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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학개론-84화 (84/182)

제 84 화 앞으로의 세상은 -1

제 84 화 앞으로의 세상은 -1

정기훈의 말은 일본에서 내가 없앤 자위대와 한국의 재벌기업 두 곳이 연결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들의 계획을 분쇄했던 것이 나랑 선우, 시연이가 한 일이고.

그런데 그 와중에 우리가 한국인이었다는 것이 알려진 모양이다. 그래서 한국인 중에 강철맨을 찾고 있는 것이고, 다만 한국에 있는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에 있는 한국인 중에 찾고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일이다. 그러니까 저들이 찾고 있는 강철맨 슈트를 입은 헌터들은 재일한국인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영지에서 도망갔던 고블린을 찾다가 하카시의 게이트와 연결되었던 것이니 한국의 게이트 주인이 거기에 등장했을 거라는 생각 자체를 못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당시에 우리는 다시 게이트로 사라졌으니까.

한국처럼 특이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외국의 경우에는 그 나라에 살고 있다고 해도 외국인인 게이트 주인이 생기기도 하니까.

특이하게 한국에서만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이 게이트의 주인이 되는 경우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강철맨들을 찾아서 뭘 하려고 한답니까?”

“아마.”

“아마?”

“영입하려고 하겠죠. 현존하는 최강의 헌터들로 예상되니까요.”

영입을 하려고 한다? 친일파들이?

“그들의 행동을 들으면 일본에 적대적인 것 같은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하하, 그들이 친일파라서 친일이 목적일 거라고 생각하시는군요?”

친일파에게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나? 내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정기훈을 보니 그가 말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일본도 한국도 아닙니다. 그냥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느냐일 뿐이죠. 이익을 위해서 일본에 붙어 있는 것이지, 그보다 이익이 된다면 미국이고, 중국이고 가리지 않을 겁니다. 그들에게 신념 같은 것은 없습니다. 이익이 있을 뿐이죠.”

“그러니까 그들의 선조들이 친일을 했던 이유가 일본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게 자신들에게 이익이 될 것을 알았었기 때문이라는 거군요.”

“네, 그 유명한 친일파가 후손에게 남겼다는 이야기가 앞으로 미국이 흥할 것 같으니 그쪽에 붙으라는 말을 했다는 얘기도 있지 않습니까?”

듣고보니 그런 것 같다. 재일 한국인으로 보이는 강철맨 슈트를 입을 3인방. 그들은 미스릴 게이트의 행방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 그들과 싸울까? 그들은 셋이서 자위대를 전멸시키다시피한 이들인데?

뭐, 실제로는 아니지만 그들은 그렇게 여길 것이다. 그럼 그들이 강철맨을 찾으면 그들과 싸우려는 것이 아니라 영입하려고 할 것이라는 이야기, 혹은 그쪽으로 붙으려고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정기훈 씨의 말대로 강철맨 슈트를 입은 이들을 그들이 찾는다고 그들이 그 친일파에게 붙으리라는 보장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진실을 알고 있을 때의 일이겠죠. 애초에 그들은 거짓을 능숙하게 이용할줄 아는 이들이거든요.”

생각해보니 정기훈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만약 우리가 아무 정보도 없이 만났을 때 그들이 그럴듯한 정의를 내세우면서 자신들에게 힘을 보태달라고 한다면 속지 않을 자신이 있나? 솔직히 이건 나도 잘 모르겠다.

냐앙!

그때 호야가 내 어깨위로 올라온다. 그리고는 애 머리를 깨물한다.

“아프다고!”

하지만 호야의 뜻은 알 수 있다. 그런 놈들은 걱정하지 말란다. 그런 놈들은 호야가 커트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

역시 세상에서 호야가 있으면 못할 일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그래서 제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뭡니까?”

“솔직히 말해서 당신에 대해서 조사를 해보았습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시더군요.”

“그래서요?”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최소한 저들과 손을 잡지 말아주십시오.”

“그게 다입니까?”

