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학개론-82화 (82/182)

제 82 화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제 82 화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직박구리.

주로 동아시아 3개국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 중국, 일본에서 볼 수 있는 텃새의 이름이다. 물론, 사람들은 실제 직박구리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냥 직박구리라는 폴더에 뭐가 들어 있을지를 궁금해할 뿐이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만약 당신이 죽게 된다면 당신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이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내 컴퓨터에 있는 직박구리 폴더를 지워주세요!’라고 말할 거라는 얘기.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어쩌면 의외로 많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죽은 후에 누군가 나의 직박구리를 보게 된다면?

물론 나에게는 직박구리가 없다. 내 컴퓨터에는 온통 호야의 사진과 영상들이 가득할 뿐이다. 하지만 고연주의 바탕화면에는 직박구리가 있다.

문제는 이게 왜 바탕화면에 있냐는 부분. 보통 이런 것을 숨겨놓는 것이 국룰이 아닌가?

“손 떼!”

“참고로 말씀드리면 전 건드리지도 않았습니다만?”

난 손을 올리고 침착하게 말했다. 이럴 때는 상대를 자극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런 내 표정을 읽은 것일까? 고연주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 제가 새를 좋아해서.”

“그렇군요.”

“네, 특히 직박구리라는 새를 정말 좋아하는데.”

“그게 어떻게 생긴 새인지는 아시죠?”

“당연하죠!”

“확실히 직박구리는 매력적인 새긴 하죠. 그 하얀 털에 빨간 부리는 정말 귀엽기도 하구요.”

“네, 그래서 제가 직박구리를 좋아해요.”

“뻥인데요.”

“네?”

“직박구리 하얀 새 아니라구요.”

“······ 야이!”

고연주의 발작버튼을 내가 다시 누른 것 같다.

냐웅.

호야는 한심하다는 눈으로 나를 본다. 뭔가 지금 내가 한심해 보이나 보다.

“솔직히 말해서 남의 직박구리에 관심을 가지는 건 매너가 아니죠. 걱정하지 마세요.”

“아니, 내가 그 안에 뭘 두고 있는지 상상을 하지 마시라구요.”

“상상 안 했는데요.”

진짜다. 난 상상같은 것을 별로 안 한다. 실제로 난 시연이의 직박구리도 본 적이 있다. 영상이 아니라 대부분 텍스트파일. 그게 뭔지 궁금하지 않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는 법이고, 그것을 굳이 끄집어낼 필요는 없으니까. 내가 직박구리 얘기를 한 이유는.

“전 단지 바탕화면에 직박구리가 있어서 다른 곳으로 옮기셔야 하지 않나 싶어서 말씀드린 건데.”

“그······ 네. 아까 다른 지지배한테 카피를 해주······헙!”

“자, 진정하시구요.”

“네.”

“지금부터 제 질문에 대답을 좀 해주세요.”

“하아, 네.”

고연주는 뭔가 놓아버린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 그녀에게 물었다.

“이 게이트 주인들의 커뮤니티요. 여기에서 다른 게이트 주인을 만나본 적 있으세요?”

“네?”

고연주가 쌩뚱맞은 표정으로 나를 본다.

“왜요?”

“아니······.”

“다른 사람의 비밀을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단지 전 제가 알아야 할 부분에 대해서 궁금할 뿐이죠.”

“네······. 그러고 보니 몇몇 사람이 찾아온 적은 있었어요.”

“찾아왔다구요?”

“네, 한 명은 구리 게이트의 주인이라고 하고, 한 명은 창원 게이트의 주인이라고 했어요.”

구리와 창원의 게이트라. 그쪽에도 게이트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것 같다. 문제는.

“그 사람들이 게이트 주인이라는 것은 어떻게 알아보죠?”

“네? 그거야······ 그러네요? 그걸 왜 믿었지?”

역시 관찰 스킬이 없다면 게이트 주인들이라고 해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정상인 것 같았다. 예전에 브란 닭 농장을 하던 분이 나를 못알아봤던 것처럼.

한마디로 말해서 속이려고 작정을 하면 그냥 속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 게이트 주인 신분증은.”

“얼마든 위조할 수 있겠죠.”

“그것도 그러네요.”

