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0 화 몬스터 웨이브의 끝.
제 80 화 몬스터 웨이브의 끝.
트롤 열 마리는 현시점에서 미국이라고 해도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왜? 누님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미국에서도 고렙 헌터들을 모두 동원해서 트롤을 겨우 한 마리 잡았었다고 한다.
그런데 트롤이 열 마리다.
“저건 우리 아니면 못 잡겠는데?”
선우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웃긴 것은 트롤들이다. 트롤들은 우리를 경계하고 다가오려고 하지 않고 있다.
오크들이 내뿜는 투기들은 트롤을 억압하고 있는 수준인 것이다. 같은 오크들이 투항을 한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현재 포로로 잡혀 있는 오크들의 숫자는 거의 백에 가깝다. 한두 놈이 정신 못차리고 덤비다 죽은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오크들은 투항을 했다.
그보다 상위 종족이랄 수 있는 트롤들이 덤비지 않고 있는 것도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놈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포식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저거······ 길들일 수 있으려나?”
트롤을 산채로 잡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단 광포한 녀석들이라 놈들을 제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영지의 트롤과 다르게 저놈들의 레벨 수준은 겨우 30레벨 수준이다. 저렇게 레벨이 낮은 트롤이 있다는 것에 우선 내가 놀랐고, 저놈들을 어찌할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고연주가 다가와서 묻는다.
“저, 저 트롤은 어떻게 해요?”
“아, 어떻게 할까 고민중이예요. 잘 하면 사로잡아서 피를 뽑을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네?”
고연주가 뭘 잘못 들었다는 듯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름 그 모습이 예뻐보이긴 했지만, 희한하게 여자로 느껴지는 그런 부분은 아니었다. 누가 봐도 예쁘고 사랑스러울 것 같은 모습인데 말이다.
‘나 뭔가 고장났나?’
문득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일단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카르독.”
크락!
“저거 사로잡을 수 있겠어?”
내 말에 카르독이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인다.
“다섯은 죽이고, 다섯을 사로잡아보겠다고? 전부는 안 되는 건가?”
크락! 카를! 쿠쿡!
그러니까 카르독의 얘기는 다섯 정도는 죽여야 쟤들도 순순히 사로잡힐 거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뭐 그런 부분이야 카르독이 더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서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섯 마리만 사로잡아봐.”
크락!
카르독은 경례를 하고서 오크 기사단을 이끌고 트롤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저 기사단의 돌진은 소설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위력이 대단했다.
트롤들은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지만, 의미가 없었다. 하다못해 오크 기사단이 타고 있는 그레이 울프들도 저 트롤보다 레벨이 높다. 그러니 뭔 수로 막겠는가.
첫 번째 돌진에서 다섯 마리의 트롤은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남은 트롤을 오크 기사단이 둘러쌌다. 그리고 뭔가 트롤들에게 떠든다. 아마 항복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는 의미일 것 같다. 쟤들은 영지민으로 받아들일 생각은 아니다.
말 그대로 가축으로 받아들일 생각이다. 그렇게 해서 매일 신선한 피를 뽑는 것이다. 좀 잔인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그게 도움이 되는 일이니 뭐. 트롤에게 피에 좋은 음식도 많이 제공할 것이고, 최대한 고통은 없이 피를 뽑을 생각이다.
그 정도면 되지 않겠는가? 물론 매우 이기적인 입장이지만, 내가 영주고 난 우리 영지를 위해서 그 정도의 불합리는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
“트롤이······ 불쌍하네요.”
“저 정도로요? 앞으로 쟤들은 더 불쌍해질 텐데요.”
“네?”
“살려두고 계속 피를 뽑을 생각이거든요.”
“왜 그렇게 하죠?”
“트롤의 피는 매우 중요한 치료제거든요. 예를 들어서 장기를 재생시켜준다거나 하는. 아, 소설에 나오는 포션도 저 피로 만들 수 있어요. 의외로 이런 부분은 소설의 내용을 게이트가 충실하게 고증을 해둔 것 같은 느낌도 드네요.”
판타지 소설의 작가들이 그런 세계관을 만들었을까? 사실 그런 세계관을 만든 것은 선두 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작가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둔 세계관에서 후발 작가들은 자신들의 스토리를 풀어간다. 그러니까 선두 그룹이랄 수 있는 1세대, 1.5세대 작가들이 지금 판타지의 세계관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이트는 그런 세계관을 참 충실이 반영하고 있다. 그럼 도대체 뭐가 먼저인 걸까? 게이트는 원래 있던 것이고, 작가들이 그것을 무의식 중에 엿본 것일까?
