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5화
제115화 다시 진군
대충 이야기를 들으니 물의 일족과 바람의 일족은 태초부터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물의 일족은 불의 일족이랑 사이가 안 좋아야 하는 거 아닌가?”
내 질문에 레라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한다.
“불의 일족이라는 종족은 없습니다, 군주.”
넘겨짚었더니 없나 보다.
“그럼 대지, 혹은 땅의 일족은?”
“없습니다. 바람의 일족과 물의 일족만 있습니다.”
헬레나의 대답.
그러니까 일족이라 불리는 애들은 얘들이 끝인가 보다. 뭔가 아쉬운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아무튼, 그래서 경쟁 상대가 둘 뿐이라서 둘 사이가 안 좋았다? 이게 맞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결국 그렇게 해석하셔도 무리는 없을 것 같네요.”
레라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뭐 굳이 사이좋게 지내는 것보다는 계속 경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보는데요. 그런데 물의 일족이 아이를 가지기 위해서는 바람의 일족이 필요했던 거 아니었어요?”
“그래서 더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우리 일족에도 엄연히 여성체들이 있었으니까요.”
헬레나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물의 일족은 여성체로만 이루어진 일족이고, 바람의 일족은 남녀로 이루어진 일족이다. 그런데 여성체로만 이루어진 일족과 아이를 가진 바람의 일족 남성체를 바람의 일족 여성체들이 좋게 생각할 리가 없다.
가화만사성이라고 내부에서부터 분노가 쌓이고, 그 분노가 향할 곳은 정해진 느낌?
바람의 일족은 충분히 기분 나쁠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물의 일족은 그래도 바람의 일족 남성체들이 필요했을 텐데…….
“번식에 감정이 개입할 일은 없습니다.”
“쿨한 종족이네요.”
내가 인간이라서 저들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저들은 저렇게 수천 년을 이어서 문화를 만들어 온 것이니까. 그걸 내가 이해하기는 어려울 거다. 그냥 그런가 보다 생각하기로 했다.
“참고로 인간은 감정적인 부분이 매우 중요한 종족입니다. 그러니…….”
“알고 있어요. 저희들도 예전에는 인간 남편을 맞이하고 그랬으니까요.”
레라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영지 내에서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합의를 보죠.”
“네, 군주님.”
“알겠습니다, 군주님.”
겨우 둘 사이를 뜯어말리고 난 고연주의 마을로 들어갔다. 그러자 남자들이 뭔가 잔뜩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다가온다.
“저기, 군주님.”
“네?”
“그…… 이번에 합류하게 된 종족이 그 인어인가요?”
“물의 일족인데, 우리가 보기에는 인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 저희들과도 짝을 지을 수 있는 건가요?”
나에게 질문을 하는 남자는 영화나 드라마에 감초 역할로 자주 출연하는 배우로, 외모는 남주의 절친 정도로 나오기 적합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막 그렇게 잘생기지도 않았고, 막 그렇게 못생기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건 내 주관적인 평가라기보다는 사람들의 평가다.
하지만 30대 중반까지 스캔들도 없고, 연애 경험도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다. 인성도 내가 지내 보니 나쁘지 않다. 그런데도 연애를 못 했다는 것은 낯가림이 심해서가 아닐까 싶다.
의외로 고연주 영지에 속한 연예인들 중에는 낯가림이 심한 사람들이 많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렇다는 것이 나도 좀 의외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연예인이라는 직업도 쉽지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네, 뭐 마음이 맞으면 그렇겠죠? 하지만 우리 영지의 법을 아시죠? 일부일처제입니다.”
“아, 물론입니다. 저희도 대한민국의 국민인데 일부다처제를 생각하지는 않죠.”
“다행이네요. 그런데 낯을 가리신다면서 인어는 괜찮으세요?”
“제가 워낙에 인어 이야기를 좋아해서. 하하하.”
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향이야 사람마다 다 다를 테니까.
우리 이야기를 듣고 여러 남자들이 관심을 보인다. 특히나 연예인인 남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나중에 고연주에게 들으니 자기를 아예 모르는 사람과 연애를 하는 것이 오히려 연예인 입장에서는 더 편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뭐 그들의 남녀 문제야 자기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난 다시 일본으로 진군하는 문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 * *
“일단 오크 기사단은 이번에도 우리 영지를 지켜 주는 것으로 하고. 바람의 일족 기사단과 물의 일족 기사단이 합류를 했고, 인간 기사단도 이번에 합류를 했으면 한다구요?”
“네, 군주. 적극적으로 개입을 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 인간 기사단 소속이면 연예인들이 많을 텐데 괜찮다고 그러던가요?”
“대부분 연예인보다는 지금 우리 영지의 영지민으로 있는 것이 더 좋다고 하네요.”
“그 앞으로 먹고살 생각은 안 한답니까?”
“모르셨습니까? 지금 우리 영지에서 농사만 지어도 웬만한 연예인들보다 잘 법니다. 요즘은 수출도 아주 난리가 아닙니다.”
하긴, 우리 영지에서만 나오는 여러 가지 생산품들은 다른 게이트에서 나오는 것들과는 아예 차원이 다르긴 하다. 난 대영주가 되었던 정기훈에게 영지 내의 생산품에 대해서 물어 본 적이 있었다.
자신의 영지에서는 우리 영지 같은 농산물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처음 우리 영지에 들어왔을 때 정말 놀라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니 고연주의 영지에 소속된 연예인 헌터들도 별다른 미련 없이 영지민으로 살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여전히 연예인이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활동을 이어가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까지도 이번 정벌에 참여를 하겠다는 의사를 보내왔단다.
