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9 화 몬스터 웨이브 -3
제 79 화 몬스터 웨이브 -3
“저······ 저기 고연주 씨?”
조금 당혹스럽다. 우리가 그렇게 이상하게 보이나? 난 그런 생각을 하며 우리를 객관적으로 살펴보았다.
레드 색상의 강철맨 슈트를 입은 나와, 블루의 선우, 옐로우의 시연이. 그러고 보니 우리 강철맨이 아니라 무슨 일본 전대물에 나오는 사람들 같······.
“저, 저를 아세요?”
“제가 저기로 들어오는 거 못 보셨어요?”
“보긴 했는데······ 앗! 그럼 혹시 시우 씨?”
“네, 맞습니다.”
난 그렇게 말하면서 헬멧의 동그라미를 돌려서 얼굴을 보였다. 선우가 할 때는 웃겼는데······ 내가 하니까 진심 좀 쪽팔린다. 기계공학 전공인 사람들을 영지민으로 받아야 될 것 같다.
“우, 우와.”
“오바하지 마시죠. 이미 비명까지 지르신 마당에.”
“그, 그건 갑자기 너무 놀라서.”
“우리 비주얼이 그렇게 놀라울 정도라는 것은 연주 씨를 통해 알게 되었네요. 그치, 시연아?”
“흥!”
시연이가 많이 삐친 것 같다. 자신의 역작을 보고 비명을 지른 상대가 몬스터라면 즐거워했겠지만, 고연주였으니.
“저기······ 제가 뭔가 실수라도?”
그때 선우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한다.
“아닙니다. 그냥 이 슈트를 만든 게 얘라서요. 하하하. 뭐 상처나 좀 받고, 그러겠죠. 별일 있겠어요?”
난 알 것 같다. 저 시키가 왜 여친이 없······었는지. 지금 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 그런. 죄송해요.”
그때 시연이가 자신의 헬멧을 벗으며 말한다.
“최시연이에요. 시우 오빠의 하나뿐인 동생이죠. 고연주 씨.”
팍!
시연이의 인사에 선우가 시연이의 뒤통수를 한 대 때린다.
“마! 언니한테 그게 무슨 버르장머리야?”
저 시키는 도대체 한국인의 종특이라 불리는 눈치라는 것이 없는 것을 보면 분명 한국인이 아니리라. 한국인이라면 저럴 수가 없다.
“오빠, 앞으로 내 장비 입고 싶지 않지?”
시연이의 서늘한 말에 그제야 선우가 눈치라는 것이 생긴 것인지 주둥아리를 닫는다.
“죄, 죄송해요. 전 그냥 놀랐을 뿐이예요. 이거 강철맨 슈트 맞죠? 사람이 이런 것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시연 씨 손재주가 장난 아닌데요? 저도 하나 부탁드리고 싶을 정도예요. 하하.”
그 말에 시연이의 눈이 반짝인다.
“핑크로 준비해드릴게요.”
“아니, 그 핑크는······.”
“핑크요!”
“네······.”
그렇게 고연주는 우리의 4호 핑크가 되는 것으로 얘기가 끝나버렸다. 울 것 같은 표정이지만, 아마 모를 거다. 이 슈트가 비록 쪽팔려 보여도 성능이 매우 훌륭하다는 것을.
“그나저나 몬스터 웨이브까지 시간은 나옵니까?”
“아, 한 시간 뒤라고 하네요.”
“다른 헌터분들은?”
“그게 다 우리 가족분들이랑 동료 연예인들이 전부라 전투는······.”
“공식적으로 고연주 씨의 영지는 우리 영지의 하부 영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게이트가 인정을 한 부분이고, 그래서 우리 게이트에서 이쪽으로 올 수 있는 게이트가 열린 거죠. 저거 보이시죠?”
내가 우리가 나온 게이트를 가리키자 고연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네, 잘 보여요.”
“한 번 게이트 건너가 보시겠어요?”
“네.”
고연주가 게이트로 걸어가서는 그대로 게이트를 넘어가려고 할 때다.
-92AC게이트에서 73A게이트로 이동을 요청합니다. 허락하시겠습니까?
난 잠깐 이게 뭔 말인가 싶었다. 우리가 넘어올 때는 아무 허가요청이 없었다. 그런데 반대로 고연주가 여기에서 우리 게이트로 넘어가려고 하니 허가를 해줘야 한다는 말이 뜬 것이다.