“심지어 그런 위조 스킬을 게이트 안에서 생성했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정교하게 위조를 할 수 있겠어요.”

“와, 어떻게 그런 생각을.”

고연주는 내 발상이 놀랍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그런 그녀에게 난 다시 말했다.

“최면술을 스킬로 만들어서 사용하는 사람도 봤었는데요.”

“그거 농담 아니죠?”

“농담을 할 이유가 없겠죠? 우리가 그런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운······.”

퍽!

그런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냐는 말을 하려는데 호야가 뒤통수를 때린다. 그것은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이야기.

“사이가 되면 참 좋겠네요. 하하하.”

내 말에 고연주의 표정이 살짝 풀린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었냐면요······.”

난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러자 고연주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진짜 믿지 못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어떻게 그런 일을 벌일 수 있냐는 의미.

“그런 곳이 있었다구요?”

“네, 아마도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에 저 말고 관찰 스킬을 가진 다른 한 명이 그 단체와 관련이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상대는 내가 관찰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 게이트에서 나오는 물건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관찰로 살펴봤을 것이고.

아마 그래서 게이트 주인들의 커뮤니티에 그런 글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나를 만나도 되겠다는? 그런 자신감을 가진 것 같다. 물론, 상대는 나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이야기다. 나도 상대를 모르고 있긴 하지만.

나는 대영주이자, 다른 이들이 상상도 못할 정도로 레벨이 높은.

“근데 시호 수호대에 저도 들어가는 거죠?”

“난 시호 수호대의 레드다.”

“네? 갑자기?”

“아, 딴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연주 씨가 이상한 말을 해서.”

“이상한 말은 방금 시우 씨가 하신 것 같은데요, 레드 씨.”

고연주의 공격에 난 방어를 할 수밖에.

“직박구리.”

“이익! 레드!”

“직박구리!”

“레드!”

“직박구리!”

“레드!”

냐앙. 월월!

호야와 예삐가 한심하다는 듯이 우리를 보며 목소리를 낸다. 덕분에 우리의 쪽팔림 배틀은 끝맺을 수 있었다.

“그리고 환영합니다. 핑크대원.”

내 말에 고연주의 표정이 굳는다. 결국 승자는 나다. 그리고 앞으로도 호야와 오랫동안 둘이 살아가게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뇌리를 강타하고 지나친다.

턱.

호야의 앞발이 내 어깨에 걸쳐진다. 호야는 현재 에삐의 머리 위에 앉아 있는 상태다. 내가 의자에 앉아 있고, 예삐의 머리 위에 호야가 올라타니 내 어깨에 앞발을 올리기 참 좋은 위치였다.

“뭐? 왜?”

호야는 한숨을, 그리고 예삐는 경멸의 눈빛을 보낸다.

“아빠는 우리 호야만 있으면 세상 행복할 수 있단다.”

냐앙!

“시끄럽다니. 아빠한테 무슨 그런 망발을.”

월월.

예삐의 말에 난 할 말을 잃었다. 예삐가 나에게 한 말은.

‘너 고X지?’라는 의미로 들렸으니까. 그리고 순간적으로 난 호야를 쳐다보았고. 그다음, 순간 정신을 잃었다.

고X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호야를 본 것이 호야의 역린을 건드린 것 같다.

***

“호야, 아무리 그래도 아빠를 그렇게 때리면 쓰니? 아무리 아빠가 좀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 네가 잘 돌보고 그래야지.”

이건 뭔 소릴까? 잠깐 정신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리는데 고연주가 호야에게 진지하게 충고를 하는 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저기요, 저 정신 차렸거든요?”

“어머, 그러네요.”

“네. 그렇죠.”

“아, 아까 드리려던 말씀인데, 우리 나라에 관찰 스킬을 가진 다른 사람이요. 정체를 알았어요.”

“정체를요?”

“네. 정산그룹의 3세더라구요.”

정산그룹은 우리나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대기업이자, 재벌가다. 그런 재벌가의 3세가 관찰 스킬을 가진 게이트의 주인이라는 이야기다.

“설마 말로만 듣던 재벌가의 막내아들?”

“아뇨, 장손이던데요.”

“아, 네.”

