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9 화 격변
제 89 화 격변
내가 게이트로 돌아오는 동안에 시청앞 광장의 게이트는 변이를 계속 일으키고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계속 확인하는데, 이미 그 일대는 원래 시청이라고는 하기 힘든 곳이 되었다.
갑작스럽게 솟아 오른 산과 숲이 주변을 침식하고 있다.
“공기가 좋아지려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울 한복판에 산과 숲이 생기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
하지만 내 생각을 읽은 호야의 뒤통수 응징.
퍽! 냥!
“알았어. 그런 생각 안 할게.”
호야와 현재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 아까 차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기에 그런다. 시청앞 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차를 가지고 나가기는 좀 그랬다.
냐앙. 냥냥.
“회사에 들르자고? 왜?”
냥냥.
“닥치고 가라고?”
냥!
그렇단다. 그러면 내게는 선택이 없다. 그래서 난 회사로 오랜만에 출근을 하게 되었다.
“어머! 최 대리, 아니 최 과장님.”
“아, 안녕하세요.”
회사 입구에서 우리 회사 퀸카 여직원을 만났다.
“어머, 얘가 그 유명한 호야군요?”
“아, 네. 그런데 우리 호야가 유명한가요?”
“모르셨어요? 시호 게이트의 ‘호’가 얘라면서요? 요즘 선우네 잡화점에 호야가 마스코트로 사용되고 있는데.”
“우리 호야가요?”
“네. 그래서 요즘 SNS에 호야 인기가 장난 아닌데요. 그래서 말인데 사진 한 장만.”
“우리 호야가 워낙에 성격이 까······.”
냐앙!
호야가 재빨리 여직원의 품을 파고든다. 그리고 턱으로 나를 가리킨다.
“네네, 우리 호야가 사진찍기를 좋아하죠. 아주 모델이 따로 없어요. 폰 주세요.”
“여기요.”
호야는 여직원의 품에 안겨서 이런저런 포즈를 취한다. 진짜 자기가 모델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이게 또 사진을 찍다보니 정신없이 사진을 미친 듯이 찍었다.
“후우, 하얗게 불태웠다.”
“호호, 감사해요.”
여직원은 상당히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피부는 이제 아주 광체가 난다. 피부가 유일한 콤플랙스였던 사람이라고는 이제 생각이 되지 않을 정도다.
“아무튼, 여러모로 감사해요.”
“별말씀을요. 무료로 하는 일도 아닌데.”
“사장님이 요즘 기다리시던데 올라가보세요.”
“네.”
난 여직원과 인사를 나눈 후에 사장실로 향했다. 그런데 호야가 나를 막아선다.
“음? 왜?”
호야가 내 옷을 물고 한쪽으로 나를 끌고 간다. 그래서 따라갔더니 동물들의 실험실이었다.
냐앙. 냥냥. 냥냥냥.
“뭐? 얘들을 다 데리고 우리 영지로 가자고? 갑자기?”
냥!
호야의 뜻은 확고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도대체 호야는 이 동물들을 왜 원하는 걸까?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일이다. 하지만 호야가 이렇게 뜻을 정했다면 얘들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난 따라야 할 것 같다.
“저기······ 소장님.”
“네, 최 과장님.”
“여기 동물들을 제가 데려가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에······ 사실은 여기를 정리할 계획이었습니다. 우리들도 대부분 연구실은 관두기로 했구요.”
“갑자기요? 사료회사에서 갑자기 동물 실험실을 없앤다구요?”
“사장님의 결정이라고 하네요. 우리들도 갑자기 실업자가 되게 생겼어요.”
뭔가 말이 안 되는 얘기다. 동물들을 데리고 비윤리적인 실험을 행하지는 않는다. 예전에는 솔직히 그런 일들도 많았다고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이야기는 없어졌다고 들었고, 실제로 우리 회사에서도 그런 일은 없다.
실험실에 있는 동물들에 대해서 매우 복지도 좋고, 잘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사료를 새로 낼 때마다 당연한 일이지만, 사료에 대한 실험이 필요하다.
