이는 것이다.

최씨 아저씨의 양조장에 가니 이미 마을 사람들이 다 오신 것 같았다. 특히나 평소에 주당이라고 하시는 분들은 빠짐없이 와 계셨다.

“영주!”

최씨 아저씨가 나를 부르신다.

“네, 와인 완성 되셨다면서요?”

“그렇지 않아도 영주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영주가 먼저 먹기 전에는 공개를 안 한다고 그렇게 말을 해도 저 주당들이 어찌나 난리를 치던지.”

어르신들은 나를 손주보듯이 보시긴 하지만 ‘영주’라는 정체성을 잘 받아들이고 계신다. 그래서 손주처럼 나를 대하시지만 이 영지의 가장 큰 어른으로도 대하신다. 지금도 내가 시음을 하기 전에는 공개를 하지 않겠다는 말씀이 그런 부분이다.

“다른 어르신들한테 욕 먹지 않으려면 어서 맛 봐야겠네요.”

“그려, 자.”

최씨 아저씨가 와인잔에 와인을 살짝 따라주신다. 뭔가 막걸리를 따르시는 것이 어울리는 외모시지만, 양조 장인이시다.

난 최씨 아저씨가 따라주신 와인을 TV에서 본 것처럼 향을 음미하고 와인잔도 왜인지 몰라도 몇 번 돌려본 후에 살짝 한모금을 입에 넣었다.

번쩍.

농담이 아니고,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이다.

“와, 이거.”

난 관찰로 와인을 살펴보았다.

아이템: 섬 적포도 와인(10레벨).

섬에서 나오는 적포도로 담근 와인이다. 절정에 달하는 양조장이가 만든 술로 가히 와인의 제왕이라 부를만한 맛과 풍미다. 지속적으로 섭취하면 몸에 마나가 쌓인다.

“게이트가 와인의 제왕이라고 표현하네요. 그리고 지속적으로 섭취하면 몸에 마나가 쌓인다는데······ 이건 무슨 말인지 지켜봐야 알 것 같아요.”

지속적으로 섭취하면 몸에 마나가 쌓인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마나를 가지고 있다. 다른 이름으로 많이 불리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마나라는 것은 몸에 있기 마련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매우 희박하긴 하지만 말이다.

옛날 사람들의 기라는 것도 마나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와인이 마나를 쌓이게 해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 양은 얼마나 되는 걸까? 이게 애매한 부분이다. 하지만 일단 시스템이 와인의 제왕이라고 부를 정도라면 뭐 맛은 끝난 거다.

“워따, 겁나 맛있는 거.”

“디져블랑게.”

“미친놈들 술만 쳐먹으면 경기도 놈들이 사투리를 쓰고 지랄이여.”

주당 3형제라 불리는 어르신들이다. 특이하게 모두 가평이 고향이신데 술만 드시면 사투리를 쓰신다. 뭐, 매우 유쾌하신 분들이다. 그래도 술을 정도 이상은 드시지 않으신다. 그게 철칙이라고 하셨다.

그렇기에 주당 3형제라 불리는 어르신들을 모두 좋아한다. 그분들 외에 우리 아버지까지 끼어서 모두 술판을 벌이신다. 와인이 저렇게 마시는 술은 아닌 것 같지만, 뭐 별 상관 없다. 우리 영지민들이 기쁘면 그걸로 그만이니까.

하지만 거기에 제동을 거시는 분이 계셨으니 선우네 아버님이다.

“잠깐! 팔 거는 따로 분류하고 드십시다.”

“걱정마시게, 사장. 저기 저 통이 다 와인이여. 저거 내다 팔면 될 거야. 잘 팔아달라고.”

“최씨, 걱정 붙들어 매놔. 내가 비싸게 팔아줄라니까.”

두분의 이야기를 듣다가 내가 말했다.

“저건 우리 회사 사장님을 통해서 판매를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요.”

“음? 굳이?”

“아마 못해도 병당 백만원 이상은 받을 걸요?”

내 말에 최씨 아저씨의 입이 벌어진다.

