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학개론-114화 (114/182)

제114화

제114화 환란의 때에……

누가 봐도 여왕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모습의 인어. 외모도 여왕에 어울린다랄까? 아름답기보다는 기품이 느껴진다.

신기한 일이다. 별다른 장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존재 자체가 기품을 내뿜고 있다.

그런 그녀가 호야에게 예를 차리고 있다. 호야는 당연하다는 듯이 여왕을 한 번 쳐다보고는 말한다.

냐앙! 냥냥냥!

“그렇군요. 당신이 그렇게 찾았던 반려인이 바로 저분이군요.”

심지어 호야가 날 찾아다니기도 했나 보다. 가끔 고양이들은 자기 반려인을 자기가 먹여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털도 없고, 사냥도 잘 못 하게 생겨서 그렇다나? 그래서 흔히 조공이라고 하는 것을 고양이가 하는 경우가 있는데, 벌레를 잡아 오거나, 쥐, 심지어 뱀을 잡아 오는 애도 있다.

물론 서울에 살면서 뱀을 찾기는 쉽지 않을 거고, 요즘은 쥐도 찾아보기 어려우니 보통 호야는 벌레나 장난감 같은 것을 나에게 가지고 오고 그랬다.

뭔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의기양양하게 말이다.

아무튼, 호야는 이곳에서 날 찾아다니고 있었나 보다. 자기 혼자 넘어왔다는 것은 까맣게 잊고서. 애가 머리가 좋다고 해야 되나…… 나쁘다고 해야 되나? 난 호야를 쳐다보았고, 호야는.

퍽!

내 눈빛이 마음에 안 드셨나 보다.

“알았어, 아빠가 잘못했다.”

난 바로 사과했다. 왜? 힘 있는 놈이 장땡이니까. 그런 내 모습에 호야는 만족한 듯이 내 얼굴을 한번 할짝 하고는 내 어깨에 자리 잡는다.

냐앙!

여왕은 호야의 말에 곧장 무릎을 꿇는다.

“맹약에 의거해 약속을 이행하나이다.”

‘맹약? 무슨 맹약이지?’

난 매우 궁금했지만, 여왕이나 호야나 내 의문을 풀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대신에 여왕이 부하들에게 손짓을 하니 부하들이 호수로 뛰어든다. 그리고 잠시 후에 뭔가를 꺼내온다. 지도를 보니 지도가 가리키는 것은 바로 저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반지였다.

여왕은 그것을 호야에게 내밀었고, 호야는 그걸 입에 물더니 나에게 가지고 온다. 그리고 내 앞에 툭 하고 내려놓는다.

“이거 나 쓰라고?”

냐앙!

그렇단다. 그래서 난 관찰로 반지를 살펴보았다.

-아이템: 물의 정령이 봉인된 반지.

물의 대정령이 봉인된 반지다. 물의 정령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매우 간단한 설명의 반지였다. 하지만 그 내용이 간단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냥 물의 정령도 아니고, 물의 대정령이란다.

이런 게 반지에 봉인되어 있다는데 놀랍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 반지를 뭐에 쓰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것이 문제다.

일단 호야가 끼우라고 하니 끼우긴 했다. 호선생의 말은 무조건 따르고 보는 거다. 그럼 덜 맞는다……. 아 자괴감.

아무튼, 그렇게 반지를 끼우니 놀라운 일이 벌어…… 지지 않았다. 그냥 반지가 내 손가락에 딱 맞춰진다는 것 정도? 이것도 나름 신기한 것이라면 신기한 것이지만, 난 평생 반지를 끼워 본 적이 없기에 조금 거슬리는 느낌도 들었다.

이건 아이템이니 차고 있는 거지, 아니라면 절대로 반지를 끼우고 싶은 생각은 없다.

첫사랑에게 커플 반지를 준비해서 고백했다가 까여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난 그냥 사람은 맨손일 때가 가장 사람답다고 생각하는 그런 이상한 생각을 가진 흔한 사람일 뿐이다.

“호야, 일단 네가 쓰라니까 손가락에 끼우기는 했는데 말이지. 이걸 어떻게 쓰는 거니?”

내 말에 대답을 한 것은 여왕이다.

“수호자의 반려시여.”

“최시우입니다. 그러고 보니 정식 인사가 늦었군요. 시호 영지의 영주, 아니 군주인 최시우입니다.”

“물의 일족의 여왕인 레그라 플레움 코르티샤입니다. 레라라고 불러 주세요.”

“아, 네.”