아니면 게이트가 사람들의 의식을 반영한 걸까? 그렇다면 이 세계관도 말이 안 되는 것이 지금 게이트의 세계관은 한국의 판타지 소설의 세계관이다. 미국은 또 다르고, 유럽도 다르다. 하다못해 일본도 다른 부분이 많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 아닙니다. 갑자기 궁금한 것이 떠올라서요.”
“그런데 이제 끝난 걸까요?”
“글쎄요. 아직 메시지가 안 떠서.”
그때였다. 다시 뒷산에서 뭔가가 걸어나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거대한 미노타우로스였다. 관찰로 살펴보니 레벨은 무려 55레벨.
이 정도면 나도 전투에 참가를 해야될 상황이다.
“이번엔 우리도 나서야겠다.”
내 말에 시연이가 검을 빼들며 말한다.
“옐로우 출격!”
“하지마. 제발 그런 거 하지마.”
“흥, 즐겨. 오빠도 결국 즐기게 될 거야. 이제 핑크 언니도 들어왔잖아.”
시연이의 사악한 미소에 고연주의 인상이 굳어진다. 그리고 옆에 있던 선우가 외친다.
“블루 출격!”
“야이씨!”
“왜? 재밌잖아.”
난 이놈들의 머리를 열어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면서 둘을 쳐다보니 눈이 눈을 반짝이며 나를 주시한다. 뭔가 나에게 바라는 게 있는 게다. 그리고 그 바라는 것은 절대로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그 무엇인가일 거고.
냐앙.
“뭐? 애들의 사기도 생각해야 한다고? 그게 뭐 어려운 일이냐고? 어렵지는 않지만······ 쪽팔리잖아.”
냐앙!
“하나뿐인 친구와 여동생을 위해서 그거 하나 못해줄 정도로 야박한 사람이었냐고? 하아. 할 말이 없게 만드네.”
난 정말 해야 하냐고 호야를 쳐다보았다. 호야는 단호했다. 반드시 하라는 거다. 그리고 시연이와 선우도 나를 쳐다본다. 그 압박에 결국.
“레, 레드 출격.”
풉!
호야가 앞발로 입을 가리고 웃는다. 이시키 날 놀린 거다. 아주 내 머리 위에서 논다.
“너어!”
호야는 재빨리 모습을 감췄다. 그런 호야를 보다가 난 한숨을 쉬었다.
“우리 이름은 나중에 정하는 걸로 하자. 핑크가 정식으로 들어온 후에.”
고연주의 얼굴이 사색이 된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다 같이 죽는 거다.
“가자.”
“응.”
“그래.”
난 둘을 데리고 오크 기사단과 함께 미노타우르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
“그러니까 이놈이 몬스터 웨이브 보스라는 거지?”
딱 봐도 ‘난 보스다’라는 포스를 풀풀 풍기고 있는 녀석. 하지만 그런 포스에 비해서 저놈의 다리는 조금 떨고 있다. 어쩌면 저놈 눈치놈처럼 말을 알아듣는 녀석이 아닐까 싶다.
“야, 너 광산에 살고 있던 미노타우르스 알아? 거기 수호자였던 앤데.”
내 말에 놈이 움찔한다.
“좋게좋게 넘어가면 좋겠는데, 아니면 난 널 죽여야되거든? 굳이 죽일 필요가 있나 싶은데······ 너 딱 보면 알지 않냐? 우리한테 승산이 없을 거라는 거?”
놈의 눈망울이 울렁거린다. 대가리가 소라서 그런지 눈망울이 참 맑다.
“자, 지금부터 대답을 잘 해야 할 거야. 너 걔랑 친구냐?”
대답이 없다. 그래서 난 검을 뽑았다. 미스릴로 만들어진 검이다. 그리고 이 검을 들고 얘랑 싸우면 3분안에 난 얘를 썰어버릴 자신이 있다.
그런 내 기세를 읽은 것인지 녀석이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일단 넌 앞으로 내 부하가 된다. 어때? 싫으면 말해. 그냥 곰탕 끓여먹지 뭐.”