“네. 당장은 그게 전부입니다. 그리고 힘을 키워주십시오. 앞으로 이 일은 결국 국가간의 경쟁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큽니다.”

국가간의 경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에 난 살짝 이해가 안 갔다. 국가가 여기에 끼어들 틈이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기훈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인간은 자신의 틀을 부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기왕이면 자신의 터전에서 더 나은 것을 추구하고 싶겠죠. 의외로 그것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기훈의 말에 일정부분 난 공감이 가기도 했다. 기왕에 잘 살 거라면 내가 살던 곳에서 더 잘 살고 싶을 것이다. 생전 가본적도 없는 외국에서 잘 살고 싶은 생각보다는.

“무엇보다 게이트는 이동이 안 되죠. 그러니 이곳을 벗어나서 잘 살려고 해도 그것이 실질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할 거구요.”

맞는 말이다. 게이트는 특정한 조건이 생기지 않으면 이동이 안 된다. 그러니 결국 그 게이트가 생긴 곳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고, 그러다보면 결국 국가간의 경쟁으로 진행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정말 정기훈의 말처럼 진행이 될 가능성이 없다고 하기 어렵다.

“뭐, 일단 그런 이들에게 협력할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아직 당신도 믿을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구요.”

“보인 것이 그러니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네, 배웅나가지는 않겠습니다.”

내 말에 정기훈은 씁쓸한 미소를 짓더니 고연주에게 말한다.

“반려를 잘 선택하셨군요.”

역시 저 인간은 고연주의 반려를 나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굳이 고연주도 그것을 정정해줄 생각은 없는 것 같았고, 나도 굳이 정정할 필요를 못 느꼈다. 그래서 정기훈은 그렇게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고연주가 나를 보며 묻는다.

“후쿠시마에서 활동한 강철맨 슈트를 제가 본 것 같은 기분인데요?”

“핑크 요원, 비밀 엄수는 시호 수호대의 제 1 수칙입니다.”

“풉!”

아, 쪽팔리다. 하지만 뭐 어차피 들킨 거 별 수 있나.

“그게 그러니까······.”

난 고연주에게 그동안 있던 일을 설명했다. 하카시의 게이트를 어떻게 내가 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레오의 이야기를 듣던 고연주는 눈물을 펑펑 흘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강아지라고 하긴 너무 크긴 하지만 예삐를 반려동물로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나보다 더 감정이입이 잘 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흑흑, 저도 다큐를 보고 저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사람이 게이트 주인이었군요.”

“네, 그랬어요. 그래서 결국 레오는 게이트를 나에게 넘겨주었고, 그 게이트 입구는 우리 영지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죠.”

“하아. 제가 빨리 레벨업을 해서 자랑스러운 핑크대원이 되겠어요!”

“갑자기요?”

“네! 좋은 일은 한 거잖아요. 동물들을 그렇게 대하는 인간은 절대 좋은 인간들일 리가 없어요.”

동물에게 막대하는 인간은 같은 인간도 막대할 가능성이 크다. 동물학대범이 살인자가 되는 경우가 많은 이유도 그런 것이다. 그래서 동물학대에 대한 처벌을 높여야 한다고 일부에서 얘기를 하지만, 여전히 정치인들의 사고방식으로는 동물따위 죽였다고 무슨 큰 죄가 되냐는 식의 인식을 가진 이들이 많다.

그걸 바꿔 생각하면 그들의 인권의식도 그 정도일 거라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물론, 이건 내 개긴적인 의견이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대장! 저를 핑크 대원으로 만들어주세요.”

“뭔가 즐기는 것 같습니다만?”

“네, 조금 재미있기도 한데요? 후훗.”

고연주는 생각보다 참 밝은 성격인 것 같다.

“그보다 앞으로 지인들과 가족들은 게이트 안으로 오도록 하세요. 최소한 자신들을 지킬 힘은 길러야 할 거로 생각됩니다.”

“네!”

“하지만 인성이 안 좋은 사람은 사양합니다.”

