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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학개론-88화 (88/182)

제 88 화 게이트의 의지

제 88 화 게이트의 의지

난 게이트의 의지. 그러니까 이것이 시스템의 의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시스템이 같은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그래서 나에게서 게이트산 물품들을 밖에 내다 팔라고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나의 게이트는 나에게 아무런 감정을 전달해오지 않는다. 하지만 저 게이트는 자신의 분노를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다. 자신이 선택한 게이트 주인을 누가 죽인 것이냐고 말이다.

이것은 상당히 생경한 감정을 나에게 전해준다.

난 영지전이 우리들의 의지로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애초에 게이트는 각각의 영지였고, 그 영지는 주인을 선택했던 것이다.

즉, 어떻게 보자면 처음부터 게이트는 하나의 의지를 가진 존재들이 아니었고, 각각의 의지를 가진 녀석들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저 게이트의 분노.

“막을 방법이 없을까요?”

김미영 팀장의 말에 난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지금 저 게이트의 분노는 나로서도 어떻게 막겠다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순수한 분노다.

“온전한 분노입니다.”

“온전한 분노요?”

“네, 타협을 할 여지가 없다는 거죠. 저 게이트는 온전히 자신이 선택을 한 게이트의 대리인을 죽인 이들에 대한 분노입니다.”

“그렇다면······.”

“여기는 포기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냥 게이트 변이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군대를 부르세요. 머지않아 몬스터들이 나올겁니다.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미사일 같은 것으로 대응하시려고 한다면 그것은 막으셔야합니다. 더 심각하게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일은 벌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서 핵을 가진 나라들이 벌일 수 있는 일이다.

핵폭탄이라는 것은 단지 파괴력만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서운 것은 그 파괴력 후에 오는 후폭풍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엄청난 방사능.

방사능은 자연적으로 해소가 되는 것에는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에 아직도 그 일대가 죽음의 대지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수십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도 그렇다.

일본은 후쿠시마가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그 오염수를 해양에 버리겠다고 공언했다. 정말 뻔뻔하고, 뻔뻔한 일본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들이 가진 희한한 사고방식은 타국에서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모든 국가가 반대를 해도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대로 할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뭐, 내가 걱정하는 것은 당장 일본이 아니다. 게이트의 분노가 지금 이 시청앞 광장에서만 벌어질 일이겠는가?

그 중에는 핵을 보유한 나라에서도 벌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해결책을 내놓을까?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진 핵을 사용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내가 김미영 팀장에게 미사일 사용에 대해서 우려를 나타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어차피 그 미사일은 게이트 변이 지역에서 폭발할 가능성이 없다. 기계류를 작동을 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 외부로 투사될 몬스터들에게는 어떨까?

트롤이나 미노타우르스, 오우거 같은 대형 몬스터들이라고 해서 미사일에서 무사할 수 있을까?

소설에서는 무슨 마나로 작동하지 않는 무기들은 그런 몬스터들에게 무용지물이라고 설정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미사일이 처리하지 못할 몬스터는 거의 없을 것이다.

단, 몬스터가 게이트 바깥 지역으로 나왔을 때의 이야기다.

게이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막강한 보호막은 미사일이 아니라, 미사일 할아버지가 등장한다고 해도 무의미하게 만들 것이다.

작동하지 않는 미사일은 그냥 무거운 깡통일 뿐이니까.

하지만 외부에서 미사일은 무서운 무기다. 몬스터에게나 사람들에게나.

만약 한국이 그런 전례를 만든다면 다른나라들도 몬스터들이 변이지역을 벗어나면 손쉽게 처리할 방법으로 그것을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 핵을 사용할 수도 있다. 솔직히 그런 사태만은 막고 싶다는 것이 내 심정이다.

“하지만······.”

“게이트 변이 지역 안에서는 어차피 미사일 같은 무기는 작동하지 않을 겁니다. 군대를 부르라는 것은 중화기를 이용해서 변이지역을 벗어나는 몬스터를 잡으라는 이야기죠. 아마 모르긴 해도 저 게이트가 내보낼 수 있는 최강의 몬스터가 등장할 겁니다.”

“시우 씨. 그럼 그 몬스터를 상대해주실 수는······.”

“왜 그래야 하죠?”

“네?”

“게이트의 주인을 죽인자를 찾으세요. 차라리 그게 가장 빠른 해결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그 죽인 자를 게이트 변이지역 안으로 밀어 넣으세요. 그럼 게이트의 분노가 가라앉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러지 않을 것이다. 게이트 주인을 죽인 이가 누구이건 그냥 일반인일 리가 없다. 그 배후는 엄청난 권력을 가진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최소한 정기훈 같은 인물이거나, 친일파일 것이다. 그럼 그런 인물을 게이트 변이 지역에 집어넣을까?

아닐 것이다. 온갖 이유를 가져다 댈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인권이나 사적처벌 같은 이야기를 말이다.

죄를 지었다면 재판을 통해서 벌해야 한다면서 게이트 안으로 당사자를 집어넣지 않을 거다. 결국 그로 인해서 벌어지는 일은 자신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

오히려 옛날이라면 이런 일이 쉬웠을지도 모른다. 죄를 지은 이가 그 죄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시 되던 사회라면 다를 것이다.

골때리는 것은 대한민국은 조선시대에도 이미 그런 것이 쉽지 않을 사회였다는 거겠지만.