사료 회사에서 동물실험은 필수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갑자기 동물실험실을 없애겠다는 걸까?
아무래도 사장과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다.
“일단 제가 사장님과 이야기를 좀 해보고 올게요.”
“네, 최 과장님.”
난 곧장 호야를 데리고 사장실로 향했다.
***
“네? 회사를 인수하라구요? 제가 무슨 돈이 있다고.”
사장실에 들어갔더니 황당한 이야기를 한다. 아예 회사를 나에게 인수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인수자금은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도 되네.”
“그게 무슨······.”
솔직히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갑작스러웠다.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그게······ 사실 나도 자네 게이트에 들어가기를 희망한다네.”
“우리 게이트로 들어오길 희망한다구요? 갑자기 왜요?”
“최근에 기훈이를 만났었네.”
정기훈을 기훈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니 재벌가는 재벌가인 것 같았다.
“저도 만나기는 했습니디만.”
“그 친구가 그러더군. 앞으로 가장 유망한 것은 자네 게이트에서 자리를 잡는 거라고.”
“그게 무슨.”
“우리는 농담을 하지 않는다네. 솔직히 말해서 기훈이네 집안과 우리집안은 상당히 가까운 사이지. 그리고 기훈이네 집안 사람들을 도와주는 포지션이기도 하고, 그런데 기훈이네 집안의 결론은 그렇더군. 게이트로 이주를 빨리 하는 편이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훨씬 도움이 될 거라고.”
“그건 너무 급진적인 생각 아닌가요?”
정말 급진적인 생각이다. 이 생각의 근간은 이 세상이 망할 거라고 생각한다는 거다. 그렇다면 왜 세상이 망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렇다네. 기훈이의 예상에서 크게 벗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회사를 자네에게 넘기는 대신에 자네 영지에 우리가 지낼 수 있는 마을을 하나 내주는 것은 어떤가?”
마을을 내준다. 그러니까 가평 사람들처럼 자신들의 마을을 짓고 살고 싶다는 이야기다. 다만 우리 영지가 어떤 곳인지를 알고 있는 것인지가 궁금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회사를 주는 조건으로 우리 영지에 마을을 얻고 싶다는 것은 좀처럼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우리 영지에 마을을 얻게 된다고 해도 제 지시를 따라야하고, 세금도 부과됩니다. 그리고 웬만한 것은 자급자족으로 얻어야 하니 노동도 필요하구요. 그것을 이해하고 있으신 것 맞습니까?”
“당연한 일이네.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것 아니겠나?”
“음, 뭐 저에게 불리할 조건은 없군요. 하지만 인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영지민으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것에도 동의하십니까?”
“최소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 수 있네. 우리 마을의 관리는 내가 책임질 것이기도 하고.”
“네,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인원은 얼마나 생각하십니까?”
“이백여 명이 될 것이네. 가구 수로 치자면 대충 40가구 정도 되겠고.”
적당한 규모라는 생각이 든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따가 저랑 같이 한 번 들어가서 머무를 곳을 정하시는 걸로 하죠.”
“그렇게 함세.”
“그런데 동물연구실은 왜 없애려고 하신 겁니까?”
“아, 없앤다기보다는 그들을 자네 영지로 옮기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나 생각한 것인데 얘기가 이상하게 전달되었더군. 굳이 오해를 바로 잡지 않은 것은 자네가 오면 해결될 문제라.”
그러니까 동물들과 연구원들을 내 영지로 데려가라는 이야기다. 사실 그게 제일 효율적이기도 하다.
“원하는 동물들이 있다면 더 구해줄 수도 있네.”
원하는 동물이 있냐는 질문에 난 문득 생각나는 동물이 있었다.
“혹시 판다 가능합니까?”
“판다? 아무리 나라도 판다는 불가능하네.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녀석들은 중국이 대여 형태로 한국에 보내준 것이기에 실질적인 주인은 중국이거든.”
“아, 그렇습니까?”
