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2 화 정기훈의 의도.
제 92 화 정기훈의 의도.
“뭐하는 짓이지?”
“아는 사람이야?”
“어, 저 사람이 정기훈이야.”
“아, 그렇군. 그런데 왜 저길 나갔지? 친일파랑 반대편 아냐?”
“맞지. 그렇다고 저 인간이 딱히 인명구조에 목숨을 걸 인간으로 보이지는 않았는데.”
그때 게이트에서 시연이가 뭔가를 들고 나오다가 TV를 보고 말한다.
“저거 덕수궁 아냐?”
“음?”
게이트가 확장되던 영역에 위치한 고궁, 바로 덕수궁이었다. 시청앞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위치였다.
그리고 정기훈은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덕수궁을 지키려고 앞으로 나선 것으로 보인다. 그때 TV에서 그가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대영주 정기훈이다! 그대의 복수를 막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곳은 우리가 목숨을 걸고 지킬 곳이다. 이쪽으로 확장한다면 우리 대영지는 모든 것을 걸고 그대의 일을 막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던 선우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한다.
“저런다고 게이트가 확장의 방향을······ 틀었네?”
선우의 말 그대로였다. 게이트는 덕수궁으로 향하던 게이트 확장을 멈추고 다른 방향으로 확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기훈은 덕수궁 앞에서 마치 수문장이라도 된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저건 칭찬을 해야 되는 건가?”
시연이의 말에 난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정기훈은 나보다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정기훈이 구하려고 한 것은 인명이 아니라 덕수궁이었다.
그렇다면 왜 덕수궁을 지키는데 저렇게 애를 썼는가? 그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서?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그게 다일까?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한 가지 가정을 해보면 저 행동이 이해가 갈 수도 있다.
“저거, 게이트 변이가 게이트를 어떻게 해도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건가?”
“어? 저거 원래대로 안 돌아간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정기훈이 저렇게 목숨걸고 나와서 설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내 말에 시연이가 궁금하다는 듯이 묻는다.
“왜? 덕수궁이 그렇게 가치가 있는 곳이야? 문화재라는 거야 알겠지만, 목숨을 걸 정도라고?”
덕수궁은 원래 경운궁이었던 곳으로 고종때에 이름이 덕수궁으로 바뀐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조선 중기에 지어진 역사적인 궁이고, 역사적 가치는 이루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시기에 저걸 위해서 정기훈이 목숨을 건다? 저기에 게이트가 확장되어서 덕수궁이 사라진다면 정말 안타깝고,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저건 뭔가 부자연스럽다.
“뭐가 있네, 뭐가 있어.”
선우는 단언하듯이 말한다.
“그냥 저 사람이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시연이의 말에 선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그 전에 재벌이지. 넌 재벌이 어떤 인간인지 잘 모르는데 저런거에 목숨을 걸 인간들은 절대 아냐.”
선우의 말에 나도 동의를 했다. 확실히 이건 이상하다. 왜 덕수궁에 목숨을 걸었을까?
“호야, 왜 그런지 너는 알지?”
냐앙! 냥냥! 냥냥냥!
“너라도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한다고? 심지어 이동네 일은 더 모른다고? 하긴 그게 맞긴 하지.”
호야와 나의 모습을 보던 선우가 묻는다.
“너 진짜 호야 말 알아듣는 거냐? 암만 봐도 생쇼하는 것 같은데?”
“너 같이 하등한 휴먼이 뭘 알겠냐? 우리 호선생과 나는 너 같은 하등한 존재가 아니거든. 우리는 대화가 매우 잘 통해.”
“예전엔 네가 사이코패스인줄 알았는데······ 지금은 그냥 미친놈인 것 같기도.”
“확!”
“큭큭, 농담이다. 그런데 저기에 나선 정기훈은 관찰 스킬 보유자잖아?”
“그렇지?”
“그럼 저놈이 관찰로 덕수궁을 봤을 때 뭔가를 본 거 아냐?”
선우의 말에 난 이마를 탁 쳤다.