“이, 이게 그렇게 비싸다고?”

“와인의 제왕이라잖아요. 제가 알기로 로마네 꽁띠라는 와인이 병당 천만원이 넘는 걸로 아는데, 제왕이면 못해도 백만원은 받겠죠? 아마 알려지기 시작하면 더 비싸길 거구요.”

“그럼 영주한테 맡겨야겠네.”

“네, 하지만 우리 영지민들도 반 정도는 드세요. 굳이 한번에 많이 팔 생각은 없거든요.”

“걱정 하덜 말라니까. 저게 다 이 와인이여.”

대충 봐도 오크통 50개는 될 법한 양이다. 우리 게이트는 뭐든 대량 생산이다. 그래서 만세다.

***

유리 세공을 전문적으로 익히고 있는 오크들. 난 그들에게 모양을 하나 만들어주고, 그대로 만들기를 요구했다. 물론 시범으로 내가 하나 만들었다. 내가 만든 것은 포도를 거꾸로 세워 놓은 듯한 술병이다. 이것으로 우리 시호 와인의 시그니처를 만들 생각이다.

병 자체도 명품으로.

그렇게 해서 딱 열 병을 완성시킨 후에 그것을 담을 나무 상자도 목공예로 완성시켰다. 시작부터 끝까지 다 수제로 만든 것들.

난 그것을 가지고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 호야는 요즘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내가 어디를 가든 따라온다. 그래서 호야와 함께 회사로 향했다. 사장님과는 미리 약속을 잡았기에 바로 사장실로 향했다.

올라가는 길에 직원 몇 명과 만났고, 다들 나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이미 회사에 내가 게이트 주인이고, 내가 팔았던 것들이 내 게이트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이제는 딱히 숨길 이유도 없기에 별로 난 신경쓰지 않았다. 다들 언제 한 번 놀러가고 싶다는 인사를 한다. 이건 마치 우리가 흔히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인사 같은 거다. 그렇게 인사를 받고서 사장실에 들어가니 사장님과 부장님이 나를 반긴다.

“어서 오게. 뭐 새로운 거라고 가지고 온 거지?”

부장님의 눈이 반짝인다. 사장님도 은근 기다리는 분위기다.

“자, 일단 두 분께 선물.”

난 두 사람 앞에 시호 와인 두 병을 내놨다.

“뭔가 상자부터 매우 고급스러운데?”

사장님의 말이다. 당연하다. 우리 섬에서 나오는 향나무로 만든 상자니까. 향나무 상자로 만들었을 때 와인의 향을 침범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었지만, 그런 현상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향나무의 은은한 향이 와인의 향을 북돋아 주었기에 향나무로 선택했다.

“우리 게이트에서 만든 상자고, 중요한 것은 그 상자 안에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내 말에 사장님이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리고 그 안에서 병을 조심스럽게 꺼내신다. 이 병의 디자인은 최종적으로 헬레나가 관여를 했다. 그래서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고급스러워진 결과물이다.

“와, 색이 미쳤는데? 이번에는 와인을 만든 건가?”

부장님이 휘둥그래진 눈으로 물으신다.

“네. 그냥 와인은 당연히 아니죠. 와인의 제왕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겁니다.”

“와인은 쉽게 만들 수 없다는 것 알지?”

사장님이 묻는다.

“당연하죠. 하지만 양조 스킬을 맥스까지 찍은 분이 만들었다면 얘기가 다르지 않겠습니까?”

게이트에서는 스킬을 생성시킬 수 있다. 그런데 술을 만드는 양조 스킬이 맥스라면? 그건 일단 믿어볼만 한 일일 거다.

“맛을 보기가 아까운데? 네걸로 따자.”

“형, 내가 회사를 양보한 게 부족했어?”

부장님의 유산 공격에 사장님이 ‘끄응’하더니 병을 따신다. 그리고 두 사람의 눈이 커진다.

두 사람은 와인을 즐겨마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돈도 많은 집안 사람들이니 비싼 와인도 많이 먹어봤을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에게 가지고 온 거다.

“어디.”

