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6 화 각자의 역할
제 86 화 각자의 역할
숲의 영약이라는 것은 신세계를 열어줄 것이 분명했다. 다만, 이것을 현시점에서 채취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것이 문제다.
엘븐 소드를 익힌 사람이어야 영약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현재 엘븐 소드를 가르칠 수 있는 대상은 인간들이 유일하다.
오크들은 특징상 엘븐 검술을 익히기 어렵고, 바람의 일족도 주로 창을 사용하기에 쉽지 않다. 그들의 경우는 신체적 특징이 문제다. 켄타우로스의 모습으로 전투를 하는데 엘븐 소드는 어울리지 않는다.
혹시 헬레나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 어렵지 않을까 싶다. 제일 가능성이 있는 것은 시연이와 고연수가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선우는 활이 주무기라서 검술이 영 별로다.
사실 엘븐 소드는 인간 기준으로 보자면 남자보다는 여자가 익히기 더 유용한 검술이다. 강한 힘을 필요로 하는 베기 위주의 검술이 아니라 치명상을 입히기 쉬운 찌르기 위주의 공격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도 잘 생각해보면 내 선입견이다. 어차피 힘 스텟과 민첩 스텟이 따로 생성되는 상황에서는 그것도 의미가 없을 수 있으니까.
“모르겠다. 아무튼, 시연이한테 가르쳐주면 알아서 애들한테 가르치겠지.”
시연이는 검술의 능력이 뛰어나다. 대장장이로 이미지가 요즘 좀 굳어지긴 했지만, 나보다 검술에 대한 재능이 훨 뛰어나다. 원래가 학교 대표로 검도를 했었던 애니까.
냐앙! 퍽!
딴 생각에 빠져있자 호야가 내 뒤통수를 날린다. 쓸데 없는 생각하지 말고, 수련을 하라는 얘기다.
그런 호 선생의 지도에 따라서 난 열심히 영약을 파밍했다.
***
오늘 내가 얻은 영양의 숫자는 총 50알이다. 딱 떨어지는 50알이 되었을 때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호야에게 물으니 그곳은 계속 거기 있을 거란다. 언젠가 사라질 수 있냐고 물으니 언젠가는 사라진다고도 했다.
아마 우리 호야는 거기서 배불리 먹고 시작했을 것 같다.
50알의 영약 중에 10알은 내가, 나머지 10알씩 시연이, 선우, 고연주, 헬레나에게 나눠주었다. 어쩌다보니 우리 다섯이 일단 시호 수호대로 불리게 되어서 그렇다.
핑크 대원은 매우 기뻐했고, 헬레나는 눈물을 흘렸다. 헬라나는 자신의 처지를 무슨 노예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헬레나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우리 영지민이 된 이상 당신은 영지민입니다. 그러니 이런 것에 그렇게 감격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구하기 힘든 것인데······ 저 같은 것까지.”
헬레나는 영약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당신은 나에게 소중한 영지민입니다. 그러니 그냥 드세요.”
“감사합니다.”
내 말에 헬레나는 크게 감격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시연이는 낼름 영약들을 삼키고 있었다.
“오오. 힘이 넘친다!”
골때리는 현상인데 시연이는 10개의 영약으로 힘 능력치 100을 얻었다. 고연주는 힘 40, 민첩 40, 체력 20을 얻었고, 선우는 민첩에 몰빵이 되었고, 헬레나의 경우는 지능과 정신력이 50씩 올랐다.
내 경우는 힘과 민첩이 50씩 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힘과 민첩은 올리기 힘든 나였기에 다행이었다.
“이제부터 이 영약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겠으니 잘들 들을 수 있도록 해요.”
“네!”
다들 매우 집중을 했다.
그래서 난 네 사람에게 모두 엘븐 소드를 가르쳐주었다. 선우는 그 검술을 익히다가 묻는다.
“요점은 결국 찌르기라는 거 아냐?”
“맞지.”