“일본에서 활동은 안 해도 된답니다.”
“음…… 어차피 성인들이고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는 자신들의 몫이겠죠. 그렇다면 합류시키도록 하죠.”
“네. 알겠습니다.”
사실 그들의 레벨도 대부분 높은 상태이기에 안전 부분에서 크게 걱정되지는 않는다.
“그럼 그렇게 준비를 하도록 하죠. 일본에서 온 연락은요?”
“일본 정부에서 한국 정부로 진군을 멈춰 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비공식적으로 보내오긴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정부의 입장은요?”
“대통령님이 정부가 우리를 움직일 수 없다고 단칼에 거절했다고 합니다.”
대통령도 현재 내 휘하의 영주다. 그의 영지에 속한 헌터의 숫자가 가장 적다. 그의 가족이 전부였기에. 하지만 외부적으로 그는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
다행히 우리와 다른 노선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국회에서는 난리가 났었지만, 이번 기회에 친일파 국회의원들의 명단이 확보되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왔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뒤는 재상께서 잘 알아서 하리라 믿습니다.”
“하하하, 물론입니다. 우리 선조의 염원을 풀어 드릴 수 있는 기회인걸요.”
“다른 나라들의 정세는 어떻습니까?”
“그게 대영주가 정부와 협조하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강제해서는 안 된다는 UN의 결정이 내려진 후에는 적극적으로 대영주를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은 안 보입니다. 물론…….”
“보이지 않게 하려고 하겠죠? 일본처럼?”
“네. 그리고 이번 진군 때 일본이 현대식 무기를 사용하게 된다면 상당히 곤란한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다행이군요. 우리야 피해를 입지 않는다고 해도 튕겨 나가는 총알에 괜히 일반인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으니까요.”
“네, 그 부분 때문에 각국에서 총기 사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사태가 벌어진 곳도 있구요.”
나도 들은 적이 있다. 남미 쪽에서 그런 사태가 벌어졌다고.
“그래서 각국의 전투력은 어떻게 보고 있나요?”
“현재 헌터들의 수준으로는 한국을 따라갈 나라가 없습니다. 그것은 모든 나라가 인정을 하는 부분이구요.”
“그런가요? 하긴 그럴 것도 같네요.”
우리 영지의 특수성 때문일 거다.
“그 외엔 미국이 다음이고, 유럽 연합도 상당히 강력한 헌터들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의 수준은요?”
“일본은 숫자가 많습니다.”
“거긴 왜 숫자가 많은 겁니까?”
“정부에서 헌터가 되면 상당한 지원을 해 줍니다.”
“미친…… 정부의 관여는 막기로 한 거 아니었나요?”
“공식적이진 않습니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로 여러 가지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덕분에 동남아 지역에서 헌터 활동을 하던 이들이 일본으로 넘어와서 헌터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번 갔던 길을 다시 가는 것은 사실 어렵지 않은 일이다. 선우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동남아에서 그런 헌터들을 대거 스카우트해 와서 키운다는 이야기다. 물론 재능이 있는 이들만 데려왔을 것이다.
“거기에 중국 쪽에서도 많이 넘어갔다고 합니다. 중국은 대성역 공략에 실패를 했었으니.”
“하긴 그렇겠군요.”
중국의 헌터들의 상황은 더 안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숫자 하나만큼은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민족답게 중국의 헌터들 중에 상당수가 일본으로 귀화를 했다고 한다.
“우리한테도 귀화 요청이 많이 왔었겠군요?”
“네, 하지만 다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잘하셨어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기훈 혼자 처리를 한 것은 아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예전에 외국의 헌터는 받지 말자는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그럼 준비는 대충 끝난 것으로 알고…… 내일 출격할 준비를 해 주세요.”
“네. 배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 배는 필요 없을 것 같아요. 물의 일족들이 우리의 이동을 도울 수 있다고 하네요.”
“알겠습니다.”
“저도 오늘 들은 이야기라 미리 전달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군주는 무치라고 했습니다. 그런 것으로 사과하지 마십시오.”
“군주는 무치라는 말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군주는 무치다. 군주, 왕은 부끄러움이 없다는 이야기다. 이게 참 골때리는 이야기다. 예전에는 정치적인 면에서 그렇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현대에 와서 정치인들에게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 문제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웬만하면 사과를 하지 않는다. 책임도 지지 않는다. 말 그대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종자들 같이 군다.
자신들이 사과를 하면 더 많은 공격을 당할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난 그게 절대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렇기에 잘못한 부분은 바로 사과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군주님의 말씀이 옳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군주님을 존경합니다. 하하하.”
“존경받을 수 있는 군주가 되도록 앞으로도 노력해야겠군요.”
“그러실 거라고 믿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드디어 일본 원정을 시작하기 위해서 이키섬 남부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참고로 이키섬은 여전히 일본 영토다.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이키섬의 주민들은 자신들을 대한민국에 편입되게 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마도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하지만 당장 그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국가가 아니니까. 최소한 지구에서는 아직 국가가 아닌 것이 현실이다.
그래도 이키섬의 주민들은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하고, 한국에 매우 협조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 실질적으로 게이트가 우리에게 편입되고 농산물 같은 부분에서 상당히 이익을 얻고 있기에 더 그렇다.
“자, 그럼 출발합시다.”
난 바람의 일족과 물의 일족, 그리고 인간 기사단에게 출정을 명령했다.