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9 화 진짜 기사.
제 99 화 진짜 기사.
중간 보스로 예상되는 언데드의 정체는.
-이름: 왕성 3기사단장(74레벨).
헤르티안 검술 중급 마스터이다.
*일대일로 상대하는 상대 외에는 데미지를 받지 않는다.
매우 골때리는 녀석이다. 일단 선공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녀석은 일대일로 상대를 해야 하는 녀석이라는 것이 골때리는 점이다.
이 녀석을 만나기까지 이쪽 시간으로 대략 한 달이 걸렸다. 지구 시간으로는 6일.
드디어 외성의 남부의 정리가 끝나가는 상황. 참고로 동서남북이 아니라 남부, 북부로 나뉘어져 있다.
남부가 조금 서민층이고, 북부는 딱 봐도 좋은 집들이 잔뜩 있는 곳들이다.
즉, 왕성의 외성 공격은 이제 반 정도를 끝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저게 네 말대로라면 일대일로만 싸워야 한다는 거지?”
“어, 일대일이 아닌 데미지는 받지 않는다고 그러네.”
“골때리는 놈일세. 그럼 저걸 상대할 수 있는 것은 너뿐이라는 얘기잖아.”
선우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내 레벨은 77레벨이다. 그간 헤르티안 검술은 중급 맥스까지 올렸고.
헤르티안 중급 검술이 맥스를 찍은 후에 지난번처럼 마스터가 나올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여기서 나올 줄은 몰랐다.
“다른 대성역 게이트들은 도대체 어떻게 공략하는 거냐? 우리가 유독 어려운 거냐?”
선우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정기훈을 통해서 알아본 바로는 외국에 있는 대성역의 난이도는 우리 경복궁 게이트처럼 미친 난이도는 아니라고 한다.
아직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렇게 진행이 어렵지는 않은 것 같다고 정기훈이 얘기해줬다.
“우리가 유독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결국 그만큼 우리가 얻을 것이 많다는 얘기겠지. 다들 60레벨은 넘었지?”
“우리 아버지도 60레벨이 넘었을 정도니 말 다 했지.”
선우의 아버지는 여전히 잡화점을 운영하신다. 그러는 중에 들어와서 레벨업을 하신 것이 60이 넘었다는 얘기. 잡기 쉬운 편에 속하면서 경험치는 엄청 주는 언데드들 덕분에 우리 영지에 속한 영지민들은 모두 60레벨이 넘었다.
중요한 것은 60레벨 이상에서부터는 레벨업이 쉽지 않다는 것. 그래서 대부분의 영지민들은 65레벨 이하다.
그나마 시호 수호대들이 68렙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 위안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바람의 기사단 인원이 100명이나 더 채워졌다.
나름 바람의 일족에서 엄청 경쟁률이 높았다고 한다. 너도나도 힘좀 쓰는 바람의 일족들이 전부 우리 영지로 오고 싶어해서.
다행히 식량 문제가 해결되고 바람의 일족에 드리웠던 어둠이 걷어지면서 그런 이들을 우리 영지로 보낼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무튼, 그래서 네가 상대를 해야 한다는 거지?”
“그렇겠지. 중급 헤르티안 검술의 해금을 위해서라도.”
우리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시연이 갑자기 끼어든다.
“근데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은 데미지 말고 다른 것은 해도 된다는 얘기 아냐?”
시연의 말에 난 순간 놀랐다.
“천잰데? 우리 시연이가 싸움에 천재였다니!”
“뭔 개소리야? 그건 다 생각할 수 있는 거잖아.”
“아, 네가 천재가 아니라 내가 바보였던 거구나.”
“당연하지!”
가슴을 당당히 내밀고 말하는 시연이를 보자니 사랑이 막 샘솟아서 뒤통수에 사랑을 작렬시키고 싶은 생각이 치솟았다.
“근데, 그러면 안 될 것 같지 않냐? 이번 전투는 중급 헤르티안 검술의 해금과 관련된 일인데?”