냐앙.

호야가 내 어깨에서 내 얼굴을 핥는다. 맞다. 어쩌면 저 게이트의 분노를 호야는 제대로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반려인을 잃은 반려동물의 분노. 혹은 그 반대의 경우.

레오의 경우를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레오는 하카시를 죽인 이들에 대해서 엄청나게 분노하고 있었다. 그것을 지금 저 게이트가 하고 있는 것이리라.

“걱정 마. 난 너 두고 어디 안 갈 거니까. 애초에 날 두고 갔던 것은 너였잖아!”

내 말에 호야가 머리를 내 뺨에 부비적거린다. 미안하다는 뜻이리라.

아마 본능적으로 게이트를 보고 호기심에 들어갔던 것을 호야도 후회를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 중에 그런 착각을 하는 이들이 있다. 강아지나 고양이나 원래 야생의 동물이었으니 밖에 버려도 잘 살아갈 거라는 착각.

개소리다.

애초에 길들여져서 반려인이 제공하는 집과 밥을 먹던 아이들이 야생에서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대충 두어 살 되는 아기를 길거리에 냅두고 잘 살기를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무책임하고, 미친짓이라는 얘기다.

가끔 진짜 사정상 더는 반려동물을 키우기 힘든 상황이 생길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노력해야 한다. 최소한 그 반려동물이 새로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가족을 위해서 그정도 노력은 해야되는 것이지 않은가? 그게 당연한 것이지 않은가.

그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김미영 팀장이 다시 나를 부른다.

“시우 씨.”

“네.”

“정말 그 방법밖에 없을까요?”

“그게 가장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일 겁니다. 물론 절대로 그렇게 할 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대답을 하고 난 게이트 변이를 일으키는 지역으로 다가갔다. 호야는 내 어깨에서 나를 딱히 막지 않는다. 그렇다는 것은 나에게 위험할 일은 없다는 뜻일 거다.

게이트 변이 지역까지 다가간 나는 땅에 손바닥을 대어보았다.

확실히 느껴진다. 게이트의 분노가. 이것은 정말 반려를 잃었을 때나 보일법한 분노의 형태였다.

어쩌면 이 게이트가 특별히 자신이 선택한 게이트 주인을 애정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게이트는 이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고오오오오오오옹!

게이트가 내게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 같다. 가만히 그 의미에 집중을 해보자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다른 게이트의 주인이여, 당신은 이 일과 무관한 존재. 나의 분노를 방해하지 마시오.

시스템이 직접 얘기를 해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뜻을 난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게이트의 분노를 막는다? 그건 좋은 생각은 아닐 것 같았다. 가능한지, 아닌지는 둘째치고서 게이트의 분노를 내가 막아버린다면 이런 일은 다시 벌어질 것이다.

저들은 그래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될 테니까. 그래서 만약 할 수 있다고 해도 난 하지 않을 생각이다.

난 내 의지를 게이트에 전달했다.

“당신의 분노는 정당하다. 다만 그 분노의 실행에 죄없는 목숨이 거둬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고오오오오오오오!

-다른 게이트의 주인이여, 그대의 의견은 타당하다. 노력하겠다.

다행히 게이트는 분노한 가운데서도 대화가 통하는 존재였다. 난 그렇게 게이트와의 대화를 마친 후에 김미영팀장에게 돌아왔다.

“일단 이 일과 무관한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것이 우선입니다. 저 변이는 막지 못합니다. 어서 대피부터 시키세요.”

그래야 쓸데 없는 피해를 막을 겁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부분은 생략했다. 누가 무고한 피해자일지는 내가 알 수 없는 부분이었으니까.

“시우 씨.”

“이건 게이트의 잘못으로 시작된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욕심이 게이트 주인을 살해한 일이죠. 그리고 그 죄의 대가를 빠르게 치렀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게이트는 초자연적인 현상입니다. 그 현상에 인간이 순응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인간의 선택이겠죠. 하지만 그 선택의 결과도 결국 인간이 감당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다른 인간의 잘못을 시우 씨가 바로 잡을······.”

“왜요? 내가 그래야할 의무가 있나요? 아니면 그럴 권한이 있나요?”

“그건······.”

“착각하지 마세요. 잘못한 것은 김미영 팀장님이 아닙니다. 잘못한 이가 대가를 치러야 끝날 일입니다.”

나의 말에 김미영 팀장은 결국 고개를 숙였다. 내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확인했을 테니까.

“다른 나라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진 곳은 없나요?”

“사실 있어요. 중국에서도 일본에서도, 그리고 미국, 유럽, 아프리카까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역시 인간의 욕심이라는 건 한국만 특별한 것은 아니었군요.”

“네, 그렇겠죠.”

“다른 곳의 대응은요?”

“군사적인 움직임이 있다고 알고 있어요. 우리는 그 상황까지는 가고 싶지 않아서 시우 씨에게 도움을 요청한 거구요.”

“저들이라고 몰랐을까요? 결국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나보군요. 우리 게이트는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 겁니다. 아마도. 그리고 저 게이트의 분노는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가장 현명한 대처는 분노의 대상을 저 게이트로 데려오는 겁니다.”

난 그 말을 남기고 집으로 향했다. 우리 영지로 가서 게이트와 대화를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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