“잠시만요.”
“네.”
“선우야, 너 우리 게이트로 한 번 넘어갔다 와봐라.”
“어? 알았어.”
선우는 재빨리 내 말에 따라서 우리 게이트로 넘어갔다. 역시 허가 요청은 뜨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도 허가 요청은 뜨지 않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일 것이다.
휘하 영지에 속한 이들은 마음대로 게이트를 이용할 수 없다는 것.
즉, 상위 게이트 소속인 선우를 비롯한 우리들은 여기를 마음대로 오갈 수 있지만, 휘하 영지인 제주 게이트에서 우리 게이트로 오는 것은 나에게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대영지 소속과 휘하 영지 소속을 구분, 아니 차별하는 것 같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런게 은근히 차별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게 맞는 경우라고 본다. 휘하 영지민이 대영지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면 대영지에 속한 사람들과 차이가 없을 테니까.
아마도 여러 가지 제약이 더 있을 거로 생각한다.
“일단 연주 씨, 같이 가죠. 아무래도 우리 기사단을 데리고 와야 될 것 같습니다.”
“기······사단이요?”
“네, 대신 놀라지 마세요. 우리 영지의 기사단은 오크들이거든요.”
“와!”
의외로 좋아한다. 오크 오타쿠라도 되나?
“안 놀라시네요?”
“아, 그렇죠? 오크 기사단이라니 멋져서.”
“오크를 좋아하세요?”
“소설에 나오는 오크를 좋아하긴 해요. 그런데 실제로는 본 적이 없어서.”
“우리 오크들은 안 물어요.”
“큭. 제가 늘 다른 사람들에게 예삐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과 같은 얘기네요.”
“사실이니까요.”
“아무튼, 그럼 가시죠. 시간이 얼마 없으니.”
“네!”
난 시연이와 선우를 제주 영지에 남겨두고 고연주를 데리고 넘어갔다. 그리고 카르독을 불렀다.
크롹!
멋진 풀플레이트 메일을 입고 있는 카르독이 내 앞에 와서 오른손으로 왼쪽 심장을 두 번 두드리며 인사를 한다. 이것이 오크 기사단의 공식 경례다.
고연주는 카르독을 보고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카르독, 출정이다. 기사단을 데리고 오도록.”
크롹!
카르독은 곧장 그레이 울프에 올라타고서는 뿔피리를 길게 분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뿔피리로 응답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잠시 후에 오크 기사단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둥둥둥둥.
오크들은 언제 준비를 한 것인지 옆구리에 끼고 있던 북을 치면서 달려온다. 그 모습이 장관이다. 그것을 보고 있던 고연주가 입을 벌리고 그걸 쳐다본다.
뭔가 괜히 뿌듯한 기분이다.
“우리 휘하 영지가 몬스터의 침공을 받을 예정이다. 우리는 휘하 영지를 지키기 위해서 출정한다! 질문 있나?”
크롹!
“그럼 나를 따르라.”
크락!
뭔가 좀 쪽팔리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긴 했지만, 그래도 첫 출정인데 이정도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르신들이 오크들의 출정을 구경하시면서 박수를 치신다. 우리가 당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없으신 거다. 그랬다면 걱정을 하셨겠지.
난 눈빛으로 어르신들과 부모님에게 인사를 한 후에 제주 게이트로 오크 기사단을 데리고 넘어갔다. 우리 고딩들도 데리고 갈까 했지만, 걔들은 아직 더 성장해야 하니까 열외다.
“반하겠어요.”
“저한테요?”
“오크들한테요.”
“단호박인줄.”
“제가 단호박을 좋아하긴 해요. 큭.”
고연주는 처음 봤을 때랑 다르게 긴장이 많이 풀린 것 같다.
냐앙.
그리고 왜 그런지 호야는 나를 한심하다고 말한다.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
제주 게이트로 다시 넘어오니 선우가 연예인들 사이에서 호탕하게 웃고 있다. 그리고 우리 시연이는 아이돌 옆에 붙어 있네?
“지인 중에 아이돌도 있었어요?”
“몰랐어요? 저도 아이돌출신인데요?”
“아, 그랬죠?”
생각해보니 고연주는 아이돌 출신의 연기자였다. 그러니 아이돌과 아는 사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으리라.