“아, 그런가? 그럼 일단 위험하다 싶으면 헬레나가 개입하는 걸로 하는 게 어때?”
“만약 내가 진짜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우리의 호 선생이 날 구해줄 거야.”
냐앙!
호야는 뭔 개소리냐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아니면 말고.”
“하긴 호야만 있으면 세상 무서울 것이 없긴 하겠네. 그치, 호야?”
냐앙!
호야는 꼬리를 빳빳하게 세우고 시연이의 다리에 스윽 자신의 호르몬을 묻힌다. 이건 일종의 영역 표시다. 보통 고양이의 반려인이 외출을 하고 오면 고양이가 와서 다리에 스윽 자신을 문지르는 행위.
‘어디서 이상한 냄새를 묻혀온 거야!’라는 행동. 자기 냄새를 묻혀서 스스로 안정을 찾는 행위.
근데 그게 워낙에 귀엽기에 사람들은 그 모습에 녹아버린다. 호야는 자기가 사랑받는 행동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영악한 놈.
냥!
호야가 기분나쁘다는 듯이 나를 보며 운다.
“아무튼, 난 간다.”
결국 이것은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잠깐 기다려.”
내가 막 전투에 돌입하려고 할 때에 선우가 말했다.
“왜?”
“영지민들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 싸워라. 그게 영지민들의 사기에도 좋다. 그리고······.”
“나름 공포도 심어주고?”
“뭐, 겸사겸사?”
영지민들은 영원하지 않다. 사실 웬만해서는 영원한 것이라는 것은 없기 마련이다. 왕가에서는 형제끼리 피를 보는 경우도 역사적으로 허다하지 않은가.
그러니 필요하다. 사기를 고양시킬 필요도 있고, 저 사람에게 덤비면 엿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심어줄 필요도 있는 거다.
“알았다. 한 시간 뒤에 시작하마.”
“그래.”
선우는 카락에게 오크들을 모으게 하고, 헬레나에게 바람의 일족을 모으게 했다. 그 후에 자기 아버지에게 영지민들을 모아오게 했다.
현재 우리 영지에 인간 마을은 두 곳.
양쪽 마을의 촌장들도 사람들을 다 모아왔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난 중급 헤르티안 검술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여전히 검기 같은 것이 막 나오고 그런 검술은 아니다. 하지만 달라진 점이 있다.
바로 연계기다. 예전에는 조금 더 잘 찌르고, 잘 베고, 잘 막는 것이였다면 이제는 찌르면서 베고, 베면서 막고, 막고 찌르고 등등의 연계기가 있다는 점이 다르다. 레벨이 오르면 자동으로 내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검술의 정보.
이것들을 다 합치면 검술의 형이 나온다. 그리고 그것이 더 발전하게 된다면?
어쩌면 검기를 다룰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검에 마나를 둘러서 강도를 높이는 것은 가능하다. 단지 그것이 날을 뚫고 나와서 절삭력을 올려준다거나 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을 뿐이다.
이것을 난 벽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벽이 지금 눈앞에 있다. 그렇게 난 정신을 집중했다.
***
“시우야.”
“아, 시간이 됐냐?”
“어, 뭔 명상을 그렇게 집중해서 하냐?”
“명상을 집중해서 안 하면 그게 명상이냐?”
“긍가?”
“그렇지.”
“가라! 영주몬!”
“미친놈.”
선우를 보고 살짝 웃은 후에 난 중간 보스 ‘왕성 3기사단장’에게 다가갔다.
언데드라고 하지만, 풀플레이트 갑옷을 입고 있기에 언데드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녀석이다.
녀석은 내가 다가가자 검을 뽑아들더니 나에게 예의를 표한다. 이것은 예비 군주에 대한 예의일까? 혹은 자신들을 구원해달라는 부탁의 의미일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나 역이 예의를 표했다. 이것은 사냥이 아니라 결투니까.
비록 내가 기사는 아니지만 상대 기사에 대한 예의를 무시할 만큼 말종은 아니니까. 그리고 상대는 결국 언데드가 되어서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진짜 기사.