“재벌 3세, 거기에 장손. 그런데 게이트의 주인이자, 그 희귀한 관찰 스킬을 가진 남자. 정산그룹은 아마 그 사람이 이어가겠죠.”

별문제가 없다면 아마 그렇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게이트라는 자원의 보고를 가지고 있고, 주인이 관찰 스킬을 가지고 있기에 바로바로 자원을 확인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게이트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그 안에서 어떤 것이 나오는지 몰라도 뭐가 나오건 그는 대단한 권력을 손에 넣을 것이다. 그리고 그 권력을 기반으로 다른 게이트들을 휘하 영지로 끌어들이거나, 정복한다면?

대한민국 사회에서 재벌은 무서운 존재들이다. 왜? 정치인은 임기가 있어도 재벌은 망하기 전까지 임기라는 것 자체가 없으니까. 그런 그들은 엄청난 정보력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 정보로 자신들의 재산을 불리는데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그런 이들이 무서운 점은.

띵동.

이런 부분이다.

하아악!

호야가 심상치 않은 반응을 보인다. 이건 상대가 위협적이라서라기보다는 상대가 호야의 신경을 거슬린다고 해야 할까?

고연주가 인터폰으로 밖을 보니 멀끔하게 차려입은 남자 한 명과 그 남자를 호위하듯이 몇몇 남자들이 서 있는 것이 보인다.

“그 사람이에요.”

“그 재벌가 막내······ 아니 장손?”

“네.”

난 인터폰을 통해서 상대를 관찰 할 수 있는지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안 되었다.

“어떻게 하죠?”

“뭐 일단 앞으로 나가서 보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요.”

“저 사람들은.”

“걱정하지 마세요. 저기 있는 사람들이 다 덤벼도 우리 호야 하나 못 이기니까.”

“풉!”

고연주는 내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같이 나가죠.”

“네.”

집안에 들이기 꺼려진다. 내 집은 아니지만, 이 게이튼는 엄연히 내 휘하 영지의 게이트니까.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사람 좋아보이는 인상의 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남자가 웃으며 말한다.

“반갑습니다, 고연주 씨. 팬입니다.”

난 그런 남자를 가만히 살펴보았다.

-관찰 스킬의 레벨이 10으로 올랐습니다.

-대상이 관찰 스킬을 사용합니다. 대상의 관찰 스킬을 막을 수 있습니다. 막으시겠습니까?

‘그래.’

-관찰 스킬을 사용하였습니다.

[정기훈(43레벨)]

쌍방향 게이트 46CF의 주인.

대영주, 휘하 영지 6개.

반려동물: 없음.

대략적인 정보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니까 정기훈이라는 이름을 가졌고, 쌍방향 게이트의 주인이자, 대영주라는 것. 휘하 영지가 6개나 된다는 것. 더 자세히 살펴보는 것도 가능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성은 못 느꼈다.

아, 그리고 정기훈의 관찰 스킬 레벨은 4다.

“무, 무슨.”

정기훈이 당황한다. 아마 그럴 것이다. 내가 정기훈의 관찰 스킬을 막아버렸으니까. 아 그렇다고 정기훈이 관찰을 앞으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막은 것은 내 영지와 영지민들에게 정기훈이 관찰을 사용하는 것을 막았다는 얘기다.

즉, 지금 정기훈은 고연주를 향해 관찰을 사용했을 것이고, 그것이 작동을 하지 않아서 당황하는 것이리라. 애초에 그가 노리고 온 것은 내가 아니라 고연주였을 테니까.

“대영주님, 무슨 일이십니까?”

와, 대놓고 저렇게 부르다니 부끄럽지 않나?

“아, 아닙니다. 고연주 씨. 혹시 저와 함께하실 생각이 없으신가요?”

“갑자기요?”

고연주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하자 정기훈이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당신이라면 제 반려가 되는 것도.”

“제 반려는 여기 있는데요.”

고연주의 말에 정기훈의 표정이 굳어진다. 아마 고연주가 말한 반려는 내 옆에 있는 예삐일 것이고, 정기훈은 그 반려를 나라고 착각을 한 것 같다.

그제야 정기훈이 나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짓는다.

“최시우 씨?”

역시 저 인간은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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