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0 화 전쟁의 서막
제 100 화 전쟁의 서막
내 눈에 보이는 것이 환상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인지할 수 있었다.
‘아름답네.’
환상으로 보이는 것은 왕성의 모습이었다. 뭔가 3D, 아니 4D로 보는 것 같은 생생한 풍경. 심지어 냄새까지 느껴지니까. 거기에 촉감도 느껴진다.
마치 내가 이 왕성의 백성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난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이 왕성의 활기를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된 거 돌아다녀보자.’
난 게이트가 이런 환상을 경험하게 해주는 이유가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주변을 돌아다녀보았다.
일단 왕성을 백성들은 매우 밝은 표정이었다. 그들의 표정으로 볼 때에 이 왕성의 주인이 괜찮은 인물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대화도 가능하려나?’
그런 생각을 할 때다. 멋진 갑옷을 입고 있는 인물이 나에게 다가온다.
“예비 군주?”
그는 정확히 나를 보고 말한다.
“당신은······ 3기사단장?”
“그렇소.”
웬지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정말 그였다. 난 그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그대 세상의 인사법인가보구려.”
“정확히는 우리 나라, 아니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의 인사법이라고 해야겠군요.”
동아시아는 대부분 목례로 인사를 하니까.
“내가 그대를 초대했소.”
“게이트가 아니라 당신이 초대를 한 거였습니까?”
“게이트에게 소원한 마지막 요구조건이었다오.”
“그렇군요.”
“잠시 걷겠소?”
“그러죠.”
“난 칼록 헤르티안이라고 하오.”
“최시우입니다. 그런데 헤르티안이 이 왕성의 주인의 성입니까?”
“하하, 맞소. 내 큰 형님이 이 왕성의 주인이오.”
“그럼 헤르티안 검술은?”
“우리 왕가의 검술이오. 기사들에게는 고급 헤르티안 검술까지 차등으로 권한이 허락된다오. 안타깝게도 난 재능이 미천하여 중급까지만 마스터할 수 있었소만.”
“그렇다면 최상급 헤르티안 검술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것은 오직 왕에게만 허락된 검술이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헤르티안 검술은 이들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그것을 카락이 어떻게 배웠고, 그것이 다시 나에게 전해지게 된 것일까?
이 모든 것이 게이트의 안배인가? 아니면······.
냐앙!
호야는 내 환상 속에도 따라와서 내 어깨에 앉아서 구경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원래 고양이들이라는 것이 호기심이 충만한 애들이라 보통 투명하고 큰 창문 앞에서 밖을 하루종일 쳐다보고 있어도 질려하지 않는 애들이다.
호야도 그렇다. 그리고 그런 호야의 안배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워낙 탈 고양이인 존재라. 그러면서도 여전히 고양이 특유의 버릇이나 행동양식은 다 가지고 있기도 한 귀여운 녀석이다.
어쩌면 저것도 나랑의 추억을 위해서 호야가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막 어딘가에서는 가면 같은 것을 쓰고 근엄한 말투로 부하들을 다루고 그런······ 호야가 상상이 되기도 한다. 나름 엄청 귀여울 것 같긴 하다.
팍!
호야가 기분나쁘게 쳐다본다고 내 뒤통수를 때린다. 얘는 내 생각도 읽는 게 분명하다.
냥!
뭘 쳐다보냔다. 남자 최시우! 눈을 잘 깔 줄 아는 남자다. 그래서 난 눈을 깔았다.
“대단한 존재를 모시고 사시는 구려.”
“네, 뭐. 대단하긴 하죠. 우리 호 선생이.”
내 말에 칼록은 호야에게 정식으로 예를 취한다. 그리고 호야는 앞발을 휘휘저으며 작게 웃는다.
뭔가 엄청 자연스러운 것이 역시 호야가 이 세계관 최강자가 아닐까 했던 내 생각이 맞지 않나 싶다.
“이쪽으로 가시죠.”
“네.”