“와, 선우가 도움되는 말을 할 때가 있다니. 너 선우 아니지 새꺄.”
“맞아, 선우 오빠가 아닌 것 같아! 정체를 밝혀라 도플갱어.”
“도플갱어? 그런 것도 있다냐?”
“모르지. 트롤도 있는 마당에 그게 없다고 자신할 수 있어?”
시연이의 말에 선우는 할 말이 없는지 어깨를 으쓱인다.
“시연아.”
시연이를 부르자 시연이가 나를 본다.
“박쥐맨 슈트 가능한 거 있냐?”
“있긴 한데, 방어력은 기대하기 어려운데? 그냥 모양만 잡아 놨던 거라.”
“됐어. 내가 싸울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가져와봐. 그리고 호야것······.”
호야도 뭘 입히려고 하는 순간 호야가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난 알 수 있었다. 호야는 시야에서 사라진 것이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것을.
“와, 너 은신도 할줄 알아?”
내 말에 선우가 놀라서 묻는다.
“와씨! 진짜 은신이 가능하다고?”
냐앙!
호야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까지 호야가 은신을 한 적이 없기에 몰랐다. 내 관찰로 호야의 스킬을 다 파악하지도 못한다. 그러니 은신을 내 앞에서 사용하기 전에는 모르는 게 당연했다.
“그래, 우리 호야는 우주최강 고양이지. 아이고, 귀여워라.”
내가 호야를 안고 부비적거리자 선우는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야, 이따 호야한테 은신좀 가르쳐달라고 그래. 우리 레인저 기사단에게는 매우 유용하다.”
난 고개를 끄덕이고, 시연이에게 말했다.
“빨리 가져와봐. 나도 저기 가서 봐야겠다.”
“어.”
***
시연이의 실력은 진짜다. 진짜 박쥐맨 슈트를 그대로 재현해놓았다. 그것도 그냥이 아니라, 엄청난맨하고 싸우던 때의 박쥐맨의 울트라 슈트다.
외형 자체로만 보면 저거만 입으면 외계에서 온 엄청난맨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이거 보이는 것이랑 성능이 같은 건 아니지?”
“오빠도 그 영화 봤구나?”
“너랑 같이 봤다만?”
“아, 근가? 아무튼, 언젠가 그렇게 만들어줄게. 하지만 지금은 그냥 겉모습만 그래. 실제로는 미스릴도 많이 안 들어가서 방어력도 강철맨 슈트에 비해서 딸리고.”
“망토는 엄마의 실력이냐?”
“어, 그거 트롤 가죽으로 만든 거야. 웬만한 총알 같은 것은 막을 수 있다고 그러시던데?”
“뭐, 내가 총알 맞을 일이 뭐가 있겠냐만은 그정도면 뭐.”
난 서둘러 슈트를 입어보았다. 맞춤 정장을 입은 것처럼 나에게 딱 맞는 사이즈다. 애초에 내가 입을 것을 상정해서 만든 것 같았다.
“와, 내가 만든 거지만 뭔가 뿌듯한데?”
“대단하긴 하다.”
선우도 감탄한다. 그런 둘을 보고 난 얘들이 참 잘 어울리는 남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선우가 오빠면 나보다 잘 해주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까지 든다.
“잘 어울리는 남매야.”
“사실 나도 시연이가 친동생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거시! 드라마에 단골로 나온다는 그 출생.”
“그만, 난 다리에서 주워왔던 걸로 끝났어.”
“큭큭.”
둘이 잘 논다. 그런 둘을 보다가 난 말했다.
“다녀 오마.”
“어,”
“잘 다녀와.”
둘은 별로 걱정도 하지 않는다.
***
시청앞 광장으로 이동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사실 내 신체 능력은 인간을 벗어난 상태이기에 질주 스킬을 이용해서 달리기 시작하자 웬만한 자동차보다 빨리 달릴 수 있었다.
다행히 마나통도 넉넉해서 어렵지 않게 질주 스킬로 달렸다. 시연이의 디테일이랄까? 아니면 어머니의 작품이실까?