그런 기사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은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까.
상대는 나에게 예의를 표한 후에 나에게 들어오라는 손짓을 한다. 마치 후임을 가르치는 선임 기사와 같은 모습.
나쁠 것은 없다.
난 나름대로 검에 마나를 불어 넣고서 상대와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그대로 찌르기로 상대의 어깨를 노렸다. 기사단장은 내 찌르기를 어깨를 살작 움직이는 것으로 피하면서 나에게 아래에서 위로 베기를 시전한다.
찔렀던 내 검을 그대로 난 아래로 내리찍듯이 상대의 검을 막았다. 그리고 반탄력을 이용해서 원을 그리며 상대의 목을 노리고 베기를 시도했다.
기사단장 역시 원심력을 이용해서 내 검을 막고, 마치 내 검을 뱀처럼 휘감듯이 검을 회전시키며 나에게 찌르기를 시도한다.
챙!
그때였다. 기사단장의 검에서 푸르스름한 검기가 맺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으로 기사단장은 위에서 아래로 나에게 검을 내리찍었다.
쾅!
내 몸이 검을 받으면서 반탄력으로 5미터 정도 그대로 뒤로 밀려났다.
만약 내 검이 시연이가 만들어준 미스릴 검이 아니었다면 이번 공격에서 난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린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내 탐구심이 작동한다. 기사단장은 가능했는데, 난 가능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난 다시 기사단장에게 달려들었다. 기사단장은 이제 대놓고 마나 소드랄까? 그런 것을 사용한다.
주로 베기에 사용하는데 검 끝에 마나를 맺히게 하는 것보다 검날에 주로 마나 소드를 맺히게 하고 있었다.
쾅! 쾅쾅쾅!
최선을 다해서 마나 소드를 막았지만, 갈수록 힘에 부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결국 위기가 찾아왔다.
기사단장의 검이 묘하게 비틀리면서 나를 공격하며 내 검을 날려 버린 것이다.
“윽.”
난 내 팔에 달린 방패에 마나를 집중시켰다. 그리고 그것으로 다음 공격을 막아낼 준비를 했다.
하지만.
기사단장은 나를 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살짝 물러나면서 내가 다시 검을 들기를 기다려주었다.
난 검을 들고 그에게 고개를 숙여 예의를 표했다. 기사단장으로서 그는 분명 생전 매우 훌륭한 기사였을 것이다.
무기를 잃은 상대를 죽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의 인품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난 존경심을 가지고 그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의 검에서 마나 소드가 발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2막이 시작되었다.
기사단장은 내가 마나 소드를 발현하자 그에 맞춰서 움직임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마나 소드를 그냥 중급 헤르티안 검술에 맞춰서 찌르기, 베기, 막기등의 연계기를 보였다면 이제는 마나 소드를 이용한 원거리 공격에서부터 방어까지의 기술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난 그것을 따라하면서 기사단장의 기술을 흡수했다.
-헤르티안 중급 검술이 헤르티안 고급 검술로 진화합니다.
시스템은 이미 내가 중급 검술을 넘어섰다고 판정해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기사단장은 내가 휘두른 검에 몸을 날렸다.
푸욱!
“왜?”
난 의문이 들었다. 상대는 일부러 가슴을 열어서 내 검에 찔렸다. 언데드에게 심장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찌른 곳은 그의 마나가 뭉쳐 있는 곳이었다.
“백성들에게······ 안식을······ 내 주군에게······ 평안을······.”
말을 했다. 언데드는 당연히 말을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사단장은 비록 띄엄띄엄이지만 말을 했다.
이것만으로도 그가 보통의 언데드와 다른 존재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내용 역시.
그는 백성과 주군에게 평안을 주기를 바라고 있었고, 그것을 위해서 나에게 힘을 보태준 것이다.
직접적으로 할 수 없는 것을 나에게 부탁한다는 의미.
그 간절함이 내 검을 통해서 나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순간 나에게 환상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