“그런데 저 사람들은 레벨도 낮은데······.”
“아마 나름 돕겠다고 온 걸 거예요. 저 사람들한테 여기는 낙원이거든요.”
“네?”
“외부 눈길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곳이니까요.”
“아.”
뭔지 알 것 같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사람들에게 매우 사랑받는 직업인 경우가 많지만 과도한 관심도 받는다. 덕분에 어디를 다녀도 혼자 다니기 힘들고, 늘 사람들을 몰고 다닌다.
그런데 게이트에서는 완전히 자유를 느낄 것이다. 고연주에게 허락받지 못한 사람들은 애초에 들어올 수도 없는 곳이니까.
어찌보면 연예인들에게는 정말 낙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여기는 해안가라 풍경도 매우 좋다.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바닷가.
여기저기 글램핑장에서나 보던 대형 텐트가 설치되어 있고, 통나무 집도 만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다들 여기를 휴양지처럼 사용하고 있던 것 같다.
관찰로 살펴보니 대부분 레벨은 20을 넘지 못했다. 그럼에도 손보탤 생각으로 왔다는 것은 저들이 나름 의리가 있는 이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오늘은 구경만 해도 될 테니까.”
“네! 일단 이쪽으로 오세요. 인사시켜드릴게요.”
“굳이 그럴 필요는.”
“대영주님이시잖아요.”
맞는 말이긴 하다. 저들도 결국은 내 영지민들이나 마찬가지라는 의미.
“어서요.”
“네.”
난 고연주에게 이끌려서 사람들 앞에 나서게 되었다.
“이쪽은 제가 이번에 의탁하게 된 대영지의 영주님. 아마 여기 파인애플이랑 수박 쥬스 드셔 보셨죠? 그 게이트의 주인분이세요.”
“우와!”
다들 이상한 지점에서 나를 반긴다. 아마 기분탓일 거다.
“반갑습니다. 고연주 씨가 영지를 의탁해와서 대신 몬스터 웨이브를 막으러 왔습니다. 저쪽에 있는 친구들은 우리 영지의 기사단이니 경계하지 마세요. 오크라고 다 몬스터는 아니니까요.”
“네!”
“그럼 이번 전투는 우리 영지의 기사단으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편안히들 구경하세요.”
“네!”
연예인들은 방청객 모드랄까? 뭔가 리액션이 좋다. 그런 그들을 보다가 고연주에게 물었다.
“시간은 다 됐나요?”
“네. 곧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된다고 알림이 왔어요.”
나에게는 알림이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알림이 뜬다.
-92AC의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휘하 영지인 92AC의 몬스터 웨이브에 참여하시겠습니까?
“그래.”
대답을 하자 곧 우리에게도 메시지들이 뜨기 시작한다. 그리고 뒷산이 있던 곳에서 먼지가 일기 시작한다.
그리고 몬스터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키에엑! 키렉!
몬스터 웨이브의 정석이랄까? 가장 먼저 달려오는 것은 고블린들이다. 고블린 100여 마리가 미친 듯이 달려오는 것을 우리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러다 카르독이 내게 다가온다.
크락!
“출정하라!”
아, 쪽팔린다. 하지만 오크들의 사기를 생각해야 한다.
오크들은 내 외침에 굉음을 내지르며 그레이 울프들을 몰고 돌진을 시작한다. 이쯤에서 고블린들이 불쌍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애초에 저놈들은 쓸어버려야 할 몬스터들.
쾅! 콰과광!
고블린들이 날아다닌다. 얘들이 날 수도 있는 애들이었다. 기사단 돌격이라는 것은 내 상상보다 무지막지했다.
그냥 갈아버린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고블린들은 오크 기사단에게 갈려나갔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은 가만히 지켜보면서 몬스터 웨이브의 다음 단계를 기다렸다.
다음 단계는 오크들이다. 같은 종으로 보이지만, 차원이 다르다. 무엇보다 고블린은 100여 마리였는데, 오크들은 겨우 50에 불과했다.
그것도 녀석들은 오크 기사단을 보고 전의를 잃었는지 대부분이 항복을 해버린다. 차라리 잘 된 일이다.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트롤 열 마리.
이제 진짜 전투가 시작될 것 같았다.
“근데 다른 영지는 저런 애들을 어떻게 막는다는 거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