“잘 선발할게요. 지금 게이트 안에 있는 애들은 믿을 수 있는 애들이예요.”

그럴 거로 생각한다. 이번 몬스터 웨이브에서도 목숨을 걸고 자리를 지켰던 이들이었으니까. 사실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절대 아니다.

더군다니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 자신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야 되는 직업이니까.

그런데도 그들은 목숨을 걸었다. 그 정도면 일단 어느 정도 인성 문제는 커트라인을 넘었다고 생각된다.

듣기로 이곳에 출입 권한을 가지고 있는 연예인들이 모두 온 것은 아니었다고 들었다. 이런 일로 그들의 구분이 생겨버린 것이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죠.”

“네.”

우리는 다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

게이트 안에 들어오자 호야가 예삐의 머리에 올라탔다. 예삐는 그런 호야의 행동에 전혀 반항을 하지 않는다. 아마 둘 사이에 이미 서열이 확고히 정리된 것 같다.

예삐는 불독 믹스견으로 보이는데 덩치는 그보다 훨씬 커서 그 머리에 호야가 앉아 있다고 해도 딱히 위화감 같은 것은 느겨지지 않는다.

“호야, 예삐 너무 괴롭히지 말고.”

냐앙!

자기가 나냐고 그런다. 내가 무슨 언제 여자를 괴롭혔다고.

“그럼 전 여기 사람들 얘기해서 시우 씨 영지로 넘어갈게요.”

“그러세요.”

난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호야를 불러서 우리 영지로 넘어갔다.

그러자 연예인들이 아주 동네 주민들한테 둘러싸여서 사인회를 열고 있는 중이시다.

“이 상황은 뭐냐?”

“그게······ 어르신들이 반갑다고들.”

“하긴 연예인을 보기 쉽지는 않았겠지.”

“당연하지.”

이해는 간다. 그리고 어차피 저러는 것은 처음뿐일 것이고. 계속 같이 뒹굴다보면 딱히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게 되는 순간이 온다.

“시연이는?”

“핑크를 제작중이지.”

“독한 지지배.”

“네 동생이지.”

“맞아. 그런데 주연 씨가 어디 갔지?”

내 말에 선우의 눈빛이 흔들린다.

“친구! 우리는 친구 아니가?”

“사투리는 무슨 서울놈이.”

“내가 뭘 하면 되겠냐?”

“음, 일단 1개 적립으로 해둘까?”

“딜!”

선우 커플을 깨고 싶은 생각은 사실 좀 있긴 하다. 하지만 주연이한테 버림받으면 저놈은 분명 죽을 때까지 혼자 살 것 같아서 참았다.

“조금 있다가 영주성으로 좀 간부들 집합시켜줘. 중요하게 할 말이 있으니까.”

“그래. 먼저 가 있어라.”

***

잠시 후에 영주성으로 간부급이라고 할 수 있는 영지민들이 모였다. 거기에는 카락과 카르독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 영지의 간부는 단지 인간들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

현재 우리 영지의 간부급은 우리 부모님과 양조장 최씨 아저씨, 촌장님, 축산쪽 대표분, 농사쪽 대표분을 비롯해서 선우의 아버지, 그리고 누님과 선우, 시연이까지다.

우리는 카락이 만들어둔 원탁에 둘러앉았다. 원탁의 기사들을 떠올리게 하는 구조지만, 크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연주가 휘하 영주 대표로 참석했다.

“다들 바쁘신데 이렇게 모시게 된 것은 밖에서 다른 대영주를 만나서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입니다. 아마 여러분들과도 무관한 일이 아닐 거로 생각되어서 말씀드립니다. 그러니까······.”

난 정기훈에게 들은 이야기를 모두 들려주었다. 그러자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진다. 사실 지금까지 영지, 영주라는 것이 소꿉놀이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 세상이 이 게이트의 영지들을 중심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이제는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자신들의 가족들에 대해서 향후 어떻게 할 것인지도 생각을 해야 되는 부분도 있다.

우리는 오랜시간을 들여서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앞으로 영지가 나갈 길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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