“그럼 난 활로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
“음? 그러려나? 아무는 가서들 해봐. 내가 위치는 가르쳐줄테니까. 대신 늘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하고, 나처럼 한 번에 수십 개를 노리지도 말고.”
“당연하지.”
호야가 영약 밭을 알려준 것은 아마 얘들을 키우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솔직히 현재 나와 나머지 넷 사이에는 격차가 좀 있다. 레벨 자체도 내가 제일 높기도 하고, 능력치도 내가 제일 높다. 그런데 앞으로 이 시호 수호대는 여러곳에서 활동을 하게 될 부분이라 키울 방법을 호야가 가르쳐준 것 같다.
“저기······ 그러니까 제가 핑크 확정인거죠?”
고연주가 땀에 흠뻑 젖은 상태로 묻는다.
“싫다면 빠지셔도?”
“아, 아뇨! 기뻐서요. 하하.”
고연주는 오히려 이런 것을 좋아한다. 핑크에 대한 묘한 자부심도 있는 것 같다.
“그럼 저는 화이트인가요?”
헬레나다. 헬레나가 화이트가 된 것도 시연이의 결정이다. 사실 우리의 리더는 시연이가 아닐까?
“네, 헬레나는 화이트예요. 갑옷도 다 만들어지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시연이의 말에 헬레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면 전 대원들에게 마법을 가르쳐주겠어요.”
헬레나의 말에 고연주가 매우 기뻐한다. 아무래도 당장 육체적으로 가장 부족한 고연주였기에 마법에 끌리는 것 같다.
“그렇게 해주세요. 전 그럼 다른 곳을 좀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네.”
“아, 공식적으로 앞으로 여러분은 시호 수호대로 임명합니다. 최상위 방위대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우와!”
역시 시연이가 제일 기뻐한다.
“대장은 일단 제가 맡고, 부대장은······.”
“시연이가 맡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해.”
선우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를 부대장으로 생각했는데, 선우가 시연이에게 양보를 하는 모양새니까.
“그럼 시연이가 맡는 걸로 하고, 선우는 레인저 기사단을 구성하도록 해. 따로 레인저 기사단을 운용할 수 있도록.”
“오케이! 맡겨줘.”
활에 대한 선우의 애정은 상당하다. 재능도 있다. 거기에 고연주 게이트의 헌터 중에 활에 재능이 있는 이들이 있다.
무슨 아이돌 체육대회에서 양궁을 접하고, 취미로 양궁을 해왔다는 이들이 다섯 정도 된다. 여자 둘에 남자 셋.
그들을 데리고 선우가 활을 요즘 제대로 가르치는 중이다. 각궁은 내가 만들어주었다. 이제 내 목공예 수준이 높아져서 매우 위력적인 각궁이 만들어진다. 미노타우루스의 뿔도 충분했기에 무기로 손색이 없다.
“그럼 다들 수고하시고, 난 영지 둘러보러 갈게.”
“그래.”
***
난 부모님을 먼저 찾아갔다. 아버지는 사료 회사를 하고 있으시기에 사료에 들어가는 식재료들의 관리를 전담하고 계신다. 그래서 식재료들에 대한 것은 아버지에게 잘 들을 수 있었다.
“샤인머스켓이랑 루비로망이랑이라는 포도를 들여와서 심으셨다구요?”
“어, 촌장님이 심으셨는데 품질이 아주 뛰어나다.”
“포도는 사료로는 사용할 수 없잖아요.”
“사료에 쓰지는 않지. 사람들이 먹는데 사용한다. 오크들도 매우 좋아하고. 바람의 일족도 침을 흘린다.”
샤인머스켓과 루비로망이라는 포도는 둘 다 일본에서 개발된 품종으로 알고 있다. 단지 일본이 멍청한 짓을 해서 우리나라에 상표권을 등록하지 않아서 우리가 그것들을 재배한다고 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고 들었다.