난 우정의 증표로 보낸다 그런식으로 들어서 소유권이 한국에 있나 했는데 아닌가보다. 역시 나라는 큰데 속이 좁은 중국답다랄까.
“레서판다라면 구할 수 있을 것 같네만.”
“레서판다요?”
레서판다.
동물을 좋아하는 내가 레서판다를 모를 수는 없다. 동물계의 아이돌이랄까? 귀여움으로 순위를 측정한다면 아마 세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녀석들이 레서판다일 것이다.
가임기간이 일년에 딱 하루 24시간이라고 알려져 있고, 덕분에 숫자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고 들었다. 현재 지구상에 레서판다의 숫자는 대략 5천으로 추정된다고 들었다.
냐앙! 냥냥! 냥냥냥!
호야가 옆에서 레서판다를 데려오라고 명령을 내리신다.
“왜?”
냥냥냥! 냥냥.
그러니까 호야의 이야기는 멸종위기의 동물들을 최대한 영지에 많이 들이라는 이야기다. 왜 멸종위기종들을 들이려고 하는 걸까?
“이유가 있는 거지?”
냥!
그렇단다. 왜 그런지를 얘기해줄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럼 레서판다와 멸종위기에 있는 동물들 중에 구할 수 있는 동물들을 최대한 구해주세요.”
“멸종위기의 동물들을?”
“네, 우리 호선생이 그런 동물들을 모아달라고 그러네요.”
“알겠네. 최대한 구해보도록 하지.”
“그럼 잠시 후에 같이 게이트로 가시죠. 부장님도 함께 가십니까?”
“그래야지. 못난 놈이지만, 내 동생이니까.”
“네. 그럼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알겠네.”
***
연구소에 들러서 동물들의 이전문제와 연구원들의 우리 영지로의 이전 문제를 상의했다. 다행히 연구원들은 긍정적으로 우리 영지로 이전을 하겠다고 했다.
동물들의 이전문제도 전문 업체를 불러서 해결하기로 했다.
그런 후에 난 사장님과 부장님을 모시고 게이트로 들어갔다.
“여기가 우리 영지입니다.”
“와······ 진짜 신세계군.”
사장님은 들어오자마자 감탄을 하신다. 부장님도 벌어진 입이 다물어질줄 모른다. 그때 촌장님이 다가오신다.
“시우야, 그렇지 않아도 할 말이 있었는데.”
“네, 촌장님.”
“그 우리 마을 사람 중에 이번에 시청앞 광장에서 벌어지는 일에 피해를 입은 가족이 있다고 그러는구나.”
“피해요? 얼마나요?”
“큰 피해는 아니고, 집을 잃었다고 그러네? 그래서 마을에 데리고 와도 되는지를 물어보려고.”
“일단 데리고 오도록 해주세요. 그리고 이쪽은 새로 마을을 세울 분들입니다. 이분들에게 마을 자리를 좀 안내해주세요.”
“새로운 마을?”
“네, 앞으로도 몇 개의 마을이 새로 생길 예정입니다.”
“하긴 그게 낫겠지. 전 두본리 마을의 촌장입니다. 새로 촌장이 되실 분이라고?”
“아, 네.”
사장님과 부장님은 금방 촌장님을 따라서 영지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난 영주의 집무실로 들어간 후에 게이트와 대화를 시도했다.
“내 말 들리지?”
고오옹.
“궁금한 게 있어. 대답을 해주면 좋겠는데.”
고오옹.
다행히 게이트는 제대로 대답을 하고 있었다.
“너희 게이트는 각각 다 다른 인격을 가진 존재들인가? 아니면 시스템에 속한 부속품인건가?”
고오오옹.
게이트는 전자가 맞는다고 대답을 한다.
“그럼 내가 다른 게이트를 공격해도 된다는 얘기야?”
고오옹.
그것은 내 의지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 후에는 더는 대답이 없었다.
“뭔가 세상에 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그치 호야?”
냐앙.
호야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자기 앞발을 열심히 핥고 있다. 저건 절대 모르는 표정이 아니다. 정말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