와인잔에 따르고 향을 느끼고 입에 넣는 두 사람.

두 사람의 눈이 더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너 작년에 로마네 꽁띠 먹은 거 기억나냐?”

“당연히 나지. 근데 이건······ 솔직히 그 이상인데?”

“그러게. 최 과장이 와인의 제왕이라길래 그냥 괜찮은 와인이겠거니 했는데, 괜한 말이 아니었네.”

사장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보신다.

“최 과장.”

“네.”

“이거 수량은 얼마나 되나?”

“수량을 조절할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양이 많아지면 희귀성이 떨어지겠지. 하지만 최초에 한 100병 정도는 가능하겠지?”

“그거야 그렇죠.”

“얼마 생각하나?”

사장님의 말에 난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최소한 한 장은 받아야겠죠?”

“천만원이라······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네.”

난 백만원을 말한 건데······ 열 배를 부르신다.

“이거 우리한테 맡겨주는 건가?”

“네, 제가 팔고자 하면 조금 골치아프겠죠?”

“그럴리야 있겠냐만은 내가 확실히 팔아줌세.”

“여기 몇 병 더 있으니 가까운 분들게 맛을 보여드려주세요. 이건 박성환 배우님 선물.”

“아, 성환이가 고맙다고 몇 번이나 자네를 만나게 해달라고 그러던데.”

“뭐, 굳이 만날 이유가 있을까요?”

“사람이 고마움을 표현하려고 할 때는 받아주는 것도 좋은 일이라네. 그 친구 자네덕에 다시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지 않나.”

박성환 배우는 요즘 아주 잘 나간다. 액션까지 소화를 할 수 있게 되면서 다시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이다.

“그럼 한 번 만나도록 하죠, 뭐.”

“마침 오늘 파티가 있다던데 거기 한 번 가보는 게 어떤가? 내가 연락은 해주지. 여자 연애예들도 많이 온다더군.”

“아, 네.”

내가 심드렁하게 말하자 사장님이 나를 쳐다보며 묻는다.

“자네, 설마.”

“아뇨! 여자 좋아합니다! 정말 좋아해요.”

워낙에 요즘 많이 들어서.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다.

“그리고 가면 연예인 중에 유일한 게이트 주인도 만날 수 있을 걸세.”

“아, 그 제주도에 게이트를 가지고 있다는 그 여자 연예인이요?”

“그래, 성환이랑 친한 사이거든.”

갑자기 궁금해진다. 그래서 난 그 파티에 나가기로 했다.

“근데 뭘 입고 가야 된다고 그러나요?”

“걱정 말게. 내가 알아서 해줄 테니까. 그런데 호야도 같이 갈 생각인가?”

호야를 쳐다보니 호야가 말한다.

냥!

당연하단다.

“네, 그래야 한다고 하네요. 제 보디가드입니다.”

“거긴 뭐 반려견도 데리고 올 수 있다고 하니 별 문제가 되진 않을 걸세.”

“네, 그럼 전 와인이나 몇 병 챙겨가야겠네요.”

“그럼 더 좋겠지? 홍보도 될 거고.”

결국 난 파티에 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사장님의 도움을 받아서 옷과 머리를 다듬었다. 호야에게도 야심차게 미용사분이 뭔가를 하려고 했다가 포기했다. 호야가 원치 않았으니까.

그리고 난 사장님이 준비해준 차를 타고 파티가 벌어진다는 박성환 배우의 별장으로 향했다. 오늘의 파티장이었다.

차에서 내려서 호야와 함께 걸으려는 순간 저쪽에서 대형견 한 마리가 으르렁 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호야는 내 어깨에서 그 대형견을 가소롭다는 듯이 쳐다본다.

“예삐! 안 돼!”

예삐란다. 저 덩치에 저 비주얼을 예삐라는 이름으로 부르다니. 주인의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워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순간 그림으로 그린 듯이 아름다운 여자가 내게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죄송해요. 원래 다른 사람한테 으르렁거리는 애가 아닌데.”

재미있다. 이 예의바른 여자가 바로 제주도에 있는 게이트의 주인이었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