망토 안에는 호야가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호야는 마치 캥거루 어미가 새끼를 주머니에 넣어두는 것처럼 망토 안 공간에 들어가서는 아예 잠이 들었다.
물론, 아무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박쥐맨 슈트를 입고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는데 사람들 눈에 안 보일 수가 없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는 소리가 들렸지만,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아직 만들 수 있는 슈트 종류는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그렇게 20분 정도를 건물 위로 달리니 드디어 덕수궁이 있는 곳에 가까이 갈 수 있었다.
게이트의 확장은 이미 끝난 것 같았다. 어쩌면 하루에 한 번씩 조금씩 확장을 해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멈춰라.”
정기훈이 나를 보고 외친다. 그런 그에게 난 조용히 말했다.
“지금 날 막으면 후회할 텐데?”
“당신······.”
“비켜주지, 당신이 하려는 일을 방해하려는 생각은 아니니까.”
내 말에 정기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러선다. 다행히 별다른 충돌 없이 난 덕수궁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덕수궁에 들어가자마자 놀라운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어라?”
질주 스킬을 계속 쓰면서 왔었기에 다연한 것이지만 마나를 많이 소모했다. 아직 반 정도는 있기에 무슨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딱히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좋은 기분은 아니다.
그런데 덕수궁에 들어오자마자 미친 듯이 마나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것부터 이 덕수궁이 보통의 고궁으로 볼 일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호야, 느껴지지?”
냐앙.
호야도 들어오자마자 다르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난 관찰 스킬을 사용해보았다.
-관찰 스킬을 사용하였습니다.
-성역을 발견하였습니다.
성역: 덕수궁.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고궁이다. 많은 역사와 많은 염원이 집중된 곳으로 성역으로 새롭게 변화되었다.
*성역에 있으면 빠르게 체력과 마나가 회복된다. 웬만한 상처는 성역에 있는 것만으로도 자연적으로 치유된다.
*성역을 잃게 되면 범위 내 지역의 영주들의 힘이 약화된다.
정기훈이 목숨을 걸고 덕수궁을 지키려고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역시 시우 씨죠?”
“맞습니다.”
정기훈이 따로 나를 찾아왔기에 딱히 그에게 정체를 숨기지 않았다.
“역시 당신이 일본에 등장했던 강철맨입니까?”
“전 박쥐맨입니다만?”
“다른 인물이라는 건가요?”
“글쎄요.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해야할 의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아, 제가 좀 선을 넘었군요. 죄송합니다.”
역시 기분나쁠 정도로 깔끔한 인간이다.
“보셨습니까?”
“봤죠. 궁금해서 찾아왔습니다. 내가 보기에 정기훈 씨가 막 그렇게 정의로워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나섰을 것 같지는 않았거든요.”
“큭, 부끄럽지만 진실이라 반박을 못하겠군요.”
“몇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도에서 최대한 답변해드리겠습니다.”
“일단······.”
“네.”
“게이트 변이가 생긴 지역은 원래로 돌아가지 못하는 겁니까?”
“저희는 그렇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쉬쉬하고 있지만, 이미 미국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진 고이 있습니다. 사막 한 가운데 숲이 등장한 경우였죠. 그것도 엄청난 규모의 숲이.”
사막을 숲으로 만드는 일은 지금도 누군가 하고 있는 일로 알고 있다. 한국인이 몽골에서 자비로 사막에 숲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다. 정확한 기억인지는 몰라도.
하지만 엄청난 규모의 숲이 사막에 갑자기 등장했다. 이건 변이가 아니면 설명이 힘들다.
“그래서 성역을 지키기 위해서 나선 것이군요.”
“물론입니다. 조문성은 죽어마땅한 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돕는 인간들도 죽어도 된다고 생각하구요.”
“역시······. 덕수궁 외에 성역이 또 있습니까?”
“예상되지 않습니까? 현재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성역은 경복궁입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게이트도 존재합니다.”
경복궁에 게이트가 존재한다는 것은 몰랐다. 그래서 난 조금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