칼록은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면서 왕성의 외성을 구경시켜주었다. 매우 활기차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아름다운 곳이죠?”
“그러게요. 참 아름다운 곳이네요.”
“우리 큰형님은 백성들이 행복하기를 바란 분이셨죠.”
“그렇겠죠.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들 표정이 저럴 리가 없겠죠.”
“그거 아십니까?”
“제가 뭘 알 것 같지 않네요. 하하.”
여길 처음 보는데 뭘 알겠는가. 내 말에 칼록은 마주 웃으며 말한다.
“하하, 그렇겠군요. 그럼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말씀드리죠.”
“네. 궁금합니다.”
“우리 헤르티안 왕국은 다른 나라를 침범한 적이 없습니다. 왕국이 세워진 후로 한 번도. 먼저 선공을 한 적이 없죠.”
묘하게 우리 역사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외침을 당하긴 많이 당했겠군요.”
“어떻게 아십니까?”
“제가 살고 있는 나라의 역사와 비슷해서 말이죠.”
실제로 우리나라 역사에서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있다, 없다고 학계에서도 다투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일단 뭐 공식적으로 침략한 적이 없다고 듣긴 했다.
“하하하, 어쩌면 우리 왕성이 예비군주 최시우 님의 앞에 등장한 것은 운명인지도 모르겠군요.”
“저도 그런 느낌이 들고 있었습니다.”
정말 비슷한 역사를 가진 왕성이니 말이다. 물론 조선 시대의 백성들이 여기 백성들처럼 밝은 표정이었을까를 생각하면 아닐 거로 생각한다.
조선은 사대부를 위한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들을 위한 나라라고 생각하니까.
그런데도 그놈들 중에 상당수는 나라를 배신했다. 생각하니 과거로 갈 수 있는 게이트가 있다면 들어가서 다 쳐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우리의 경우는 사대부, 아니 귀족이랄까? 그런 놈들 중에 나라를 팔아먹은 놈들이 있었죠.”
“하하하. 신기할 정도로 비슷하군요. 헤르티안 왕국의 몰락도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심지어 내 형제 중에도 배신자가 있었죠.”
칼록의 표정에 회한이 묻어나온다.
“모든 것은 게이트가 생기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게이트가 생기기 전까지 우리의 외교력은 매우 뛰어난 편이었습니다. 덕분에 한참을 평화의 시대로 보내게 되었죠. 하지만 게이트로 인해 결국은 갈등이 생기고, 그 갈등에서 나라를 팔아먹는 놈들부터 여러 군상들이 분탕질을 치면서 우리는 결국 게이트 전쟁에서 패배를 하면서 최시우 님이 보는 그런 모습이 되었습니다. 다른 나라와 다른 점은 .”
“게이트 전쟁이라······.”
그런 일이 결국 벌어질 거라는 생각은 들었다. 보통 판타지 소설에서는 몬스터대 인간의 전쟁이 되지만, 우리 세상에서는 결국 게이트 대 게이트의 전쟁이 벌어질 것 같았다.
그리고 이 헤르티안 왕국은 특이하게 왕성의 백성들이 모두 왕성에서 농성을 하다가 전쟁에서 패배를 한 것 같다.
“다른 선택은 없었습니까?”
“있었죠. 승리한 게이트로 백성들을 보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떠나는 백성은 없었습니다. 쓸데없이 충성도가 높아서······.”
칼록의 말대로라면 결국 백성들은 헤르티안 왕실과 옥쇄를 스스로 결정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정말 대단한 백성들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대가로 우리는 괴물이 되었지요. 최시우 님. 우리들을 해방시켜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칼록이 이런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바로 이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약속하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네.”
“대비하십시오. 인간의 욕심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왕성의 우리 큰 형님이 가지고 있는 것. 그것이 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그것을 손에 넣지 못햇습니다. 아마, 그래서 게이트가 다른 곳으로 넘어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것은 손에 넣으십시오.”
“그게······ 무엇입니까?”