“최시우 군주.”

“시우라고 해 주십시오.”

“네, 시우 군주.”

“네.”

“반지를 끼운 상태에서 반지에 마나를 집중해 보세요. 그럼 알게 되실 겁니다.”

“알겠습니다.”

난 여왕, 레라가 말한 대로 반지에 마나를 집중했다. 그랬더니 반지에서 물이 튀어나온다.

‘이거 물총인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게 대정령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대정령은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레라와 무척이나 흡사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인간, 그대가 나를 부른 것인가?

“딱히 불렀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마 제가 부른 것 같죠?”

-정말 오랜만에 보는 인간이구나. 나와 계약을 하겠느냐?

말투가 뭔가 좀 꺼려지는 느낌이 든다. 상전을 하나 더 모시게 될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하지만 호야가 옆에서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으니 해야겠지.

“부탁드립니다.”

-오만하지 않구나. 마음에 든다. 나 물의 대정령 크레움은 맹약에 따라 인간…….

“최시우입니다.”

-최시우와 계약을 진행한다. 이 계약은 둘 중의 하나가 소멸할 때까지 유지될 것이다. 동의하나?

“동의합니다.”

-계약되었다. 내 힘이 필요할 때 마나를 집중한 상태로 나에게 말을 걸도록.

“그렇게 하죠.”

계약은 그렇게 쉽게 끝났다. 그런데…… 물의 일족의 표정이 가관이다. 뭔가 못 볼 것을 봤다는 듯한 눈빛들. 하나같이 눈빛이 떨리고 있다.

“에…… 무슨 일이 있나요?”

“방금 대정령 크레움과 계약을 한 것이 맞나요?”

레라의 물음에 난 답했다.

“보셨듯이요? 그런데 왜…….”

“말도 안 돼!”

“음? 갑자기요?”

반지를 자기들이 줘 놓고 계약을 하니 말도 안 된다고 한다. 도대체 뭐 하는 거지?

이해가 안 가서 쳐다보니 레라가 말한다.

“그 반지는 지난 500년 동안 아무도 계약에 성공하지 못했어요. 우리 물의 일족 역시.”

“어? 그런데 그걸 왜 저한테 주셨죠?”

“그게 숲의 수호자와의 맹약이었으니까요.”

난 호야를 쳐다보았다. 호야는 옆에서 물의 일족이 발라 주는 생선 살을 먹고 있다. 나름 별미인 건지 아주 맛있게 먹는다. 근데 쟤들도 하반신은 생선 같은데 그 앞에서 생선을 먹는 건 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 아닌가? 그런 생각이 스친다.

“제가 뭔가 실수라도?”

“아, 아니에요. 단지 우리 전설이.”

“전설이요?”

“환란이 닥칠 때 대정령의 주인이 등장한다.”

그게 예언이라고? 겁나 불길한데?

“저기 근데 방금 보셨듯이 저는 계약을 한 거지, 대정령의 주인은 아닙니다. 보세요.”

난 마나를 집중해서 대정령 크레움을 불렀다.

-왜 부르지, 주인?

“음? 갑자기? 내가 주인이라고?”

-나와 계약을 맺은 주인이지 않은가?

“그게 주종 계약이었어?”

이래서 부모님이 계약은 조심하라고 하셨나 보다.

아무튼, 이렇게 되면 빼박 내가 환란에 등장하는 인물이 되어 버리는 건데……. 곤란하다.

“그게 제가 환란 같은 것을 몰고 다니고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

“아, 뭔가 오해를 하셨네요. 환란이 닥칠 때 그것을 구원할 대정령의 주인이 등장한다는 이야기지, 대정령의 주인이 환란을 몰고 온다는 얘기는 아니었어요.”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얘기네요.”

아닌가? 아무튼, 환란은 온다는 얘기가 되나?

“예언에 다른 내용은 없었나요?”

“대정령의 주인이 등장하면 우리는 그를 따르기로 약속했었어요. 그러니 군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갑자기? 이렇게 뜬금없이 내 아래로 들어온다고? 여기 호수도 있고, 그래서 아주 환경이 좋아 보이는데?

-물의 일족이 휘하에 들어오기를 청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시스템까지 저들이 헛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일단 시스템의 메시지에 난 응답했다.

“받아들이죠.”

-물의 일족이 휘하에 들어왔습니다. 쌍방향 게이트 73A 내에 물의 일족 호수가 이동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민물에 살던 애들이 바다에 적응할까 싶었는데, 친절하게 거주지를 우리 게이트로 이동을 시켜 준단다. 참 서비스가 좋은 시스템이다.