내 말에 미노타우로스가 눈깔을 굴리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내 앞에 무릎을 꿇는다. 복종을 의미하는 것이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네가 혹시 이 게이트의 수호자냐?”
아니라고 한다.
“그럼 앞으로 이 게이트의 수호자로 있을 수 있겠어?”
내 말에 녀석이 매우 기쁜 표정을 짓는다. 아무래도 수호자가 된다는 것이 몬스터들에게는 뭔가 대단한 것이 있나보다.
“앞으로 네 이름은 제주다.”
끄덕끄덕.
눈치는 광산 게이트의 수호자, 그리고 얘는 제주 게이트의 수호자가 된다. 그렇게 정하는 순간. 시스템이 내게 알려온다.
-미노타우르스 ‘제주’를 92AC의 수호자로 임명하시겠습니까?
“임명한다.”
그러자 제주의 몸에서 잠깐 빛이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는 그 빛은 온전히 제주의 몸 속으로 들어갔다.
“네 주인은 저기 있는 고연주 씨다. 앞으로 고연주 씨의 지시를 잘 듣도록. 그리고 주기적으로 몬스터들을 좀 소탕해두고.”
음머!
제주가 가슴을 치며 걱정말라고 한다. 정말 걱정을 안 해도 되는 건가 싶긴 한데, 시스템이 수호자로 지정을 했으니 아마 별 문제는 없으리라 본다.
아마 내가 보기에 이 게이트에는 수호자가 없었던 것 같다.
“뭐야? 이 허무한 결말은?”
선우의 말에 시연이가 제주에게 묻는다.
“근처에 다른 미노타우르스 없어? 내 검이 울고 있다!”
제주가 그런 시연이를 보며 깜짝 놀라서 내 뒤로 숨는다. 이시키 의외로 겁쟁이네. 처음 포스는 어디 간 거지?
그래도 레벨빨이 있으니 한동안 제주 게이트는 안전할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때다.
-92AC의 몬스터 웨이브를 성공적으로 막으셨습니다.
92AC에서 새로운 자원이 출현합니다.
아마도 몬스터 웨이브를 막은 보상인 것 같다.
“시우 씨.”
“네, 메시지 보셨죠?”
“네. 그리고 얘는.”
“수호자입니다. 앞으로 얘가 웬만한 몬스터는 알아서 처리할 겁니다. 안 그러면 꼬리곰탕이 될 거거든요.”
내 말에 고연주의 표정이 다시 굳어진다.
“설마 미노타우르스를 먹나요?”
“모르셨어요? 얘들 먹으면 스킬이 생기는데.”
“엇? 진짜요?”
“네, 당연하죠. 제가 괜히 왜 농담을 하겠어요.”
내 말에 고연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내가 농담을 할 이유가 없으니까.
“카르독!”
크롹!
“주변을 정리하고, 사로잡은 오크들 분류해놔. 영지민으로 받아도 될 녀석들이 있으면 받아도 좋고.”
크락!
원래 전쟁은 전쟁이 끝난 후가 더 중요한 법이다. 쟤들은 앞으로 중요한 전리품이 될 것이고, 우리 영지 발전에 초석이 될 녀석들이니까.
다행스러운 것은 오크들은 반항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오크 기사들을 부러운 눈으로 보고 있다. 뭔가 선망의 눈초리랄까?
하긴 우리 기사단도 내가 영지민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저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시우 씨는 처음과 많이 다르네요.”
“네? 어떤 부분이요?”
“일단 엄청난 헌터라는 것을 알겠어요. 그리고 영지민들도.”
고연주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때 고연주 게이트의 헌터들이 나에게 다가온다.
“저······ 감사합니다. 대영주님.”
온 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처럼 부끄럽다. 대영주가 맞긴 한데, 연예인들한테 그렇게 불리니 그것도 이상한 느낌이다.
“네, 뭐.”
난 헌터들을 살펴보았다. 대부분 밖에서 잘 나가는 연예인들이다. 그래서일까? 시연이와 선우의 눈에 하트가 그려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한 것은 제 동생과 친구가 도와드릴 겁니다. 전 고연주 씨랑 얘기를 좀 할 부분이 있어서.”
그 말에 둘의 입이 찢어진다. 난 이 사실을 반드시 주연이에게 알리리라 마음먹었다. 배신자는 응징을 당해야 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