난 궁금해서 물었지만 답변은 없었다. 주변의 풍광이 다시 현실로 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뭔 소리야?”
선우의 물음.
“아! 아니다. 나중에 얘기해줄게.”
“그러냐? 아무튼, 결투는 끝난 거지?”
“그래.”
-헤르티안 왕성의 외성 1구역을 점령하였습니다. 이곳까지 대성역의 영역으로 변화됩니다.
-헤르티안 왕성의 공략 제한 시간이 지구 시간으로 2주 연장 됩니다.
시스템은 이제 정확히 헤르티안 왕성이라는 정확한 명칭을 말한다. 이전과 다른 메시지였다.
내가 의심할 때는 정확한 명칭이 나오지 않았지만, 내가 완전히 진실을 알게 되자 정확한 명칭을 말하는 것이다.
이제 2주나 게이트 공략 시간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한달에 1주일이 추가되었다.
아마 이것은 우리 게이트에만 통용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다른 대성역 게이트도 비슷한 상황일 거라고 본다.
이렇게 한 구역을 클리어 할 때마다 시간이 늘어나야 그나마 공략 가능성이 보일 테니까. 다른 대성역들은 어떻게 공략하나 싶었는데 아마도 이런 것들이 있어서 가능하리라 생각되었다. 그리고 메시지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최초 공략 시간 내에 공략을 마치거나, 그보다 일찍 공략을 마칠 경우 상당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그러니까 한달하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지만, 원래대로 앞으로 3주 안에 공략을 끝내거나 그보다 일찍 끝낸다면 그만한 보상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다.
결국 이것이 게이트 전쟁의 시작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이 보상에 따라서 앞으로 있을 게이트 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시간이 남네? 급하게 공략할 필요는 없는 거 아냐?”
시연이의 말에 난 빤히 시연이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뭐? 왜? 어쩔!”
“자, 다들 모여 있으니 제가 방금 본 것을 말씀드릴게요. 그러니까 이 헤르티안 왕국이라는 곳은······.”
난 기사단장 칼록에게 들은 것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주기 시작했다. 최소한 여기에서 나를 배신할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사실 그게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하기도 하고.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분노를 하는 것이다.
“그런 개같은 새끼들이 다 있댜. 이완용이 같은 놈들이구만.”
“워디 이완용이 하나뿐이여? 을사오적은? 정미칠적은?”
“워따 정씨 겁나 똑똑한디?”
오늘도 콤비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괜히 웃음이 나온다.
“그래서 대영주의 생각은 어떤 건가?”
강남 마을의 촌장이 되신 사장님이 묻는다.
“전 최대한 공략을 서두를 생각입니다. 우리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저분들을 위해서. 저분들이 그동안 이곳에서 괴물로 살고 있던 것을 생각하면······.”
“우리 마을이 뭐 대단한 힘은 없을지 몰라도 돕겠네.”
“우리 마을도 마찬가지일세.”
두본리 마을의 촌장님도 그렇게 말씀하신다. 결국 우리는 더욱 박차를 가해서 공략을 하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우리 영지민들은 내 마음과 같은 결정을 내려주었다. 그래서 난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게이트 전쟁은 벌어질 거라는 얘기군. 역시 기훈이 그 녀석 이야기가 맞았군. 탁월한 선택이었어.”
사장님, 아니 강남 마을 촌장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웃는다.
맞는 말이다. 강남 촌장님은 잘 선택한 것이다.
“우선 가장 먼저 할 일은 우리가 한국의 대성역을 활성화 시켜야 되겠죠. 아직은 임시 관리자라 많은 부분을 어찌 할 수 없지만, 아마 공략이 끝나면 대성역이 제대로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맞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당분간은 제대로 공략에 집중을 하는 것으로 하죠. 그러면서 외부에서 정보를 좀 얻어오고 그래야겠습니다.”
“알겠네.”
이제 게이트 전쟁의 서막이 시작되는 것 같다. 어렴풋이 예상했던 영지전이아니 그보다 더 큰 규모의 전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