시스템의 메시지가 끝나는 순간 주변 환경이 변하기 시작한다. 다행히 우리 게이트 안의 공터가 있는 쪽에 호수가 이동된 것 같다.

저 멀리 오크 기사단이 열심히 훈련하고 있는 것도 보이고, 농사를 짓고, 축사를 돌보는 것도 보인다.

갑자기 대수림에서 우리 영지로 순간 이동이 된 것이다.

물의 일족도 이 변화에 놀란 듯 다들 굳은 모습이다. 그런데 얘들 성비가 영 안 맞는데, 내 눈에 보이는 애들이 다 여성체로 보이는데 남자는 없는 건가?

내 궁금증을 눈치챈 듯이 여왕이 나를 보며 살짝 웃더니 뭔가를 외운다. 그러고는 인어의 모습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한다. 바람의 일족도 그렇고, 얘들도 그렇고 여기 애들은 무슨 변신이 패시브 스킬인가?

관찰로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면 정말 그냥 종족 특성인 것 같긴 한데 말이다.

“왜 여자들만 있는 것인지를 궁금해 하시는 것 같네요.”

“아, 그게…… 네, 궁금합니다.”

솔직히 안 궁금하면 이상한 거 아닌가?

“우리는 임신을 하게 되면 무조건 여성체만 낳게 된답니다.”

“저기 그럼 상대는?”

“오랜 세월 동안 우리는 남자를 구경하지 못했어요.”

“저기 바람의 일족은 남자들이 많던데요?”

“바람의 일족과는 사이가 안 좋아서.”

그러니까 바람의 일족과는 사이가 안 좋고, 원래는 인간 남자를 마법으로 홀려서 아이를 가졌었다고 한다. 그런데 수백 년 동안 인간이 사라졌기에 물의 일족은 점점 개체 수가 줄어들고 있었던 상황이란다.

어쩌면 저들이 말하는 환란이라는 것에 남자가 사라진 것도 포함되는 것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수백 년 동안 남자를 못 봤는데 이렇게 물의 일족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것은 이들의 수명이 그만큼 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난 이 부분에서 놀랐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우리 인간은 일부일처제입니다. 한 남자가 여러 여자를 거느리는 것은 불법입니다. 제 영지 내에서도 그렇게 할 생각이구요.”

“저희도 남자를 공유하지는 않아요.”

“다행이네요. 일단은 이런저런 정리가 필요할 것 같은데 잠시 기다려 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군주.”

여왕이 나에게 군주라고 부르면 이게 족보가 꼬이는 것 아닌가? 뭔가 내가 황제가 되어서 제후국을 두는 것도 아닌데 이상한 느낌이다.

그때 카락이 다가온다. 그래서 카락에게 헬레나를 불러오라고 했다. 아무래도 우리 중에 이들을 가장 잘 아는 것은 헬레나일 것 같았기에.

하지만…… 사이가 안 좋다고 해도 서로 칼질부터…… 할 줄은 몰랐다.

“피하십시오, 군주! 여기는 바람의 일족이 맡겠습니다.”

헬레나의 당찬 말에 난 한숨을 쉬었다.

“가증스러운 바람의 일족이 이곳에 있다니! 군주, 저희에게 맡겨 주세요.”

여왕 레라도 같은 소리를 한다. 도대체 이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던 걸까?

“자, 일단 군주로서 명합니다. 검은 집어넣으세요.”

내 말에 둘은 검을 집어넣는다. 다행히 말은 잘 듣는다.

“이쪽은 이번에 우리 휘하에 들어오게 된 물의 일족이에요. 헬레나도 안면은 있어 보이네요?”

“그, 그게 정말이세요?”

“제가 이런 일로 농담을 할까요?”

“아닙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될까요?”

“싸우지 않겠습니다.”

사이좋게 지내겠다는 말을 기대했지만, 예상보다 더 사이가 안 좋았나 보다. 그래도 싸우지 않겠다고 하니 거기에서 일단은 만족.

“레라? 이쪽은 우리 영지민인 바람의 일족 헬레나라고 해요.”

“저희도 싸우지 않겠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많은 대화가 필요할 것 같네요?”

일본으로 진군하기 며칠이 남은 상황. 아무래도 이들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다.

냐앙.

호야는 알아서 하라고 하고는 재빨리 자기 텐트로 향한다. 공교롭게도 처음 텐트를 쳤던 것이 바로 근처에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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