세계 협약에 따라서 신품종을 개발하면 6년 이내에 다른 나라에 상표권을 등록하면 그 나라에서 그 품종을 생산한다고 해도 로열티를 받게 되는 법이 있는데, 일본은 샤인머스켓도, 루비로망도 그것을 하지 않았기에 현재 한국에서 생산한다고 해도 그것을 막거나, 로열티를 받을 방법이 없다고 한다.
그것을 촌장님이 우리 영지로 가지고 와서 심으신 것이다.
“어디 볼까요?”
둘 다 포도라는 카테고리에 있어서 그런지 기본적으로 우리 영지의 포도가 가지고 있는 지방분해 효과를 가지고 있고, 샤인머스켓은 거기에 더해서 활력을 더해주고, 루비로망의 경우는 뇌세포를 회복시켜준다는 옵션이 붙어 있다.
뇌세포를 회복시켜준다.
별것 아닌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 것이지만,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이것을 지속적으로 먹으면 치매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니까.
“대박인데요. 촌장님 이거 효능이······.”
내가 효능을 이야기해주자 촌장님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한다.
“왜 그러세요?”
“우리 안사람이 몇 달 전에 치매 진단을 받았거든. 이제 걱정을 덜었어.”
촌장님의 아내분은 나도 알고 있는 분인데 전혀 몰랐다. 아직은 경증 치매 정도였었나보다.
“시우 네가 잘 몰라서 그렇지 치매라는 병은 참 슬픈 병이다.”
촌장님의 말씀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내 주변에는 치매를 앓고 계시는 분은 없다. 하지만 그 병이 얼마나 슬픈 병인지는 어렵지 않게 예상이 되는 부분이다.
드라마에서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친구들이랑 즐겁게 떠들고 놀다가 자신의 아파트 단지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멍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 그리고 하는 이야기가 ‘우리 집이 어디더라?’라는 대사였다.
내가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워낙에 한국 배우가 연기를 잘 해서 그런지 그 장면이 슬프고 무섭게 다가왔었다.
만약에 나중에 우리 부모님이 저러면 어쩌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루비로망은 매우 중요한 것이리라.
“이건 촌장님이 잘 신경 써 주세요.”
“암만! 내가 세상에 치매를 싹 없애 버릴 것이야.”
촌장님이 기운이 넘치신다. 그런 모습이 보기 좋다.
“저 그리고 시우, 아니 대영주님.”
“그냥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럼 그럴까?”
“네.”
“그기 말이지.”
촌장님이 쉽게 입을 열지 못하신다.
“말씀하세요.”
“그기 우리 가족들도 우리 영지로 들어와 살면 안 될까? 가족들이 은근히 안에서 살기를 바래서 말이여.”
마을 사람들의 가족들이 영지로 들어오기를 바란다는 이야기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영지민으로 안 받았으면 모를까, 받았는데 그 가족들은 영지민으로 받아줄 수 없다고 하는 것도 이상하니까.
“그러세요. 다만 인성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거 아시죠? 만약 문제를 일으키면 나중에라도 추방당할 수 있다는 것도요.”
“당연하지! 만약 문제를 일으키는 종자가 있으면 그 가족까지 모두 추방당할 거라고 내가 엄포를 놓지!”
농담이 아니고 난 그렇게 할 것이다. 하지만 굳이 알아서 그렇게 말한다는데 거기에 말을 더할 필요는 없었다.
“네, 그럼 촌장님이 이주 문제는 알아서 진행하세요. 사람들이 들어와 살려면 집도 집이고, 학교 같은 것도 지어야겠네요.”
“그렇지 않아도 우리 가족 중에 선생도 있으니께 괜찮을 거여.”
“그럼 선생님으로 활동하실 분은 제가 한 번 따로 뵙도록 하죠.”
“그려, 고마워.”
현재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 영지민과 그 가족들은 미리 우리 영지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영지는 넓다. 웬만한 서울의 구의 인구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넓다. 더 커진다면 도시를 세우는 것도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시스템은 지구에서 게이트 안으로 이주를 원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 들기에 그 부분에 대해서도 난 준비는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을 때 난 내 예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